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
모슬포에서 한 시간 가까이 갔다. 보이는 섬이 꽤 멀다. 언덕을 올라 남향으로 기운 비스듬한 길을 타박타박 걸어갔다. 작은 솔밭이 높은 곳으로 듬성듬성 났지만 바람이 세어선가 잔디 같은 갈잎을 디디며 갔다. 덩그런 높은 섬이다. 바다가 저 아래 내려다뵌다. 휑한 남녘은 검푸르다 못해 까맣다. 까치놀이 연거푸 일어나 달려온다.
모자가 날아갈까 벗어 움켜쥐었다. 수십 년 전 온 기억이 난다. 그땐 몇 채 집이 보였고 길도 제대로 없어 되나마나 걸었는데 이번엔 잘해 놨다. 보도를 한 바퀴 걸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냥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덧칠하지 않고 한 뼘 정사각형 화산 돌을 촘촘히 깔아 차도처럼 깍듯이 길을 냈다.
낮은 곳곳에 웅덩이를 만들어 물을 고이게 했다. 식수나 개숫물로 쓰는 모양이다. 집집이 밥을 짓지 않고 자장면을 요기로 파는 것 같다. 온통 짜장면에다 해물탕이라고 적혔다. 동남쪽은 허허로운 바다고 서남쪽은 가파도와 몇 개 섬이 보인다. 동쪽 끄트머리쯤 최남단이라는 푯말이 서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가장 남쪽 지점이라는 곳이다. 어루만져 보고 앉아 사진도 찍었다.
도립공원에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이다. 옷 속을 찬 바람이 막 파고든다. 걷기 싫어서 되돌아갈까 하다가 하는 수 없이 일행을 따라갔다. 하얀 큼직한 등대를 지나니 북쪽이 보인다. 저 건넛마을 서귀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진시황의 동남동녀가 불로초를 찾지 못하자 서쪽으로 돌아갔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해방 후 신병훈련소가 어디쯤 있었다는데 어찌 여기일까. 배로 오가면서 멀미는 얼마나 했겠나 싶다.
일본으로 가려다 풍랑으로 파선되면서 겨우 이곳에 닿아 목숨을 건진 네덜란드 하멜이 생각난다. 서울로 압송되고 다시 전남 강진으로 귀양 가서 농사짓다가 탈출해 순천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수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 표류기를 지었으니 한 많은 삶이었다. 젊음도 결혼도 다 흘러갔다. 서둘러 보내지 않고 왜 그 고생을 시켰을까 미안한 일이다. 그들이 눌러앉은 곳에 기념관이 세워져 찾았는데, 머슴살이 허드렛일, 시장 골목 장사치를 하면서 힘겹게 지냈다.
펀펀하게 늘어선 한라산이 보인다. 우뚝 선 게 아니라 펑퍼짐하고 좌우 길쭉하다. 가운데가 젖꼭지처럼 볼록 솟았다. 눈 쌓인 목덜미엔 흰 구름이 뭉게뭉게 칭칭 감돈다. 그 구름이 바람에 날리지 않고 머물면서 새끼를 자꾸 쳐 줄줄이 바다로 내려보낸다.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곳에 와 있다.
귀양지다.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 와서 눈 덮인 초가와 일그러진 고목 소나무가 선 세한도를 그렸다. 소현세자 비와 그 자녀가 인조의 미움을 사 이곳으로 내쳤다. 겨우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3천 리 밖으로 쫓겨나야 하는데 그 적소가 바로 제주이다. 죄인들은 목사가 지정하는 구석진 외딴곳에 주저앉아야 했다.
스스로 움막을 치고 살아가야 한다. 수시로 관아의 엄한 감시를 받으면서 목숨을 이어간다. 무더운 여름과 모진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굶주리다가 대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가묘를 썼다가 그 가족이 거두어 고향으로 모신다. 궁중 관리나 예인은 주위 젊은이가 찾아와 학문과 예술을 배우면서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가끔 풀려나기도 한다. 송시열도 돌아가다가 전라도에서 숨을 거뒀다.
태풍 길목이어서 내내 얻어맞아야 한다. 화산섬으로 물이 고이지 않아 벼농사가 어렵다. 밀과 보리, 감자 등 거친 잡곡과 산나물로 살아야 한다. 비도 자주 내리고 풍랑이 일어 바닷일도 어렵다. 그러자니 여자가 많은 섬이다. 자주 기근이 들어 허덕일 때가 있다. 뱃길이 멀어 내륙에서도 도움 주는 게 쉽지 않다.
조선 말엽 대기근으로 삶이 형편없을 때 김만덕이 솥을 걸고 죽을 쑤어 도민을 살려낸 일이 있다. 기생으로 모은 재산을 모두 풀어 목포에서 쌀을 실어와 도왔다. 먼 곳 사람에게는 빌려주는 형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줬다. 그게 여러 해 이어지자 임금이 그녀를 불러 치하하고, 금강산을 유람시켜 위로했다니 참 아름다운 나라다.
제헌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두 선거구를 불사르고 경찰서를 습격했다. 계엄을 선포하고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저 한라산 중산간 곳곳에 숨어든 제주도민은 죽음을 무릅쓴 채 숨기에만 급급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휘말려 들었다. 토벌 군경이 지나간 동굴에는 감자 몇 톨이 남아있었다.
‘지슬’ 영화가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전국으로 흩어졌어도 샅샅이 찾아내 재판에 넘겼다. 가는 곳마다 걸려 엎어지고 진 늪에 빠진다. 거미줄이요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했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4.3사건은 제주도민의 커다란 아픔이다. 한라산 토벌을 명받은 여수 연대는 반란을 일으켜 주위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여순사건으로 이어졌다. 군경에 밀리면서 함양, 산청 산속으로 숨어들어 10년 넘게 저항한 수만 명의 빨치산이다. 한라산이 그렁저렁 말하고 지리산이 통곡한다.
이제 살만하다. 전남도에서 제주도로 바뀌고 이어 제주특별자치도로 승격했다. 감귤을 키워 전국으로 나르고 해산물 상품이 인기를 끈다. 거기다 국내 관광객이 늘어나며 비자 간소화로 외국인 출입도 잦다. 해운대를 찾던 신혼여행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전국 10여 개 공항이 연결되어 내리고 뜨는 게 줄을 이었다.
억척같이 살아온 사람들이다. 뽕나무와 참나무를 토막 내어 매달아 상황을 키워 가루로 만들고 말뼈와 굼벵이를 분말 상품으로 팔고 있다. 귤을 쫀득쫀득한 젤리와 초콜릿 과자로 맛나게 포장했다. 무엇이든 허풍을 떨며 살아보려 애쓰는 그들에게서 몇 가지를 샀다. 인천에서 온 사람은 안고지고 수백만 원어치를 담았다.
점점 아열대로 바뀐다. 귤도 내륙으로 올라간다. 망고와 화장품 원료인 동백나무를 심어야 한다. 생산 시설이 없어 일자리가 부족한 섬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고등어 정식과 미역국을 맛나게 들었다. 관광객 백화점과 농산물 가게에서 이것저것 살폈다. 비싸게 먹고 사주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허덕였던 우리 막내 제주도가 이제 잘살기를 바란다.
첫댓글 선생님 제주도를 일필휘지로
그렸습니다
현대사의 비극까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지난 여름 제주 여행에서 바람 때문에 마라도를
못 가고 겨우 가파도를 다녀 올 수 있었어요
수고 하셨습니다
바람이 세면 모슬포에서 배가 안 뜬답니다.
최 남단 섬을 잘 보고 왔습니다.
고등어 구이가 2만 원으로 모든 게 비쌉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