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호암산 (虎巖山)산행
오늘은 서울 금천구 호암산(虎巖山) 산행을 한다
호암산(虎巖山)은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해발 393m의 산으로 관악산 서쪽 끝 봉우리이다.
산자락에 호압사가 있어 호압산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는 금주산 금지산(금천 주산)
이라고도 불렀으며 산세가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 하여 호암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호암산에 북쪽을 향해 금방이라도 뛰어갈 듯한 호랑이 형상의 바위가
있는데, 이 호랑이가 한양을 향해 날뛰는 형상을 하고 있어 금천현(현재 금천구)의 지세가 쇠퇴
하고, 금천현이 쇠퇴하면 결국 한양까지 재앙이 옮겨올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조선 태조는
바위 북쪽에 활에 해당하는 궁교(弓橋)와 사자에 해당하는 사자암을 지어서 호랑이를 날뛰지
못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자암은 관악산 줄기인 삼성산 국사봉 아래에 있는 사찰로, 1398년(태조 5) 무학대사 자초
(自超 )가 창건 하였다고 전하며. 사자암이 있는 삼성산과 인근의 호암산은 산의 형세가 북으로
내달리는 호랑이 형국이라 풍수상 조선의 수도 한성에 좋지 않다 하여. 무학대사는 그 기세를
막기 위해 사자 형상을 띤 국사봉 아래에 사자암(獅子菴)을 세웠고, 호암산에는 호랑이를 제압
한다는 의미를 지닌 호압사(虎壓寺)를 세웠다 한다.
또한 호암 산성은 금청구청 자료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11년(672년)신라가 당나라의 공격을
막고자 산마루를 둘러 쌓은 통일신라시대의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1,250m이며, 그 중 약 300m
구간에 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우물은 호암산성 내 길이 22m, 폭12m의 연못으로 네 주변을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용보
(龍洑)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가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고 전시(戰時)에는 군용에
대비하였다 한다.
이 연못 모양의 우물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보수를 위한 발굴 당시 확인된 바로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연못이 현재의 불영암 내 연못 밑에 묻혀 있었으며, 그 위에 어긋나게 축석한
연못이 다시 조선 초기에 만들어 졌음이 밝혀졌다.
한우물의 조선시대 석축지는 동서 22m, 남북 12m, 깊이 1.2m의 규모로 그 아래의 통일신라의
석출지도 확인되었다. 다른 우물지에서는 ‘잉벌내력지내미(仍伐內力只內未)’라는 글이 있는
청동숟가락이 나왔다.
우물지 근처에서 개 모양의 동물상(석수상, 길이 1.7m, 폭 0.9m, 높이 1.0m)이 발견되었는데,
이 것은 조선시대 서울에 화재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웠다는 설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우물 근처에서 석구지(石拘池)라고 새겨진 돌이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이 연못이 석수상과
관련되어 석구지라고 불려진 것이라고 보여진다
우리 일행은 10:30 지하철 2호선 서울대 입구역 3번 출구를 나와 시내 버스를 타고 서울대 정문 에서
하차 관악산 공원 입구를 들 머리로 산행을 시작 한다.
오름길 에서 본 관악산 옥문봉
우리는 조금 오르다 물레방아가 꽁꽁 얼어붙은 갈림길 서울둘레길 5코스 (관악산5-2구간)관악산 도란
도란 걷는길로 산행을 이어 간다.도란도란 걷는길 이름이 너무도 좋다.걷기 좋은 코스 라서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기 딱 좋을듯 하다.관악산 도란도란 걷는 길은 서울둘레길 중 관악산 관문부터 호압사
까지 총3.5km 구간이다.
오름길 늘어선 지하대장군,지하 여장군이 도열해 있고 경사를 높이며 완전한 산길로 바뀌더니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 계단을 오르다가 조망이 터지고 서울대학교와 관악산이 한눈에 든다.우리는 이곳 평평한
바위에 자리 잡고 커피 한잔에 쉬어 간다.휴식후 용화 배드민턴장 옆길을 지나 산등선 돌산 방향 과
도란도란길 삼거리에 선다
남근(男根)과 옥문(玉門 女根)의 절묘한 음양조화
서울대 종합운동장과 캠퍼스
왼쪽부터 삼성산, 장군봉, 호암산(우측 끝)
우리는 돌산 방향 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돌산은 신림동에 위치한 해발 234m로 정상은 암봉이며 높지는
않지만 신림동과 여의도, 멀리 북한산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전망이 뛰어난 관악산 옥문봉(玉門峯)국기봉
이다.
돌산을 올라 능선에서 남근(男根)과 옥문(玉門/女根)의 절묘한 음양조화를 본다. 이름을 하여 음양능선
(陰陽稜線), 옥문봉(玉門峰)이라 한다. 서울대 캠퍼스와 관악산을 조망하기에 최고의 자리 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 다웁게 그 규모가 대단하다 이렇게 가까이서 서울대 전경을 구경하기도 처음
이다
저 멀리 왼쪽부터 삼성산, 장군봉, 호암산 삼성산에서 뻗어 내린 호암산은 봉우리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호암산(虎巖山)이라 불린다.오늘 우리가 가야할 산은 우측 끝 봉우리 이다.멀리도 보인다.
