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
북경 시내에 이화원을 건설한 서태후
황제의 정실은 동태후 후궁은 서태후로 부른다
청나라 제9대 황제 함풍제 (1850-1861 재위)의 후궁으로 들어간 서태후(1835-1908) 함풍제가 죽고 48년간 실권을 장악한다
아들 재순은 10대 동치제 황제로 취임했으나 19세에 질병으로 일찍 죽자 서태후는 함풍제의 동생 이 3살 때 공친왕을 세움.
광서제 통치후 계파가 조성되고 갈등이 생긴다
서태후는 반 서태후파를 처형하고 광서제를 구금했다
구금생활 10년만에 신경쇠약 골결핵 등182가지의 각종 병과 정신적인 압박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광서제의 죽음에는 서태후 또는 원세계의 독살설이 있다
서태후가는 약 반세기 동안 수렴 청정으로 중원대륙을 사실상 지배함
청나라의 탄생 배경
송나라를 변방으로 몰아내고 중원대륙을 제패했던 금나라는 몽골(원나라)에의해 멸망당한다
금나라 후손 누르하치(1583-1616)가 중원대륙을 다시 제패하여 후금을 세우고 그의 아들이 국호를 청으로 바꾼다
중국의 통일 왕조사를 보면 대략 하-은-주-진-한-수-당-원 (몽골족)-명-청-중화민국으로 이어진다
광서제가 죽은 다음날 서태후도 죽는다 광서제의 죽음은 서태후의 암살설이 있다.
광서제 사망후 중국은 손문 (쑨원)이 주도한 1911의 신해혁명을 거치면서 1912년 중화민국이 탄생한다
이때 조선에는 고종황제가 등극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한다
2010.6.21 각종자료에서 발췌 이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