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2일 수요일
『어른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 김선희 지음
나를 격려하는 법
『어른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를 읽으며, 나는 이게 정말 가능한가. 어떻게 이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놀랐고 이내 부러웠다. 김선희 선생님이 경험했다는 ‘공감대화의 기적 같은 위력’(173쪽)을 나도 진심으로 맛보고 싶었다. 유독 실랑이가 잦아지는 첫째 아이와의 관계에서 공감대화는 간절했다. 그러나 “싫어.” “몰라.” “그냥 짜증 나.” “다 엄마 때문이야.” 더 이상 묻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게 만드는 아이의 반응 앞에서 어떻게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지, 굳게 닫힌 듯한 마음을 향해 어떻게 끝까지 묻고 들을 수 있는지 눈앞이 흐려지기만 했다. 간절한 마음에 답답함이 더해져 생각지 못한 용기가 솟았다. 김선희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이나 동료들에게 다가가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이렇게 다정하고 따스한 사람이고 싶다. 용기 있고 정확하게 다가가 아이의 마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첫째 아이와의 관계에서 공감대화가 간절한데 잘되지 않습니다.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돌아보면 변화가 없는 것 같고, 오히려 아이와 갈등 상황에서 예전보다 더 거친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꾸준히 공감대화를 실천하실 수 있었나요? 저는 왜 안 될까요? … |
도와달라는 투정인지 날 좀 알아달라는 하소연인지 모를 메일을 다 쓰고 나서 보내기 버튼을 누르면서도 망설였다. 너무 뜬금없지 않을까. 그래도 뭔가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름 끝까지 고심하며 보낸 메일에 선생님은 망설임 없는 회신을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메일을 열어 읽다 보니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고 힘드실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전화 통화로 이야기 더 들어보고 싶네요. 글 쓰시는 과정에서 마음이 조금은 편하셨길 바라며, 엄마가 아닌 '김혜화' 한 사람으로 지금 평화로운 오후 보내고 계시기 바랍니다. |
두서없이 늘어놓은 이야기에서 나의 마음을 헤아리며, 평안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코끝이 찡했다. 선생님의 회신을 확인하고 며칠 후 통화를 했다. 2시간 54분 8초. 누군가와 이토록 긴 시간 통화를 해보았던 게 언제였던가. 연애할 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저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 일분일초가 궁금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도 귀기울였던 그때처럼 나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나의 마음을 물었다.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을 묻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털어놓으며 나도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나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나. 아이와 부대낄 때 내가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 속상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나. 나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내가 오롯이 나를 위해 하는 일이 있을까. 나는 왜 자책에 익숙할까. 타인에게는 수도 없이 했던 말, ‘괜찮아’ 나에게는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건네본 적이 있나. 그렇게 물으며 나는 알았다. 내가 나를 격려하는 적절한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그러니 그저 꾹 참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고 만다는 것을. 나의 마음이 편치 않으니, 편치 않은 아이의 마음에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아이에게 있어 부모의 편안한 마음은 젖과 꿀이 흐르는 푸른 초장이란다.’(96쪽)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며칠이 지난 지금, 나의 마음을 묻고 다정하게 돌볼 것을 말씀하셨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남아 있다. 나를 격려하는 법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에게 격려로 느껴질까.
그러는 동안 책을 한 번 더 읽었다. ‘글을 시작하며’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김선희 선생님에게 글쓰기는 ‘생존을 위해 붙잡는 가느다란 밧줄’(5쪽), ‘싸늘한 세상의 한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두툼한 목화 솜이불’(6쪽) 같은 것이라 했다. ‘잠시라도 자신을 향한 예리한 시선을 거두면 촌스러워지는 자신을 느낄 만큼’(7쪽)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섬세한 사람이 교육 현장 곳곳에서 마주하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견디며 지내왔다. 나아가 유의미한 변화를 이루기까지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궁금했는데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선생님은 자신의 마음을 살피며 격려하는 방법을 알았다. 입시관리기관으로 전락한 교육 현장에서 쓰라리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168쪽), 아이들의 존엄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끊임없이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멈추지 않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많은 순간 내가 쓴 글을 짚고 일어서서 다시 발령받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습니다.”(5쪽) 선생님의 글로 남아 있는 힘이 다시 선생님을 이끌어왔음이 느껴진다.
문득 이따금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친구가 생각났다. 학기 말, 과제와 시험 이어지는 동아리 내 중요한 행사 준비로 고단함이 느껴지던 때였다. “오늘은 나에게 선물을 좀 줘야겠어. 이게 나을까? 이건 어때?” 점심을 먹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 친구는 조그만 주얼리샵에 들러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는 귀걸이를 하나씩 귀에 대보며 물었다. “어?” 자기에게 선물을 주어야겠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냥 사고 싶어서 사는 거지 자기에게 선물을 준다니 무슨 소린가. 나한테 사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갸우뚱하기도 했다. 멈칫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친구가 말했다. “나는 가끔 나한테 선물을 주고 싶더라. 뭔가 힘들게 했는데 원하는 만큼 잘 안돼서 스트레스받을 때도 그렇고. 진짜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해 칭찬해 주고 싶을 때도 그렇고. 오늘은 이 귀걸이를 선물해 주고 싶다. 이번 학기 나 진짜 열심히 보냈거든.” “아….”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찡긋 웃고는 마음에 드는 귀걸이 하나를 계산했다. 그때 친구의 표정, 마냥 행복해하며 그 순간을 누렸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자기가 지쳤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격려할 줄 알았던, 자신의 수고를 칭찬하며 건강하게 자신을 지켰던 모습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첫댓글 늘 응원을 보내고 싶은 혜화쌤의 글 ^^ 김선희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고 통화를 하는 용기까지!!! 감탄이 나옵니다. 그 힘으로 또 남은 방학을 잘 보내시길 ^^
'나를 격려하는 법'이라는 화두가 정말 좋아요.
정말 나부터 살펴야 공감도 할 수 있고, 사랑이라는 마음도 낼 수 있을 거 같아요.
고마습니다, 혜화 샘!
메일을 보내고 통화를 하시다니 두 분 모두 용기 있으세요. <당연한 실패>는 혜화샘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글쓰기 운동 악기 그림 뭐든 선생님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세요. 저는 양육 고민 상담을 6개월 정도 받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마음투자 사업 바우처 지원도 있고 시나 구의 정신건강센터나 복지센터에서 가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