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상식여행(5)
전자파 유해논란 언제까지
전자레인지와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고압 송전선이나 휴대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무서운 암이나 신경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란이 십여년째 계속되고 있다. 전자파의 인체보호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법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에서 방출되는 전자파는 자칫하면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자파의 일종이면서 세상을 밝혀주는 빛(가시광선)도 너무 밝으면 문제가 된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전자파는 정확하게 말하면 전자레인지나 휴대폰에 쓰는 `마이크로파`와 60㎐의 교류에서 발생하는 `초저주파(ELF)복사`다.
마이크로파의 광자는 그 에너지가 매우 작다. 그래서 분자의 진동이나 회전에 영향을 주어서 물질을 뜨겁게 만들기는 하지만 화학결합을 파괴하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강력한 마이크로파는 몸에 화상을 입힐 수는 있어도 DNA나 단백질 분자의 화학결합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암을 유발시킬 수는 없다. 마이크로파가 문제라면 광자 에너지가 훨씬 더 큰 적외선과 가시광선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되어야만 한다.
초저주파 복사의 경우에는 진동하는 자기장이 인체의 신경계에 전류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고압 송전선이나 가전제품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의 세기는 지구 자기의 수백분의 1에 지나지 않아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결론은 몇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다. 현대과학으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과학학술원.국립암연구소.물리학회 등은 물론이고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실시한 대규모 역학조사에서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논란이 왜 사라지지 않을까. 정체불명의 선정적이고 신비적인 주장을 퍼뜨리는 무책임한 언론 때문이다. 전자파의 유해 가능성은 정보국을 출입하던 폴 브로더라는 미국 기자에 의해 1976년에 처음 제기되었고, 우리의 경우에도 과학과는 관련이 없는 어느 재미동포에 의해 92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요란스러운 언론보도로 사회문제가 돼버린 전자파의 유해성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91년에 법을 제정하고, 지금까지 무려 2백50억달러를 낭비해야만 했다. 그렇게 밝혀진 결론을 1백억원을 들여 다시 확인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막힌 정책이다. 전자파가 나라에 따라 다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더구나 우리 언론은 97년부터 공개된 믿을 만한 연구결과들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정확하게 파악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위험 요인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나친 결벽증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근거 없는 선동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아까운 돈과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그런 주장을 악용해 부당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도 있다. 정확한 과학상식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지키기도 어려운 것이 현대생활이다. < 2001.11.12/중앙일보/이덕환(서강대 교수 · 이론화학)>
황사의 원인- -지나친 개간.방목
황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황사는 중국의 무리한 개간과 방목이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황사는 수천만년 동안 히말라야와 티베트고원이 치솟으면서 중국 북부 지역이 건조해져 나타난 현상이다.
중국과학원 과학자들은 바람에 의해 모래와 진흙이 200m 이상 쌓인 황토(뢰스)고원을 조사한 결과 황사 현상은 지금까지 생각보다 1400만년이나 앞선 2300만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과학권위지 ‘네이처’ 14일자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중국 내륙의 사막화는 인도대륙판이 아시아대륙판에 충돌해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고원이 융기하면서 시작됐다. 중국 북부 내륙은 세계 최고의 산맥에 가로막혀 인도양과 태평양으로부터 수분 공급이 차단된 반면 산맥 양 옆의 인도와 동남아는 상습적인 홍수지대가 되었다는 것. 기상청 기상연구소의 황사 전문가인 전영신 박사는 “중국의 황사기록은 기원전 115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나라에서도 서기 174년 신라 아달라왕 때부터 흙이 비처럼 떨어지는 우토(雨土) 기록이 있을 만큼 황사의 역사는 오래됐다”고 말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순웅 교수는 22일 과학기술한림원 주최로 열린 황사토론회에서 10여명의 한중 과학자들과 3월10일까지 2주 동안 황사가 빈발하는 중국 북부지역을 조사한 내용을 발표했다. 대부분이 이 사막인 이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300㎜미만이다.
