나름 무척이나 회를 좋아한다. 아내와 큰 아이 건영이도 회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물컹거리는 것이 싫은지 우영이는 그다지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충북 음성 금왕은 바다와는 동 떨어진 내륙의 산간소도시인 관계로 원주민들은 바다에서 나온 먹을거리 중 멸치, 젓갈, 동태, 꽁치 정도만 익숙한 생선, 해산물이고, 다른 수많은 해산물은 들여와도 외면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한 번은 장날 해삼을 팔고 있어 한 어른이 해삼을 짚푸라기로 엮어서 집까지 들고 갔는데, 해삼이 다 녹고 없어졌더라는 얘기도 이 동네 토박이에게 들었었다. 도로가 넓어지고 외지인들이 이주하여 살면서 그런 취향도 많이 변한 모습이다. 읍내에 횟집만도 10집 정도 된다. 대형 마트마다 해산물 코너에서도 회를 취급한다.
우리 가족은 가끔씩-예전에는 한 달에 한두번 정도-횟집에서 외식을 한다. 최근의 A횟집 나들이는 우영이의 유치원 졸업식 때와 그로부터 몇 일 후의 광주 후배와의 만남 자리였다.
회를 주문하고,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데 일명 '스끼다시'라는 것들이 순서대로 상 위에 올려졌다.
횟집에 온 가장 큰 이유는 회를 먹기 위함이고, 가능하면 회를 맛있게 먹는 것인데, 별 관심을 못 끄는 스끼다시의 출현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것들이 있는지 얘기해주면 먹을 것들만 주문하겠다고 하자 서빙 아주머니는 알았다며 돌아갔고, 얼마 지나지않아 쟁반에 들고 온 것들을 상 위에 놓는데는 달리 할 말도 없었다. 준비된 것이니 그냥 먹으라는 투의 얘기를 남기며 돌아선다.
스끼다시 중에 개불과 멍게 따위의 해산물이 작은 접시에 담긴 것이 있어 술 한 잔하기 위해 아내와 후배에게 건배를 권했다. 그러는 사이 건영이는 개불을 오랫만에 본다며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대여섯 조각의 개불은 금새 건영이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소주 한 잔을 위한 한 조각의 개불이 아쉬운 순간이다.
얼마 후, 큰 접시에 큼직하게 썬 광어회가 나왔다. 회를 안주로 먹으면서도 개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 주인이 우리 주위에 왔을 때 용기내어 말했다.
"개불을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다 먹었는데, 맛 좀보게 조금만 더 주실 수 없어요?"
주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똑바로 쳐다보더니 한마디 대꾸를 한다.
"한 접시 시켜서 드세요"
그리고는 주방으로 돌아간다. 순간 먹던 회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왜 이집엘 가자고 했는지 나 자신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회가 남은 상태에서 그 집을 나섰다. 다시는 안 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매뉴에 개불 한 접시에 00000원 이라고 적혀 있어 주인은 당연히 주문해서 먹으랄 권리가 있었다.
일식집에서 참치전문점으로 탈바꿈한 B횟집은 개업을 언제한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한 친구의 초대로 가게 되었다. 회 중에서 참치를 가장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친구 덕에 맛난 참치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회였다. 길가 현수막에도 그 횟집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있었는데, <1인당 2만원, 무한리필!!!>이라는 달콤한 글귀로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었다. '무한 리필'은 말 그대로 그 돈만 내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 회를 아주 좋아하지 않고서는 횟집 주인에게 유리한 게임이다. 나같은 사람을 만나면 주인은 왠 만큼 손해를 감수해야할 테지만... 하여간 읍내에 있던 참치회 전문점에 안 가본 집이 없었는데, 한 번은 C횟집 1주년 기념으로 '참치 원나 데이'가 있다하여 지인들과 함께 회비를 갹출하여 갔던 날의 일이다.
그날 비가 왔고, 횟집에는 자리가 없이 꽉 들어차 마당에 텐트를 치고 주문을 했다. 홀에는 커다란 참치 한마리가 해체되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참치였는지는 모르지만, 잘 발라진 머릿고기와 뽈떼기 살, 뱃살 등등의 상상을 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은 즐거웠다. 곧 텐트안으로 참치가 접시에 담겨 나왔다. 붉은색살 일색이다.
