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로 장로를 찾아간 양송은 황권과의 협의 내용을 설명한 뒤, 서천의 지도를 펴놓고, "자, 보십시오." 하고, 아뢰니, 장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스무 개 현이 표시된 곳을 짚어 본다. 그리고, "좋군, 좋아 ! 그렇지만 천하의 용장으로 알려진 조운과 장비가 왔다면 매우 어려운 싸움이 되지 않겠나 말야, 우리 장군들 중에 과연 누가 그들을 상대할 수가 있겠나 ? 괜히 뛰어 들었다가 오히려 우리가 낭패를 당하면 어쩌지, 엉 ?" 하고, 난감한 소리를 하자, 장로의 수하 장군들 중에선 장비와 조운의 이름만으로도 감히 싸우겠다고 나서는 자가 없었다.
그렇게 침묵이 흐르자, 마초가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저는, 주공께서 거두어 주신 은혜를 아직 갚지 못했으니, 제가 병사들을 이끌고 가맹관을 공격하여 유비와 제갈양을 생포해 오겠습니다." "엉 ? 맹기(마초의 字)가 나서준다면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지, 하하하 !.. 그런데 유비의 병력은 모두 얼마나 되지 ?" 장로는 양송을 쳐다보며 물었다. 양송이 대답한다. "제갈양이 데려온 병력까지 모두 육만 쯤 될 겁니다." "그럼 이만 명이면 충분합니다." 마초가 단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장로는, "좋아 ! 내가 정예병 삼만을 내 줄 테니, 수고스럽지만 당장 가맹관으로 가서 유비를 치고, 서천의 스무개 현을 받아오게 !" 하고, 명하였다. "알겠습니다." ...
한편, 서천의 성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면죽관(綿竹關)을 지나야만 하는데 그곳의 지형은 험난한 곳으로 낙성 을 취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곳이었다. 그곳은 백명의 수비 군사로써 열 배가 되는 천 명을 막아 낼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진 곳이었다. 그러기에 유비는 공명과 함께 이 문제를 의논하고 있었다.
공명이 입을 열어 말한다. "비록, 만 명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 면죽관이나 그곳은 워낙 공고한 관문이므로 우리가 쉽게 지날 수는 없습 니다. 그러니 싸우기 보다는 유장의 항복을 끌어내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그래야 서천 사람들과 원한이 만들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유비가, "음 !...위연을 시켜 공격하도록 명 하였으니, 결과를 좀 더 기다려 봅시다." 하고, 말하는 순간, 보고가 들어온다. "주공 ! 면죽관 제일의 용장인 이엄을 위연 장군이 사로잡았다는 소식입니다 !" "그래 ?... 그렇다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로구나 !" 유비는 춤이라도 출 듯이 기뻐하였다. 마침 그때, 위연이 이엄을 끌고 들어온다. 유비는 위연의 공을 칭찬하며, 이엄의 결박을 손수 끌러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승부의 세계라 하더라도 일국의 용장을 이렇게 대접해야 되겠나 !..."
이엄은 유비의 관후한 대접에 크게 탄복하며 말한다. "면죽관의 주장(主將)인 비관은 비록 유장의 친척이긴 하나, 저하고는 막역한 친구입니다. 허니, 유 황숙께서 저를 면죽성으로 보내 주신다면 제가 그를 만나 항복하도록 설득해 보겠습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두말없이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리하여 이엄의 군장(軍裝)을 모두 돌려주고 말까지 주어서 면죽성으로 돌아가는 편의를 제공하도록 위연에게 명했다. 이엄은 면죽관으로 돌아오자, 비관에게 직접 보고 겪은 유비의 인덕(仁德)을 극구 칭찬하며, 그에게 항복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음 !... 자네가 이처럼 말한다면 유비야말로 참다운 인군(仁君)인가 보네그려. 자네와 나는 이미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세한 사이이니, 그렇다면 유비에게 면죽관을 곱게 내주세그려." 이리하여 면죽관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유비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마초가 장로의 군사를 이끌고 가맹관으로 쳐온다는 소식이 들어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유비가 공명을 불러 대책을 물으니, 공명은 이렇게 말한다. "가맹관으로 마초가 쳐들어 온다면 우리는 후방이 불안하여 성도로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자 유비가, "익덕(장비의 字)이라면 마초와 해 볼만 할 거요." 하고, 장비를 불러낼 소리를 한다. 그러자 공명은, "그러나 장 장군을 그냥 보내 가지고는 그의 급한 성격상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그런 점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이 문제는 제게 맡겨 주십시오." 하고, 말한다.
마침 그때 장비가 황황히 들어오며, "마초란 놈이 가맹관으로 쳐들어왔다지요 ?" 하고, 말한다. 그러자 공명이 대답한다. "방금 마초가 가맹관으로 쳐들어 왔다는 소식이 들어왔소. 지금 가맹관을 지키고 있는 장군 맹달(孟達)로서는 마초의 상대가 안 되니 부득불 형주의 관우 장군을 불러 올려야 하겠소. 그 대신 장군이 형주를 지키도록 해주 시오."