박 교수는 “전에는 초원이었던 지역이 과도한 경작과 양떼 방목으로 모래 토양으로 바뀌고 있는 곳이 많은 반면 근처의 군사통제지역은 산이 수목으로 뒤덮여 무리한 개간이 사막화 초래의 원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 북서부 자란사막에 98년 세운 기상탑은 지표면의 모래가 바람에 깎여 1m나 낮아져 있었다.
박 교수는 “중국이 방풍림과 초지를 조성하고, 방목금지지역 등을 지정하고 있지만 광활한 사막을 다스리기에는 중과부적이다”며 “특히 파괴된 생태계의 복원은 그 곳 주민의 생활 수준 향상 없이는 어려워 보였다”고 말했다.
중국정부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한반도의 4배에 달하는 사막과 황토고원이 내몽고, 간쑤, 신장을 중심으로 매년 2330㎢씩 늘어나고 있다. 한해에 제주도보다 넓은 면적이 사막화되는 것이다. 국제농업기구(FAO)는 중국의 인구가 13억명으로 불어나면서 소 염소 양 등 가축은 1961년 1억7100만 마리에서 2000년 4억700만 마리로 늘어나 사막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건조한 중국 북부지역 초원의 경작과 방목은 지하수의 고갈을 초래했다. 이 결과 지하수 수위가 크게 떨어져 호수가 사라지고, 강물도 말라붙었다. 미국의 위성이 30년 동안 중국을 관찰한 결과 중국 북부지역에서는 수천 개의 호수가 사라졌다. 이런 물 부족이 마치 부메랑처럼 사막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의 한 지리학자는 “중국 정부가 1994년 해안 도시의 팽창으로 농지가 잠식되자 이를 다른 곳에서 벌충토록 하는 토지정책을 취함으로써 중국 북서부지역의 과도한 개간을 초래했다”고 얼마전 ‘랜드유즈폴리시’라는 잡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월드워치연구소 레스터 브라운 박사는 “바람에 의한 토양 침식으로 살 수 없게된 농민들이 앞으로는 중국 도시로 대거 이주해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사막주변에 거대한 풍력발전단지를 세우면 바람의 속도를 줄여 토양 침식을 막을 수 있다”며 “풍차가 전기를 생산하면 땔감을 얻기 위해 숲을 벌목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2002/03/24)
"뇌는 첫인상 가장 오래 기억"
선거에서 신념과 정책 못지 않게 표를 좌우하는 게 정치인의 인상이다. 요즘 대선 후보 곁에는 늘 이미지 메이커가 붙어 다닌다. 이미지 메이커에게 ‘대부’ 같은 존재가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폴란드 태생의 미국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아쉬이다. 그는 어떤 인상이 호감을 주는지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험은 이랬다. 두 집단의 대학생들에게 어떤 사람의 특성들을 설명하고 인상을 마음 속에 그려 점수를 매기게 했다. 먼저 한 집단에게는 ‘지적인’ ‘솜씨 있는’ ‘부지런한’ ‘단호한’ ‘현실적인’ ‘신중한’ ‘따듯한’을 보여주었고, 또 다른 집단에게는 이 중 ‘따듯한’만 ‘차가운’으로 바꿔 제시했다.
그 결과 ‘따듯한’이란 단어를 들은 대학생들은 관대함, 현명함, 정직함 등 대부분의 평가항목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반면 ‘차가운’으로 기술된 사람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나쁜 점수를 주었다. 차가운 인상은 대인관계에서 결정적 손해라는 게 실험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이처럼 차가우냐 따듯하냐는 주변적 특성과 달리 인상을 결정적으로 좌우해 ‘중심 특성’이라고 한다. 원래 인상이 그런지, 이미지 메이커의 작품인지 모르나 선거로 당선된 이승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인상이 부드럽다. 반면 총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은 차갑고 딱딱했다.
