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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개요
- 언 제 : 2020. 11. 11(수) / 제677차
- 누 가 : '계룡'수요산악회원 30명 / 30,000원
- 어 디 : 강천산(584m) / 전북 순창군 팔덕면 소재
- 날 씨 : 맑음
- 산행거리 : 약 10km / 산행시간 : 약 4시간 30분
- 산행코스 : 산성주차장 – 금성산성 – 비룡/강천계곡 – 강천주차장
* 순창고추장마을
산행정보
금성산성(金城山城, 전북기념물 52호)
전북(순창군 팔덕면)과 전남(담양군 금성면)의 도계(道界)엔 산성산(山城山, 603m)을 위시한 많은
산괴(山塊)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그 지봉(支峰)들을 연이어 쌓은 산성이 '금성(金城)'입니다.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안으나 외성 6.486m, 내성 859m에 달하는 석성으로 주위여건 및 고적증거로 보아
삼한시대로 추정한답니다.
조선 태종 9년(1409년) 개축에 이어, 임진왜란 후인 광해군 2년(1610년)에 내성을 구축했습니다.
조선 말기까지 중요 진영이었으나 방치되다가 효종 4년(1653년)에 성첩중수(城堞重修)와 함께 관아와
군사시설은 물론 곡식 16,000섬이 들어갈 수 있는 창고까지 지었습니다.
절벽으로 요새화되어 동서남북 4개 대문 외에는 통행이 불가합니다.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도 치열한 싸움터였습니다.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강천산(剛泉山, 583.7m)
순창읍에서 10km 정도 떨어져있는 강천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도처에 솟은 기봉(奇峯)과
바위들이 많은데요, 그렇기에 계곡과 폭포 등 울창한 숲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유서 깊은 강천사를 비롯하여 삼인대와 '금성'산성 등 문화유적이 도처에 많습니다.
특히 단풍이 아름다워 가을만 되면 유산객들에겐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1981년에 국내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산행후기(여정)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일
11월 11일 -.
'빼빼로'데이로 알고 있지만, '농업인의 날'이자 '보행자의 날'입니다.
또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요, 영연방 현충일이자, 미국 제대군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Turn T0ward Busan)'이 부산에서 있는데, 법정기념일로 정한 우리나라는
자부와 명예[Pride & Honor]라는 주제로 기념행사도 갖습니다.
11시에 1분간 묵념해야 합니다.
글구 신사도정신[Gentlemanship]을 지향하는 '해군의 생일'이기도 한데요, 초대 참모총장인 '손원일'제독이
신사(紳士)의 선비 '사(士)'자를 파자하여 11월[十一] 11일[十一]을 해군창설기념일로 정했습니다.
가을이 떠날 채비로 바쁘지만. 왠지 기분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날입니다. ㅎ
가을에 가고 싶은 산중 하나가 '강천산(剛泉山)'입니다.
워낙 유명하기에 안 가본 사람이 없겠지만, 해마다 이때쯤이면 또 생각납니다. ㅎ
역병보다 무서운(^^) 마누라 눈치 살피다가 보따리 챙깁니다.
열심히 달리는 가마는 아름다운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도 무심하게 스치듯 지나칩니다.
산허리 타고 하얗게 드러낸 '금성'산성이 얼른 오라고 손짓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자주 찾았던 강천산행이라 행여 지루해 할까봐 '금성'산성부터 시작하는데요, 해서 오늘은 전라남도에서
전라북도까지 넘나들 작정입니다.
가을 타는 산우(山友)들이 우수수 낙엽 구르듯 몰려들었습니다.
진정 자연을 관조(觀照)하며, 삶을 영위할 줄 아는 프로들입니다. (시청 앞/08:05)
산성입구
4년여가 넘어서야 찾는 '금성'산성입구입니다. (10:30)
'금성'산성 환(環)종주 차 2016년 초봄에 들려 반하고는 그해 가을 다시 오마 약속했었는데, 이제야 찾습니다.
