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차] 권창순의 김유정소설문학여행 -2016. 5. 29
[2016 김유정문학제 봄.봄(3일차)]문학여행기(2)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힝하게 달아나는 동백꽃 점순이 -순간포착!]
김유정전집출입기자도 점순이를 쫓아 이를 꼭 악물고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을 달렸다. 논둑이 끝나고 산으로 오르는 길, 왼쪽에 있는 바위에 점순이가 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기자가 숨을 헐떡거리며 곁에 앉자 점순이가 눈에 독을 올리고 요렇게 쏘아본다. 그러나 아직도 홍당무에 눈물까지 어린 점순이. 하여, 기자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봄감자가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몸을 돌리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점순이.
“주면 그냥 받아먹지. 눈치도 없어. 바보같이! 자기 집엔 봄감자도 없으면서.”
기자가 이렇게 소작인의 아들을 흉보자 점순이가 몸을 홱 돌리며,
“안 그래유.” 한다.
“뭐가요?”
“그얘, 눈치도 없는 바보 아니라구유.”
기자가 빙그레 웃으며,
“바보가 아니고 그럼 뭐예요? 남의 호의도 몰라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점순이.
“느집엔 이거 없지, 하고 내가 생색내는 게 못마땅해서 그렇지. 바보는 아니예유. 얼마나 착한대유. 일도 잘하구, 나무도 잘하구유.”
“그럼, 넌즛이 봄감자를 주지 그랬어요.”
“좀 그래서유.”
“좀 그렇다니요?”
“전 원래 천연덕스럽잖아유.”
“그러니까, 이번 감자쪼간(감자사건)을 빌미로 그얘를 확실하게 옭아맬 생각인가요?”
“고랑땡 좀 먹이게유!”
“두 사람을 대신해서 수탉들이 선혈을 뚝뚝 흘리며 전초전을 벌이겠군요?”
“우릴 대신해 고추장도 먹구유.”
이때 점순이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그건 그렇구, 저 바구니의 봄감자 맛 좀 봅시다!”
그러자, 순순히 점순이가 바구니 속에서 아직도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를 꺼내어 손에 쥐고는,
“하나만 맛보게유.” 한다.
기자는 그 중 제일 큰 감자를 집어 먹었다.
“맛이 그런대요.”
“그럼, 이 것을 먹어보세유!”
“이것도 맛이 좀!”
남은 봄감자 한 개를 내미는 점순이,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이것도 맛이 좀!”
그러자 점순이 얼굴이 다시 홍당무가 되고 눈에 독이 오르더니
“이 점순이 봄감자가 맛이 없다구유!”
“어이쿠!”
기자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점순이가 바구니로 기자의 등어리를 모질게 후려 때린 까닭이다.
“아이쿠!”
한 손으로 등어리를 쓰다듬으며 일어나 사방을 둘러봐도 점순이는 어디에도 없다.
바윗돌 틈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려 있을 뿐.
[옳다 알았다, 고추장만 먹이면 되는구나 하고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겠다는 소작인의 아들. 찰칵! -순간포착]
“아니 그렇게 쟁그러워 죽겠어요?” 김유정전집출입기자도 입맛이 쓴지 점순이처럼 눈살을 찌푸린다.
“그렇게 보지 말아유. 난 쟁그러워 죽겠는걸유!” 소작인아들은 작은 수탉이 잘한다! 잘한다고!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린다.
“감때사나운 그 대강이에 피가 흐르는데요!”
“우리 수탉이 당한 걸 거기에 비길 수는 없지유!”
“그래도 그렇지요!”
“난 쟁그러워 죽겠어유!”
“저 대강이에 흐르는 피가, ‘만지거나 보기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금 흉하거나 끔찍하여’ 좋아 죽겠다구요?”
“그래유!”
이럴 땐 기자도 심청이 돋는 법.
“누구의 무엇을 전집상권 26쪽 10행-12행처럼 하고 싶네요!”
“맘대로 하게유!”
“후회 없지요?”
“없구말구유!”
김유정전집출입기자는 다짜고짜 소작인아들에게 달겨들어,
“이놈의 사람!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리 패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마는 아주 아들딸도 못 낳라고 그 볼기짝께를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사람, 사람! 살려유!” 소작인아들이 거기를 꼭 웅켜잡고 땅바닥에 나뒹굴다가 울타리 안의 점순이를 슬쩍 보고는
“점순아, 사람, 사람! 좀 살려 줘!” 한다.