우리는 능선길 등로 따라 칼바위 능선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1시간 여 걸으니 야영장과 칼바위 능선
삼거리 이다.우리는 칼바위 능선 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
관악산 칼바위 능선 나무 데크길 계단수를 세며 오른다
칼바위 데크길 에서본 서울대 캠퍼스와 관악산 통신소
칼바위 조망 명소 에서 본 호암산 전망대
곰 세마리가 있어 아빠곰,엄마곰,애기곰
칼바위 능선 국기봉
칼바위 능선 국기봉
칼바위 능선 릿찌 코스
칼바위 능선에 도착 한다.관악산 칼바위 능설길은 오름길 수려한 조망권을 선물해 등산객들이 관악산
등로 중 가장 선호하는 코스이기도 했지만 지난 2015년 까지만 해도 칼바위 능선 등산로는 칼날처럼
서 있는 바위들을 로프를 잡고 오르내리는 등 험하기로 소문난 구간 중 한 곳이다.
또한 2011년 산사태 피해로 인해 수목의 뿌리가 노출돼 고사하는 등 자연훼손과 위험의 정도가 점차
심화되고 있는 현장 익도 했다.그런데 관악구가 칼바위능선 5개소 총400m 구간에 총 공사비 4억
8000 여만원을 투자 데크 나무계단을 설치해 등산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제공 했다
칼바위 능선을 돌아가며 설치한 데크 나무계단은 460여개에 달할 정도로 최고층 아파트 계단을 밟고
오르는 느낌을 받는다.또한 기존의 나무와 지형을 훼손을 최소화 하며 계단 중간 중간에 수려한 관악산
풍광을 전망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 해 놓았다.
우리는 우회로 나무데크길 따라 오르며 수려한 경관을 카메라에 담아도 보고 계단 숫자도 헤아려
본다.모두가 704 계단 이었다.
호암산 국기봉
호암산 비녀바위
호암산 전망대 에서 본 서울 시가지
우리는 칼바위 능선을 넘어 삼막산,호암산 갈림림 제1 야영장 삼거리에 도착 한다.호암산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드디어 호암산 정상 이다.호랑이 모형 바위는 찾을수 없어도 태극기가 세워져 있다.
호암산 정상은 행정구역상 금천구가 아닌 관악구 소관에 들어가며 정상입구 지점은 서울 금천구,
관악구, 경기 안양시 만안구 가 만나는 곳이다.호암산 정상은 민주동산으로도 불리며 헬기장과
국기계양대가 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서울 강남방향 전경을 내려다 볼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남산 서울타워, 63빌딩,
국회 의사당, 롯데 월드 타워 ,한강과 북한산,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 등이 한눈에 보이며 관악산
정상 기상 관측소와 KBS 송신소 철탑도 한눈에 든다.
우리는 호암산 전망대를 돌아 나와 석구상 불영사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
불영암 으로 부터 50m거리 에는 광화문 해태상과 마주 보게 하여 관악산의 화기(火氣)로 부터 서울을
지키는 해태상 으로 여기기도 했던 동물 석상이 사방을 돌로 쌓은 기단 안에 북쪽을 바라 보며 귀엽게
앉아 있다.
한우물 조사를 하면서 석구지(石狗池)라 세워진 장대석(長臺石)이 출토 되었고 시흥 읍지 형승조
(形勝條)에 호암산 남쪽에 석견(石犬)4두(四頭)를 묻어 개와 가깝게 하였으며 등 지금 현남 7리에
"사견우(四犬偶)"가 있다 라는 내용의 기록으로 "석구상"으로 판단되었다.
옛 호암 산성 안에 있던 연못인 제2 한우물터 와 건물터
불영암
한우물(큰우물)
조금 내리니 신라중기 당나라 공격을 막고자 쌓은 호암 산성 안에 있던 연못인 제2 한우물터 와
건물터4곳 그리고 호암산의 기운을 잠재우고자 기도 올린 자리에 세워진 불영암 과 불영암 안에
한우물(큰우물)이 있다.
조계종 불영암은 물속에 비치는 바위가 부처님 같이 보인다고 해서 불영암이라고 불리운 것으로
추정 된다 경내를 돌아 보니 석가모니불과 관음여래상 그리고 지장보살상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불영암 조망대에 오르니 조망 또한 천하 일품 이다.서울 대부분과 안양 광명 부천인천은 물론
북한산 까지 거침 없이 시야에 들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신랑각시바위(사랑바위) 유래 이다.
옛날 호암산 아랫마을에 믿음직한 총각과 어여쁜 낭자가 한마을에 살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양가 집안이 대대로 앙숙으로 지내 온 터라 부모들은 이들의 관계를 반대하면서 다른 사람과
혼인을 시키려 했다.
낭자는 부모님의 심한 반대를 못 이기고 깊은 밤을 틈타 집을 뛰쳐나와 산에 올라 목숨을 끊으려 햇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총각은 사랑하는 낭자를 찾으려 칠흑같이 어두운 산을 헤맨다. 그러던 중 산 중턱
절벽위에 홀로 서서 세상을 하직하겠노라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낭자를 발견한다.
나뭇잎은 스산한 바람에 흔들거리고, 달빛은 그제야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절벽, 그 앞에서 만난 이들은
손을 맞잡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서로 닦아주며 달님에게 세상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맹세의
기도를 올리며 밤을 지새운다. 절절하고 애절한 이 연인의 사연은 마침내 달님에게 전달되었다.달님은
진실된 이들의 사랑에 감동받아 영원히 함께할 수 있도록 그 자리에 마주보며 우뚝 선 바위로 만들어
주었다.
그후, 산 아랫마을 선남선녀들이 이곳을 찾아 손을 맞잡고 사랑을 고백하면 혼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결혼을 해 이곳을 찾아 기도를 드리면 옥동자를 점지해 주었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는 행복한 가정을 성원해 주었다는 사랑이야기가 전혀 내려오고 있다.
우리는 능선길 따라 관악역 방향 으로 하산을 하다가 해술 학교 담장을 끼고 하산 장어집에 들려 중식겸
소주 한잔을 하고 귀가길을 재촉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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