점점 산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모퉁이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바람을 탓하던 낙엽들이 바삐 움직입니다.
가을산하 -.
청초한 대나무, 유장한 성곽, 옥빛호수, 우아한 노송들도 궁상(^^) 떨어대는 시기입니다.
그래서인지 떠나려는 가을을 보며 세월의 덧없음에 더욱 쓸쓸해집니다.
바야흐로 낭만과 허무, 그리고 남자의 계절입니다.
담양 명소 '금성산성(金城山城)'부터 탐합니다.
'성(城)'자가 2개나 들어가 있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는 산성입니다.
제법 웅장한 산줄기에 약 7km의 구불구불한 성채를 머리띠처럼 두르고 있습니다.
봄에 왔을 때 홀라당 반했었는데, 가을은 어떨까요?
산성길
본격적으로 쓸쓸한 산길 따라 사부작사부작 걷습니다. (10:50)
모두들 탄성 질러댈 준비되었습니다. ㅎ
이 길은 담양이 내세우는 '오방(五方)길'이기도 합니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마을과 문화가 어우러진 품격스토리가 흐른다며 자랑해대는 길이죠.
아직 미답지인데요, 오늘 우리는 2코스인 '산성'길을 살짝 맛만 봅니다.
모든 게 한가하게 보이는 늦가을 풍경입니다.
죽향(竹香)고을답게 길옆 댓잎 스치는 바람소리도 청량합니다.
천년고찰 연동사가 유혹하지만, 예전 추억으로 대신합니다.
밟히는 낙엽 신음소리가 애처로워 살살 걷느라 조금씩 쳐집니다. ㅎ
초장부터 가파른 산길이 숨소리를 높여놓는데요, 그래도 가을내음 물씬 배인 숲길입니다.
성곽답사는 예전에 마쳤으니 오늘은 남문(보국-충용)을 거쳐 동문에서 강천계곡으로 빠질 작정입니다.
쉬엄쉬엄 올라가니 솔숲 사이로 성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묵념시간이 되었습니다.
유엔군묘지가 있는 부산방향을 향해 1분간 고개를 숙입니다. (11:11)
난세(亂世)에도 참 올곧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ㅎ
("갯바위님~, 11시 11분입니다")
("일동 묵념~!")
보국문
천혜요새라는 '금성'산성과 조우(遭遇)합니다. (11:15)
커다란 바위 위에 '보국문(輔國門)'이 위풍당당 서있습니다.
방망이처럼 돌출된 형태로 본성(本城) 끝자락에 쌓은 외(外) 남문입니다.
이곳을 통과 않고는 성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데요, 설령 입성해도 본성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또 하나의 문을
통과해야 되는 구조입니다.
정유재란 때 전라도 성들의 허술함을 비웃던 왜적이 금성(金城)을 보더니 조선이 이곳을 수성(守城)했다면
진격에 실패했을 거라 진단했었다죠.
주요난리(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정묘호란 등) 때마다 요새로서의 기능을 십분 발휘했다는 산성
GOP(^^)에서 깊은 시름에 젖습니다.
작금 우리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데요, 과거 조선의 몽매한 위정자들 작태가 자꾸 요즘과 오버랩되어
또 속이 뒤집어지려 합니다.
그나저나 풍광 참 좋습니다.
담양호의 자태를 칭송하자, 삐진(^^) 추월산정이 내밀었던 얼굴을 살짝 숨깁니다.
내려다보이는 들판풍광이 그림 같습니다.
'금성'산성은 신비에 쌓인 성채입니다.
천년을 넘기는 산성들이 많지만, 천혜의 절벽과 자연의 산세를 잘 이용하여 자연석으로 쌓아 굽이굽이 이어지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충용문
보국문의 아름다움에 취해 흐느적대다보니 내(內) 남문인 '충용문(忠勇門)'에 다다릅니다. (11:20)
2개 남아있는 산성문루 중 하나인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입니다.
돌로 막은 좁다란 통로 따라 빨리듯 문안으로 들어갑니다.
