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김 승 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을 옆에 두고 살지 않나 싶다.
나의 경우, 어릴 적에는 도봉산이 가까이 있어 여러 번 여러 친구와 놀러 가고는 했다. 놀이라고 해봐야 별다른 것은 없었고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유일한 재미가 아니었나 싶은 시절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처음이자 마지막 미팅을 도봉산에서 하기도 했는데 소보루빵을 사서 함께 먹던 추억이 있었고, 요즘 같은 가을철이면 단풍잎을 모아 문방구에서 코팅하여 책갈피에 꽂아 두곤 했던 국민 모두의 기억도 가지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집안이 갑자기 남루해지면서 보관돼 있던 물건들이 사라지게 되는 우울한 시점에 나의 관심은 온통 시詩에 있었다. 보관되어있던 물건들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잃어버렸으니 그 시절까지의 기억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서두에 밝혔듯 도봉산에서의 짧은 단편들만이 오늘까지 기억되고 있음에 말 없는 위안을 하고 산다. 그때 안고 가던 나의 시어들은 청년이 되어서도 빛났으며 그 안에서의 고민과 자아 투쟁은 멈출 줄 몰랐고 그와 만남에는 질긴 인연만 있었을 뿐 이별은 없었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다 놓아 버린 듯 산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것이 전혀 아니며, 남들보다 학업을 더 해서 박사학위를 가진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나은 장점으로 자신 있게 사는 것도 아닌, 소위 말하여 이도 저도 아닌 재미없는 생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이 같은 생활이 편하기까지 하니 한 편으로는 다 놓고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마음이 들라치면 악어 이빨 보듯 놀라기도 한다.
그러다 올해가 시작되는 계절, 순천으로의 이삿짐과 함께 그가 실려 왔다.
내 기억이 그렇듯 순천만의 화폭 안에 詩가 보였으며, 순천 바다의 탁함이 뇌세포와 조우를 하고 장군봉에서 만난 두 마리의 산새에게서 전해 들은 얘기로 나에게 일침을 가한다.
내가 순천으로 쓸려오자 그가 다시 나를 찾은 것이다. 처음 뵌 장병호 교수님에게서 처음 난 이처럼 수혈을 받고, 허정 선생님의 배려에 잃었던 넋을 되찾아 갔다.
순천 문예대학의 18기 명찰을 달자 내게 생긴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어서 강수화 작가님의 치열한 도전과 결과물에 이가 뽑히듯 충격을 받았으며 매주 뵈는 학우분들의 실력과 열정 앞에 내 모지방은 늘 광부의 그것이 되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그를 만나 고개를 떨구었지만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어 씨익 웃을 수 있겠다. 순천에서의 행복이 영원할 수 있도록 또 하나의 책갈피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문학은 늘 잠재된 의식이 어느 순간 활화산처럼 터져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게됩니다.
소소한 삶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감동으로 전해지는 명약이 되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외모 만큼이나 글도 수려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12.19 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