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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톡방'의 가짜 뉴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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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의 유통망이 된 기독교인들
문제는 채팅방에서 쏟아지는 가짜 뉴스들이 제 주변에까지 퍼지고, 이를 팩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그 가짜 뉴스를 주변에 열심히 전달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니 교회의 구역 모임 단체채팅방, 아버지의 회사 동료가 보내온 메시지에도 제가 포함된 채팅방에서 봤던 메시지가 그대로 복사되어 올라와 있었습니다. 메시지의 형식은 조악했지만 내용은 전문가가 쓴 것으로 보이는 장문의 메시지나, 특정 홈페이지나 블로그, 카페, 밴드의 게시글로 연결되는 링크였습니다. 동영상 사이트로 연결되는 링크나 합성한 사진도 있었습니다. 포털 사이트의 사회·정치 기사들의 베스트 댓글에도 같은 내용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10년 전부터 “[긴급]”이라는 머리말을 달고 떠도는, 변함 없는 내용의 선교지 기도 제목, 국내로 들어오는 이슬람에 대한 가짜 정보를 비롯하여,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와 베리칩, 오바마 헬스 케어에 대한 갖가지 괴담, 국방부에서 공식 반박한 제5남침 땅굴과 북한의 남침 예언 같은 내용들도 올라왔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제시하여 막연한 두려움과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배제와 반대, 심지어 증오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유도하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막을지가 주제였던 것이죠.
메시지를 받은 성도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과연 그러한가’ 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좋겠지만, 그저 놀라서 확인 절차 없이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매체의 정보를 신뢰해야 하는지, ‘사실 확인’은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근거와 설득력을 갖춘 반박 자료를 꼼꼼히 봐야 겨우 수긍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확증 편향’과 분노를 품은 사람들은 아무리 사실을 알려주어도 설득이 어려웠습니다.
진실하고 진리를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의 유통망이 되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혼자 맞춤형 검증 자료를 찾아다니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료를 한 곳에 모으고, 집단지성이 검증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소셜미디어에 기독교 가짜 뉴스를 검증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습니다. 이제껏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저도 많이 배워왔으며,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를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즉석에서 축적된 자료를 찾아내 나름 조리 있게 설명해줄 수 있었습니다.
애국 활동 넘어 영적 전쟁
그런데 그들은 왜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일에 그토록 열심을 내는 것일까요? 정파적 목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평소에는 당시의 야당 정치인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퍼트리다가, 주요 이슈가 등장하면 전문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자료들을 유포합니다. 즉 세월호 참사, 학생인권조례, 백남기 농민 사망, 역사국정화교과서, 총선, 사드(THAAD),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이번 대선 등 때마다 이들 주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반대편을 악당처럼 묘사하는 자료들이 돌았습니다.
어느 선거 때였는데, 그때는 투표 당일에는 인터넷 등에 후보에 대한 지지나 비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체 채팅방에서 어떤 할머니께서 당시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을 복사해서 올렸습니다. 메신저 어플로 전화를 걸어 이러시면 안 된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자신이 ‘애국하려고 그랬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에게 애국이란 무엇일까요? 법이나 민주주의 원칙은 무시하고, 자기와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편을 곧 자유대한민국이라 여기며, 사상이나 생각이 다른 반대편을 과격성을 드러내면서까지 반대편을 지우려는 게 애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작된 정보도 많고, 불법과 편법도 있었습니다. 인터넷매체를 여러 개 만들어서, 기자 한 명이 기사 하나를 써서 복사한 뒤 조금씩 고쳐서 올리기도 합니다. 남성이 소셜미디어에서 여성의 사진을 도용해서 계정을 만들고, 반대편 활동가들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캐내기도 했습니다. 십자군알바단과 그 후예들은 자신들을 인터넷 선교사로 여기며 불법을 자행합니다. 이들이 퍼트린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는 스스로 애국한다고 믿는 순진한 일반 성도들에게 전달되고 확산됩니다. 메시지들을 관찰한 결과, 이들은 이 과정들을 애국 활동일 뿐 아니라 ‘영적 전쟁’이라고 믿습니다.