충용문루에 올라서니 아~ 펼쳐진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성곽에서 나와 길게 휘어져 돌출된 보국문과 성벽,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지는 담양 벌 -.
잘록한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는 보국문은 산성 트레이드마크답게 참 멋집니다.
깎아지른 절벽에 우뚝 솟은 노적봉에서 내려다보던 담양호 으뜸경관도 그립네요.
산언덕 따라 유장하게 이어지는 호안 곡선미도 일품입니다.
성 쌓느라 고생했을 수많은 민초들과 나라 지키려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병사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호남창의회의맹소(湖南創義會義盟所)'란 안내문이 국난 때 분기했던 의병창의(義兵創義)를 떠올리게 합니다.
산성책임자인 별장(別將) '국문영'의 불망비(不忘碑)도 있는데요, 잊지 말자는 걸 보니 치적깨나 세웠나봅니다.
수많은 시신들을 불태웠다는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애절하게 죽어갔을 백성들 생각에 숙연해집니다.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봤을 충용문(忠勇門)을 뒤로합니다.
'산성 길 따라 동문으로 갈 것인가? 오방길 따라 서문 쪽으로 갈 것인가?'
과감히(?) 보국사지로 가는 길을 버리고, 동문으로 향합니다.
성안에 나있는 오솔길도 좋지만, 능선풍경으로 모처럼 눈을 정화시켜야기 때문입니다. ㅎ
동자암
잠시 사각거리는 대나무소리에 취하다보니 허접한 요사채가 길을 막습니다. (11:30)
고구려시대의 호국승군(護國僧軍) 다물무예(多勿武藝)를 연마하는 이들이 기거 중인 '동자암(童子庵)'입니다.
'청산'스님이 한라산에서 수도하다가 2002년에 이곳으로 왔다죠.
덥수룩한 수염에 무예용 칼을 서너 자루씩 차고 다닌다는 기인(?)의 무예를 보지 못해 조금은 아쉽네요.
'꽃피는 동자암'이란 안내문답게 예쁜 꽃들이 반깁니다.
예전보다 한층 정겹습니다.
햇빛으로 예쁘게 치장한 단풍들이 돌탑 사이를 서성입니다.
노랗고 빨간 단풍들로 숲속이 환해져 마치 단풍조명 아래 걸어가는 느낌입니다.
아~ 좋습니다.
가을이 결코 쓸쓸할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내성
내성(內城)으로 들어섭니다. (11:40)
산줄기에 축조된 포곡산성(包谷山城)으로 입암산성, 적상산성과 더불어 호남 삼처산성(三處山城)이라 불립니다.
남한산성(성남)과 상당산성(보은)처럼 움푹 들어간 분지형태의 내성인데요, 광주리처럼 가장자리가 높고 중앙이
낮은 지형으로 외적침입 때 고을사람들과 군인들이 식량과 생활도구 등을 챙겨 성안에 들어가 주둔하며 방어하는
입보산성입니다.
평시 읍내에서 생활하다가 적이 쳐들어오면 산성으로 옮겨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방어하는 개념을 택했던
걸로 보아, 담양 읍성역할도 했을 걸로 추정합니다.
숱한 전화(戰禍)를 겪은 '금성'산성은 고려시대엔 몽고군에 맞섰고, 임진왜란 땐 의병거점으로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군을 격파했습니다.
특히 정유재란의 치열한 격전장으로 전사한 시신이 골짜기에 2,000여구나 쌓여 '이천골(二千骨)'이란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개화기엔 동학군 거점으로 관군에 의해 성내 모든 시설이 불에 타는 참화도 겪습니다.
1991년 사적 353호로 지정되었는데요, 지금의 모습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랍니다.
애잔합니다.
시루봉
어쩌다보니 오늘도 혼자입니다.
시루봉우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슬슬 치오릅니다. (11:50)
급경사인데다가 낙엽으로 미끄럽습니다.
그리고 혼자라서 조바심도 납니다.
가야할 운대봉과 연대봉이 조망입니다.