차가운 인상으로 손해를 보는 대표적 인물이 ‘대쪽’ 이회창 총재다. 그래서 “테 있는 안경을 써야 부드럽게 보인다”는 권유에 수십 년 써온 무테를 얇은 금속테로 바꾸었다. 또 참모진이 시사만화가들에게 뾰족한 턱을 부드럽게 그려달라고 부탁도 한다. 하지만 일단 형성된 인상을 바꾸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처럼 첫인상이 나중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초두 효과’라고 한다. 솔로몬 아쉬는 이 효과도 이론화했다. 사람은 일단 첫인상이 형성되면 후에 들어오는 정보에 잘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대개 첫인상은 나중에 들어오는 정보를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뇌는 낯선 장소가 안전한지, 상대가 사기꾼은 아닌지 재빨리 판단해 움직이는 ‘생존 기계’로 진화해온 결과다.
흔히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 물론 자꾸 볼수록 인상이 달리지는 경우도 있어 이를 ‘빈발효과’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초두효과’에 비해 약하다. 실제로 나쁜 첫인상을 줘 두고두고 고생하는 사람이 주변에는 많다. 첫 대면, 면접, 첫선에서 따스한 첫인상을 주느라 노력하는 편이 나쁘게 각인된 첫인상을 지우느라 애먹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2002/04/02)
'제왕절개' 용어의 유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는 분만의 고통을 벌로 받았다. 이브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먹은 아담 역시 평생 일을 해야 먹고 사는 벌을 받았다. 출산과 노동의 고통을 인간의 원죄로 설명하는 구약성서 창세기의 내용이다.
여성에게 가장 큰 공포는 뭐니뭐니 해도 출산의 고통이다. 이 때문에 고통 없는 분만, 즉 무통(無痛)분만은 태고적부터 여성들의 숙원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무통분만법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제왕절개다.
제왕절개는 독일어 '카이저슈니트(Kaiserschnitt)'를 일본어로 직역한 '데이오셋카이'(帝王切開)를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로마의 율리우스 케사르(시저)가 이 수술로 태어나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속설일 뿐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이를 처음 사용한 로마의 작가 플리니우스는 '절개한다'는 뜻의 'caesum'이란 말에서 '섹티오 카이사레아(sectio caesarea)'란 말을 만들었다. 이 말의 발음이 케사르와 비슷해 생긴 오해라는 것이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종교적 미신에 의한 제왕절개가 유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9년 대구 동산의료원에서 초대 원장이던 존슨 박사가 처음 시술했다.
제왕절개는 전신을 마취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대수술이기 때문에 출산 때는 고통이 없다. 그러나 마취가 깨면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 등 자연분만보다 더 고통이 심하다는 게 의사들의 충고다. 게다가 출혈 등 합병증 발생 위험이 자연분만의 두배, 임신부 사망률은 네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지난해(2001년) 우리나라 여성의 제왕절개 비율은 39.6%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1999년의 43%에 비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치 5~15%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이처럼 우리나라 여성의 제왕절개 비율이 높은 이유는 산모들의 오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들의 부추김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진료비가 비싸 수입이 좋은 데다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의사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흡연율.교통사고율.고아수출 등과 함께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부끄러운 세계 1위가 아닐 수 없다. <2002.07.11 중앙일보>
제2의 심장을 보호하는 신발
지금은 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지만 신발을 신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에 비해 짧은 편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귀족이나 성직자, 전사만 신발을 신을 수 있었는데, 손윗사람 앞에서 벗고 성전과 같은 성역에서는 절대로 신지 않았다고 한다.
신발은 수렵이나 어로를 생업으로 삼던 산간지대 사람 또는 북방 민족들이 동물을 잡아먹고 남은 가죽을 발싸개로 이용하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기후, 풍토, 문화에 따라 여러 종류로 구분되는데 주로 샌들과 나막신, 짚신 등의 개방형과 구두 같은 폐쇄형으로 나뉜다.