그러자 눈살을 찌푸리던 점순이는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깔깔거리고 웃는다.
움직이는 캐릭터. 소설 [봄.봄]의 여주인공 점순이
[“아이구 배야!” 모를 붓다 말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논둑으로 기어올라 벼 담긴 키를 땅바닥에 떨어치며 털썩 주저앉는 데릴사위 나 -순간포착]
“그러다 또 봉변당해요. 어서 키를 들고 논으로 들어가세요.”
김유정전집출입기자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데릴사위를 일으키려 해도 그는 막무가내. 파릇파릇 돋아 오른 풀 한숲을 뜯어들고 다리의 거머리를 쑥쑥 문대며 장인님의 얼굴을 쳐다본다.
“논 한가운데 저 장인님 좀 보세요. 이상한 눈으로 노려보잖아요?”
“그럼 누가 겁나나유. 저 욕필이 하나도 무섭지 않아유!”
“아니, 장인님 보고 욕필이라니요?”
“그럼, 봉필이라고 하지유 뭐!”
“그래도 그렇지, 장인님의 성함을 함부로 부르면 어떡해요?”
“동리에서 저 욕필이에게 욕을 안 먹으면 명이 짤다고해유. 아이구 저 욕쟁이! 그러니까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돌아세놓고 욕필이, 욕필이 하지유 뭐!”
“그래도 사위니까 아이들이 욕을 못하게 해야지요?”
“그래두 읍내 배참봉댁 마름이라구. 욕 잘하고, 사람 잘 치고, 생김 생기길 호박개 같잖아유. 애벌논때 품 좀 안 줘봐유. 그해 가을 영락없이 땅이 뚝뚝 떨어지지유.”
“뭐, 장인님만 그런가요. 마름들은 다 그러잖아요.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요?”
데릴사위, 고개를 갸웃거리며 코를 킁킁!
“기자님, 술 먹었어유?”
“맹꽁이와 한잔했지요. 뭐 잘못 됐어요?”
“옳은 소리해야할 기자님이 이러면 못써유?”
“그냥, 장인님이 시키는 대로 일만 열심히 하다가 점순이와 성례를 치루면 돼잖아요?”
“돈 한 푼 안 받고 일한지 삼년 하고도 일곱 달 됐어유!”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고 일하세요. 그러면 점순이 키도 크고, 어련히 장인님이 성례를 시켜주지 않겠어요?”
“글세, 점순이 키가 커야지유!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니, 미치겠어유! 그래서 서낭당에 돌 올려놓고 빌기도 하고, 물동이를 자꾸이니까 뼉다구가 옴츠라드나보다 하고 넌줏넌즈시 물도 대신 들어다 주었지유.”
“그래도 조금만 더 참고 일하세요. 농사 망치면 징역가요?”
“기자님은 욕필이 한테 땅을 얻어 부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래유?”
“음충맞은 맹꽁이와 막걸리를 마셨더니 그런가.”
“빨리 가게유. 저 욕필이가 철벙철벙 둑으로 올라오잖아유.”
“뺨은 대신 맞아 줄게요.”
“뺨을 왜 대신 맞아유?”
“옳은 소리 못했으니까요.”
장인님, 둑으로 올라오더니 데릴사위의 멱살을 웅켜잡는다.
“뭐, 배가 아파?”
“그래유! 배가 아파 죽겠어유!”
“이 대가릴 까놀 자식!” 하며,
사위의 뺨을 치려는데, 그 뺨을 대신 맞은 기자. 그러자 기자의 멱살을 잡은 장인님.
“이 자식! 왜 저 자식 대신에 맞는 거야! 응?”
“봉필영감님, 제가 사위한테 옳은 소리 못해서유? 참고 또 참고 일하다 보면 점순이 키도 크고 그러면 봉필영감님이 성례를 시켜 줄 거라고요.”
“어험! 옳은 소리 했구먼!”
“그것이 어떻게 옳은 소리여유?”
“이 자식, 넌 가만히 있어! 옳은 소리 못하면 뺨 맞아야지. 기자 양반 미안하게 됐수!”
