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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文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문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部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剖卵降世. 生而有聖
유석시조추모왕지창기야. 출자북부여. 천제지자. 모하백녀랑. 부란강세. 생이유성
옛날 나라의 기틀을 닦으신 시조 추모왕께서는 북부여에서 오셨는데 천제의 아드님이시며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셨다, 알을 깨고 내려오시니, 나면서부터 성스러운 〜가 〜하셨다.
⹓⹓⹓⹓⹓. ⹓命駕, 巡幸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 ⹓명가, 순행남하, 로유부여엄리대수. 왕임진언왈, 아시황천지자, 모하백여랑
鄒牟王, 爲我連葭浮龜. 應聲卽爲連葭浮龜. 然後造渡, 於沸流谷, 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추모왕, 위아련가부구. 응성즉위련가부구. 연후조도, 어비류곡, 홀본서, 성산상이건도언.
명을 ∼순행하면서 남하하시다가, 도중에 부여의 엄리대수에 이르러, 왕께서 나루에 나서서 “나는 하늘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니라, 추모왕께서 나를 위해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이를 띄워 다리를 놓아라, 라고 말을 하자마자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이들이 떠올라서 다리를 놓았다. 그런 후에 물을 건너신후 비류곡 홀본 서쪽 산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다.
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罡, 履龍頁昇天. 顧命世子儒留王, 以道興治,
불락세위, 인견황룡래하영왕, 왕어홀본동강, 이용수승천. 고명세자유류왕, 이도흥치,
그러다가 인간세상 왕 자리를 즐거워하지 않으시자, 천제께서 보내신 누런 용이 내려와 왕을 맞이 하니 왕께서 홀본 동쪽 산등성이에서 용머리를 디디고 하늘로 올라 가셨다, 고명을 이어신 세자 유리왕은 도로써 나라를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大朱留王紹承其業. 遝至十七世孫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二九登祚, 號爲永樂大王. 恩澤대주류왕소승기업. 답지십칠세손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구등조, 호위영락대왕. 恩澤 洽于皇天, 武威振被四海. 掃除⹓⹓, 庶寧其業. 國富民殷, 五穀豊熟. 昊天不弔, 卅有九, 寔
흡우황천, 무위진피사해. 소제□□, 서녕기업. 국부민은, 오곡풍숙. 호천불조, 삽유구, 식
駕棄國, 以甲寅年九月卄九日乙酉遷就山陵. 於是立碑, 銘記勳績, 以示後世焉. 其詞曰.
가기국, 이갑인년구월입구일을유천취산릉. 어시립비, 명기훈적, 이시후세언. 기사왈.
대주류왕께서는 기틀과 창업을 계승하시어 그 왕통이 이렇게 17세손에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국강상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께서는 18세에 왕위에 올라 연호를 영락대왕이라 하셨다. 그 은덕은 하늘까지 적시고 그 무용은 사해에 까지 떨치셨다. 〜를 쓸어 없애시어 백성들이 그들의 생업에 편안한 마음으로 힘쓰니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들은 여유로워졌으며 온갖 곡식들까지 풍요롭게 무르익었다.
그러나 하늘께서 보우하지 않으셨던지 39세의 나이에 왕위를 비우고 나라를 버리시니 갑인년(413) 9월 29일 을유일에 산등성이에 자리를 옮기시게 된 것이다. 이에 비석을 세우고 그 공훈과 업적을 새겨 후세 사람들에게 보이고저 하노라. 그 내용은 이러하다.
永樂五年歲在乙未, 王以稗麗不⹓⹓人, 躬率往討. 過富山, 負山, 至鹽水上, 破其三部洛六七
영락5년세재을미, 왕이패려불□□인, 궁솔왕토. 과부산, 부산, 지염수상, 파기삼부락육칠
百營, 牛馬群羊, 不可稱數. 於是旋駕, 因過襄平道, 東來□城, 力城, 北豊, 五備⹓, 遊觀土
백영, 우마군양, 불가칭수. 어시선가, 인과양평도, 동래□성, 역성, 북풍, 오비□, 유관토
境, 田獵而還.