11세기 이후 십자군 원정을 통해 이슬람의 선진문물이 유럽에 전해지자 왕실을 비롯한 부유층 상안들은 아시아의 호화찬란한 각종 장신구로 한껏 멋을 내 권력과 부를 과시하였다. '폴레인스' '크래카우라'로 불리는 신발은 구두코를 최고 45cm 길이로 꼬챙이처럼 뾰족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구두코를 늘여 사슬로 정강이에 연결시키면서 걸음을 걷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15세기 중반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구두코의 길이를 규제하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끝이 넓게 퍼진 소가죽 구두와 가운데만 뾰족한 오리너구리 신발이 유행하였고 상류층 여성들은 50cm나 되는 나무밑창을 댄 '쇼핀' 이라는 신발을 신었다. 품위있게 보이려고 높은 굽을 단 것이지만 두 사람의 하인이 부축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남성이 여성옆에서 팔을 부축해주는 풍습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프랑스 노동자들은 해고 위협을 받고 있을 때, 그들이 신고 있던 사보를 던져 잘 맞추기만 하면 단번에 기계 전체를 못쓰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보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전통적으로 신어 온 나무 신발로, 태업을 의미하는 '사보타주(sabotage)'는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제2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편안하고 기능적인 신발을 신어야 한다. 구두를 살 때는 발이 가장 길고 넓어지는 저녁 시간을 택한다. 또 구두 뒷부분의 밑창과 뒷굽은 딱딱해야 체중이 고루 실려 통증이 없다. 구두 앞부분을 구부렸을 때 완전히 휠 정도로 부드러워야 편하고 천연재료로 만든 것이 박테리아 번식이 없다. 여름에 즐겨 신는 샌들의 경우 양 옆을 죄는 끈이 있고 앞뒤는 구두처럼 발을 감싸 주는 것이 좋다. 하이힐은 굽 높이가 3.5cm 이하의 것이 좋다.('좋은생각' 2002.8월)
'유체이탈'의 비밀 단서 발견
과학자들 "유별난 체험의 배후는 뇌의 오작동"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유체이탈 경험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확실한 과학적 근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우연한 사건 하나가 유체이탈의 원인을 밝혀줄 것 같다.
스위스의 신경의학 연구자들은 간질 검사와 치료를 받던 중 몸이 공중에 떴고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여성의 사례를 발표했다. 이같은 이상한 경험은 그녀 뇌의 특별한 부위, 즉 우뇌의 각회(angular gyrus)가 전극 자극을 받을 때만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일은 각회가 자극을 받을 때마다 발생했다.
제네바 의대의 신경학자로 영국 전문저널 네이처 금주 판에 발표되는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올라프 블랭크 박사는 "그녀가 우리에게 이에 대해 말했을 때 우리는 당연히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블랭크는 "가끔 이상한 보고를 받는다. 그러나 5-6년 동안 이 일을 해왔지만 이런 경우는 겪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환자는 겁을 먹지 않았지만 매우 이상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블랭크는 환자가 유체이탈 경험을 스스로 지어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환자는 이번 치료 기간에 뇌 속에 1백 개에 달하는 전극을 삽입됐고 어떤 전극이 언제 작동할지 모르고 있었다. 이 자극은 한번에 2초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치료 기간에 환자는 자신의 다리가 줄어들고 무릎이 자신의 얼굴에 닿으려고 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전극과 뇌 지도 제작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43세의 이 환자는 11년간 간질 발작을 앓아왔다. 의사들은 환자 발작의 근원은 찾아내기 위해 전극을 사용했다. 의사들은 또 언어나 운동 등을 담당하는 뇌의 중요한 부분을 밝혀내 수술 중 이 부분에 손상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러한 '뇌 지도 제작'을 이용한다. 전신마취 하에서 전극들이 삽입되고 환자들은 실험 내내 맑은 정신을 유지한다. 그래서 환자들의 만족, 언어 능력, 반응 등이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연구자들에게 이번 사례는 조금 다르다. 유체이탈 경험은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놀라운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표준적인 연구와 달리 통제집단이나 치료 과정 녹화 같은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았다.
