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꽃이에 꽃혀 있은지 꽤 오래된 책이다. 소설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차 완독하지 못한 책들을 살폈다. 책에 대한 부채감이 마구 밀려올 때쯤 이 책을 펼쳤다. 단편 7개의 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했고 깊이가 있었으며 젊지만 내공 깊은 작가의 고민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쇼코, 고등학교 때 한국에 온 일본의 자매 고등하교 학생이다. 그녀의 첫인상은 밝고 예의 바르며 사교성 있는 느낌이며 주인공 소유네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고 소유네 가족과 특별한 시간을 갖게 되며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도 소유의 할아버지 그리고 소유와 오랫동안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나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와의 연락은 단절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뉴욕 배낭여행 중 만난 일본인 친구로부터 쇼코의 이메일과 주소를 알게되고 찾아가지만 과거에 알던 그 쇼코가 아니었다. 더이상 젊지 않은 늙은 쇼코로 느껴졌다. 쇼코의 얼굴에서 보이는 미소, 이 순간 자신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낀다. 그후 영화 감독을 꿈꾸는 주인공, 남들이 은행이나 대기업에 들어갈 때 꿈을 잃은 자들에 대한 자조 섞인 말들을 내 뱉지만 스스로가 비참하고 재능없음을 끝없이 확인한다. 5년이나 시나리오를 써봤지만 매번 듣는 소리는 뻔한 비난들이다. 이런 주인공을 찾아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자신을 무척이나 비난하고 무시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는 도전하는 소유를 응원했다. 멋있다며 그녀를 격려했다. 이 일로 투병중인 할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3개월을 함께 보낸다. 가족의 재 형성이라고 해야할까? 어찌보면 가족이기에 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서로를 향한 기대를 넘어 진한 3개월을 보낸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 그 후 쇼코가 한국에 오게 된다.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보냈던 무수히 많은 편지를 가지고 말이다. 쇼코가 통역을 하고 주인공이 그 걸 듣는다. 자신의 단편영화를 인터넷에서 찾아 쇼코에게 보여준 사실도, 자신의 영화를 보러 온 할아버지 이야기도 이 편지를 통해 알게 된다. 평생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갖는 그녀에 대한 사랑, 그 깊이가 어떠했을지 느껴졌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쇼코의 미소는 매번 다르게 해석된다. 어찌보면 쇼코의 미소는 늘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걸 지켜 보았던 주인공의 시간, 상태, 느낌, 마음이 어땠느냐에 따라 그녀가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된 것이 아닐까 한다. 할아버지의 친구가 된 쇼코, 가족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아이. 제 3자가 들려주는 사랑하는 가족의 이야기, 그를 통해 할아버지를 이해하고 느끼는 순간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단편이지만 결코 단편이 담을 수 없을 만큼은 긴 시간의 이야기가 있고 쇼코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소유와 그의 가족이야기까지 단선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깊이가 있다.
쇼코의 미소의 책에서 베트남 전쟁이야기가 담긴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미카엘라', '비밀' 모두 좋았다. 소설가 김연수 작가가 이책에 대해 이야기 하듯 "온전히 살고 싶다면, 사실은 세상이 나를 속였다기보다는 내 쪽의 일방적인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하겠지만 이 첫 소설집에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의 부끄러움, 민망함, 분노, 미움,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들을 탐구하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라고 말하는게 깊게 동의한다. 이 책은 한국이 아닌 독일, 미국, 프랑스 등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 다양하기도 하고 단편인데 이야기의 서사가 그리는 시간적 일대기가 무척 길기도 하다. 저자는 베트남 전쟁이야기 부터, 세월호 이야기까지 결코 가볍지도 그렇지도 무겁지도 않게 역사와 현재를 이야기로 엮어간다. 무척 근사한 작가를 만난 느낌이다.
이 소설가의 책 '밝은 밤'을 읽었는데 최근에 꾸준히 나오는 책들도 곧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책도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