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해들은 상기아니 일었나냐. 재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이는 약천 남구만(1629-1711)의 작품이다. 소시적 국민학생 때 교과서에서 배운 것 같고,
워낙에나 유명한 시조여서 노래로도 만들어져 불리우는 명작인데...
`동창이...`에서 `이..`를 길게 뽑으며 부르는 노래...
그런데, 이 시조의 배경이 동해 망상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다.
남구만(南九萬)은 조선 숙종 때 사람으로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그는 송준길(宋浚吉)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그는 조선조 학문과 정계의 거봉이었다.
나이 28세에 별시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의 벼슬을 시작으로, 대사간(大司諫), 승지(承旨)를 거쳐 안변부사(安邊府使), 전라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가되어 유학(儒學)을 진흥시키고 변방수비를 다졌으며, 대사성, 형조판서, 대제학, 한성부좌윤을 역임하였고,
마침내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는데, 당시 소론의 영수였던 그는 당파싸움에 휘말려 영동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 때가 1689년의 일로, 환갑을 맞이하던 해였다.
그는 망상동 심곡마을에 유배되어 2년정도 머무르는 기간 중에 전원의 목가적 정서를 수없이 시로 읊었는데,
그 중에서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 는 대표적인 시조이다.
그는 1690년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고 올라갔다. 그의 사후에 심곡에는 `藥泉祠`를 세워 제사지냈는데 후일 `魯谷書院`으로 이어졌고, 1855년 강릉 신석동으로 이전하여 `申石書院`이라 하였다.
동해고속도로 `동해휴게소(망상)`에는 그의 시조비가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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