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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三角山 念佛萬日會 淨土寺 원문보기 글쓴이: [應天]
명성황후 찌른 칼, 일본 신사에 보관중 |
혜문스님 日 현지서 확인 "칼 잡는 순간 살기느껴" |
신사관계자 "공개는 극히 이례적"...MBC 13일 방송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칼이 일본에서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공동의장 정념, 철안 스님) 간사 혜문 스님은 8일 “최근 명성황후 장례에 관한 기록이 있는 왕실의궤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우연히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스님에 따르면, 이 칼은 일본 후쿠오카의 ‘쿠시다’ 신사에서 보관중이다. 이 칼은 전체 길이 120㎝(3척)에, 칼날 부분이 90㎝(2척3촌) 길이이며 나무로 만든 칼집에는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라고 적혀 있다. 칼 주인이 시행 당일 작전명 '여우사냥'을 성공한 기념으로 새긴 것이라고 한다.
처음 이 사실을 발견한 혜문스님은 MBC시사매거진2580팀과 최근 일본을 방문했다.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쿠시다 신사를 찾아가자 신사 관계자는 매우 난처해 했다고 한다. 혜문스님은 "쿠시다 신사의 책임지 아베 켄노스케 궁사는 상기된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면서 "자주색 보자기에 싼 칼을 취재진에게 풀러 놓았을 때, 가슴 한쪽에 피가 울컥 쏠리는 느낌이었으며 칼이 뿜어내는 살기는 방안을 서늘하게 흥분시키고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궁사는 혜문스님에게 "이 칼은 히젠도라고 불린다. 16세기 다다요시(忠吉)라는 장인에 의해 만들어지 명검이다. 제작당시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살상용 다시말해 사람을 베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명치 41년(1908년) 토오 가츠아키라는 사람이 신사에 기증했다고만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증 당시의 정황을 기록한 문서에는 모든 것이 다 적혀있었다. 토오가 칼을 기증할 당시 궁사가 중요한 내용을 기록해 놓았다는 서류에는 '왕비를 이 칼로 베었다'고 적혀 있다. 혜문스님 일행이 이 대목을 소리내어 읽자 궁사는 별다른 반응없이 머리만 끄덕였다고 한다. 사진이 공개되면 몰고올 정치적 파장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혜문스님은 당시를 설명했다.
궁사는 혜문스님에게 "토오가 정말 명성황후를 절명시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왕비의 침실에 난입한 사람중 하나란 것은 맞다. 사건 당시 궁녀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그가 살해한 사람이 궁녀일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조선 후기사를 전공한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듣는 흥미로운 사실인데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시해 직후에 시해에 관련된 사람들이 일본으로 탈출했고, 이 당시 무기를 가져갔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당시 일본의 문화와 정서로 봤을때 신사에 보관시킨 것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혜문 스님과 함께 방일 취재를 벌인 문화방송에서 오는 13일 밤 <시사매거진2580>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한편 혜문 스님은 자세한 사진과 취재경위 등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8일 현재 각 포털 사이트에서 랭킹수위에 올라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토오 가쓰아키는 누구? 토오 가쓰아키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왕비의 침전에 난입한 세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문인 쓰노다 후사코의〈명성황후- 최후의 새벽〉에는 사건 당시 살해 용의자들의 수기와 증언들을 적어놓았다. 그중에 실린 데라사키의 편지에는 “ 나카무라 다테오, 토오 가쓰아키, 나(데라사키) 세 사람은 국왕의 제지를 무시하고 왕비의 방으로 들어갔다”고 적어놓았다. 이 책에는 “나카무라 다테오가 왕비의 침전인 곤녕합(坤寧閤)에 숨어 있던 명성황후를 발견하여 넘어뜨리고 처음 칼을 대었고, 곧 이어 달려온 토오 가쓰야키가 두 번째로 칼을 대어 절명시켰다”라는 대목도 기재되어 있다. 토오 가쓰아키는 왕비의 침전으로 최초 난입한 3사람 중 하나였고, 명성황후를 향해 이 칼을 휘둘러 절명시킨 가장 유력한 사람인 것이다. 훗날 토오 가쓰아키는 그 날의 범행을 참회하고 칼을 신사에 맡기며 “ 다시는 이 칼이 세상에 나오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다음은 혜문 스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후기 전문이다. 후기 : 조선왕조실록 환수위 (공동의장 정념, 철안 스님)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의 반환을 위해 2006년 3월 불교계, 정치권, 시민단체 등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환수위는 도쿄대와 3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실록반환운동에 성공했습니다. 나아가 실록의 유출과정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본 궁내청이 ‘명성황후국장도감’등의 왕실의궤를 약탈해간 사실을 확인, 의궤의 반환운동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후쿠오카 방문은 환수위 간사인 혜문스님과 MBC 2580팀이 함께 ‘명성황후 시해사건’ 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칼의 행방을 찾게 되어 취재 할 수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는 8월 13일 일요일 오후 10시 35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