지인 중의 한 분은 '그럼 그렇지'하면서 실망감 넘치는 얼굴로 참치에 젓가락을 댓다. 나 역시 참치회는 좀 먹어본 터라 나온 참치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물론이고 그냥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아깝다며 술과 함께 참치를 열심히 먹어치웠다. 술 잔을 비운 후의 안주감으로 한 첨 집어든것은 '그럼 그렇지'하던 지인과 거의 동시였다.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뱉을 뻔했던 순간 젓가락을 상 위에 내려놓고 주인을 불렀다. 주인이 나오지 않고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나오자 그 지인은 주인을 불러달라고 했다. 얼마 후,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온 주인이 텐트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웃는 낯으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지인은 말했다.
"사장님, 저도 음식 장사하는 사람인데, 이런 식으로 장사하지 맙시다"
주인은 놀란듯한 눈으로 '무엇때문에 그러냐?'고 묻는다.
"참치 한 번 원없이 먹어보겠다고 사람들 모아서 왔는데, 참치도 아닌 것을 내 놓고... 어걸 사람 먹으라고 내놓고 장사하는거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 지인은 일어섰고, 동시에 같이 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갑시다. 다른데가서 제가 한 잔 쏘겠습니다"
사람들이 일어서 나간 후에, 텐트를 걷고 횟집을 뒤로하고 읍내로 내려왔다. 다음해인가 그 횟집은 무슨 찜요리 집으로 바뀌더니 얼마가지 않아 문을 닫고 말았다.
동네 형님과 얘기를 하던 중, 횟집 얘기가 나와 개불얘기를 하자 그 형님은 요즘은 세꼬시집이 대세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 옆에 앉아있던 형수님도 거든다. 스끼다시는 낙지, 해삼, 개불, 멍게 등등 3번까지 달래서 먹을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회사 회식을 직원들의 요청도 있고 해서 '세꼬시집'으로 정했다.
예약을 깜빡 잊고 가서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그다지 넓지 않은 횟집의 빈자리가 곧 꽉 들어찼다. 대세는 대세인 모양이다. 회가 나오기 전에 스끼다시가 나왔다. 해삼, 흑삼, 개불, 전복, 멍게, 돌멍개 등등등. 스끼다시 만으로도 술 한 잔 하기에 부족하지 않아보인다. 곧이어 세꼬시가 나왔는데, 작은 나무 도마위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가늘게 썬 세꼬시가 고기 종류별로 4군데에 나눠져 나왔다. 그냥보기에는 왜소한 양처럼 보였으나 순전히 회만 놓은 것이니 적지않은 양임은 먹다보니 실감할 수 있었다. 결국 주문한 회를 다 먹지 못했고, 일부 직원은 식사를 하기 위해 매운탕을 주문했다. 매뉴에는 매운탕 한 냄비에 5,000원이락 적혀있어 맛이 없어도 큰 부담없겠다 싶어 하나를 시켰다. 맛을 본 직원들은 하나 더 시켜 그 쪽 상에서도 먹으라고 한다. 괜찮은 맛이다. 9명이 회와 술과 매운탕과 밥을 먹고 18만여원 나왔으니 1인당 2만원 정도 한 셈이다. 그 가격이면 꽤 괜찮은 편이고, 흔히 하는 말로 가격대비 '착한 가격'ㅎㅎ.
2만원 무한리필집은 회외의 것들-술, 밥, 매운탕 등-을 추가적으로 내야하기 때문에 결국 1인당 3~4만원은 하는셈임을 감안하면 적지않은 비용부담이 있다. 그에 비해 세꼬시 집은 술, 밥 다 포함해서 2만원 정도니 부담이 적은 편이다. 회식날 세번의 스끼다시를 생각하고 갔던 것은 회까지 남긴 마당에 더 달랄 수 없어 추가 주문을 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지인이 내려오던 날에도 장소를 세꼬시집으로 정했다. 그날 역시 5명이 10만원도 안되는 착한 가격으로 회와 매운탕, 밥까지 거하게 먹을 수 있었다. 스끼다시 역시 더 이상 추가할 수 없었던 것은 회를 조금 남겼기 때문이다.
장사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해야 능수능란하게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 횟집에 손님을 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싱싱한 회가 제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짜라고 생각하는 '스끼다시'로 인해 그 집을 다시 찾을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나 역시 회는 물론이고, 주인의 배려로 맛볼 수 있는 '스끼다시'에 적지않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로 인해 '개불'로 상한 마음은 A횟집을 단호히 거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