억새 사이로 보이는 담양 산줄기들이 장관입니다.
'금성'산성의 묘미를 만끽하려면 서쪽 성벽을 걸어봐야 하는데...
철마봉과 노적봉을 오르내리며 성벽 따라 걸었던 지난 추억이 몸서리칩니다.
담양호 풍경과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이 어우러진 풍경이 참 멋집니다.
추월산줄기 아래로 담양읍이 자리하고 있는데, 역시 풍광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뤄야 아름답습니다.
(2016년 3월)
동문
다시 내려와 옛 동문이 있던 곳으로 향합니다.
동문 터입니다. (12:05)
안내문에 의하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문루가 있었다죠.
터만 남아있는 내성 동문에 올라 한참을 머뭅니다.
산성 따라 완만한 능선 길이 이어집니다.
금성산성 어디메뇨?
대나무와 메타세쿼이아로 유명한 전남 담양이라오.
동으로 지리산 바라보고, 남으론 무등산을 건너보며, 서쪽으로 추월산 벗하였네.
북은 회문산(回文山)이 받쳐주고, 소금강이라 일컫는 순창 강천산과 맞닿았네.
시루봉 돌아 동문 다가서면 역사 몰라도 조상의 슬기에 머리 숙여지고, 운대봉 거쳐 연대봉에 오르면 내가 곧
신선이네.
철마봉에 올라서면 담양호 맑은 물에 그림으로 떠오르는 추월산 -.
나그네 인생 피곤하거든 이곳에서 쉬어나가소.
능선갈림길
'북'바위 쪽으로 능선 따라 걷습니다.
봉우리 따라 길게 이어진 아찔한 벼랑에 홀로 서있는 아름드리 노송 한그루 -.
산길에서 독야청청으로 곧게 서있는 기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평탄한 좌측에 비해 험준한 우측은 인위적으로 쌓은 듯 절벽바위들이 매끈합니다.
능선 따라 성벽이 긴 띠를 이루니 과연 천혜요새답습니다.
조망재미에 빠져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네요.
한국 산성답게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방어력을 한껏 높였는데요, 산성 길은 이렇게 내내 멋진 풍경을 보여줍니다.
조금 진행하니 강천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입니다.
성곽 따라 길을 계속하고 싶지만, 구장군폭포 쪽으로 우틀합니다. (12:10)
전남 담양 땅에서 전북 순창 땅으로 넘어갑니다.
손짓하는 유명한 '북'바위와도 작별입니다.
비룡계곡(비룡폭포)
성벽 따라 걸으며 느낀 오르가즘도 여기서 멈춥니다. ㅋ
비룡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인데요, 조심하면서도 초행이서인지 좀 설렙니다.
온갖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내려갑니다.
가장 큰소리는 낙엽소리입니다.
강천산과 광덕산 등 같은 크고 작은 산들이 첩첩산중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을씨년스런 늦가을의 계곡풍경입니다.
샘터와 연대암자 터를 거쳐 '비룡폭포(飛龍瀑布)'에 이릅니다. (12:45)
폭포는 산길에서 계곡 따라 50m만 더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는데, 물이 없어 포기합니다.
길게 용틀임하는 모습이 그런대로 봐줄만하다는데, 그마저 허용치 않네요.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아 청정의 자연 그대로가 매력임을 위안으로 삼습니다.
오찬
선녀계곡까지 내려왔습니다. (12:50)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셨을까?
궁상떠는(^^) 홀아비처럼 싸들고 온 빵 쪼가리를 어디서 먹을까 두리번거리는데, 누가 부릅니다.
엥~? 알바(?)한 회장일행을 예서 만났는데요, 푸짐하게 벌여놓고 삐기(^^) 중입니다.
와 성찬에 내 보따리는 펼치지도 못했습니다. ㅎ
좋은 산우들과 수다까지 곁들인 유쾌한 시간이 지나고, 산정호수까지 가겠다는 일행들과 헤어져 또 혼자입니다.
