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먹고 命 늘릴 일 없다”며…
당일치기로 출타하실 때는 가지고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라도 주무시고 오게 될 때는 꼭 가지고 가야 되는 물건이 있다. 가스통과 유리약탕관이다. 큰스님은 말년에 간경화증으로 고생을 하셨다. 한약을 하루 세 번 꼭 챙겨 드려야 했기에 달여 먹을 도구가 필요해서 산 것이다. 요즘 같으면 한의원에서 약을 달여 팩으로 나와 편리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것이 없었다. 작은 가스통이었지만 무게가 묵직하니 무거웠다. 걸망에 가스통에다 유리약탕관까지 들어가면 무겁기도 하지만 깨질까봐 조심스레 다루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작은 가스통은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유리약탕관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더욱 더 귀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큰스님은 특히 유리약탕관을 맘에 들어 하셨다. 약이 끓는 모양이 훤히 들여다보이니 누가 오면 자랑을 하셨다. “저게 파이렉스라 카던가 뭐라 카던가. 유리라도 불 위에 언지놔도 안 깨진다카이. 참말로 신통한 물건이라.” 그러면서 신기해 하셨다.
물건을 산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내원사를 가신다고 해서 짊어지고 갔는데, 대중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약 달이는 것을 보고 신통방통하다고 떠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큰스님은 흐뭇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처음에는 군불을 땐 뒤 나오는 숯불로 약을 달였다. 그러다가 장작을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숯불도 피울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탄아궁이로 바꾸었다. 편리하긴 하지만, 연탄 갈 시간을 넘겨버려 걸핏 하면 불을 꺼트려 애를 먹었다. 또 한 번은 가스중독으로 고생한 적도 있었다. 그걸 알고는 큰스님이 큰맘 먹고 가스통을 구해온 것이다. 그러한 배려로 월내에서의 시자생활도 점점 익어갈 무렵이었다. 큰스님이 갑자기 약을 안 드시겠다고 해서 비상이 걸렸다. 이유인즉슨 ‘이만큼 살았으면 이제 갈 때가 되었다. 구태여 약까지 먹어가며 명을 늘릴 일이 없다’는 말씀이었다.
“너무 오래 살 필요가 없어. 칠십을 넘기도록 나는 안 살끼라. 지금 가마 딱 맞아.” 그 말을 들을 때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나. 오래 사셔서 우리들에게 정진의 힘을 실어 주셔야지’라고 생각하였다. 그 말씀대로 가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정말로 큰스님은 육십 일곱 드는 해, 음력 섣달 열 여드렛날 열반에 드셨다.
[불교신문3119호/2015년7월7일자]
첫댓글 감사합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