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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화엄사 명상의 길을 다녀오다/ 홍성미
인생을 살다보면 때론 우린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낸 듯한 친근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처음 가 본 곳에서 과거의 언젠가 와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섬세함때문이었는지 어린시절 필자는 그런 경험들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느낌들을 곰곰히 생각하며 고민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정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어 갔고 그런 경험들도 세상의 시간속에 묻혀지며 서서히 엷어졌다. 서양의 심리학자들이 이러한 현상을 “데자뷔”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 철이 들었을때 알았던 것 같다.데자뷔란 프랑스어로 “이미 본”이라는 뜻이다.처음 보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일상생활을 통해 엄청난 양의 기억과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우리의 뇌가 비슷한 경험들을 같은 기억으로 판단하며 생기는 일종의 착각현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데자뷔의 느낌들은 그것이 필자의 뇌가 일으키는 착각현상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으로 남는 것 같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아마도 필자 또한 여러 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 영겁의 세월을 살아왔을 필자에게 이번 생에 만나는 모든 인연들과 경험들, 그리고 마치 옛 집에 다시 돌아 온 듯한 데자뷔의 만남들은 필자라는 커다란 그림을 완성시겨주는 또 하나의 소중한 퍼즐피스이기 때문이다. “명상의 길” 취재를 위해 찾았던 화엄사 역시 필자에게는 그런 소중한 곳이었다. 취재일정이 잡히고 화엄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필자의 눈 앞에는 수 많은 연꽃들이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건 따뜻한 편안함이었고 그날 이후 필자는 마치 봄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의 설레이는 마음처럼 취재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화엄사는 야외 미술관
맨해튼에서 차로 약 3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화엄사는 필라델피아 위치하고 있다.예전에는 미주 최대의 한인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필라데피아 시내에는 아직도 한국 간판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필라델피아 시내를 지나 약 20 여분을 더 들어가자 길도 제법 넓고 한적해 보이는 조용한 주택가가 나왔다. 6월의 청명한 햇살 탓일까? 정성스럽게 지어진 듯 보이는 필라델피아의 오래된 석조 주택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그 멋이 더욱 돋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주문 역활을 하는 화엄사의 단정한 입구 푯말이 보였다. 여기서부터가 사원 경내인 것이다.미국내 위치한 대부분의 한국사찰들이 그러하듯이 화엄사 또한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절이었다. 차가 입구를 들어서자 잘 정돈된 화단 오른쪽으로 작은 목조탑이 보였다. 전문가의 세련됨보다는 만든이의 진솔한 손질이 느껴지는 그래서 더욱 다정한 모습의 목조탑이었다. 차에서 내린 필자의 눈을 제일 먼저 사로 잡은 건 바로 경내 이곳 저곳에 걸려 있는 붓글씨들이었다. 한지에 먹으로 쓴 듯 흰색으로 칠해진 기다란 나무판 위에 검정색으로 쓰여져 있는 선이 굵고 힘찬 글씨들은 마치 자석처럼 필자의 발걸음을 끌어 당겼다. “천겁 지나서도 옛 아니요” “만년 뒤도 바로 지금 일세”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쓰여져 있기 때문인지 그 의미가 쉽고 가깝게 필자의 마음에 전달되는 듯 했다. 해인사 일주문 기둥에 한문으로 쓰여져 있는 주련의 내용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로 옮겨 놓으셨다는 주지 스님의 설명을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화엄사 경내에는 돌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한국의 강 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듯한 동글 납작한 모양의 돌맹이들을 자유롭게(?) 쌓아 만든 듯 보이는 돌탑은 오랜 세월을 통해 깎이고 다듬어진 한국의 산봉우리나 능선처럼 완만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모여 있었다.그 위에 마치 작은 안테나처럼 돌을 쌓아 만든 끝이 뾰족한 조형물이 돌탑의 상단 부분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탑 하단부의 풍만함과 균형을 이루며 필자가 보았던 그 어떤 탑보다 독특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돌탑 오른쪽에는 조금은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커다한 돌덩이를 중심으로 좌우 균형을 이루며 걸려 있는 또 다른 서예 작품들이 있었다. 돌이 보여주는 원시적 아름다움과 인간의 미학이 담겨져 있는 서예작품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그 배치는 세련되고 안정되어 보였다. 한자로 적혀 있던 그 붓글씨의 내용이 육조단경에 나오는 5조 홍인의 두 제자였던 신수와 혜능의 계송이라는 것을 후에 한 법사님의 설명으로 알 수 있었다. 