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21.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행 16:1~10
*제목; 사도행전강해(27) 바울의 꿈, 하나님의 꿈
1. 지난 주일 이야기
1차 전도 여행 후, 2차 전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고 헤어짐’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마가 요한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로마 선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를 통해 선교의 파트너가 “바울과 바나바”에서 로마선교에 최적화된 로마시민이 “바울과 실라”로 바뀌어 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뚫고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바울의 꿈, 하나님의 꿈
이런 바울의 이제 “더베와 루스드라”에 도착하게 됩니다. ‘1절’입니다.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행 16:1)
그곳에서 믿음의 동역자요 아들인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가 “믿는 유대 여인”이요,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다문화가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만남 또한 로마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입니다. 로마시민권자인 바울이 같은 로마시민권자인 실라와 함께 로마선교를 갈 때, 이중 문화와 이중 국적과 이중 언어를 할 수 있는 “디모데”를 만난 것입니다. 그의 선교에 그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을 지는 선교를 아는 사람은 다 알 수 있습니다.
그 만큼 “로마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또한 이렇게 택한 디모데는 또한 어떠한 사람입니까? ‘2절’입니다.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행 16:2)
그 지역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자였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은 하나님이 그 중심으로 평가하십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평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의 평가입니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우리의 현 모습입니다.
디모데가 얼마나 귀한 사람이었던지, 그의 믿음과 삶이 그 지역 사람들로부터 큰 칭찬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로마선교에 디모데를 동참시키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과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가장 정확한 것은 내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입니다. 또한 지금 시대에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평가요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바울은 이상한 일(?)을 행합니다. ‘3절’입니다.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행 16:3)
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것입니다. ‘고전 9:20’을 봅시다.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전 9:20)
이는 선교적으로 매우 타당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로마 선교”를 위해서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꾸 유대인에게로 유대인에게로 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5절’입니다.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행 16:4~5)
그러나 이 바울의 성공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통해서 두 번이나 그 길이 바르지 않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6~7절’입니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 16:6~7)
잘 되어 진다고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잘 된다고 다 성공도 승리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야 참된 성공이고 승리인 것입니다. 진정 착각하지 맙시다!!!
사도 바울조차도 자신의 계획과 성공 그리고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있는데, 우리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매일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꿈을 좇는 바울
두 번이나 경고하셔도 말을 듣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수단(?)을 쓰십니다. “마케도냐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9~10절’입니다.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 16:9~10)
드디어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환상 앞에 굴복하고 “마케도냐”로 가기를 힘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대단합니다. 우리라면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데, 다 접고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항상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만이 하나님 나라에서도 유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11절’입니다.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행 16:11)
‘드로아’에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드디어 ‘네압볼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배편이 최소한 5일은 걸리는 일정인데, 2일 만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처럼 간절했고 급하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로마 선교”가 중요하시다면, 그리고 그리 마음이 급하시다면, 깨닫지 못하는 사도 바울보다 다른 사람을 보내시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꼭 사도 바울과 이 일을 하시려 하십니다. 그것은 “로마 선교”보다도 더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는 것”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이런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이 늦어져도, 혹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꼭 함께 하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되길 소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로마 선교”가 중요하시다면, 그리고 그리 마음이 급하시다면, 깨닫지 못하는 사도 바울보다 다른 사람을 보내시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꼭 사도 바울과 이 일을 하시려 하십니다. 그것은 “로마 선교”보다도 더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는 것”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이런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이 늦어져도, 혹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꼭 함께 하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되길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