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자배기 / 김혜정 (국립민속국악원 학예연구사)
흔히 '전라도의 대표적인 민요'하면 육자백이를 떠올린다. 그런데 사실 육자배기에 대해 아는 사실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노래만 알 뿐 그 뒤에 숨겨진 역사와 문화를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연 '육자배기'란 무슨 의미일까?, 뭐할 때 부르는 노래였을까? 육자배기에 담긴 과거와 현재는 어떤 모습인가?, 어떤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불러왔으며, 그들에게 이 노래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런 물음들을 하나씩 던져보자.
육자백이? 육자배기? 몇 년 전에 발표된 국악용어통일안에 따르면 육자배기는 '육자백이'가 아니라 '육자배기'가 맞는다고 한다. 그 근거는 한글맞춤법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육자배기의 뜻을 이해하려면 '육자백이'라는 명칭이 더 쉬울 것 같다.
흔히 전라도에서 조와 박자를 '조백'이라 한다. '조백이 맞지 않다' 라고 하면 음이나 리듬이 규칙적이고 정확하지 않다는 표현이다. '박'을 사투리로 '백'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자배기는 6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초기 고음반의 라벨을 살펴보면 '육자백', '六字拍'이라는 곡명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악곡명도 6박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것이다.
육자배기에 담긴 과거와 현재는 어떤 모습인가? 원래 육자배기는 논일을 하면서 부르던 논농사 노래이다. 육자배기의 대표사설인 '저건네 갈미봉에'를 보면, '우장 삿갓을 쓰고 논에 지심이나 맬 거나'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사설만으로 논농사노래라는 추측은 충분치 않다. 오히려 그 음악적 모양새를 더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그 근원을 더 분명히 할 수 있다.
육자배기는 6박자 진양조 장단형의 긴 노래이다. 이처럼 규칙적인 6박자 노래는 전라도 민요가운데 많지 않다. 그런데 전라도 동부지역의 논매기 노래에 바로 이러한 6박자의 노래들이 발견된다. 분명히 그 연관성을 밝힐 수는 없지만 육자배기와 가장 닮은 모습의 노래는 바로 동부지역의 논매기노래인 것이다. 논농사 노래라는 이유 때문에 어떤 학자는 육자배기가 이앙법이 발달한 조선후기부터 있었던 노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속음악의 역사는 증빙자료가 없어 항상 추측에 그칠 뿐이다. 논매기 노래에서 출발한 육자배기는 현재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직업음악인들이 부르는 남도잡가 육자배기이며, 다른 하나는 여전히 전라도 시골에서 불리는 민요 육자배기이다.
민요 가운데 음악적으로 세련미를 갖춘 경우, 잡가화되는 경향이 있다. 남도 민요 가운데 육자배기가 바로 그런 예이다. 육자배기의 잡가화는 1900년대 초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음반시장과 극장무대공연 등의 환경변화는 잡가와 같이 짧고 간편한 노래들을 요구했다. 바로 그러한 요구에 발맞추어 남도잡가가 만들어졌으며, 그 과정에 육자배기가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흔히 남도잡가를 만든 사람으로 전남 곡성군 옥과면의 신방초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곡성지방이 바로 육자배기가 논매기요로 불리는 곳이라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가 육자배기를 만들지는 않았을지라도 잡가의 중요곡목으로 자리한 것과 어떤 관련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불러왔으며, 그들에게 이 노래는 어떤 의미였을까?
앞서 살펴본 대로 육자배기는 논농사 때 불리던 노래이다. 고된 노동을 이겨내고,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농부들의 노래. 흔히 노동요 가운데 속도가 느린 악곡일수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 힘든 일에 불린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논매기소리이다. 허리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장시간 동안 논바닥의 잡초를 뽑아내야 하는 작업은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논매기소리로 육자배기와 같은 느린 노래가 불렸다.
이처럼 논매기에 불린 육자배기는 잡가 육자배기와 달리 많은 시김새가 들어가지 않아 맛이 담백하다. 또한 일로 다져진 농군들의 힘있고 우렁찬 소리로 들녘을 울렸다. 그런 의미에서 논매기 육자배기는 사람들의 삶이 담긴 노래다.
농군들의 노래에는 그들의 일과 생활, 생각들이 들어 있다. 그들의 노래는 결코 슬프지 않고, 오히려 유장하다. 그 노래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산과 들녘, 농토와 강, 그들이 아끼고 존중했던 자연과 닮아 있는 것이다.
한편 잡가화 된 육자배기는 직업음악인들에 의해 불렸고, 그 노래를 듣고 즐기는 사람들은 대중이 되었다. 그러면서 노래 가사에는 사랑과 이별이 주로 등장하였으며, 노래는 더욱 세련되고 화려해졌다. 양념이 많이 들어간 요리처럼 그 맛은 자못 자극적이기 조차 하다.
사랑과 이별, 어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주제이다. 잡가화 된 노래들이 한결같이 같은 주제를 노래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의 대중가요처럼 말이다. 게다가 일반인이 흉내내기 어려울 만큼의 화려한 시김새와 목 구성은 육자배기를 부르는 노래보다는 듣는 노래로 여기게 했다. 이제 사람들은 육자배기를 듣는다.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또는 스스로의 감정을 노래에 실어 감상한다. 마음이 슬픈 사람은 육자배기를 슬프게 듣고,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육자배기를 한가하고 편안하게 듣는다.
요즘엔 전라도의 시골에서도 잡가 육자배기를 더 많이 부른다. 논매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도 이유이지만, 잡가 육자배기의 화려함은 참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노래 잘 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을 때면, 이 노래를 부른다. 아마도 육자배기가 전라도 민요의 대표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듯 싶다. 육자배기는 전라도 노래의 화려함과 멋스러움을 한껏 뽐낼 수 있는 노래인 것이다.
하지만 누가 부르던, 누가 듣고 즐기던, 육자배기는 육자배기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소리, 그들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소리, 그 안에서 나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더욱 감동적일 수 있는 육자배기. 오늘 다시 육자배기를 들으며 뭇 사람들과 나의 일상을 떠올려 본다
박송희, 조순애, 성우향, 남해성, 신영희, 안숙선(소리의 전설들의 합동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