깨달음의 과정에 있어서 신수대사가 주장했던 돈오점수와 육조 혜눙의 돈오돈수라는 견해 차이는 어쩌면 아직도 불교학계에서 활발하게 회자되고 있는 뜨거운 논점 중에 하나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치 두개의 다른 수행법을 주장하는 듯 보이는 신수대사와 육조 대사 혜능 두 선사의 가르침은 어쩌면 같은 법을 다른 관점에서 설명했던 한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박에 참나를 깨달아도 육바라밀을 몸으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건 온전한 깨달음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육바라밀을 실천한다 해도 참나를 깨닫는 지혜가 부족하다면 그것 또한 온전한 육바라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란히 걸려있는 화엄사의 두 주련은 어쩌면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법당으로 통하는 건물 앞쪽에는 키가 큰 소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고, 입구 양쪽으로는 화단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볼 수록 경내 어느 한 곳도 그냥 방치된 곳이 없어 보이는 화엄사는 누군가의 세심한 손길이 구석구석에 묻어나고 있었다. 관심은 사랑이다. 사랑을 흠뻑 머금고 자란 아이처럼 화엄사 경내에 있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그리고 돌맹이 하나까지 필자의 눈에는 너무도 행복하고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뿜어내는 행복 에너지는 필자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듯 했다.
행복 에너지가 흐르는 곳 화엄사
법당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필자를 먼저 와 계신 신도님들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화엄사의 행복 에너지 탓일까? 모두가 유쾌하시고 행복해 보이는 분들이셨다. 건물 2층에 위치한 화엄사의 법당은 작고 아담했다. 미술을 공부한 탓인지 필자는 법당 안의 불화를 눈여겨 보는 습관이 있다. 모두가 훌룡한 작품들이지만 가만히 불화앞에 서 있다 보면 솜씨를 떠나서 그린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들이 만나게 되는데 화엄사의 작은 법당 안에 모셔져 있는 불화에서는 화려한듯 하면서도 조화로운 색감을 통해 세련된 아름다움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더불어 필자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본존불 오른쪽에 앉아 계신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었다.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인정 받고 있는 한국인의 미학이 잘 표현된 뛰어난 예술품이며 보물이다.필자가 많은 사찰을 다니진 않았지만 반가사유상을 법당 안에서 만난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도대체 이러한 미학적 안복을 갖고 계신 분은 누구실까? 마치 야외 미술관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던 화엄사 경내를 카메라에 담으며 품었던 필자의 궁금증은 법당 안에서도 더욱 커져만 갔다. 법당 내부의 한 쪽에는 화엄사의 뒤 뜰로 향하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을 열자 눈부신 햇살과 함께 잘 정돈된 화엄사의 정원이 법당 안으로 한가득 들어왔다. 간간히 불어오는 6월의 온화한 바람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 법당 천정에 조용히 걸려있는 색색의 연꽃등을 살랑살랑 흔들며 무슨 말을 걸어 오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경내 어디선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풍경소리와 함께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어우러 졌다.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 없는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잠시 말을 잊고 서 있던 필자에게 법회시간을 기다리시던 한 보살님께서 화엄사에 대한 이런 저런 말씀을 들려 주셨다. 법당 안의 크고 작은 가구들을 스님께서 직접 만드셨다는 이야기며, 신도들을 위해 서예수업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스님 이야기, 스님께 직접 배우는 전통차 만드는 수업이야기등 화엄사 어느 한 곳도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이다. 환한 얼굴로 아이처럼 신나게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보살님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화엄사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시는 그 분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필자 또한 그 보살님의 신바람에 전염이 된 듯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바로 그때. 챙이 넓은 모자를 쓰신 한 분이 법당 안으로 들어 오셨다. 언듯 보아도 햇볕아래서 오랜 시간 일을 하다 오신 듯한 모습이셨다. 화엄사 주지스님이신 법장스님이셨다. 오늘도 경내 어디선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하루를 보내시다 법회 시간에 맞춰서 들어 오신 것이다. 스님의 법문은 명확하고 간결했다. 이번 주는 어떤 말씀을 해 주시실지 항상 기다리게 된다는 어느 신도님의 말씀처럼 어쩌면 간결하고 상식적인 스님의 법문은 그레서 더욱 자명하게 화엄사 신도들에게 전해지도 모르겠다.