경, 전렵이환.
영락 5년, 을미년(서기 395). 왕께서는 비려가 □인을 〜하지 않는 일을 문제 삼으시어 친히 군사를 이끌고 가서 토벌하였다. 부산(富山),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까지 가시어 3개 부락 600〜700영을 쳐부수니 소, 말과 떼를 이룬 양들까지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어가를 돌리어 그 길로 양평도를 지나 동쪽으로 □성, 역성, 북풍, 오비□ 까지 납시어 강역을 둘러보시고 사냥을 한 후 돌아오셨다.
百殘新羅, 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海破百殘□□ 新羅以爲臣民.
백잔신라, 구시속민유래조공. 이왜이신묘년, 래도해파백잔□□ 신라이위신민.
백잔과 신라는 이전에는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줄곧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서기 391) 이래로 바다를 건너 오기에 백잔과 왜구들을 쳐부수고 이들을 신민으로 삼게 하였다.
以六年丙申, 王躬率□軍, 討伐殘國. 軍□□首攻取壹八城, 臼模盧城, 各模盧城, 幹氐利城,
이육년병신, 왕궁솔□군, 토벌잔국. 군□□수공취일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城, 閣彌城, 牟盧城, 彌沙城, □舍蔦城, 阿旦城, 古利城, □利城, 雜珍城, 奧利城, 勾牟
□□성, 각미성, 모로성, 미사성, □사조성, 아단성, 고리성, □리성, 잡진성, 오리성, 구모
城 古模耶羅城, 頁□□□□城, □而耶羅城, 瑑城, 於利城, □□城, 豆奴城, 沸□□利城, 彌
성 고모야라성, 혈□□□□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성, 두노성, 비□□리성, 미
鄒城, 也利城, 太山韓城, 掃加城, 敦拔城, □□□城, 婁賣城, 散那城, 那旦城, 細城, 牟婁城
추성, 야리성, 태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루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于婁城, 蘇灰城, 燕婁城, 析支利城, 巖門□城, 林城, □□□, □□□, □利城, 就鄒城, □拔
우루성, 소회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성, 림성, □□□, □□□, □리성, 취추성, □발
城, 古牟婁城, 閏奴城, 貫奴城, 彡穰城, 曾□城, □□盧城, 仇天城, □□□□, □其國城.
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증□성. □□로성, 구천성, □□□□, □기국성,
殘不服義, 敢出百戰, 王威赫怒, 渡阿利水, 遣刺迫城, □□歸穴□便圍城, 而殘主困逼, 獻出
잔불복의, 감출백전, 왕위혁노, 도아리수. 견자박성, □□귀혈□편위성, 이잔주곤핍, 헌출
南女生口一千人, 細布千匹, 跪王自誓, 從今以後, 永爲奴客, 太王恩赦□迷之愆, 錄其後順之
남녀생구일천인, 세포천필, 궤왕자서, 종금이후, 영위노객, 태왕은사□미지건, 록기후순지
誠, 於是得五十八城村七百, 將殘主弟幷大臣十人, 旋師還都.
성, 어시득오십팔성촌칠백, 장잔주제병대신십인, 선사환도.
영락 6년(서기 396) 병신년에는 왕께서 □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셨다. 우리군은 〜하여 일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성, 각미성, 모로성, 미사성, □사조성, 아단성, 고리성, □리성, 잡진성, 오리성, 구모성, 고모야라성, 혈□□□□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성, 두노성, 비□□리성, 미추성, 야리성, 태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루매성, 산나성, 세성, 모루성, 우루성, 소회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성, 림성, □□□,□□□, □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증□성, □□노성, 구천성, □□□□ □기국성, 등을 공취하고 국성에 다다랐다. 백잔은 이에 승복치 않고 감히 전투에 나섰다. 왕이 매우 노하여 아리수를 건너 군사들을 보내 성을 공격하였고, □□가 소굴로 도망치니 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백잔주가 곤핍해져 남녀 생구 1천명과 올이 가는 천 1,000필을 바쳐 항복하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노객이 되겠나이다.” 하고 맹세하였다. 태왕께서는 미혹에 빠졌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뒤에 순종한 정성은 기특히 여겼다. 이렇게 해서 58개 성과 700개의 촌을 얻으시고 백잔주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데리고 도성으로 개선했다.