장비는 그 소리를 듣더니 얼굴에 노기가 충만해진다. "군사는 나를 이렇게나 얕볼 수가 있단 말이오. 마초같은 필부가 무엇이기에 나로써 안 되고 운장 형님을 일부 러 불러 온단 말이오 ?" "장군은 너무 흥분하지 마시오."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 어찌 흥분을 아니할 수가 있겠소 ? 장판교(長板橋)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혼자서 물리친 사람도 바로 내가 아니오 ?" -> (치치, 포포...) "마초의 용맹은 조조의 유가 아니오. 마초의 용맹함은 여포를 능가하고, 얼마 전 위교(渭橋) 싸움에서는 조조로 하여금 수염을 깎고 전포를 벗어 던지며 도망을 치게 만들었소." "나를 그렇게나 못 믿겠다면 군령장이라도 써놓고 나가리다 !" 장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공명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러면 장군은 마초와의 결전에서 급박한 성격을 누구러뜨리고 싸울 수가 있겠소 ?" 하고, 장비를 향해 다짐을 요구했다. "하오 ! 말 하나 마나요 !"
장비는 공명을 향하여 두 손을 맞잡아 보이며 유비를 쳐다 보았다. 그와 동시에 공명이 유비에게 말한다. "장 장군이 이렇듯 말하니 주공께서는 군령장을 받아 놓으시고 장군을 선봉에 서게 하시죠. 그리고 위연 장군 을 장 장군에 앞서 척후병과 함께 보내시고, 장군의 뒤를 주공께서 받쳐 주십시오. 저는 여기 남아있다가 조운 장군이 지방에서 돌아오는 대로 다시 상의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공명은 장군 위연에게 초마(哨馬: 척후병) 오백을 주어 선행케 하고, 장비가 그 뒤를 따르고, 유비는 본군을 이끌고 다시 그 뒤를 쫒게 하였다. 공명이 가맹관 싸움에 이토록 신중을 기한 것은 서천의 성도를 목전에 두고, 일을 그르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 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천하의 맹장 마초와 불세출의 명장 장비와의 대결 ! 이 싸움의 결과는 과연 어찌 될 것인지 ...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
마초군의 선봉에 선 마대가 군사들을 이끌고 가맹관 앞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큰소리로 외치었다. "성안의 겁쟁이들은 들어라 ! 성문을 곱게 열어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 그렇지 아니하면 총공격을 펼칠 것이니 뒤늦게 후회하지 마라 !"
이렇게 마대가 호기롭게 소리치고 있을 때에 장비와 유비가 일군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마대가 느닷없이 나타난 이들을 보고 창을 들어 묻는다. "너희들은 누구냐 ?" "도둑놈들아, 너야말로 누군지 밝혀라 !" "나는 서량의 마대다 !" "아 ! ~ 그래 ? 네놈은 마초가 아니구나, 너같은 조무라기는 상대가 아니니 마초를 나오라고 해라 !" "건방진 놈 ! 이랴 !" 마대는 장비에게 개무시를 당하자 곧바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공격을 해오는데 그냥있을 장비가 아니다. 장비도 마대를 향해 돌진해 나갔다. "차앙 ~ 창 !" "으, 윽 ! " 단 두 합만에 마대가 말에서 떨어졌다. 장비가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마대를 굽어보며 소리친다. "마초에게 장비가 기다리고 있으니 썩 나오라고 해라 !" 이렇게 마대의 기를 완전히 꺽어놓은 장비는 유비를 돌아보며 말한다. '형님 ! 술이나 마시러 성안으로 갑시다 !" "가자 !"
이윽고 마대는 장비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유비가 군사들을 이끌고 가맹관으로 유유히 들어가는 것을 먹먹히 서서 바라보기만 하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마초가 군사를 이끌고 관문 앞까지 접근하여 북을 울리며 싸움을 청한다. 유비가 장비와 함께 성루(城樓)에서 바라보니 적의 기치가 수풀처럼 빽백하고 군사는 새까맣게 덮였다. 그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장수가 있었다. 기골이 늠름한데다가 은갑백포(銀甲白袍)를 입은 용맹한 폼이 대장 마초임이 분명하였다. 유비는 그를 바라보다가 무심중에 감탄하였다. "아아 ! 내 듣건데 세상 사람들이 마초를 서량(西凉)의 금마초(金馬超)라고 부른다더니 과연 헛말이 아니로 구나 !" 그러자 그 소리를 듣던 장비가 분연히 소리친다. "금마초는 개뿔 ! 형님, 기다리슈. 내가 나가서 저놈의 목을 따오겠소 !" 그러면서 성루에서 쪼르르 내려가는 것이었다. "멈추게 !" 유비는 장비의 성급함을 제지한 뒤에 말한다. "익덕 ! 서둘지 말고, 적의 기세가 등등하니 기다리게." "언제까지 기다려요 ?" 장비의 성급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오후가 되면 기세가 꺾일테니 그때 생각해보세." "음 !... 뭐 하러 그때까지 기다린단 말이오 ? 기세가 꺾이면 재미가 없잖아요 !" 유비는 장비의 이런 불만을 듣고서도 성밖의 마초군의 진형만 유심히 내려다 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유비가 성밖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틈에 장비가 성루에서 슬며시 사라진다.
잠시후, 관문장 맹달이 유비에게 달려와 보고한다. "주공 ! 장비 장군께서 말에 오르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유비가 장비를 말리려 하였지만 이미 장비는 말을 달려 성밖으로 질주하는 것이었다. "마초 ! 연나라 사람 장비를 아느냐 ?" 장비가 마초를 목전에 두고 외치었다. 그러자 마초는 장비를 전혀 모르는 투로 대꾸한다. "내 집은 누대의 공후(公侯)의 집안인데, 어찌 너따위 시골뜨기 무사를 알 수가 있겠느냐 !" "그럼 오늘 내가 누군지 똑똑이 알게 해주마 !" "덤벼라 !"
이리하여 두 영웅 호걸은 가맹관 관문 앞에서 세기의 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