공부하는 절 화엄사
필자가 만난 화엄사는 공부하는 절이었다. 앞서 한 신도님의 말씀을 빌려 언급했던 것처럼 화엄사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경전공부는 물론이고 주역과 같은 동양고전까지 섬렵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폭넓은 공부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요 법회 후에는 서예수업을 통해 신도들은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솔잎차등 경내의 차나무를 이용해 배우는 전통차 수업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며 몸과 정신을 맑게 하는 수행을 함께 하고 계셨다. 놀라운것은 이 모든 수업을 주지스님께서 직접 가르치고 계신다는 것이었다.“우리 스님은 도대체 언제 주무시는지 모르겠어요”라는 한 신도분의 말씀처럼 법장 스님께서는 많은 일들을 계획하시고 또 주관하시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서예와 묵화로 이미5번의 개인전 경력을 가지고 계신 스님은 뉴욕 불교 TV에서 120회의 서예 강의를 하셨다고 한다. 또한 지난 4~5년동안 중앙일보와 한국일보에 칼럼을 쓰고 계신다는 스님은 이미 두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수필집을 출간한 작가이시기도 했다. 지금도 한 권의 시집을 낼 만큼의 시와 한 권의 수필집을 낼 만큼의 글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스님은 책의 표지와 삽화도 직접 그리신다고 하셨다. 더불어 화엄사의 잔디 깍는 일 조차 단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스님은 흙에서 손이 한시도 떠나지 않는 그런 분이기도 하셨다. 또한 매달 화엄사의 행사를 알리는 달력을 직접 만드시고 각 신도들에게 우편으로 보내고 계신다는 스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보니,스님은 도대체 언제 주무시는지 모르겠다던 그 신도분의 말씀처럼 이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스님의 시간관리법이 필자는 몹시 궁금해졌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글을 쓰는 일이건 혹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작업을 하고 또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일상의 규칙속에서 자신의 창조적인 영감을 키우는 것이다.반면 어떤 예술가들은 뮤즈의 속삭임처럼 어떤 영감이 떠올랐을때 혹은 들렸을때 그것을 쏟아낸다고 한다. 필자가 느낀 법장 스님의 시간 관리법은 몰입과 집중력이었다. 화엄사 경내를 돌보는 일이나,원고를 쓰시는 일, 화엄사에 관련된 업무를 보는 일들은 스님에게는 각기 다른 세 가지의 일이 아닌 마치 하나의 일처럼 마디가 없이 매끄럽게 이어진다고 하셨다. 그리고 전등의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듯 하나의 몰입은 곧장 또 다른 몰입으로 이어 지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24시간이 한결같은 몰입의 상태이신 것이다. 어떤 비법(?)이 있는 건 아니신지 한 수 배워 보고 싶은 마음에 여쭈었던 필자는 오랜 세월 수행과 정진을 통해 자연스럽게 채득되신 듯 보이는 스님의 역량에 그저 “아~” “네~”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끊임없이 공부하시고 정진하시는 주지 스님처럼 화엄사의 신도들 또한 배움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마음 속 반야의 거울을 책과 다양한 수행을 통해 열심히 닦고 계셨고 이렇듯 필자가 만난 화엄사는 행복 에너지가 충만한 공부하는 절이었다.
