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후배 장현대를 아시는 이웃들이 적지 않으리라.
양천구 목동이 아니라 중앙고등학교 중창단 <목동>후배다.
지난 5년 5개월 간의 내 유일한 '해외여행'이었던
1주일간의 말레이시아 페낭 여행의 주최자 겸 동반자였고,
내게 고교동문의 살가움을 처음으로 알려준 후배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 현대가 어느 늦은 가을날 내게 말했다.
"형, 제 동기 녀석이 대학로에 서점을 냈어요.
형이 그래도 지역 유지(? 컥! 오래 살면 다 지역유지가 되는 것이냐?
,.ㅡ)인데 가끔 들르셔서 조언도 해주고 그러면 좋겠네."
속으로 생각했다.
헉! 대학로에 서점을 냈다고?
서점들이 죄다 쫓겨나고 음반점들이 죄다 밀려나가고
남은 건 오로지 먹고 마시는 행위만 남겨진 대학로에?
대학로엔 대학도 없고 문화도 없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있단 말인가!
그나마 남은 연극인들의 알량한 마지막 피신처조차
개그 콘서트 류의 코미디 쇼가 장악해 가고 있는 이 대학로에....
그래도 어쩔까, 현대의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일면식도 없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후배라는데 가서 책이라도 한 권 팔아줘야지.
그런 마음으로 어느 저녁, 혼자 서점을 찾았다.
광고로 뒤덮인 혜화 전철역 1번 출구를 빠져나와 동숭아트센터 올라가는 길을 가다보면
오른쪽에 갈비집 낙산가든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왼편에 GS25 편의점이 보인다. 편의점 옆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유정낙지라는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그리고 그 건물 지하에 저렇게 생긴 간판과 입구가 있다.
이음아트. 책과 음반을 파는 집.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김광석의 LP가 놓여 있고
몇 권의 사진집과 책이 놓여 있다.
출입구 공사하는 데만도 돈 솔찮이 들었겠다...
그러면서 내려갔다.
디자인 및 사진 전문 서적 코너
대학로엔 알다시피 꽤나 많은 캠퍼스가 있다.
물론 건물만 달랑 있는 캠퍼스다.
멀쩡한 건물들을 다 헐고 대학들이 앞장서서
삘딩을 새로 짓는다.
대한민국의 대학 쳐놓고 예술대학 없는 대학은 별로 없다.
내가 알기로 유럽의 예술가들은
예술학교를 다니지 예술대학을 다니지 않는다.
나중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기로 작정한,
그러니까 예술가 보다는 교사가 적성에 맞는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대학에 간다. 석사, 박사를 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렇다.
그런데 참 웃긴다.
대학로에 캠퍼스는 그리도 많이 생겼는데
어쩌다 서점도 하나 없고, 음반점도 하나 없는가!
대학로에서 책을 보는 것이 이 얼마만인가.
정신세계사에서 만들었던 정신세계원.
샘터 건물에 있던 샘터 서점,
혜화역 출구 옆 배스킨 라빈스 맞은편 하겐다스 자리에 있었던 대학서림,
다 없어졌다.
혜화동 로터리에 동양 서림만 남아 있다.
동성중고등학교 참고서를 팔 수 있으니까.
없어진 게 어디 책방 뿐일까.
성균관대 육교(지금은 없어진) 아래 있던 자그만 음반가게 시절부터
내 단골가게였던 바로크 레코드.
결국 설렁탕집으로 바뀌었다.
대기업 SK에서 만들었던 음반점도 사라졌다.
대학로에선 책도, 음반도 살 수 없었다.
하나씩 다 들춰보다가, 몇 개를 꼽았다가
결국 한 장을 사들고 오면서 1시간을 음악 속에 젖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은 까마득한 과거로 편입되었다.
오, 중고 LP!!!!!!
중고 엘피를 살 때마다 나는 다짐한다.
이제 엘피는 고만!!!!
그러나 씨디로 있는 것조차
엘피를 만나면 반가워서 또 사고 만다.
라이센스는 4천원, 가요는 4천~?원
수입원판은 1만~?원...
그래도 나는 여전히 엘피 앞에 서면 가슴이 떨린다.
어쩔 수 없는 구닥다리 찍찍이 아날로그맨....
그렇게 해서 상준이를 만났다.
"사장님 계십니까?"
직원이 사장님은 안쪽에 계신다고 알려줬다.
"저 중앙 70회 조병준이라고 합니다."
"어이구, 선배님!"
우리의 첫대화였다.
"후배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시작하기 전에 나한테 좀 물어보지 그랬니...
대학로에 있던 서점, 음반점 다 사라졌는데
이제 와서 여길 들어오면 어쩌라는 말이냐...ㅠ.ㅠ"
참 말도 뽄때없이 했다.
얼마 후 친해진 다음, 상준이가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나 싶었어요.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살아야 되지 않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형, 걱정 해 주셔서 고마와요.
형 말씀대로 살아남을게요.
형 걱정 안 하시게 잘 할게요.
살아남을게요."
상준이는 와이프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출근한다.
그리고 식사 때면 내게 전화를 한다.
"형, 식사하시러 오세요. 밥 많이 싸왔어요."
혼자 사는 독거 선배, 맨날 굶거나 라면 먹거나가 안쓰러워 전화를 한다.
보온도시락에 싸온 밥을 나눠 먹자고....
대학로에 서점이 생겼다. 음반점을 겸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참새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가듯, 매일,
아니면 이틀에 한번, 그도 안되면 사흘에 한번
이음아트에 들른다.
책도 들춰보고, 엘피도 뒤적이고, 씨디도 들춰본다.
엘피는 따뜻한 진공관 앰프로 틀고
씨디는 명료한 쿼드 앰프로 틀고...
음악 들으며 커피 얻어마시고
책 한 권도 사고, 중고 엘피도 한 장 사고,
생일 핑계로 친구들에게 씨디도 한 장씩 사달라고 하고...
얼마나 좋은지, 대학로에
내 밥과 책과 음악을 제공하는 집이 하나 생겨서...
상준이의 저 얼굴을 보라.
문학소년이었고 문학청년이었고,
직장인이었다가, 나이 마흔넷에
이 삭막한 대학로에 서점 겸 음반점을 차린,
저 지독히 무모한 낭만주의자를 보라.....
장사 팔자 타고난 얼굴은 아니다.
장사 해 본 내가 옆에서 코치해 줘야지, 별 수 있는가...ㅠ.ㅠ
다 늙어 점원이 웬말이냐!!!!!~~~~ㅋㅋㅋ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천사들/이 땅이 아름다운 이유.
두 권 책의 출간 기념 독자들과의 만남이
조만간 이음아트에서 있을 겁니다.
조만간 공지 올라갈 겁니다.
많이들 와주세요.
새 책에도 덕담 보내 주시고
이음아트에도 복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
첫댓글 혜화 전철역 내려 동숭아트센터에 연극보러 혹은 영화 보러 갔던 기억의 편린들이 스물스물 쏟아져 나옵니다...백운거사님 동문방에 올라온 글인가요? '이음아트'라, 부뉘기가 딱 내 스탈인데 두근거리면서 방문해 볼렵니다, 사이버 세상이지만^^*
다녀 가겠습니다.
막 아침에 조병준님 블로그 다녀왓습니다..독자와의 대화의 자리가 넘 부럽네요, 대신 책으로 대리만족 할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