八年戊戌, 敎遣偏師, 觀息愼土谷, 因便抄得莫□羅城 加太羅谷, 南女三百餘人, 自此以來
팔년무술, 교견편사, 관식신토곡, 인편초득막□라성 가태라곡, 남녀삼백여인, 자차이래
朝貢論事.
조공론사.
영락 8년 무술년(서기 398) 일단의 군사를 보내 식신의 토곡을 정찰하고, 그 길에 막□라성 가태라곡의 남.녀 3백 명을 잡아왔다. 이때부터 식신이 조공을 하고 국사를 상의하게 되었다.
九年己亥, 百殘違誓與倭和通, 王巡下平壤. 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破城池,
구년기해, 백잔위서여왜화통, 왕순하평양. 이신라견사백왕운, 왜인만기국경, 궤파성지
以奴客爲民, 歸王請命. 太王恩慈, 矜其忠誠, □遣使還告以□計
이노객위민, 귀왕청명. 태왕은자, 긍기충성, □견사환고이□계
영락 9년 기해(서기 399)년 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하자 왕께서 평양으로 남하하셨다. 이때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왕께 아뢰기를 “왜인이 신라의 국경에 가득 몰려 성과 해자를 쳐부수니 노객을 왕의 신민으로 삼아 왕께 귀순하고 왕명을 청한다고 아뢰니 왕께서는 은혜롭고 자애로와서 그 충성심을 갸륵하게 여기시고, 사신을 보내 돌아가 계책을 고하게 하였다.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 往救新羅. 從男居城, 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之, 倭賊退.
십년경자, 교관보기오만, 왕구신라. 종남거성, 지신라성, 왜만기중. 관군방지, 왜적퇴.
□□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戌兵□新羅城, □城, 倭寇大潰. 성□□□盡
□□배급추지임나가라종발성, 성즉귀복. 안라인술병□신라성, □성, 왜구대궤. 성□□□진
□□□安羅人戌兵新□□□□其□□□□□□□言□□□□□□□□□□□□□□□□□□□
□□□안라인술신병□□□□기□□□□□□□언□□□□□□□□□□□□□□□□□□□
□□□□□□□辭□□□□□□□□□□□□□潰□□□□安羅人戌兵. 昔新羅寐錦未有身來論
□□□□□□□사□□□□□□□□□□□□□궤□□□□안라인술병. 석신라매금미유신래론
事. □國罡上廣開土境好太王□□□□寐錦□□僕勾□□□□朝貢.
사.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매금□□복구□□□□조공.
영락 10년 경자년(서기 400)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였다. 남거성을 거쳐 신라성에 이르자 왜인들이 그곳에 가득 몰려 있다가 관군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왜적이 퇴각하는 것이었다. ⟨이에 그?⟩뒤를 쫓아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야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안라인 수병에게 신라의 성을 〜하고 성을 〜하니 왜구들이 지리멸멸 하였다. 성의 〜는 모조리 〜〜안라인 수병에게 신〜. 그 〜가〜〜말을 〜〜〜. 〜〜〜를 물리고 〜〜〜. 〜〜〜. 〜를 지리멸멸하고 〜안라인 수병을 〜〜하였다. 이전에는 신라의 매금이 직접 와서 국사를 상의한 일이 없었는데 국강상 광개토경 호태왕 때에 〜하고 〜하니 이 노복을 〜하면서 〜데려다〜하고 조공하였다.
十四年甲辰, 以倭不軌, 侵入帶方界. □□□□□石城□連船 □□□王躬率□□, 從平穰□□
십사년갑진, 이왜불궤, 침입대방계. □□□□□석성□연선 □□□왕궁솔□□, 종평양□□
□鋒相遇. 王幢要截盪刺, 倭寇潰敗. 斬煞無數.