화엄사 명상의 길
화엄사에는 명상의 길이 있다. 이번 취재의 목적지이기도 한 화엄사 명상의 길은 지난 일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지 스님의 정성과 노력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법회가 끝난 후 점심 공양을 마친 화엄사의 신도들은 화엄사 경내에 마련된 이 명상에 길을 함께 걸으며 걷기 명상 시간을 가졌다. 걸으면서 명상을 하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걷기 명상은 어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걷는 것을 즐기는 일이기 때문이다.우리는 항상 걷지만 그 걸음은 마치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빠르고 마음은 언제나 현재를 떠나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명상은 이러한 번뇌의 산물인 생각 그 자체를 내려 놓는 수행법으로 의식의 집중과 깨어있음을 통해 마음의 실체를 찾아가는 것이다. 걷기 명상 또한 자신의 호흡과 발걸음에 집중하며 수행하는 수련법이다.하지만 걷기 명상에는 몇 가지의 다른 수행법이 있는 듯 했다. 보통 때보다 천천히 걸으면서 호흡과 걷기에 집중하는 마음챙김 수행법이 있는가 하면, 보통 때보다 빠른 걸음을 통한 수행법도 있다고 한다. 화엄사의 걷기 명상은 어디에도 구애됨이 없는 보통 걸음을 걷는 것을 그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호흡의 길이도 걸음 걸이의 속도도 수행자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데 그 중점을 두고 있는 듯 헸다. 스님을 선두로 신도들이 한 줄로 줄을 섰다. 숲속에 들어 온 듯 키가 큰 소나무들이 명상의 길 입구에 일렬로 들어서 있었고, 그 나무들에는 낯익은 스님의 붓글씨가 마치 수행자들의 마음의 길을 인도 하듯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돌을 이용해 바닥에 그려 놓은 항마의 역활을 한다는 금강저, 불, 법, 승 삼법인을 상징하는 돌로 만든 세 개의 동그라미, 팔정도를 상징하는 8개의 등불,스님께서 디자인하시고 직접 만드신 명상의 길은 신도들의 수행을 돕고자 하는 스님의 염원이 담긴 다양한 의미의 조각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화엄사 명상의 길은 걷기 명상을 위한 수행의 공간이면서 또 하나의 작은 명상 조각 공원이었다.
한 20여분 남짓 걷기 명상을 걷다보니 명상의 길 끝자락에 나무로 만든 벤치와 탁자가 나왔다. 나무가 만들어 주는 시원한 그늘 아래서 신도들과 스님은 담소를 나누며 즉석에서 야외 법회의 시간이 열렸다. 탁 트인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인지 아니면 걷기 명상을 통한 알아차림의 맑은 에너지때문인지 동그랗게 둘러 앉아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고 받는 스님과 신도들의 모습에서 잔잔한 행복이 흐르고 있었다.
황금의 땅으로 거듭 태어난 화엄사
법당 안과 법당 밖의 구분이 없이 경내 전체가 모두 수행의 공간이라는 스님의 소신처럼 화엄사는 절 전체가 법당이었다. 그리고 18년전 건물 하나 밖에 없었던 화엄사의 황무지터는 18년이 지난 오늘 황금의 땅으로 거듭 태어나 있었다. 건강한 땅에서 자란 나무가 좋은 결실을 맺듯 건강하고 행복한 기운이 흐르는 화엄사 도량에서 공부하는 신도들의 모습이 모두 활기차고 행복해 보이는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 인지도 모르겠다.그런 좋은 기운을 받아서 였을까? 필자는 왕복 6시간의 취재길에서도 피곤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고 명상 수련을 방금 마친 듯 도로는 한적했다. 이렇듯 필자의 취재길은 순풍에 돛을 단 듯 매끄럽게 그 시작부터 끝까지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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