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의 꿈♠(2)
<2008-08-12>
돌이켜보면 1960년대와 70년대에 근대화에 몸살 나게
열정을 받쳤던 것은 ‘역사의 조바심’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남들이 뛰어갈 때 세상모르고 잠자던 뒤늦은 역사에 비로소 눈을 떴고,
아득히 앞서가는 나라들, 행복하게 잘사는 나라들을 따라가자면
그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근대화의 심장’에 불을 당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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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굴욕이고, 가난에는 인권도 없고, 가난하면 국가도 없어진다는
역사의 아픔이 골수에 사무쳤기 때문에 ‘잘살아 보세’를 외쳤고,
‘하면 된다’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부추기면서 ‘빨리빨리’
가자고 지도자는 다그쳤다.
1960년 후반, 이웃 나라 중국 대륙에 고속도로가
한 뼘도 없을 때 산지가 7할인 이 작은 나라에 가당치도 않다는
고속도로를 닦으면서 대통령 박정희는 자동차를 만들자고 했다.
실가는 데 바늘 가듯이 자동차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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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자동차 생산계획 발표에 업계는 놀랐고,
교수와 지식층에선 후진국이 무슨 자동차냐고 반대했다.
대통령은 한술 더 떠 ‘1가구 1승용차’의 미래를 예고했지만
그 말을 곧이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들도 자가용을 마련하기가 수월치 않았던
그 시절에 국내에서 자동차를 개발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한집에 자가용 한대씩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대통령은 고속도로 건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현대건설 정주영에게 던져둔 말이 있다. “당신이 길을 열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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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1978년 11월 24일 40년 전 교편을 잡았던
문경국민학교를 찾아가 옛 제자들과 손을 잡고
교정을 거닐며 정담을 나누었다. ⓒ 국가기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