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한결같다', '변함없다'...
어찌 들으면 발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난 이 말이 좋다.
겉과 속이 같고, 글과 말과 행동이 같고, 남자와 여자를 대함이 같고,
첫인상과 알면서의 느낌이 같은 그런 사람...
나 스스로 그러고자 노력하지만, 남에게 비친 내 모습은 어떠할지 나도 알지 못한다.
2004.2.1.(일) 시산제 겸 첫 산행이다.
솔직히 두렵다. 낯선 사람들과의 낯선 동행이 조금은 어색하다.
와룡산은 나와 인연이 있는 산인가?
작년 봄, 직장 선배를 따라 와룡산에 갔었다.
작년부터 등산을 하고 싶어 따라 나섰다가, 그 첫 산행 이후 엄두도 못 내고,
경주 남산의 몇 군데를 도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때도 그 산악회의 시산제였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6:50 기상, 좀 늦은 듯하다. 허겁지겁 씻고 챙기고, 그래도 밥은 먹는다.
나중에 아침 든든히 먹길 잘했다 생각했다. 앞으로도 그래야지.
집앞 24시 김밥집에서 김밥 두 줄을 사고, 택시 타고 출발.
난 택시를 타면 겁(?)도 없이 운전사 아저씨와 곧잘 얘기를 나눈다.
경제 돌아가는 얘기, 취미생활 등등...
아저씨는 이내 관심을 보인다. 어디 가냐고...
그러다가 절 이야기가 나오고, '명상' 이야기를 하다가 딱 걸렸다.
아저씨의 관심사가 명상이기에.
내가 "마음 속에서 자꾸 일어나는 걸 누르기가 힘들어요."라고 했더니,
아저씨 왈, "자기를 들여다 보는 것은 물을 들여다 보는 것과 같아요.
물이 많이 출렁거리면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물이 잔잔해지면 자기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요.".
그 후론 불교 얘기로 너무 깊이 빠져버려 생략~
15분간의 짧은 대화. 3,400원으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7:45 동래역 도착.
첫 만남인데 시간을 어길 순 없어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우씨~
뻘쭘~어색~민망~~~
나도 한 유머, 한 명랑, 한 깜찍...ㅋㅋ 하는데, 여긴 아직 내 구역이 아닌가 보다.
다들 복장이 장난이 아닌걸? 갑자기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ㅠ.ㅠ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조만간 등산장비, 복장, 풀~~~세트로 장만해야지.
조신하게 인사를 나누고 차에 탔다.
8:30 너무 오래 기다렸다. 택시비 아깝다. 내 돈 돌리도~~~
하긴, 처음 온 주제에 뭐라 할 말이 있으랴?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야지.
그래도 여긴 참 인심이 좋은가 보다. 다 기다려 주네...
9:15 마산 도착. 어제 벙개 한다고 하더니 다들 상태가...ㅎㅎㅎ
부끄러버서 안 보는 척하면서, 부산 회원들, 마산 회원들 힐끔힐끔 보며
책 읽고 있었는데, 내 옆에 왠 아저씨(?)가 앉는다. 책을 들고.
누군지 대충 알겠다. 남악도사님.
10:00 남강 휴게소. 나와 참 인연이 많은 곳이다.
2년 정도 정말 열심히 싸돌아 다닐 때마다 들른 휴게소이니...
약기운이 떨어진 듯하여 길표 커피를 한잔 때린다.
11:05 드디어 와룡산 입구 도착!
40 여 명 가까이 되는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출동~
선두 대열에 끼였다. 어차피 가다 보면 맨 뒤로 처질테니,
일단은 앞으로 가는 게 유리하다.
나보다 연상인 언냐도 있고, 동갑내기 친구도 있어 다행이고 반가웠다.
처음엔 오손도손, 아주 가비얍게~잘 올라갔는데...
점점 몸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온 몸에 땀이 줄줄 흐르고, 발엔 돌덩이를 매단 것 같다.
그래, 나이가 들면 보약을 먹어야 해. 이게 다 몸이 허해서여...ㅋㅋ
어느새 나 혼자 남았다.
처음엔 낑낑대며 뒤처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올라갔다.