□봉상우. 왕당요절탕자, 왜구궤패. 참살무수.
14년 갑진(서기 404) 왜가 법도를 어기고 대방을 침입해 들어와서 〜〜□석성을 〜하고 군선을 이어붙여 〜하는 것이었다.. 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하시어 평양을 거쳐 〜〜에서 예봉을 겨루게 되었다. 왕의 군사가 길을 끊고 공격하니 왜구가 궤멸되었고 참살한 것이 수도 없이 많았다.
十七年丁未, 敎遣步騎五萬, □□□□□□□□□師□□合戰, 斬煞蕩盡, 所獲鎧鉀一萬餘領,
십칠년정미, 교견보기오만, □□□□□□□□□사□□합전, 참살탕진, 소획개갑일만여령,
軍資器械不可稱數. 還破沙溝城, 婁城, □住城, □城, □□□□, □□城.
군자기계불가칭수. 환파사구성, 루성, □주성. □성, □□□□, □□성.
17년 정미(서기 407)년 왕은 기병과 보병 5만을 보내 〜〜하였다. 이에 〜〜군사를 〜해서〜하여 맞붙어 싸워 적들을 모조리 베어 죽였다. 노획한 갑옷이 1만여 벌이나 되었고 군수물자와 무기, 장비들이 이루 샐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 사구성, 루성, □주성, □성, □□□□성, □□성을 격파하였다.
卄年庚戌, 東夫餘舊是鄒牟王屬民, 中叛不貢. 王躬率往土. 軍到餘城, 而餘□國駭□□□□
입년경술, 동부여구시추모왕속민, 중반불공. 왕궁솔왕토. 군도여성, 이여□국해□□□□
□□□□□王恩普覆. 於是旋還. 又其慕化隨官來者, 味仇婁鴨盧, 婢斯麻鴨盧, 椯社婁鴨盧,
□□□□□왕은보복. 어시선환. 우기모화수관래자, 미구루압로, 비사마압로, 타사루압로,
肅斯舍鴨盧, □□□鴨盧. 凡所攻破城六十四, 村一千四百.
숙사사압루, □□□압로. 범소공파성육십사, 촌일천사백.
20년 경술(서기 410) 동부여는 이전에는 추모왕의 속민이었는데, 중도에 배반하여 조공을 하지 않았다. 이에 왕께서 몸소 군사를 이끌고 토벌에 나섰다. 군이 여성에 이르자 부여에서는 나라가 놀라 〜〜하고 〜〜하였다. 왕의 은덕이 두루 미치게 되자 이에 군사를 되돌려 귀환하였다. 또 그들중 왕의 교화를 사모하여 따라온 자는 미구로압로, 비사마압로, 숙사사압로, □□□압로였다. 대체로 헤아려보니 공파한 성이 64개, 촌이 1천 400개였다.
守墓人烟戶, 賣句余民國烟二看烟三, 東海賈國烟三看烟五, 敦城民四家盡爲看烟, 干城一家爲
수묘인연호, 매구여민국연2간연3, 동해고국연3간연5, 돈성민4가진위간연, 간성일가위
看烟, 碑利城二家爲國烟, 平穰城民國烟一看烟十, 訾連二家爲看烟, 俳婁因國烟一看烟卌三,
간연, 비리성2가위국연, 평양성민국연1간연10, 자련2가위간연, 배루인국연1간연십3,
梁谷二家爲看烟, 梁城二家爲看烟, 安夫連卄二家爲看烟, 改谷三家爲看烟,
양곡2가위간연, 양성2가위간연, 안부련입2가위간연, 개곡3가위간연,
능을 지키는 인원의 민호는 매구여의 민호는 국인이 2가이고 간연이 3가요, 동해고는 국연이 3가요, 간연이 5가요. 돈성의 민호는 4가가 모두 간연이요, 우성은 1가가 간연이요. 비리성은 2가가 국연이요, 평양성의 민호는 국연이 1가고, 간연이 10가요. 자련은 2가가 간연이요,. 배루인은 국연이 1가고, 간연이 43요,. 양곡은 2가가 간연이요. 양성은 2가가 간연이요. 안부련은 22가가 간연이고, 개곡은 3가가 간연이요.