누군가가 명승지를 유유자적할 때 갖춰야 하는 3가지 필수요건을 나열했습니다.
걸음걸이는 한량 여염집 기웃거리듯 느릿느릿 걷고, 눈길은 여인네 보석 바라보듯 부드럽고 여유롭게 행동하며,
그리고 시간은 부잣집 막내아들 지갑 속 돈처럼 물 쓰듯 해야 된답니다.
오늘만큼은 눈총을 받더라도 유유자적키로 합니다. ㅎ
구장군폭포
강천계곡으로 들어서 웅장한 '구장군폭포(九將軍瀑布)'를 마주합니다. (13:20)
옛날 마한시대 혈맹을 맺은 아홉 명의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곳에서 자결하려다가 차라리 전장에 나아가
적과 싸우다가 뒈지자는 비장한 각오를 다진 후 출병하여 크게 승리했다는 전설 깃든 폭포입니다.
2005년에 조성되었다는데요, 물을 절벽 위 저수조로 펌프질하여 흘려보냅니다.
병풍폭포에 이은 두 번째 인공폭포로 절벽 높이가 120m에 이른다죠.
천년사랑 거북바위도 신기합니다.
생뚱맞게 성(性)을 주제로 한 조각상들이 전시된 Thema공원도 있습니다.
폭포 중간부분이 풍화로 자연스럽게 패여 여성의 음부형태를 띠고, 왼쪽에 수직으로 형성된 바위산은 남성의
형태를 닮아 음양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다는 절벽입니다.
강천산행 후 하산하는 곳에 하트모양을 닮은 사랑바위도 있는데, 삼한시대 한 부족의 공주가 다른 부족의
왕자와 사랑이 이뤄지길 빌며 매일 찾아와 돌을 던졌다는 전설의 바위입니다.
그나저나 예전만큼 관심이 없으니, 아마도 세월 탓이겠죠. ㅋ
구름다리
잘 생긴 길 따라 내려갑니다.
고요하게 하늘에 떠 있는 구름다리 -.
계곡 양쪽벼랑을 절묘하게 잇는 높이 50m에 길이 75m의 현수교입니다. (13:35)
몰려드는 인파에 몸살을 앓더니만, 오늘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네요.
강천산 최고의 명물인 현수교를 만나면서도 몇 번 통과해봤다는 이유로 포기합니다.
특유의 귀차니즘(?) 때문인데요, 그래도 현수교에서 보던 아름다운 풍광들은 그립습니다.
1980년 8월에 건립되었다니,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중생의 짐에 버거워하며 허공을 휘청거리는 현수교가 애처롭습니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세계가 지척인데도 늘 내딛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더니, 오늘은 개운합니다.
계곡 가을분위기는 아름다운 여인의 몸에 걸친 비단옷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아~ 아름다운 산하 -.
오늘도 느끼는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
용소
옛날엔 명주실 한 타래가 들어갈 정도로 수심이 깊었다는 '용소(龍沼)'도 있습니다.
한 쌍의 용이 위아래에서 살았는데, 세상 어지러우면 예언하듯 소리 내어 울었다죠.
그러면 지금 울어야 하는데... ㅎ
명경지수(明鏡止水)라 캐싸트만, 애고 쭈글쭈글합니다.
요즘 매스컴에 등장해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놓는 어느 여성장관을 닮았습니다. ㅎ
수령 300여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모과나무(전북지정기념물 97호)'는 여전하군요.
전북유형문화재 27호인 '삼인대(三印臺)'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춥니다. (13:50)
조선 중종 때 순창군수 충암 '김정', 담양부사 눌재 '박상', 무안현감 석현 '류옥'이 비밀리에 투합해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고 폐비 '신'씨의 복위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했던 장소라네요.
충절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강천사
산 좋고 물 맑은 곳마다 번듯한 절 하나쯤 있게 마련입니다.
평평한 산책로 끝에 '강천사(剛泉寺)'가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13:55)
절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이 없는 게 특이한데, 뒤편의 부처바위가 대신하기 때문이라네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도선'국사가 지었다는데요, 고요한 사찰의 정순(赬脣)함이 가을빛에 빛납니다.
