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핵심원료 '누룩'이란 무엇일까
재미있는 술 이야기(7)
'밀밭에만 가도 술에 취한다'는 말이 있다. 즉 술을 잘 못 마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밀을 원료로 술을 만들지는 않았다. 근래 와서 쌀이 부족해지 밀가루를 사용하여 막걸리를 만드는 일은 있어도 밀가루를 술의 주원료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왜 밀밭에 가면 취한다고 했을까. 이는 밀을 갈아서 누룩을 만들기 때문이다. 즉 우리 나라 술의 가장 핵심적인 원료인 누룩은 바로 이 밀기울에 술을 만드는 미생물을 번식시킨 것이다.
술이란 당분이 알코올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전분이 주성분인 곡류를 원료로 술을 만들려면 우선 전분을 당분으로 변화시켜야 하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누룩곰팡이나 엿기름이다. 엿기름은 습도가 낮아 곰팡이가 잘 안 자라는 서양에서 전분을 당화시키는데 사용하였고, 습도가 높은 동양에서는 자연히 곰팡이를 이용하여 전분을 당화시키게 된다. 이것도 저것도 잘 안 되는 곳이나 이 방법을 모르는 곳에서는 쌀을 씹어서 침에 있는 당화효소의 작용으로 전분을 당화시키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하였고, 이렇게 만든 술을 미녀들이 씹어서 만들었다고 미인주(美人酒)라고 부르게 된다.
이와 같이 누룩에는 전분을 당분으로 만드는 곰팡이가 있어야 하고 아울러 이 당분을 알코올로 만드는 효모(뜸팡이)도 있어야 한다. 이런 이론은 과학이 발달한 다음에 밝혀진 사실이고, 우리 조상들은 이런 원리를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원시시대부터 누룩을 만들어 술을 담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여간 '누룩이란 전분질 원료에 술을 만들 때 필요한 미생물을 자연계에서 접종, 배양시킨 것으로 곰팡이, 효모 등이 번식하여 주류제조에 필요한 효소류가 생성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누룩의 원료는 주로 밀을 사용하나 지방에 따라 쌀이나 보리, 녹두 등을 넣기도 한다. 누룩은 술을 만드는데 기본이 되는 것으로 문헌상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하지만 우리 나라는『고려도경(高麗圖經)』에 처음 등장한다. 밀은 잘게 쪼갠 알갱이를 쓰고, 쌀은 곱게 가루 내어 이용하고, 쌀 알갱이에 밀가루를 부착시킨 것도 있다. 재료처리는 가볍게 찐 것도 있지만 거의 전부가 날 것을 쓰고 있다.
누룩의 형태는 거의 떡처럼 생긴 '막누룩'이지만, 일부는 쌀 알갱이를 그대로 쓰는 '낱알누룩'도 있다. 쌀누룩, 낱알누룩은 우리 전통의 것이 아니고 일본의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조선시대에는 이런 누룩들도 다채롭게 쓰이고 있었다. 재래식 방법은 빻은 밀을 물과 반죽하여 보에 싸 누룩틀(누룩고리)에 넣고 성형한 다음 쑥으로 싸서 부엌 시렁이나 온돌방의 벽에 매달아 놓고 띄웠다.
이렇게 하면 곰팡이는 누룩의 겉쪽에 자라게 되고 공기를 싫어하는 효모는 안쪽에서 자라게 된다. 그리고 나서 곰팡이와 효모는 각 각 당화시키는 효소와 알코올을 만드는 효소를 내놓게 되며, 이 효소를 이용하여 술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누룩에 양질의 곰팡이를 일부러 번식시킨 것이 많지만, 옛날에는 자연스럽게 메주에 곰팡이가 자라는 식으로 누룩에도 갖가지 미생물이 자라 이것을 이용했기 때문에 그 지방의 풍토에 따라 맛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 만큼 우리의 술맛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했던 것이다.
이렇게 다채롭던 우리의 누룩은 1909년 주세법이 발표되어 분쇄도에 따라 가루로 곱게 만든 '粉麴(가루누룩)'과 거칠게 빻은 '粗麴(섬누룩)', 두가지로 통제되었고, 粉麴은 약주용, 粗麴은 탁주, 소주용으로 쓰이게 되었지만, 1927년부터는 곡자제조회사에서 누룩을 만들게 되어 아주 단순해졌다. 현행 주세법에서는 '국(麴)'이라 규정하고 '전분 물질 또는 전분물질과 기타 물료를 섞은 것에 곰팡이류를 번식시킨 것이나 효소로서 전분물질을 당화시킬 수 있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우리 술은 이러한 진통과정을 거치면서 단순하고 간편하게 변했기 때문에, 옛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일이지만, 현대 사회로 오면서 합리적인 행정 절차상 그리고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려면 어쩔 수 없는 조치일 수도 있다. 우리 전통의 방법에 서양에서 온 근대 기술을 접목해야 되느냐는 민속주를 취급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김준철 (서울와인스쿨 원장)
연우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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