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모임 4W
2022-07-03 No. 2022-27
카카오톡을 이용해서라도 꼭 구역 식구들과 말씀을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 축복하며 기도하십시오!
▣ 환영합니다! (Welcome)
1. 구역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2. 지난 한 주간 동안 세겹줄 모임을 했는지 “꼭” 확인하십시오.
3.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감사할 만한 일이 있습니까?
4.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했던 일이 있습니까?
5.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금년 전반기에 하나님께 가장 감사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 찬양합니다! (Worship)
· 찬송가 356장 (통 396장) “주 예수 이름 소리 높여”
· 찬송가 360장 (통 402장) “행군 나팔 소리에”
· 찬송가 362장 (통 481장) “주여 복을 주시기를”
주님을 신뢰함으로 힘을 얻는 것에 관한 찬양을 부르셔도 좋습니다.
▣ 말씀을 사모합니다! (Word)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편 122:1-9)
다윗은 오늘의 시에서 ‘여호와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는 것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는 것을 왜 기뻐했는지를 살피면서 우리 또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기뻐합니다.
다윗은 오늘의 시 1절에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고 말할 때 자신이 기뻐했다고 합니다. 다윗 시대의 ‘여호와의 집’은 무엇이었을까요? 아직 성전은 지어지지 않았고, 다윗이 여호와의 언약궤, 즉 법궤를 자기 성에 들일 때도 법궤 그 자체로 수레에 실리는가 하면(사무엘하 6:3) 나중에는 그것만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고 옮깁니다(사무엘하 6:12). 법궤는 원래 성막 안에 보관돼 있어야 하는데, 성막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성막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유실돼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사무엘하 6장에서 다윗은 이 법궤를 ‘다윗성’으로 들여왔고, 7장에서 다윗은 성전을 짓고자 하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이 짓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저 법궤를 위해 장막을 치고 그 안에 법궤를 두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혹은 어디를 가리켜 ‘여호와의 집’이라고 했을까요? 아마도 다윗이 법궤를 놓아둔 그 장막을 ‘여호와의 집’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 시대에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가시적인 상징인 법궤가 있었기 때문에, 법궤가 있는 그곳이 곧 ‘여호와의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집’이 있는 성읍이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뜻은 ‘평화의 기둥’ 혹은 ‘(여호와의) 평화의 반석’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성읍이니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예루살렘으로 와서 ‘여호와의 집’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평화의 반석이어서, 그곳에 와서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주일 예배를 위해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의 형편과 처지가 늘 평안하고 형통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심령은 여러 가지 생채기로 가득하고, 근심과 염려를 피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으며, 설령 교회에 나온다 하더라도 온전히 예배에 집중하기 힘든 이유가 찾자면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교회에 나옵니다. 그리고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를 받으신다면, 그 증거로써 우리에게는 평안도 기쁨도 생기고, 또 한 주간을 살아나갈 수 있는 새 힘도 얻을 수 있으며,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아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으로’ 그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힘써 성실하게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유의 창조주요 대주재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와 그분을 예배하는 것을 온전히 기뻐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십시다.
1) 당신은 매주일 예배를 위해 교회에 올 때 기쁨이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2) 당신이 매주일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무엇이고 교회에 나올 때 그 이유는 충족되고 있습니까?
2.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다윗은 그렇게 예루살렘에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6절)라고 합니다. 5절 말씀을 보면 다윗이 왜 그런 요구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즉 예루살렘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고, 자기 왕궁이 예루살렘에 있으니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라는 것은 자기 왕권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7절에서도 다윗은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라고 해서 자기 왕궁과 그 왕궁이 있는 수도인 예루살렘 성의 평안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칫 이런 다윗의 모습에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왕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살핀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을 주셔서 영원한 왕위를 약속하십니다(사무엘상 7:13). 이 때 다윗은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사무엘상 7:18)라고 자신을 낮추는 한편,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임을 상기하며(23절) 그런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 자신을 세우신 것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은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으나 참 왕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분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왕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그가 늘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던 이유가 됐고,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솔로몬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 백성을 지혜로써 다스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다윗이 자신의 왕권을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했던 것은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는 지역교회의 멤버십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성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가나안 성도’는 코로나 사태를 기해 그 규모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었고, 지역교회의 출석률은 코로나 이전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도 가상공간 역시 우리의 선교지가 될 뿐 아니라 우리 신앙의 현장이 되면서 지역교회 멤버십의 중요성은 갈수록 약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교회야말로 우리의 신앙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곳임을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속돼 있는 지역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그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그 교회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섬기는 성도가 됩시다!
3) 당신은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평안을 위한 당신의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4) 당신이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교회의 평안이 우리 개인과 가정과 모든 일의 평안과 직결됩니다.
다윗은 오늘의 시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기쁨을 말하고 이어서 예루살렘 성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요청한 다음에 자신의 형제와 친구, 즉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평안을 빌고 복을 빌고 있습니다(8-9절). 예배의 기쁨과 예루살렘의 평안을 위한 기도에 이어 백성을 위한 평안과 복을 비는 순서에 주목합시다.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기도이며, 그 다음이 축복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 받기 위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결코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 복을 받고자 하는 우리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하나님을 경배하면, 그 자체로써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 시대에 백성의 평안과 복은 왕권의 안정과 강성해지는 데 달려 있었습니다. 부족국가에서 주변 국가들을 복속시키는 정복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시대에 강한 왕권은 그 백성의 평안과 형통에 직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자기 왕권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담대하게 요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평안과 복은 무엇에 달려 있습니까? 우리처럼 평화 시대에는 일차적으로 교회의 평안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의 평안은 같은 예배 공동체, 신앙 공동체, 성장 공동체, 치유 공동체이자 사역 공동체인 지역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 내 삶이 평안하고 내 가정이 평안하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평안과 형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5) 당신은 교회의 평안이 당신의 삶의 평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6) 당신의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함께 사역해요! (Work)
1. 실천과제:
우리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평안을 위한 기도 이외에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 이상 꼭 생각해 보시고 실천하십시오.
2. 기도제목 나눔
· 구역 가족과 각 가정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합니다.
· 반복되는 기도제목이라도 무시하지 마시고, 함께 기도합니다.
· 세겹줄 모임별로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3. 교회를 위한 기도 (주보 2면의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해요.)
4. 선교사/선교기관을 위한 기도 (담당 선교사/기관은 주보 3면 참조)
5. 전도대상자들을 위한 기도
· 전도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전도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목록으로 만들어 구역에서 함께 나누고 기도합니다.
· 한 주간 동안 전도대상자들을 만나고 전도를 시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