담은 있으되 대문이 없는 절 마당은 여느 여염집 마당처럼 정겹습니다.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애기단풍이 곱습니다.
맑고 단아한 대웅전과 곶감 매달았던 요사채 처마의 빛바랜 흔적을 가을 낙엽비가 덮습니다.
고즈넉한 사찰풍광입니다.
아는 듯 모르는 듯 법당 부처님은 강천산을 머리에 인채 가부좌 틀고 멀리 '망배단(望拜壇)'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떠나려는 가을 따라 강천사 일주문을 나섭니다.
길 따라 수북이 쌓인 낙엽을 일부러 밟았더니 신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가을의 소리입니다.
애기단풍
지압산책로와 동행합니다.
입구 도선교까지 한참을 내려가야 합니다.
천인단애(千仞斷崖) 아래 벽계수가 흐르고 군데군데 폭포와 소(沼)가 유혹하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갈밭으로 침수가 빠른 강천계곡은 애기단풍이 식재되어, 가을이면 단풍이 장관입니다.
마지막 타오르는 단풍 속으로 몸을 우겨 넣습니다.
점차 차가워지는 바람 따라 가을도 뜀박질하겠죠.
숨차게 달려온 한해도 어느덧 또 마무리해야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내 앞에 머물던 세월이 저만치 달아나는 느낌인데요,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은 자괴감도 드는 때입니다.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응어리들이 내면으로부터 북받쳐 오르려는데, 예쁜 애기단풍들이 자꾸 말립니다.
길 안내하던 산새들 노래에 앙코르를 보냈더니, 흥겨운 화음으로 화답합니다.
병풍바위
강천, 금강, 송음, 극락 등 다리도 많습니다.
바빠도 연리목 앞에서 잠시 머뭅니다.
연인들의 길입니다.
강천산 계곡입구의 대표적인 볼거리 '병풍바위'입니다. (14:25)
아름다운 병풍폭포가 환송 Ceremony를 펼칩니다.
높이 40m, 폭 15m의 큰 폭포와 높이 30m, 폭 5m의 작은 폭포가 쏟아내는 낙수가 분당 5톤이나 된다죠.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킵니다.
아래로 지나가면 죄지은 사람도 깨끗해진답니다.
바쁘지만, 남모르게 왔다 갔다 반복합니다. ㅎ
강천주차장
강천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14:40)
강천산(剛泉山) -.
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순창입니다.
산과 계곡이 유명해서인지 산 이름도 금강산에서 따온 '강(剛)'자에 시원한 계곡물을 상징하듯 '천(泉)'자를
붙였습니다.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언제나 철철 넘치는 인공폭포까지 더했습니다.
은모래가 다복솔처럼 깔린 약 2.5km의 지압산책로는 맨발로 걷기에도 좋습니다.
숲 그늘 아래 굽이치는 계곡 따라 멋진 길이 펼쳐집니다.
또 오고 싶은 곳입니다.
지난여름 그토록 많은 유산객의 행각에 지칠 대로 지친 강천골짜기지만, 어느 듯 건강하게 제 모습을 되찾아
의연하게 꾼들을 맞아준 것에 감사합니다.
그저 느낌만 가져가며, 오늘도 강천계곡을 아니온 듯 빠져나갑니다.
순창고추장마을
순창고추장마을로 이동합니다. (15:10)
마을풍경은 여전합니다.
'순창장류축제'로 떠들썩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코로나19'를 비껴가진 못했군요.
그러나 조용한 게 오히려 정겹습니다.
달라진 시대 -.
한명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제 빨리 가는 방법보다 안전하게 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당신 -.
비어있는 관객석 앞에서도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는 당신 -.
면접장으로 향할 수는 없어도 소중한 기회를 다음으로 미룰 수 없는 당신 -.
여럿이 함께 있는 곳일수록 서로를 더 배려하게 된 당신 -.
