蟋蟀 (실솔)
최성대(崔成大:1691~1761)
본관은 전주. 자는 사집(士集), 호는 두기(杜機).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지평, 장령, 춘방대사간등을 역임하였다.
시문에 뛰어나서, 김창협 이후에 일인자라 칭해졌다.
그의 시 11수를 모아 엮은 『두기시집』이 남아 있다.
밝은 달빛 풀숲사이로 매달려있는 이슬이 반짝이고
皎月草間懸露光 교월초간현로광
구슬 노리개 찰랑거리듯이 말은 어찌나 길든지
纖珠碎佩語何長 섬주쇄패어하장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깊은 생각에 젖어
秋風吹起深深思 추풍취기심심사
뾰족한 칼날을 담금질하여 애간장을 녹이네
似淬尖鋩割盡腸 사쇄첨망할진장
*
봄이 되면
귀뚜라미도 제법 살이 오른다.
시골의 빈집에
나를 반기는 것은
귀뚜라미와 곱등이다.
섬돌에 살던 녀석들이
이제는 안방을 차지하고
나를 보아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숨기에 바빴던 녀석들인데
사람 구경을 못한 탓에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른다.
산에도 귀뚜라미가 산다
깊은 산속
부모님 묘지 둘레석 주위로
통통하게 까맣게 윤이 나는 귀뚜라미가 많다
풀을 벨 때도 먼저 작은 작대기로
벌레들을 쫓아내고 벌초를 한다
귀뚜라미도 노래하는 시기를 안다
특히 가을 해거름
낙엽이 살랑살랑 마실 갈 무렵
귀뚜라미 소리는
온갖 만상(萬想)의 사념에 젖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기에 살다 간 사람들을
한 분 한 분 소환한다
호명 끝에는
언제나 붉은 저녁놀이
뺨에 내려앉는다.
온기 없는 빈 방에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뭔가에 취해
불안한 자세로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