“봉필영감님, 정말 옳은 소리 못하면 누구든 뺨을 맞아야지요?”
“어험, 그럼, 그럼!”
“그럼,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뭔데?”
“여자나이 열여섯이면 점순이 키는 다 컸다고 보는데, 왜 성례를 미루는지요?”
“아니, 미처 자라야지!”
“얼마나 커야 되는데요. 기준이라도 있습니까?”
“뭐, 기준이라기보다, 어린 게 어떻게 애를 낳아!”
“그럼, 참새는 어떻게 새끼를 낳지요?”
“그러고 보니, 이 자식! 그 얘길 하려고 그러지! 응?”
다시 기자의 멱살을 웅켜잡은 욕필이.
“옳은 소리 못하면 뺨 맞기로 했지요?”
그러자 슬며시 멱살을 놓는 봉필영감.
“결국, 더 자라지도 않을 점순이 키를 핑계 삼아 사위를 더 부려 먹을려고 한 것이 들통났으니, 옳은 소리 못했으니, 누가 뺨을 맞아야하나요?”
짝짝! 박수치는 데릴사위. 눈에 독이 오른 장인님.
“아니, 점순이 키가 조금만 더 자라야지! 애를 낳지!”
데릴사위.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이놈의 자식이!”
사위의 뺨을 치려는 장인님의 손목을 움켜잡은 기자.
“점순이 어머님은 사실 점순이 보다 귓배기가 작은데 어찌 앨 낳았지요?”
“기자 너 이 자식!”
반대편 손으로 기자의 뺨을 치려하자, 그 손목을 콱 웅켜잡은 데릴사위.
“옳은 소리 못하면 뺨 맞아야지유?”
붙잡힌 자기 두 손으로 철썩, 두 뺨을 맞은 봉필영감!
“옳은 소리 안 하면 뺨 맞아야지요?”
다시, 붙잡힌 자기 두 손으로 철썩, 두 뺨을 맞은 봉필영감!
“전 빙장님(그래야 좋아하니까) 뺨 안 때렸어유. 이거 빙장님 손 맞지유?”
아무 말도 못하고 눈에 독만 잔뜩 오른 장인님.
“옳은 소리할 생각 없어유?”
다시, 붙잡힌 자기 두 손으로 철썩, 두 뺨을 맞은 봉필영감!
“사나이의 약속이잖아요. 옳은 소리 못하면 뺨맞기 말입니다.”
“그럼, 옳은 소리 할 때까지 맞아야지유.”
붙잡힌 자기 두 손으로 철썩, 두 뺨을 맞은 봉필영감!
“어, 어, 어, 어험! 기자양반 귀 좀!”
“귀, 여기 있습니다.”
“옳은 소리 하겠수. 저 자식 곰처럼 생겼어두 일 하나는 너무 잘하거든. 그래서 점순이 동생년이 열 살 될 때까지 부려 먹을려고, 점순이 키가 더 자라야 한다고 우기는 거지!”
“점순이 동생 점옥이는 이제 여섯 살이잖아요?”
“아니 기자양반, 점순이 동생이 왜 점옥이야? 소설엔 이름이 안 나와 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 저 미련곰탱이가 아직도 삼년 오 개월을 더 머슴살이를 해야 한단 말인가요?”
“그러니까 다 자란 점순이 키에다 핑계를 대야지 어쩌겠나?”
골이 난 데릴사위.
“아니, 둘이 무슨 소리를 속닥여유. 제 귀도 여기 있어유! 빙장님!”
“옳은 소리, 사위도 듣게 큰 소리로 하세요.”
“아니, 기자양반!”
“옳은 소리 안 하면 뺨 맞습니다.”
붙잡힌 자기 두 손으로 철썩, 두 뺨을 맞은 봉필영감!
“그래, 읍내 배참봉댁 마름, 봉필이 평생 처음으로 옳은 소리 하니 잘 들어라!”
“어서 해 봐유?”
“일 잘하는 사위, 오래 부려 먹을려고 다 자란 점순이 키에 핑계를 댔었노라!”
“그럼, 이제 점순이와 성례를 시켜주는 거지유!”
“둘다 손목 잡은 걸 놓게나.”
“성례를 시켜준다고 다짐을 하면유.”
고갤 끄덕이는 봉필영감.