근데,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세상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바로 내 몸뚱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쉽지 않군.
먼저 가라고 양보를 하다보니 어느새 맨 뒤로 처졌다.
그래도 몇몇 분들이 뒤에 있어 안심이 되었다.
난 이 산행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땀흘리고,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버리고, 나를 들여다 보자...
12:00 휴식.
2:00 민재봉 도착. 아~~!!! 나도 해냈구나.
2:20 갈림길 도착. 약간의 혼란은 있었지만, 잘 찾아 수정동굴로 향했다.
2:40 수정동굴 도착. 미리 도착한 운영진들이 시산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감탄에 감탄. 어찌 저리 알뜰히도 준비를 했는지...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아마도 길을 잃었나 보다.
시산제를 하고, 점심을 먹고, 음주~~~.
배 부르니 아무 생각이 없다. 그래도 날이 어두워지는데, 슬슬 집에 갈 일이 걱정이다.
4:40 하산 시작. 올라갈 때보다는 훨씬 수월했으나, 쉽지만은 않다.
땀이 식으며 몸이 싸늘해진다.
5:40 도암재. 아까의 그 갈림길이군.
어느새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어디선가 나무 태우는 냄새가 난다. 이건 분명 저녁 밥 짓는 냄새다.
난 이 순간, 이 냄새, 이 분위기를 좋아한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코끝을 스치는 향긋한 냄새와,
노을과 별, 초저녁 달이 어우러진 저녁 어스름의 분위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생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 곳에 나를 반겨줄, 아니, 나와 함께 돌아갈 따뜻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6:30 원점 도착. 어느새 캄캄하다.
무려 2시간 반이 늦어버려 운전사 아저씨가 짜증내진 않을지 걱정이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다. 자야겠다...
버리러 간 산.
그 산은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봄의 따뜻함이나 신록의 푸르름은 없었지만,
겨울의 황량함이 가득했지만,
태풍 매미의 영향인 듯 상처자욱도 있었지만,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먼지 폴폴 날리는 흙이 내 얼굴을 간지럽히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덩이가 내 발목을 아프게도 했지만,
때론 폭신한 땅의 느낌, 차갑지만 도시와는 다른 신선한 공기,
눈이라도 올 듯 잔뜩 찌푸린 하늘마저도 내겐 축복이었다.
첫댓글 아주 멋진 산행기에 탄복할 따름...^^
누나 산행기 기다린만큼 역시 대단해유~~~~~~ 담산행때도 자주자주 뵜으면 좋겠네요 항상 행복한 날만 가득하길....^^
긴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담 산행지에서 밝은 모습으로 보죠...
언니 잘 읽었어여...^^ 근데 남악도사님이라.. ㅋㅋㅋ 남악선사님 보고 놀라시겠따~~ *^^*
언니, 산행기 끝~내줘요. 잘 읽었습니다~~~.
첫 산행이었는데 다린 괜찮나? 후긴 정말 재밌게 잘 읽었다. 그리고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구입하는 그 장비 기대하고 있으께 ㅎㅎ 다음에도 꼭 함께하자!!
ㅎㅎ 남악도사?? ㅋㅋㅋ 나쁘지 않네 뭐!! 그래더..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 이 구절 생각나세요?? ㅎㅎㅎ ^^
또 한명의 친구를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바이올렛님...^^*
사람은 아는만큼 느끼며, 느낀만큼 보인다던데....또 다른 널 느끼고 보이게 하는 후기가 아닌가 싶다....^^ 칭구..만나서 반가웠다....*^.^*
언냐 ...산행기 짱짱짱 이에요 남악도사 ㅋㅋㅋㅋㅋㅋ.
누나!! 첨 산행이라서 많이 어색하셨죠? 담엔 많은 얘기 나눠요. 날마다 좋은날 되세요^^
넘 멋진후기~!! 이제서야 봤네요.. 언니 앞으로 자주 뵈어요.. 산에서~
언니..만나서 반가웠구요..후기잼있게 읽었어요..그때도 한깜찍,발랄하던데요..술도 짱이고^^
지구야님! 언제 저에 대해 파악을~들켰다..국가 기밀인데...만나서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