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8 - 서영남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3월 4일에는 그저 푹 쉬었습니다. 감기 몸살이 나아야 내일 교도소 정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귀에다가 체온 측정을 합니다.체온이 37도가 넘으면 교도소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감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푹 쉬었습니다.
3월 5일(금)에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났습니다. 감기 기운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모니카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오늘 첫 강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찬씨가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네 시 반에 재찬씨 집에 가서 함께 청송으로 향했습니다.
여덟 시에 가랫재 휴게소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교도관에게 선물할 커피믹스만 샀습니다. 오늘은 형제들께 대접할 떡과 빵 그리고 과자를 많이 챙겨왔습니다.
청송3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교도관이 형제들께 전해 줄 음식이 너무 많다고 난색을 표합니다. 그렇다면 그냥 빈손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한바탕 옥신각신하다가 음식이 통과되었습니다.
청송3교도소에는 폐지된 보호감호법에 의한 감호자가 출소의 기약도 없이 감호를 살고 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몇십 명이 법에도 없는 법으로 갇혀있습니다. 오늘부터 감호자들이 단식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3교도소를 나와서 형제들 영치금을 넣어주고 진보로 나와서 우리밀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호떡 냄새가 아주 좋습니다. 호떡을 조금 샀습니다. 빵도 좀 더 샀습니다.
호떡 냄새 때문에 들키지 않도록 차 문을 열고 청송교도소로 갔습니다.
꼴베형제와 호근형제만 남고 전에 있던 형제들은 전부 다른 교도소로 이송을 갔습니다. 새 형제들이 나왔습니다. 전부 초범인데 형기가 깁니다.
먼저 호떡을 먹었습니다. 다행이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습니다. 십오년만에 처음으로 호떡을 먹어본다고 합니다.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에 맛보고 처음 맛보는 호떡입니다.
모임을 마치고 나와서 영치금을 넣고 인천으로 출발했습니다.
재찬씨가 녹초가 되었습니다. 이토록 힘든데 왜 교도소를 다니는지 묻습니다.
길이 덜 막혔습니다. 밤 여덟 시에 동인천에 도착해서 베로니카께서 준비해 주신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기에 걸린 채 청송을 다녀오니 온몸이 천근만근입니다. 그래도 기분이 참 좋습니다.
3월 6일(토)에는 조금 일찍 국수집에 도착했습니다. 손님들이 무척이나 많이 오셨습니다. 서둘러 미역국을 제일 커다란 솥으로 한 솥 끓였습니다.
오랜만에 낮잠을 한 시간 잤습니다. 이젠 늙었구나 싶습니다. 몸이 영 힘이 듭니다. 낮잠을 조금 자니 한결 좋아졌습니다.
서운동 상당 고마운 분이 보내주신 돈가스로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에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참 맛있게 아이들이 먹습니다. 재찬씨와 태영씨 그리고 우체부 아저씨도 밥집에 가서 돈가스를 드셨습니다.
민들레 꿈 공부방에는 세 남매가 새 가족으로 들어왔습니다.
3월 7일(일)에는 조금 한가합니다.
고마운 분께서 수지침 봉사를 해 주셨습니다.
20년만에 찾아온 가족을 만났습니다. 아주 옛날 경기도 이천 수도원에서 살 때입니다. 이십대 후반! 그 때 이치리 공소에서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 후에 안드레아 병원 개원식 때 얼굴을 봤습니다. 그때는 결혼해서 간난악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입니다. 바깥양반과 큰아이 작은 아이와 함께 찾아오셨습니다. 큰아들은 한양대 다니고 작은아들은 고등학교 다니고...
옛날 가르친것처럼 제가 살지 못하고 있다면 얼마나 창피했을까!
마리아 할머니 가족이 오늘 이사했습니다. 다시 시작해보자고 했습니다.
2008년 11월에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된 병국씨를 어제야 만났습니다. 한번도 집세를 내지 않고 버틴 친구입니다. 여기서마저 쫓겨나면 갈곳조차 없기에 그냥 집세를 대신 내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래도 학교 계속 나니고 있다고 합니다. 딸은 이제 고3이고 아들은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고. 그러니 집세내기도 버겁겠지요. 9월까지 또 봐주기로 했습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 들렀습니다. 초롱이가 석원씨 품으로 돌아가서 어찌나 잘 지내는지요. 초롱아!! 불렀더니 고개를 갸웃하다가 늦게야 알아보고 반갑게 꼬리칩니다. 초롱이가 없으니 민들레가 살 것 같은 모양입니다. 초롱이와 함께 있을 때 민들레는 초롱이 밥이었습니다.
3월 8일(월)
주안8동 성당 레지오 자매님들이 오전에 도와주십니다.
오늘은 청국장을 끓였습니다.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신청했습니다.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의 안드레아 형제가 요리강습에 등록했습니다. 동윤씨도 함께 등록했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의 근황.
오늘 주헌씨가 술을 그만 마시고 설거지하러 나왔습니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는 주헌씨입니다.
석원씨는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서 봉사활동을 잘 하고 있습니다. 초롱이를 안고 다닙니다.
재찬씨는 고구마를 구할 수 없어서 요즘은 민들레국수집을 돕고 있습니다. 가장 장사가 잘 안된다는 여름이 지나면 가을에는 조그만 가게를 차릴 수 있도록 베로니카께서 돕겠다고 합니다. 재찬씨 집에는 세탁기와 컴퓨터를 설치했습니다. 이제 인터넷도 합니다. 게임이나 오락은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정근씨는 고정선 정신과의원에서 간식나눔 반장을 잘 하고 있습니다. 다음 금요일에는 꼭 외출하고 싶어합니다.
선호씨는 심심하면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거들기도 합니다.
성욱씨는 옥련동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태영씨는 요양보호사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성호씨는 요즘 나타나지 않습니다.
동윤씨는 집에서 근신을 하고 있습니다.
성일이는 아주 멋지게 자랐습니다. 졸업했고요. 군대 신체검사 받고 군사훈련 받고 그런 다음에 정식으로 선원이 된다고 합니다. 185센티미터 건장한 청년입니다. 아버지도 아주 잘 지냅니다.
창신씨는 혜영씨가 떠난 후에도 혼자서 민들레국수집 근처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떠나고 싶어도 집 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근처에서 지냅니다.
영두씨는 요즘 중국을 오가는 행상을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원식씨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와 어제 이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민들레를 떠나 자립한 대성씨는 동네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혹 정육점에 놀러오는 것을 봅니다.
태준씨는 여인숙에 방을 얻어서 잘 지냅니다. 오가다가 인사를 나눕니다.
첫댓글 점점 늘어나는 민들레 공동체 신경쓰시느라 수사님 건강이 남아나질 않습니다. 청송...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힘든 몸으로 다녀오시려면 걱정이 됩니다 ㅠㅠ 어제 한겨레 신문에 크게 장식된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하나' 감동으로 보았습니다. 참사랑을 배우고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겸손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