新城三家爲看烟, 南蘇城一家爲國烟. 新來韓穢, 沙水城國烟一看烟一, 牟婁城二家爲看烟,
신성삼가위간연, 남소성1가위국연. 신래한예, 사수성국연1간연1, 모루성2가위간연,
豆比鴨岑韓五家爲看烟, 勾牟客頭二家爲看烟, 求底韓一家爲看烟, 舍蔦城韓穢國烟三看烟
두비압잠한5가위간연, 구모객두2가위간연, 구저한1가위간연, 사조성한예국연3간연
卄一, 古模耶羅城一家爲看烟, 炅古城國烟一看烟三, 客賢韓一家爲看烟, 阿旦城, 雜珍城合十
입1, 고모야라성1가위간연, 경고성국연1간연3, 객현한1가위간연, 아단성, 잡진성합10
家爲看烟, 巴奴城韓九家爲看烟, 臼模盧城四家爲看烟, 各模盧城二家爲看烟,
가위간연, 파노성한9가위간연, 구모로성4가위간연, 각모로성2가위간연,
신성은 3가가 간연이고. 남소성은 1가가 국연이다. 새로 데려온 한인과 예인의 경우 사수성은 국연이 1가고. 간연이 1가요. 모루성은 2가가 간연이고, 두비압잠의 한인은 5가가 간연이요. 고모객두는 2가가 간연이요. 구저의 한인은 1가가 간연이요. 사조성의 한인과 예인의 경우 국연이 3가이고, 간연이 2십1가요. 고모야라성은 1가가 간연이요. 경고성은 국연이 1가이고, 간연이 3가요. 객현한은 1가가 간연이요. 아단성. 잡진성은 모두 10가가 간연이요. 파노성의 한인은 9가가 간연이요. 구모로성은 4가를 간연이요. 각모로성은 2가가 간연이요.
牟水城三家爲看烟, 幹氐利城國烟一看烟三, 彌鄒城國烟一看烟, 也利城三家爲看烟, 豆奴城
모수성3가위간연, 간저리성국연1간연3, 미추성국연1간연, 야리성3가위간연, 두노성
國烟一看烟二, 奧利城國烟一看烟八, 須鄒城國烟二看烟五, 百殘南居韓國烟一看烟五, 太山
국연1간연2. 오리성국연1간연8, 수추성국연2간연5, 백잔남거한국연1간연5, 태산
韓城六家爲看烟, 農賣城國烟一看烟七,
한성6가위간연, 농매성국연1간연7,
모수성은 3가가 간연이요. 간저리성은 국연 1가와 간연이 3가요. 미추성은 국연이 1가이고, 간연이 7가요. 야리성은 3가가 간연이요. 두노성은 국연이 1가이고, 간연이 2가요. 오리성은 국연이 1가이고 간연이, 8가요. 수추성은 국연이 2가이고 간연이 5가요. 백잔남거성의 한은 국연 1가와 간연이 5가요. 태산한성은 6가가 간연이요. 농매성은 국연이 1가이고 간연이 7가요.