잡은 손목을 풀자, 저 만큼 달아나더니 홱, 돌아보고는 입에다 답지 못할 욕을 하고는 달아난다.
그러자 데릴사위.
“그럼, 그렇지 저 놈의 욕필이!” 하고는,
ㅋ, ㅎ, 키를 들고 쫓아간다.
아! 고소하다! 고소해!
-소설 [봄․봄]의 봉필영감
춘천읍의 배참봉댁 마름, 봉필영감
동리에서 그에게 욕을 안 먹은 사람 없어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욕필이! 욕필이!
원래 마름이란 지주의 대리인으로
욕 잘하고 사람 잘치고
생김 생기길 호박개 같지
닭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땅이 뚝 떨어지니
미리미리 돈도 먹이고 술도 먹이지
때문에 또 빚지는 건 소작인들뿐
봉필영감 외양간엔
황소 한 마리가 절로 기어들고
동리 사람들은 그 욕을 다 먹어 가며 굽신굽신
봉필영감, 욕필이
일해주면 딸을 준다고 데릴사위를 들여
머슴처럼 부려먹기만 하지
머슴을 두면 돈이 드니까
일 잘하는 놈으로 연방 바꿔드려 일만 시키지
점순이 키가 자라야만 성례를 시켜준다고
그러다 사위에게 그곳을 웅켜잡혀
헷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지르지
아! 고소하다! 고소해! 참기름이다!
[닭싸움하는 김유정 소설 [동백꽃], [봄․봄]의 두 점순이 - 글 : 권창순]
“얘, 점순아!” 하고는
동백꽃 점순이가 살금살금 다가와 큰 소리로 나물을 캐던 봄.봄의 점순이를 부른다.
“망할 년, 깜짝이야! 애 떨어질 뻔했네.”
얼굴에 점이 하나 더 많은 봄.봄의 점순이가 나물 캐던 호미를 내동댕이치고 벌떡 일어서더니 동백꽃 점순이를 노려본다.
“망할 년, 내가 너 보담 한 살 더 먹은 거 잊었니?”
동백꽃 점순이도 자기네 수탉처럼 곧 얼굴을 쪼을 것처럼 봄.봄의 점순이를 노려본다.
“그래, 한 살이나 더 먹은 게 남의 닭을 훔치다가 닭싸움을 시키니?”
“남의 닭을 훔치다니?”
“그럼, 그 얘 집에 몰래 들어가 횃대에서 닭을 꺼내오는 게 훔치는 게 아니고 뭐니?”
“우리 소작인 집인데 뭘 그래.”
“그럼, 너희네 소작인집은 다 너희네 것이냐? 그 알량한 맘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렇게 심청이냐?”
“뭐라고! 이 년이!”
곧, 면두와 대강이에 피를 흘리는 닭싸움이라도 벌어질 태세다. 그러나 금병산기슭에서 노란 동백꽃향기가 봄바람을 타고 날아오자 동백꽃 점순이가 썩 불리함을 알고 한 발짝 물러선다. 그러나 여우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서
“어떤 양반이길래 이름이 욕필이람!” 하고는 봄.봄의 점순이를 바라다본다.
“죽일 년, 남의 집 어른보고 욕필이라니, 함자가 어련히 있거만.”
“뭔데?”
“몰라서 물어?”
“동리에서 다들 그렇게 부르는데 나라고 욕필이라고 부르지 못하냐?”
“이 죽일 년 좀 봐!”
“동리에서 욕필이 영감한테 욕 안 먹은 사람이 있냐. 그러니까 아이들까지도 욕필이, 욕필이 하고 손가락질을 하지. 안 그래 이년아?”
아버지 봉필 영감이 동리에서 두루 인심을 잃었다는 걸 봄.봄의 점순이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에 목구멍까지 나온 욕을 삼키며 동백꽃 점순이를 씩씩거리며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백꽃 점순이는 봄.봄의 점순이를 위하는 척 하면서
“그리고 성례를 시켜준다고 했으면 시켜줘야지. 안 그러냐?”
“……”
“뭐, 네 키가 작냐?”
“……”
“네 그이가, 아니 봉필 영감님 세 번째 데릴사위께서 그랬다던데.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하구 말이야. 말을 바로하자면 네 어머니는 너보다도 귓배기가 작지 뭘 그래. 안 그러냐?”
