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국토부 '복합자재 품질관리 규정' ... "알맹이 빠졌다"
- 원자재 성능 불신 큰데 ... 복합자재만 품질관리서 제출?
- 제품 성능 문제 시 복합자재업체에 책임 전가 가능성 높아
- 불연, 난연 등 원자재 품질 검증 체계부터 정립해야
국토교통부가 입법을 추진하는 ‘복합자재 품질관리 규정’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복합자재의 기본이 되는 원자재에 대한 검증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장관 유일호, 이하 국토부)는 지난 4월 22일부터 6월 3일까지 복합자재에 대한 품질관리 규정을 신설 등을 담은 ‘건축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 했다.
개정안에는 복합자재를 납품하는 제조업자와 시공자, 감리자에게 제품의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품질관리서를 허가권자에 제출토록 하고 허가권자는
시공자에게 복합자재의 난연성능 분석시험을 의뢰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내용이 명시됐다.
당시 국토부는 부실 설계와 시공 등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고 건축 관계자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함이라며 법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입법예고 기간 내내 논란에 휩싸였다. 여러 종류의 자재로 구성되는 복합자재의 특성상 원자재에 대한 검증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복합자재는 말 그대로 여러 부속 자재를 결합해 만드는 하나의 ‘완성 자재’로 건축에서 말하는 복합자재로는 샌드위치 패널과 방화문 등이
대표적이다.
복합자재를 생산하는 관련 업계에서는 “불연이나 난연성능을 갖췄다고 하는 원자재들의 품질 확인이 우선”이라며 “원자재의 성능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로 구성되는 복합자재만을 가지고 책임소재를 묻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판은 불연재인데… 유기계 페인트는?
◀ 한국화재보험협회 산하 방재시험연구원에서 실시한 샌드위치 패널 화재실험 © 방재시험연구원 제공
최근 관련 업계에서는 복합자재 외피 마감재로 널리 쓰이는 컬러강판을 두고 불연성능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컬러강판은 불연재인 강판을 폴리에스테르수지 페인트로 마감하고 이후 에폭시 도료를 사용해 코팅하고 있다. 바로 이
마감재에 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폴리에스테르수지 페인트나 에폭시 도료 등은 유기계를 기반으로 하는 물질이다. 결과적으로 철판 자체는 불연재일지라도 그 위에는 고온에서 발화
가능한 소재가 칠해지는 셈이다. 유기계 페인트에 대한 규정 정립이 요구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당연히 불연재로 인식되는 강판도 마감 페인트를 포함할 경우 불연성능을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며 “하지만 현재는 컬러강판
소재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이로 인한 성능 문제가 생겨도 복합자재 제조업체가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온에서 불붙는 접착제도 사각지대에...
접착제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폴리우레탄 접착제 역시 유기계 성분이다. 고온에서 발화하며 연소 시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가스까지 발생한다.
▲ 고열 반응 간이시험에서 발화한 폴리우레탄 접착제 © 소방방재신문
일부에서는 폴리우레탄 접착제에 난연제를 첨가해 난연성능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연제를 첨가하면 접착성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종종 발생하는 샌드위치 패널 철판의 분리 문제(박리현상)도 이것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접착제 역시 복합자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재료 중 하나로 철판의 두께나 단열재의 성능과는 별개다. 그러나 현재 접착제에 대한 별도의
성능인증이나 기준은 없는 실정으로 관련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불연재 ‘글라스울’도 맹신할 수 없어
흔히
불연재로 알려진 글라스울에 대한 문제도 좀 더 명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 글라스울은 유리를 원료로 하는 무기계 단열재지만 유기계 바인더 함량에
따라 그 성능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유화가스 발생으로 인한 발화 모습 © 소방방재신문
보통 글라스울의 바인더 함량은 5~15% 내외다. 대개는 패널용으로 사용되며 바인더 함량이 낮을수록 건축 방화용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바인더 함량이 높은 글라스울을 방화문에 적용했을 때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건축물 방화구획으로 사용되는 갑종방화문은 1시간의
내화성능을 갖춰야 하는데 바인더 함량이 높을 경우 유화가스와 이로 인한 화염이 발생할 수 있어 성능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제품에 적용하기 위해 2차 가공(절단)한 글라스울 단열재 © 소방방재신문
또한 불연 단열재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판상단열재 상태로 시험한 열관류율 성적서만을 제공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복합자재 특성상 원자재의
2차 가공이 불가피하지만 현재는 절단 등 2차 가공을 거친 단열재에 대한 성능확인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단열재에 대한 성능평가와 기준이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시험 따로 납품 따로 ... 난연 가스켓도 문제
◀ 가스켓 착화로 인해 화염이 발생한 모습 ©소방방재신문
방화문에 적용되는 가스켓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방화문에 쓰이는 가스켓은 난연고무계열과
난연실리콘계열로 양분되는데 난연실리콘계열 가스켓의 경우 내화시험에서 불이 붙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일부 업체에서는 가스켓에 난연제를 과도하게 첨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내화시험은 통과할 수 있지만, 연질성능의
저하로 이어져 실제 사용 시 내구성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질적인 성능 시험에서는 난연제를 과도하게 첨가한 제품으로 합격하고 실제 현장에는 난연제 첨가량을 줄인 제품을 납품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증언이다.