閏奴城國烟二看烟卄二, 古模婁城國烟二看烟八, 琭城國烟一看烟八, 味城六家爲看烟, 就咨城
윤노성국연2간연입2, 고모루성국연2간연8, 전성국연1간연8, 미성6가위간연, 취자성
五家爲看烟, 彡穰城卄四家爲看烟, 散那城一家爲國烟, 那旦城一家爲看烟, 勾牟城一家爲看烟
5가위간연, 삼양성입4가위간연, 산나성1가위국연, 나단성1가위간연, 구모성1가위간연
,於利城八家爲看烟, 比利城三家爲看烟, 細城三家爲看烟,
,어리성8가위간연, 비리성3가위간연, 세성3가위간연,
윤노성은 국연이 1가이고 간연이 22가요. 고모루성은 국연이 2가이고 간연이 8가요. 녹성은 국연이 2가이고 간연이 8가가요. 미성은 6가가 간연이요. 취자성은 5가가 간연이요. 삼양성은 24가 간연이요. 산나성은 1가가 간연이요. 나단성은 1가가 간연이요. 구모성은 1가가 간연이요. 어리성은 8가가 간연이요. 비리성은 3가가 간연이요. 세성은 3가가 간연이요.
國罡上廣開土境好太王, 存時敎言, 祖王先王, 但敎取遠近舊民, 守墓洒掃, 吾盧舊民轉當羸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존시교언, 조왕선왕, 단교취원근구민, 수묘쇄소, 오노구민전당영
劣, 若吾萬年之後, 安守墓者, 但取吾躬巡所略來韓穢, 令備洒掃, 言敎如此, 是以如敎令,
열, 약오만년지후, 안수묘자, 단취오궁순소약래한예, 영비쇄소, 언교여차, 시이여교령,
取韓穢二百卄家, 盧其不知法則, 復取舊民一百十家, 合新舊守墓戶, 國烟卅看烟三百, 都合
취한예2백입가, 노기불지법칙, 복취구민1백10가, 합신구수묘호, 국연삽간연3백, 도합
三百卅家,
3백삽가,
국강상광토경호태왕께서 생존해 계실 때 말씀하시기를 “시조왕과 선왕들께서는 그저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의 백성들만 데려다가 능을 지키고 소제를 맡게 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들 구민들이 전매되거나 저당 잡히거나 하여 날로 허약해지고 나빠질까 염려된다. 만일 내가 만세를 누린후 능지기를 둘 때에는 내가 친히 행차했던 곳에서 끌고 온 한인과 예인들만 데려다 능을 관리하게 하라” 이렇게 이르셨노라. 그래서 선왕의 전교대로 명하여 한인과 예인 220가를 데려다 놓고 그들이 법도를 알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여기에 옛 백성 110가를 추가로 데려 놓으니 신, 구 능지기 호구를 합산하면 국연 30가와 간연 300가로 모두 합쳐 330가이다.
自上祖先王以來, 墓上不安石碑, 致使守墓人烟戶差錯, 唯國罡上廣開土境好太王, 盡爲祖先
자상조선왕이래, 묘상불안석비, 치사수묘인연호차석, 유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진위조선
王, 墓上立碑, 銘其烟戶, 不令差錯. 又制, 守墓人, 自今以後, 不得更相轉賣, 雖有富足之者,
왕, 묘상입비, 명기연호, 불령차석. 우제, 수묘인, 자금이후, 불득갱상전매, 수유부족지자,
亦不得擅買, 其有違令賣者刑之, 買人制令守墓之
역불득단매, 기유위령매자형지, 매입제령수묘인
시조와 선왕들 이래로 능에 석비를 세우지 않다 보니 능지기 연호들이 착오를 범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던 것을 오직 국강상 광개토경 호태왕께서는 오로지 시조와 선왕들을 위하는 효심으로 능에 비석을 세우고 그 연호의 숫자를 새겨 놓게 하셨으니 착오가 없도록 하라. 아울러 이르노니 능지기들은 이제부터 다시는 전매하지 말라. 설사 부유하고 풍족한 자라 하더라도 함부로 사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이 명령을 어기고 파는 자가 있다면 형벌을 내릴 것이요, 사는 자는 훈령을 내려 능지기로 충당하게 하리라.
참고문헌: 위당 정인보(爲當 鄭寅譜)의 조선사 연구의 내용임
이 비는 광대토호태왕 사후 2년째 되는 장수왕 3년(서기 414 갑인년) 9월 중국 지린성(길림성)집안시에 높이 6.39m, 너비 1,35〜2m 총 1775자로 축조된 석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