이 분야의 다른 학자들은 이같은 횡재성 발견에 대해서 설득력이 있다고 말하며 추가적인 연구에 관심을 보였다. 존스홉킨스 의대 신경과 교수 배리 고든 박사는 "우리가 신체와 공간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간질 환자와 졸중 환자, 발작 환자들게서도 이와 유사한 증언이 나왔다고 말했다. 뇌에서 이 부위는 손발을 잃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환각지'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든 박사는 "우리의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구축되지 않는다. 사람의 정신은 생각보다 기묘하게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고든은 일례로 사과를 보면 붉고 둥글며 빛이 나는 모습을 보며 '사과'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붉은 색, 둥근 모양, 빛나는 모습, '사과' 단어를 떠올리는 과정은 뇌의 제각각 다른 부분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고든에 따르면 우리는 뇌를 이용해 모든 것을 분해했다가 우리가 이해하는 무엇으로 다시 결합한다.
유체이탈 경험은 작은 정보 처리 실패나 단절로 보인다. 그리고 블랭크와 고든은 사람의 두개골에 삽입된 전극의 충격과 두려움, 복잡한 의료 과정에서 수반되는 불확실성이 제네바 환자 사례와 같은 정보 처리 실패를 일으켰을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리블랜드 의료재단 신경정신학자 신디 쿠부 박사는 "환자들이 자신의 신체를 내려다봤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험은 사실 발작이 일어난다는 징조나 경보"라고 말했다. 쿠부 박사는 십년 넘게 간질 환자들을 상대로 연구를 하고 있다.
쿠부 박사는 "빛의 반짝임을 본 환자, 만화 주인공을 본 환자, 데자뷰나 그 반대인 자메이뷰(실제로는 매우 익숙한 경험이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를 경험한 환자들이 있다. 이같은 일은 발작의 조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경과학과 초자연
각회는 신체와 공간 지각, 논리연산을 담당하는 뇌의 복잡한 부분이다. 쿠부 박사는 "각회에 이상이 생기면 환자는 바지를 먼저 입고 다음에 내의를 입으면서 잘못된 점을 찾지 못한다. 혹은 손이나 팔이 신체와 연결돼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를 움직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체이탈 경험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한 다음 단계는 실험에 동의한 환자들을 상대로 이 같은 결과가 발생하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쿠부 박사는 "이 일은 아주 재미있다. 그리고 이는 환자들의 상태 호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네바에 있는 블랭크의 환자는 상태가 훨씬 좋아지고 있으며 발작도 진정됐다.
블랭크 박사는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들이 협력해 자신의 환자에게서 나타난 예기치 못한 반응을 연구하기를 희망한다. 그는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가치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의 삶을 바꾼 놀라운 경험에 관한 의혹을 풀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우리가 정밀한 신경과학에 기여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CNN) / 이인규 (JOINS)2002.09.24 10: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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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 남성은 바이런의 넥타이를...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생활했던 슈바이처 박사는 단 한 개의 넥타이밖에 없었지만 장례식 등 예식이 있을 때마다 넥타이를 착용할 만큼 넥타이를 예의의 상징물로 여겼다. 또 500여개의 넥타이를 가지고 있었던 미국의 가수 겸 배우 프랭크 시나트라는 공연중에 환호하는 팬들에게 넥타이를 풀어 주곤 했다.
넥(neck, 목)과 타이(tie, 매다)의 복합어인 넥타이는 고대 로마 병정이 무더운 여름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 스카프를 찬물에 적셔 목에 감던 것에서 유래한다. 본격적인 넥타이의 등장은 17세기 프랑스 군대의 용병인 크로아티아 병사들에서 시작된다. 터키 전투에서 승리한 병사들이 목에 붉은 천을 두르고 시가행진을 벌이는 것을 본 루이 14세가 이를 따라하기 시작하자 뒤이어 파리에서 유행했다. 목에 붉은 천을 두른 것은 생명을 해치는 마귀가 몸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는 뜻에서였다. 훗날 이들의 이름을 따 '크라바트(cravat)'라고 불렀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넥타이의 점잖은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나비 넥타이는 17세기 중반이후, 그리고 포인핸드(four-in-hand, 매었을 때 길이가 주먹의 4배)와 같은 현대적 넥타이는 19세기말부터 등장했다.