40개 ‘단톡방’의 가짜 뉴스들
사회적으로 굵직굵직한 이슈가 많았던 올해에도 많은 양의 가짜 뉴스와 주장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졌습니다. 작년부터 채팅방에서는 ‘최순실 태블릿 PC 음모론’이 줄기차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최순실 씨가 태블릿 PC를 사용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태블릿 PC를 입수하여 뉴스화한 방송사를 공격하는 내용이 가장 많았습니다. 방송사와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증거물을 조작했다는 주장, 태블릿 PC의 파일 생성 및 수정 날짜가 방송사가 입수한 이후라는 주장, 태블릿 PC가 소위 ‘빈 깡통’이었다는 주장, 태블릿 PC의 주인이 최순실이 아니라 국정농단 사태의 주요 증인인 고영태 씨 등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 등이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박 전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있었다는 신혜원 씨가 동영상 사이트 방송에 출연하여 태블릿 PC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동영상 링크도 여기저기 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나온 주장들 중 일부는 몇몇 국회의원이 그대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 의원들의 주장이 다른 정당의 의원들이나 특검을 꼼짝 못하게 한다는 영상도 재차 유포되고 있습니다.
촛불집회 당시 가짜 뉴스와 루머도 많이 떠돌았습니다. 대단히 위험한 세력이 주도하는 집회라는 주장에다, 북한이 촛불집회를 종용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울러 일명 ‘태극기 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것은 물론, 채팅방에서 보이던 사람들이 집회와 기도회에서 한 연설문과 영상이 다시 채팅방에 올라왔습니다. 촛불집회가 탄핵 정국을 이끌어내자 탄핵은 헌법에 위배되는 불법이라는 주장이 법조문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국제변호인포럼과 미국 변호사도 탄핵을 반대한다는 내용도 올라왔습니다. 확인해본 결과, ‘국제변호인포럼’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리가 한창이던 올해 2월에 창립된 단체였고, ‘미국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습니다.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의 탄핵이 확정되자, 탄핵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집회 주최측에 묻는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이들은 탄핵 반대 집회를 이어가는 한편, 대선 후보에 따라 지지자들이 나뉘어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집회에 자주 등장한 정치인들과 당시 국무총리 위주로 파가 갈렸는데, 상대 후보들에 대한 비방이 음해 수준으로까지 치달았습니다.
대선 기간 단톡방 키워드는 “종북주의자”
본격적인 대선에 돌입하자 각 보수 후보들에 대한 지지 공세와 함께 다른 정당 소속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한 온갖 거짓 정보들이 퍼졌습니다. 가장 흔하게 등장했던 건, 유력 후보가 종북주의자이고 과거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불법을 자행하며 북한 편을 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최순실 태블릿 PC를 보도했던 방송사와 함께 그 후보가 촛불집회의 배후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편집된 정보를 토대로 후보의 군대 생활을 문제 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견제가 실패하고 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여전히 법적으로는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고 현 대통령은 불법 대통령이라는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탄핵 확정 때부터 펼쳐온 불법 탄핵 논리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들에게 현 정권은 불법 쿠데타로 정당한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을 빼앗은 깡패 집단이었습니다. 이 관점과 주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현 정권의 각료들에 대한 비방과 검증되지 않은 종북설도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반공이 국시(國是)’라는 신념이 머릿속에 견고히 자리 잡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다양함과 중간지대 없이 편이 다르면 죽어야 하고 죽여야 했던 6·25 전쟁과, 반세기 동안 지속된 이념 대립이 남긴 흔적입니다. 같은 편끼리 모인 곳에서의 거짓 정보 공유는 그릇된 가치와 신념을 강화하였고, 기존 언론을 불신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여론과 언론의 질타를 받는 국정농단 세력이나 정치인들, 범법자들도 영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들만 비밀과 진실을 알고 있다는 확신은, 프리메이슨·베리칩 음모론자나, 강제개종피해자연대 같은 유사 조직을 만들고 이단 연구가들을 음해하는 이단과 흡사한 경향을 보입니다. 아울러 이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인 사실을 긴급히,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강하게 불타오르게 됩니다.
