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선생님께
먼저 죄송합니다.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오늘 후보 단일화를 이루는 것을 보면서 또 많이 배웠습니다.
마음이 힘이 드셨을 텐데 아침 일찍 제게 전화를 주셨지요.
“미안하다”고....
그리고 “나야 선거를 해 나가야 하는 짐을 벗었지만 이 총리는 단일화까지 했으니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얼마나 무겁겠느냐. 전국을 돌면서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더 열심히 돕겠다 ” 라고 말씀하셨지요. 나보다 상대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이미 습관이 되어있는 선생님의 인품에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사실 후보 단일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실현 가능성을 반신반의 했습니다. 자기를 버려야 하는 일인데 그게 쉬울까? 결국 제주, 울산, 강원, 충북 개표를 보고 나서야 현실을 바탕으로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 선생님께서 “정치가 아름다워야 한다. 상식에 기초해야 한다. 4곳을 개표하고 난후 단일화를 이루면 아름다움이 없다. 감동이 있어야 한다. 15일전에 단일화를 이루겠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그 뜻을 다 헤아리지를 못했었는데 ... 죄송합니다.
세 분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기로 했는데 두 분만이 합의를 하였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정치라는 게 참 무상한 것이구나라는 느낌 역시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오후 단일화를 선언한 춘천은 5년전 노후보께서 이인제를 7표로 이긴 그 장소였습니다. 우는 지지자들을 일일이 껴안고 남편되시는 박성준선생님과 포옹을 하고, 박선생님은 짝짝이를 손에 들고 지지자들과 함께 [행복한 한명숙, 사랑해요 한명숙]을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이익 앞에서 졸렬해지기 쉬운 현실 정치판의, 정치인 그들만의 복잡한 계산방식을 조롱하듯 상식을 강조한 간단명료한 선생님의 결단은 제게 정치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오늘같은 모습을 만들 수 있기에 역사가 있어왔고, 믿음이라는 가치가 살아 숨쉰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인간에게 신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어느 당의 후보처럼 수십년간 월급을 받으면서 막대한 재산을 모은 사람이 정작 그 회사의 회장이 대선에 출마하자 그 회장을 버리고 다른 당에 가서 전국구 국회의원을 하는 개탄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는 정치판 , 그리고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
모두 상식을 벗어난 일들입니다.
“예측 불가능할 때 양보하는 것, 그것이 한명숙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야 신의가 생긴다”
라는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시기가 생각납니다.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합의하고 최종 결과가 나오는 날 노 후보는 지방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오셨습니다. 언론을 피해 시내 호텔로 향했을 때 김원기 전 의장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김전의장님 ;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노 후보: 모르겠습니다.
김전의장님: 이겼을 때, 졌을 때 각기 상황에 맞는 멘트는 준비하셨습니까?
노 후보: 아니요. 지면 승복 한다 최선을 다해돕겠다 라는 말 밖에 준비 안했습니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섰는데 노 후보께서 “모든 것은 운명이다. 자야겠다” 하시며 누우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설마 이때 잠이 오실까 했는데 조금 있다 웬걸 코 까지 고시면서 주무시는 것이었습니다.
[담대함과 비움]이라는 화두를 제게 주었습니다.
다시 세월이 지나 제 머릿속도 정치판의 복잡한 셈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오늘 그때의 장면들이 연상되면서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춘천에 비도 오고 해서 돌아가시는 길이 아플까봐
비 내리는 강촌을 보면서 저녁을 대접해 드리려 했는데.....
아쉽습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어떤 인생을 살아 갈지 알 수 없으나
잊지 않고 많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한명숙 선생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거 잊지 마시고, 운동화 끈 조여매고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세요.
건강 유의하십시오. 사랑합니다.
2007년 9월 14일
이 광 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