넥타이는 당당한 서인임을 나타내는 데 반해 카톨릭 신부의 칼라는 넥타이 자리를 없애 속세에서 벗어나 있음을 상징한다. 넥타이의 가장 큰 미덕은 일률적이고 단순한 암성정장을 돋보이게 하고 개성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로맨틱한 남성들은 시인 바이런처럼 길게 나부끼는 넥타이를, 점잖은 사람들은 목에 꼭 조이게 맸다.
부인용 넥타이는 드레스에 만들어 붙이거나 넥타이 형태로 가다듬어 고리로 고정시켰다. 이 방법은 여학생 교복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1954년경부터는 넥타이가 여성용 악세사리로도 각광받게 되었다.
한편 넥타이는 끝이 벨트 버클을 살짝 덮을 정도로 매는 것이 적당하며, 겹쳐지는 뒷부분은 앞부분보다 약간 짧게 매 앞에서 볼 때 드러나지 않아야 보기 좋다. 적당한 타이의 넓이는 약 8cm 정도지만 일반적으로 유행에 따라 그 폭이 7~9cm 사이에서 조정된다.
또 넥타이는 반드시 풀어서 보관해야 한다. 맬 때와는 정반대 방법으로 풀어주어야 천고 안감이 꼬이지 않고 구김을 방지할 수 있다. 구김이 심하면 타이 양 끝을 잡고 벨트를 말 듯 둥글게 말아 하룻밤 놓아두고, 실크타이라면 옷장 안에 걸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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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Gentleman)'의 유래
'신사는 장례식용과 외출용 양복, 두벌이면 족하다. 신사는 돈에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위스키를 살 돈만 있으면 된다.. 신사는 특정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않는다. 누가 누구와 관계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유학한 외국 신문기자가 쓴 <영국신사론>에 나오는 말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 그리고 신사로 불리는 '젠틀멘(Gentleman)'.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부르게 된 이유는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귀족제도 때문이다.
영국 신사의 기원은 1000여년전 노르망디 왕 윌리엄의 영국 정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킹 출신의 정복왕 윌리엄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영국 토종 부족들을 굴복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이 때 윌리엄을 따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건너온 기사들이 모두 귀족이 되었는데, 이들이 영국 귀족의 시초다.
초기 영국 귀족들은 아주 거칠고 사나워 토론이 칼싸움으로 번져 서로 죽고 죽이는 데까지 이르기도 했다. 영국인들은 이처럼 거친 천성을 순화하기 위해 예절을 중시하게 됐고, 최고의 예의범절 국가인 프랑스의 에티켓을 배워와 점차 우아한 귀족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영국의 귀족 작위는 세습제로 큰아들에게만 이어지게 되어있어 자연 남은 자녀들은 귀족 아래 신분인 향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족의 기품을 익힌 이 향사들은 새로운 계급인 '젠트리(Gentry)'를 형성했고 이 계급이 오늘날의 '젠틀맨' 즉 신사의 기원이 됐다.
젠틀맨이란 말은 중세에는 신분적 의미가 강했으나 15~16세기에 이르러 중소규모의 토지소유자, 기사, 법률연구가, 전문직업 종사자, 교수 , 목사까지도 포함돼 젠틀맨은 하나의 강력한 사회계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무릇 신사란 타임지가 하루 정도 늦게 배달되는 시골 저택에서 스포츠로 신체를 단련하며, 귀금속 장신구는 피하고 금전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티내지 않는 멋과 검약한 생활이 영국신사의 자랑이며 조건이었다.
현대의 신사는 보통 사립학교에서 공부하고 친절, 예절, 성실 등 기독교 원칙에 입각한 행동철약을 익힌 중상류층을 가리킨다. 신사는 덕성과 정직성을 바탕으로 신의와 결백성, 공명정대함, 세련된 태도를 갖고 예의범절과 공중도덕을 지켜야 하며 자제력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익히 알고있는 농담을 들을 때에도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 양 표정을 관리하고, 상대의 말재간에 감탄하는 눈치까지 보내야만 신사의 자질이 있다고 여긴다.('좋은생각' 2002.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