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을 불러준 그 사람에게]
마트에 가보면 '아스파라거스'라는 이국적이고 값비싼 채소가 눈에 띕니다. 그런데 봄날 산기슭을 오르다 보면, 이 아스파라거스와 맛도 모양도 놀랍도록 닮은 우리 산나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밀나물'입니다.
같은 봄, 같은 땅에서 자란 것인데 하나는 마트 진열대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하나는 이름도 없이 산자락에 묻혀 있습니다.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 눈에는 그저 산에 돋아난 풀 한 포기에 불과하지만, 이름을 아는 사람에게는 봄날의 귀한 선물이 됩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렇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일입니다.
세상 모든 존재는 이름을 얻고, 그 이름이 불릴 때 비로소 특별해집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 내어 호칭하는 것을 넘어, 그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고 내 삶 안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는 늦깎이 초등학생 '홍연이'가 등장합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산골 소녀였던 그 아이는,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다정하게 불러주자 완전히 달라집니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의 가치를 알아채 주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뜻밖의 용기를 얻습니다.
이름의 힘은 때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도 합니다. 세상 속에서 홀로 외로워하던 이가, 혹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이가 자신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는 한 사람을 만나 삶의 생기를 되찾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이름을 부르는 짧은 목소리 안에는 "당신은 내게 참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위로가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김춘수 시인은 [꽃] 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꽃도 몸짓에 불과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은 비로소 내 세계 안에서 꽃이 됩니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면, 가장 가까운 이들의 이름을 얼마나 다정하게 불러주었는지 가물가물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그저 '당신'이나 '누구 엄마, 아빠'로만 불러온 건 아닌지, 아이에게는 따뜻한 이름 대신 잔소리를 먼저 건넨 건 아닌지. 가까울수록 이름은 오히려 사라지곤 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가만히, 다정하게 불러보면 어떨까요. 그 짧은 음절 안에서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릴 것입니다. 산기슭의 밀나물이 이름을 얻어 귀한 봄나물이 되듯, 우리도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서로에게 꽃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