봄.봄의 점순이의 숨은 더 거칠어지고 얼굴은 더 빨개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키가 아니야. 다 핑계지. 네 그이가 일을 잘 하니까. 머슴을 두면 돈만 들고. 안 그러냐?”
“……”
“아직도 성례를 할려면 4년은 더 있어야 할 걸.”
분한 마음에 거친 숨을 몰아쉬던 봄.봄의 점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백꽃 점순이에게 묻는다.
“아니 왜?”
“넌 몰라서 묻니?”
“……”
“네 언니가 열 살에 데릴사위를 들여 열아홉 살에 열 번째 데릴사위와 성례를 했고, 네 동생이 지금 여섯 살이니 열 살은 돼야 데릴사위를 얻을 테고 하니 앞으로 4년은 더 있어야 네 아버지가 성례를 시켜 줄 걸. 그러니 네 그이가 7년 7개월 데릴사위를 해야 널 안해로 맞을 수 있지. 넌 스무 살, 네 그이는 서른 살 돼야 상투를 틀어 올릴 수 있어.”
“너무 길어 4년은!”
봄.봄의 점순이가 안마을을 멍하니 바라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신이 난 동백꽃 점순이가 한마디 톡 쏜다.
“바보지 뭐!”
“맞아, 바보지 뭐! 아니! 뭐라고? 우리 그이가 바보라고 이 망할 년이!”
봄.봄의 점순이가 곧 달겨들어 동백꽃 점순이의 머리채를 움켜잡을 태세다. 그러나 봄.봄의 점순이도 쓴웃음을 깨물며 한 발짝 물러서더니
“너, 그 얘와 그랬다지?”
“뭘?”
“저기 소보록한 동백꽃 속에서 그 애와 그랬다지?”
“뭘? 이년아.”
“네가 그랬다지. 그 얘는 배냇병신이라구. 그런데 배냇병신하구 그랬다지?”
이번엔 동백꽃 점순이의 숨이 거칠어지고 얼굴이 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래! 그랬다. 어쩔래?” 하고는 봄.봄의 점순이를 빤히 쳐다보며 웃는다.
“배냇병신하구?”
“그래, 배냇병신하구. 근데 네 그이도 고자 아니니?”
“뭐라구? 누굴 죽일려구 그래 이년이!”
“잘난 욕필 영감님이 네 그이의 바짓가랭이 속 그 것을 단박 웅켜잡았다니까 혹 고자가 됐을지 누가 아니?”
“이 망할 년의 주둥이를 그냥!”
“아버지의 쇰을 채라고 해 놓고 귀를 잡아당기며 울건 또 뭐람!”
봄.봄의 점순이 눈에 독이 잔뜩 올랐다. 그러나
“네 어머니에게 고자질 좀 해야겠다.” 하고는 동백꽃 점순이의 얼굴을 홉뜨고 바라다보았다.
“뭘?”
“네 고자께서 지게막대기로 때려죽인 그 닭에 대하여!”
“그 건 안 돼! 그 얘 집이 모두 쫓겨난다구!”
“네 어머니 역정이야 대단하시니.”
“그것만은 안 된다구 이년아!”
“왜 안 돼 이년아!”
급기야 두 점순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물바구니를 발로 걷어차고는 머리채를 잡고 밭고랑으로 나뒹굴었다.
멀리서 바라다보니 머리채를 잡고 혹은 치맛자락을 잡고 일어섰다간 넘어지고 넘어졌다간 일어서고 하는 것이 꼭 닭싸움을 하는 것 같다.
한참을 그렇게 싸우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물바구니를 챙겨들고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논길을 걸어 자기네 집으로 돌아들 간다.
그런데 봄.봄의 점순이 얼굴을 보니 점이 하나 빠졌다. 혹 동백꽃 점순이 얼굴에 묻었나 살펴봤지만 헝클어진 머리채엔 알싸한 생강냄새가 날뿐이었다.
그렇다! 동백꽃 향기 알싸하고 산골 물소리 쫄쫄거리고 노란 꾀꼬리소리도 좋은 금병산 기슭에 찾아온 봄봄 사이에 빠졌구나.
봄과 봄 사이에. 이렇게 [봄․봄]에.
소설가 전상국 김유정문학촌장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