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 가운데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물(物)을 보면(見) 그에 따른 어떤 마음(心)이 생(生)긴다는 말입니다.
예(例)를 들자면, 나 보다 더 예쁘거나 멋진 사람을 보면 자신도 보다 더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심’과 까닭 모를 시기심(猜忌心) 질투심(嫉妬心)이 생기고, 좋아 보이거나 값비싼 물건(物件)을 보면 나에게 지금 당장 필요(必要)한 물건(物件)이 아닌데도 가지고 싶은 욕심(慾心) 따위가 생기는 것 등 등 어떤 것을 보았을 때 '욕심'이 생기는 것을 ‘견물생심’이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마음(心)에는 양심(良心)도 있고 욕심(慾心)도 있으나, 견물생심(見物生心)에서 쓰이는 마음(心)은 주로 욕심(慾心)을 말하며 그 욕심을 경계(警戒)하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또, 이와 비슷한 경계(警戒)의 의미를 가진 말로는 ‘아는 것이 병(病)’이라는 말도 있고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時代)은 많이 변했고, ‘모르는 것이 약(藥)’이라는 생각만으로 오늘날 무한 경쟁(無限競爭)의 이 세상(世上)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니, 될 수 있는 한(限) 많이 보고 많이 배우고 많이 알고, 많이 소유(所有)하며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이것이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인간(人間)의 능력(能力)에는 한계(限界)가 있는 법(法). 보는 대로, 이루고 싶은 대로, 가지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욕심(慾心)대로 살(生) 수는 없는 것이 부정(否定)할 수 없는 사실(事實)입니다. 때문에, 현대 물질문명(物質文明)의 시대(時代)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크나 큰 고민(苦悶)이 있는 것입니다. 풍선(風船)처럼 부풀러오르는 욕심(慾心)과 그 ‘욕심’을 이룰 수 없는 현실(現實) 사이에서 우리의 큰 고민(苦悶)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고민(苦悶)을 적당히 중화(中和, 調和)시킬 수 있는 기술(技術)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 * << 그래서, 그 기술(技術)에 대해 말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물론, 학문적 연구(學問的硏究)나 과학적 실험(科學的實驗)을 통해 도출(導出)된 획기적(劃期的)인 결과(結果)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네 인생(人生)을 80년(年)으로 본다 해도, 벌써 4분의 3을 넘게 살아온 ‘저절로’가 삶의 현장(現場)에서 경험(經驗)으로 얻어낸 그 고민 해결(苦悶解決)의 방법(方法)이니 결코 쓸 모 없는 방법(方法)은 아닐 것입니다.
>> * << 어느새 2006년 한 해도 사라지고 2007년 ‘새 해’는 시작(始作)되었으나, '저절로‘의 글을 보아주시는 여러분들께 드릴 마땅한 신년(新年) 선물(膳物)이 없어서, 고민 해결(苦悶解決)의 방법(方法)에 대한 ’글‘로 선물(膳物)을 대신하려 하니 좀 부족(不足)하더라도 넓으신 아량(雅量)으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계속 하겠습니다.]
- * 저 절 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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