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의 리더십 : 발상을 완전히 바꾸어라
『장자』는 내편(內篇) · 소요유(逍遙遊) · 제물론(齊物論) · 양생주(養生主) · 인간세(人間世) · 덕충부(德充符) · 대종사(大宗師) · 응제왕(應帝王) 7편, 병무편(騈拇篇) 이하 외편(外篇) 15편, 경상초(庚桑楚) 이하 잡편(雜篇) 11편, 합계 6만 5천여 자(字)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군데에 우화가 섞여 있어서 문학적 표현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은이의 이름은 주(周)인데 그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은 내편뿐이며 외편, 잡편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가탁한 것이라 보는 설이 일반적이다.
장자는 만물의 근원에 '도(道)'의 존재를 인식하고, '도'로 살펴보면 모든 사물에 차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를 '만물제동(萬物齊同)'이라 하는데, 장자사상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장자』는 『노자』와 함께 '노장사상'의 원전이라고 여겨지는데, 『노자』가 현실을 살아가는 강인한 처세의 지혜를 피력한 반면, 『장자』는 현실로부터의 초월을 주장했다.
장자는 기원전 4세기경의 사람으로 송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재야의 자유인으로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장자』라는 책은 재미있다고 정평이 나있으며, 다른 고전에는 없는 매력이 넘쳐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책이 극히 문학적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고전은 대체로 이론 중심이어서 어떻게든 딱딱한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비해 『장자』에는 비유나 우화가 많이 사용되어서 이론서라기보다 문학서적과 같은 취향이 강하며, 그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두 번째로 내용면에서 다른 고전이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룸에 비해, 『장자』는 현실 그 자체로부터의 초월을 설파한다. 해탈(解脫)사상이라고 해도 좋다. 세상의 상식에 구애받지 않는 견해, 세속의 가치관을 넘어선 생활방식, 이러한 것을 다룬 책이 『장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중국 고전 중에서도 특히 이채로운 서적이다.
이유는 이 정도만 들고 『장자』를 펼쳐보자. 우선 책머리에 기술되어 있는 것이 유명한 붕(鵬)이라는 큰 새에 관한 설화이다. 먼 북녘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었다고 한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몇 천 리나 되는지 그 크기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 곤이 변신을 하면 붕이라는 새가 된다.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는 몸길이, 날개를 펴서 날면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걸로 느껴질 정도였다. 바람이 불고 바다가 거칠어지는 계절에 붕새는 먼 남쪽 바다를 향해 날기 시작했다.
『제해(齊諧)』라는 책에는 괴이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는데 그 속에서 붕새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남쪽 바다로 향할 때 붕새가 해면 3천 리에 날개를 펼치고 나니 바람을 타고 9만 리 높이로 올라간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남쪽 바다를 향해 쉴 새 없이 날았다."
지상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먼지가 날고 생물의 호흡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하늘은 파란색 일색이다. 파란 것은 하늘 그 자체의 색이 아니다. 끝없는 거리가 하늘을 파랗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9만 리 상공을 날아가는 붕새 눈에는 이 지상도 파란색 일색으로 보인다.
물은 깊이 채워져 있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마루가 움푹 패인 곳에는 술잔 하나 정도의 물이 채워질 뿐이다. 이 정도로는 지푸라기 하나야 띄우겠지만 술잔을 띄워보려 하면 바닥이 닿아버린다. 하늘을 나는 것도 이와 같다. 큰 날개를 띄워주려면 두텁게 쌓인 바람이 필요하다. 9만 리 높이로 날아 올라가야만 붕새의 날개는 강한 바람의 힘을 받을 수 있다. 바람을 타고 파란 하늘을 등에 지고 나는 붕새,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해서 붕새는 단숨에 남쪽 바다를 목표로 날아가는 것이다.
매미와 비둘기는 이런 붕새를 보고 비웃는다.
""느릅나무나 참나무 가지 끝까지 날아오르는 것도 이렇게 힘든걸. 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 9만 리나 되는 저쪽까지 날려는 녀석은 대관절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모르겠어."
여행을 함에 있어서도 교외로 나가면 하루치 식량을 준비하는 걸로 충분하지만, 백 리 길을 떠나는 자는 며칠 전부터 쌀을 찧고, 천 리 길을 떠나는 자는 3개월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매미나 비둘기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작은 세계에 사는 자에게는 상상도 못할 큰 세계가 있는 것이다.
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초(楚)나라 남쪽에 명령(冥靈)이라는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천 년에 한 번 나이를 먹는다. 또한 아주 옛날에 대춘(大椿)이라는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는 1만 6천 년에 한 번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인간이 장수한다고 해도 그 끝은 뻔하다. 장수를 기원하는 인간들이여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거의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대붕을 비웃은 매미와 비둘기는 세속적인 가치관의 대표자이다. 이에 비해 유유히 나는 대붕의 모습은 인간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상징하고 있다.
『장자』를 읽으면 이제까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인식해온 것이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좁은 시야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지, 더욱 눈을 크게 뜨면 큰 진실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발상의 전환을 부추겨주는 것이 『장자』인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묘한 매력을 만들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