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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하 시집 <햇빛이 그리울수록> | ||||||||||||||||||
부산고 18회 동기생들이 헌정한 유고시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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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허락이 없기로서니 이 손길을 놓으랴
지상에 까닭 없이 피는 꽃을 보았는가
박구하(1946~2008 )
사연 없는 시집이 어디 있을까만 박구하 시인의 유고시집 《햇빛이 그리울수록》은 갑작스러운 타계로 생전에 시집을 발간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고교 동창생들이 뜻을 모아 발간해 헌정한 애틋한 우정이 담긴 시집이란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시인은 명문 부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한 뒤 은행 지점장을 거쳐 기업 CEO로 활약하면서 53세의 늦은 나이에 《시조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부산고 18회 문예반원으로 졸업문집을 만들었고 1980년대 한국정가연구회를 이끌었던 이력을 감안하면, 그의 늦깎이 문단 데뷔는 시조를 쓰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등단하자마자 시인은 마치 용암이 분출하듯 시조문학 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다. 세계시조사랑협회 사무총장을 맡아 시조전문지 《시조월드》 발행과 한국시조대상 운영, 어린이 시조짓기 운동과 연변지역 시조백일장 개최 등 시조 저변 확대와 세계화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열정에 감동받은 당시 협회 이사장인 조오현 스님과 재미 시인 김호길 선생은 시인의 활동을 적극 뒷받침했다. 시인은 시조 일뿐 아니라 부산고 동문회지 편집위원으로 ‘청조만담’이란 회고의 글을 무려 7년 넘게 연재하고 《부산고 60년사》를 편집하는 등 동창회의 일에도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시인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문단 안팎에 큰 충격을 안겨 줬다. 시인이 추진해온 많은 일은 중단되거나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부산고 동문들의 안타까움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폐부를 찌르는 시인의 시조에 찬탄해온 친구와 지인들은 시인으로서 생전에 시집을 직접 펴내지 못하고 떠난 것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이에 고교 시절 함께했던 문예반원 등 가까운 동문들이 그가 남긴 시조들을 정리하여 1주기에 맞춰 출판하기로 뜻을 모았다. 곧바로 ‘박구하 유고시집 출간위원회’가 발족하여 이병홍(부산고 18회 동기회장), 이정욱(총무), 정영일·강신철(재정), 박종우·전택원(편집), 안병태(대외협력), 이경형(대표, 총괄진행) 동기생이 역할을 분담했다. 후배인 유자효 시인(19회)은 문단 연락 업무를, 박지열 시인(20회)은 출판을 맡기로 했다. 시조와 시를 비롯해 평론과 칼럼, 기행문 등 고인이 남긴 문학 관련 자료는 실로 방대한 분량이었다. 논의 끝에 유고시집엔 300여 수에 이르는 시와 시조 중에서 엄선해 싣기로 했다.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은 시인이 생전에 얼마나 치열하게 시 작업을 해왔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수많은 초고에 퇴고를 거듭한 흔적이 역력했고 한 주제를 놓고도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쓴 미완성의 시들도 적지 않았다. ‘어머니’란 단일 시제 아래 31편에 이르는 연작시조로 절절한 어머니의 사랑을 읊었고 편경·생황 등 국악을 연주하는 악기를 주제로 삼은 작품들도 적지 않아 고인의 남다른 국악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최종 165편을 선정했고 7부로 나누어 편집했다. 시집 제목은 시인이 생전에 정해 둔 ‘햇빛이 그리울수록’을 그대로 사용했고, 제자(題字) 또한 생전의 약속을 지켜 고교 동기인 박종우가 썼다. 후배 박지열 시인이 운영하는 출판사인 ‘해와 달’에서 출판을 맡아 시집 《햇빛이 그리울수록》은 더없이 아름다운 우정의 표상으로 마침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시인의 1주기를 맞아 2009년 6월 15일 ‘문학의집 서울’에서 추모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렸다. 유족과 부산고 동문, 그리고 많은 문인이 참석해 시집 헌정의 시간을 함께했다. “혼이 담긴 시편들을 모아 시집을 내어 헌정하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병홍 동기회장의 헌정사와 “시조에 열심을 불어넣다가 갑자기 떠나고 나니 적막하고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는 이근배 예술원 회원의 추모사, 한분순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과 동기생인 정영일 변호사의 회고사 등이 이어질 때마다 1백여 명의 참가자들은 생전의 신념에 가득 찬 시인의 목소리와 열정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조야말로 짧으면서도 완벽한 형식과 촌철살인의 내용을 담은, 늘 새로운 첨단의 시”임을 확신하고 시인은 평소 울림이 큰 시조 쓰기를 실천했다. 〈절벽〉 〈못〉 〈퇴적암〉 등 많은 명편들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창작에 매달렸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떤 목표를 위해 고행하는 순교자적 의지가 결연한 표제시 〈뿌리〉는 시인의 그러한 시정신이 잘 담겨 있는 대표작이다. 시인의 시조들은 시조의 바른 틀을 지키면서 난해하지 않은 어법으로 읽을수록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시조시인으로, 시조문학 운동가로 박구하 시인은 시조문학의 중흥을 위해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자세와 열정으로 용맹정진해 온 큰 지도자였다. 유고시집 《햇빛이 그리울수록》은 시인이 살아생전 온몸으로 보여준 시조문학 활동과 뜨거운 시정신의 상징으로, 한편으론 부산고 동문들이 함께한 따뜻한 우정의 증표로 남아 오늘 우리를 깨우치고 있다.
권갑하 munyehyup@naver.com / 시조시인. 1991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1992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외등의 시간》 외 3권. 중앙시조대상, 한국시조작품상 등 수상. |
ㅡ『유심』(201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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