한명 한명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 (광고카피)
믿음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의심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갑니다.
자신감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두려움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집니다.
우리들의 취미공동체인 산악회가 꿈꾸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뒤풀이
뒤풀이 위해 찾은 순창시장 '연다라'식당인데요, 연 다라(ㅎ) 들어갑니다. (15:50)
순대전골 -, 술깨나 부르네요. ㅋ
심연(深淵)에서 분리된 가을의 절실함과 처연함이 산정에서 흘러내립니다.
기품을 감싸듯 단단히 매김하고 있는 바람의 소리에도 빈틈이 없습니다.
능선마다 수채화 물감을 찍어 만산홍엽(滿山紅葉)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마음의 끈이 서서히 풀립니다.
옆 사람의 얼굴을 봅니다.
빨갛습니다.
단풍으로 산이 붉게 물드니 산홍(山紅)이요, 단풍이 계곡의 물에 붉게 비치므로 수홍(水紅)이며, 그 단풍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얼굴도 붉게 물드니 인홍(人紅)입니다.
바야흐로 삼홍(三紅)의 계절입니다.
음양오행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북반구에 가을이 오면 식생(植生)은 차츰 말라가다가 잎을 떨굽니다.
겨울을 견디기 위한 식물 나름의 생존 대응입니다.
거문고 슬(瑟)은 '쓰윽~ 쓱' 소리를 내기에 붙여진 말이라는데, 그 둘을 합친 '슬슬'이 우리말 '쓸쓸'로 변했다죠.
식물의 조락(凋落)을 부추기는 가을바람은 쓸쓸합니다.
메마른 잎과 가지를 스치는 으스스한 가을바람의 의성(擬聲)입니다.
가을은 그렇습니다.
열렬했던 여름이 사라진 자리마다 맑고 고요한 가을이 차지했습니다.
흩날리는 단풍잎이 한 장씩 가을을 넘기듯 나 역시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고 싶어서일까요, 괜히 책 한권 낀 채
걷고 싶어지는 가을입니다.
모든 게 떨궈져 곧 비운 계절이 될 텐데, 이젠 이별의 말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쩜 모두다 어디론가 뿔뿔이 떠나고, 고독이 가을의 대기를 채울 것입니다.
북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내려오면 기억들은 먼 망각의 숲으로 불려가고, 그리운 것들은 낯선 어느 계절의 노래로
흩어질 것입니다.
이 가을, 쓸쓸하다고 수선피우며 기웃거리지 말일입니다.
사랑이 떠난 서늘한 가슴팍으로 휑한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기꺼이 맞을 일입니다.
마음 밭에 '설렘'이란 씨앗을 심고, '사랑' 햇볕을 포근하게 내려쬐어야 합니다.
'배려'와 '양보'를 비료삼아 '기다림'의 물을 주고는, 꽃필 '기쁨' 때를 상상합니다.
인연도 '텃밭'인데요, 그래서 늘 '가꿈'이 필요합니다.
언제 함 오프라인에서 악마 같이 검고, 지옥 같이 뜨겁고, 천사 같이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한 커피한잔 어때요?
사는 건 기술이요, 웃는 것은 예술이랍니다. ㅎ (계룡도착/18:50)
목욜(11. 12) 오전에 갯바위가
♡ 자투리
↓ Opening -.
↓ 금성산성 -.
↓ 보국문 -.
↓ 계곡오찬 -.
↓ 그때 그 사람들 -.
↓ 고추장마을 -.
↓ 순대 뒤풀이 -.
가을과의 한판 승 -. ㅎ
첫댓글 어라 이양반 또 이렇게 많이 찍어다 올렸네!
암튼 대단하세요.
이찌곱뿌 하고 속도 쓰릴터인데
회님들을 위하여 볼거리 읽을거리
잔뜩 차려주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역시 산행기는 갯바위 작품이 최고입니다. 잘 보구 추억 되새기며 아쉬움 남기도 갑니다.
그런데 그쪽에서 그쪽으로 넘어오신겨?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