가짜 뉴스로 관계 단절을 경험하다
얼마 전 이와 관련하여 안타까운 일을 겪었습니다. 군대 시절 저에게 힘을 주었던 군의관님이 있었습니다. 전역 후에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고, 같은 대학 출신이라 학교 근처에서 뵙고 교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선 직후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 어떻게 기독교인이 그 대선 후보를 지지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지지하는 게 아니라 한 방송사의 대선 영상이 재밌어서 캡처해서 올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사이도 없이 그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분에게 어떤 매체로 뉴스를 접하는지 묻자, 그분은 보수정론지라면서 몇몇 언론사를 이야기했습니다. 단체 채팅방에도 링크로 올라오고, 시사 고발 탐사보도에도 간접적으로 등장한 편향된 인터넷신문이었습니다. 그분은 명백하게 견해가 다르면 포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서둘러 그분과의 만남을 잡았지만, 얼마 후 만남을 연기해야겠다고, 만나면 좋은 말이 안 나올 것 같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편향성을 띤 가짜 뉴스가 은사님을 잃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한편 이 원고를 쓰는 동안 보람을 느낀 일도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교회에서 결혼 후 남편을 따라 교회를 옮긴 후배가 있습니다. 기존 교회와 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보내주는 가짜 뉴스와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배우는 내용이 너무나 달라서 세계관에 충격이 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혼란 속에서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자문했고, 자라고 배워온 환경과 교육의 영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공기처럼 당연시한 것들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과연 그러한가’의 자세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후배가 최근 받은 메시지 내용을 제게 보내주었습니다. ‘청와대가 최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저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밥상을 제사상으로 차리고, 군악대가 장례 행렬에 쓰는 만장을 세웠다’는 거지요. 저는 가짜 뉴스 검증 그룹에 확인을 요청했고 곧 답이 나왔습니다. 만찬장의 주안상은 제사상과 배치가 완전히 다른 일반적인 한식 상차림이었고, 군악대가 든 기치는 만장이 아니고 청룡·백호·주작·현무 등을 상징하는 전통 깃발이며, 취타대를 앞세운 군악대의 퍼레이드는 최고의 국빈 예우라는 것입니다. 답변을 모아 전달하자 후배는 ‘하루밖에 안 지났지만 대화를 통해 많은 걸 배웠고, 기존에 듣고 보고 받았던 많은 메시지들이 사실이 아닌 것들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했습니다.
가짜 뉴스의 조직적 유포 세력에 맞서야
4년 동안 가짜 뉴스 검증 그룹을 관리해오면서 많은 일을 겪고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구성원들 사이에 거친 표현을 써가며 논쟁이 격화되기도 했고,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것도 많은데 왜 비슷한 질문을 또 여기에 하느냐’며 그룹을 탈퇴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다른 영역에서는 분별력을 갖추었는데 특정 영역에서는 이단들의 거짓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목회자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식견과 열정 가득한 전문가들과 ‘눈팅’으로 정보를 얻어가고 메신저로 감사를 전하는 분들 덕분에 이제까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때론 지성인들의 입장에서는 굳이 점검할 필요 없는 내용이 올라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검증하는 내용은 지성인뿐 아니라 오늘도 가짜 뉴스에 현혹됐거나 시달리는 일반 성도들과 시민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런가’ 궁금하여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쉽게 검색하여 정보를 얻어가는 포털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궁금해 하거나 궁금해 할 법한 이슈에 대한 질문을 현안의 무게에 따라 올릴 때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가짜 뉴스 생산자들의 패턴이 드러나서 이슈 때마다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되기도 하고, 탄핵 정국을 지나면서 신뢰도 높은 언론사들에서도 ‘팩트 체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서 제가 할 일이 줄어든 듯도 합니다. 그럼에도 카톡 같은 모바일메신저, 블로그,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여러 정보나 메시지, 주장을 접할 때는 ‘과연 그러한가’란 물음은 더욱 커져야 합니다. 거짓 정보, 가짜 뉴스를 조작해 유포하는 세력은 여전히 몸통이 건재한 상황입니다. 그 세력은 자신들을 인터넷 선교사로 여깁니다. 저는 오히려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짓을 가려내고 진실을 전하려는 저희 그룹원들이 진정한 의미의 인터넷 선교사라고 믿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함께해온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사독(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