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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정지석 제공 |
DMZ평화도보순례
국경선평화학교 ‘DMZ평화도보순례’는 남북한 분단의 철책길을 걸으며 분단 현실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평화통일의 신념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과정입니다. 민간인 통제지역 안으로 들어가면 북쪽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남방한계선 철책 너머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가 있습니다. 남북한 내국경 지역의 민간인 마을길을 주로 걸으면서 종종 민통선 지역 안으로 들어가 DMZ 철책선까지 걷는 기회도 가집니다.
DMZ 철책선에서 보면 북녁 땅 군인 초소들과 마을이 가까이 보입니다. DMZ는 단어의 뜻 그대로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비무장 상호 군사적 불가침 지역으로, 1953년 휴전협정 이래 분단의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민간인들은 잘 가지 않는 이곳을 우리는 희망을 품고 걷습니다. 남북한 평화 통일의 축제 지역이 되리라는 희망, 후손들이 평화의 소중함을 배우고 새기는 평화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지와 희망을 안고 걷습니다. ‘DMZ평화도보순례’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남북한 내국경 마을의 도보길은 한국전쟁 중 격전지였습니다. 많은 남북한 청년들의 피가 뿌려진 땅이요,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많은 외국군 청년들의 피로 물든 땅입니다. 분단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지뢰가 심어지고 군인들의 군화로 다져진 땅입니다. 군용차와 탱크, 장갑차들이 달리고 포격 훈련으로 화약 냄새가 배어든 땅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분단의 철책이 세워지고 병사들이 총을 들고 서 있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우리는 전쟁 희생자들을 기억합니다. 이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던 땅에는 이제 푸르른 초목들이 울창합니다. 전쟁을 상기하기 어려울 만큼 생명력 넘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을 걷는 동안, 어떤 이유와 목적을 위해서건 전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죄악이란 신념을 다집니다. 우리 몸과 근육 속에 평화가 새겨집니다.
국경선평화학교 피스메이커들은 3년에 걸쳐 동에서 서까지 분단의 길을 매년 나눠 걷습니다. 군사분계선의 길이는 155마일(약 250km)이지만 실제로 걷는 길은 450km입니다. 민통선 안과 밖의 길을 오르고 내리면서 걷는 길이 대략 그 정도입니다. 우리는 3년의 첫 해는 철원에서 화천까지 걷고, 두 번째 해에는 화천에서 고성까지, 세 번째 해에는 철원에서 강화도까지 걷습니다. 그리고 따로 시간을 내어 백령도까지 배를 타고 가서 걷습니다. ‘DMZ평화도보순례’ 전 과정은 이렇게 3년에 걸쳐 이뤄집니다.
여기서 올해 평화도보순례의 첫째 날 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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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순례 평화운동
평화도보순례는 몸과 마음에 유익하다. 걸으면 신체 건강에 좋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차를 타고 갈 때는 못 보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정신적인 안정에도 좋다. 평소 불면증에 시달리던 친구는 평화도보순례를 하면서 매일 깊은 잠을 잤다. 종일 걸으면서 몸이 피곤해진 탓도 있겠지만 정신적으로 안정되고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푸르른 자연 속에서 하루 내내 걷다보면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생명력이 몸 안 가득 차오르는 경험을 한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에너지이다. 마음의 평화는 평화의 주요 요소이다. 이런 체험을 하면서 나는 세상살이에 지치고 마음병이 든 청소년들과 평화도보순례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청소년 평화교육은 교실에서 현장으로, 이론에서 몸으로 하는 체험 교육으로, 지식에서 자신의 깊음과 만나는 영성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평화순례를 하면서 마음에 새겨지는 깨달음이다.
평화순례는 모순의 삶을 사는 평화운동가들에게 좋다. 평화운동의 현장은 제각각 다른 이해관계와 생각이 부딪치는 곳이다. 좋은 일만 있는 곳이 아니다. 슬프고 화나는 일도 많다. 평화운동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도 겪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도 준다. 평화를 추구하면서 평화를 잃어버리는 모순의 삶을 평화운동가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실감한다. 그러므로 평화운동가는 기도하는 순례자의 삶을 체득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평화운동가는 자기 신념을 실천하면서 다시 반성하는 선순환의 행로를 지켜갈 수 있다.
평화운동가는 종종 순례자가 되어 걷기를 바란다. 순례자가 되어 걷는 길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일상생활에서 희미해진 평화의 신념을 회복한다. 순례는 기도의 여정이다. 기도는 회복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 기도는 궁극적인 삶의 목적과의 만남이다. 기도하며 걷는 순례자의 길에서 일상은 다시 빛을 얻어 회복된다. 평화운동은 기도와 함께 가야 한다. 평화도보순례를 하면서 얻는 체험이요, 많은 평화운동가들이 고백하는 바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평화운동을 하는 힘을 찾고 있다면 평화도보순례를 시작하라.
평화는 실천으로 빛난다
평화의 행동과 실천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주 쉽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평화운동’ 하면 무언가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나 하는 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운 일로 여겨져왔습니다. 이 고정관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평화운동은 보통 사람 누구나 하는 일, 생활 속에서 안전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평화는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평화요, 세상에서 즐거운 일로 일어나는 평화입니다.
촛불시민 운동은 즐겁고 신나는 평화운동이었습니다. 촛불을 켜고, 노래하고, 박수치고, 소리지르고, 즐거웠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바라는 평화였습니다. 평화는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매를 들지 않고 말로 타이르고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면 비폭력 평화는 실천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동료의 의견을 존중하고, 잘 소통하면 직장의 평화는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들어 온 난민을 받아들이고 피난처를 제공하면 국제 평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쉽습니다. 실천할 때 쉬워집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생각 속에 평화를 가둬두지 말고 행동함으로 살아있는 평화가 되게 해야 합니다.
실천이 없는 평화는 관념이요, 이상일 뿐입니다. 머리로만 하는 평화는 변화시키는 힘이 없습니다. 손과 발로, 몸으로 움직이는 평화가 될 때 머릿속의 평화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습니다. 평화의 이상은 현실이 됩니다. 이제 평화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의 평화에서 실천의 평화로, 평화의 이상을 생활형 평화로 말입니다.
평화보도순례는 몸으로 행동하는 평화입니다. 쉽고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민간인들에게 금단의 땅이었던 DMZ 현장을 걷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빈번해지면서 남북한 평화는 실감되고 체험될 것입니다. 군사마을은 평화마을로 변화될 것입니다.
정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