방화문 업체의 한 관계자는 “가스켓을 납품받아 방화문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 입장에서는 해당 가스켓이 성능에 만족하는 제품인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도어클로저… 난연 작동유는 안전한가?
도어클로저에 사용되는 난연성 유압작동유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난연 작동유는 과거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해군이 광유에 35% 이상 수분을 혼합하면 화재의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한 데서
비롯됐다. 이러한 발상은 이후 수-글리콜계 작동유와 W/O형 emul-sion계 작동유(약 40% 수분 함량) 등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난연
작동유 개발로 이어졌다.
도어클로저 업계에서는 KS M2010의 방법으로 시험한 결과 수-글리콜계 유압작동유는 인화점에 대한 사항이 ‘해당 없음’으로 표기되는 만큼
이를 갑종방화문에 적용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KS M2010 원유 및 석유제품 인화점 시험방법은 태그 밀폐식(인화점 시험기의 한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때 시험에 사용되는
온도계의 측정범위는 -6℃~400℃까지로 알려져 있다.
(주)BIT 범우연구소가 발행한 ‘난연성 유압작동유의 개론’에 따르면 수-글리콜계 유압작동유의 인화점은 410℃~435℃로 시험 시
사용되는 온도계의 측정범위를 넘어선다. 이 같은 시험방법으로는 ‘해당 없음’의 결과밖에 나올 수 없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 연성 유압작동유의 개론' 참고자료에 명시된 난연 작동유 발화온도 <편집> © 소방방재신문
허술한 ‘내화형’ 디지털 도어록, 문제는?
방화문에 적용되고 있는 내화형 디지털 도어록에 대한 규정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디지털 도어록의 내화시험은
내부 충전재가 없거나 종이 허니컴을 사용한 강철제 방화문에 부착하고 진행된다.
하지만 이 시험을 통과한 제품도 차열성능을 갖춘 방화문에 적용했을 때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방화문의
차열성능이 발현되면 열 방출이 도어록으로 집중되고 이때 과도하게 축적된 열로 인해 착화가 진행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 세대 현관문 실내 측 디지털 도어록에서 발생한 화염 (시험 시작 39분~45분) ©소방방재신문
게다가 앞으로는 방화문 차열성능에 대한 중요도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문제 해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 4월 아파트 내 대피공간에 설치되는 방화문의 30분 차열성능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공포했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은 1년의 유예를 두고
2016년 4월 6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분야의 관계자는 “차열 방화문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도어록 내부에 열 차단 장치를 추가하거나 소재, 시험 등에 대한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책임 떠넘기기 가능성… 본래 취지 되새겨야
향후에는 ‘건축안전 모니터링’ 사업 등 국토부가 추진하는 ‘건축물 안전강화 종합대책’에 따라 복합자재에 대한 성능검증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복합자재를 구성하는 원자재 각각에 대한 검증 없이 복합자재 성능만을 검증해 처벌한다는 것은 자칫 모든 문제 원인을 복합자재 업체로만
돌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분야 관계자들의 우려다.
이번 ‘복합자재 품질관리 규정’ 도입은 건축 관계자의 책임 강화와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복합자재 시장 구조의 현실부터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궁극적 목적인 건축물 안전을 실현하기 위해선 사각지대 없는 명확한
관리 규정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5-08-10 09:57 소방방재신문 이재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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