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터키의이스탄불의 국제공항 아타튀르크공항 근 12시간만에 도착한다.
국내선비행기를 갈아타고 이즈미르로 가야하는데 나름 시간이 넉넉한듯 싶어 조금의 휴식이라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솔자의 어눌함에..휴
난 패키지 여행을 왠만해서는 안하고 자유여행이나 맘맞는 몇분들과 여행스케즐을 짜서 다니곤해서
여간 답답한게 아니다.
모처럼 시간도 없고 헤서 우여곡절끝에 세월호사고 등등으로 어렵게 떠난 여행인데..
모 국내굴지의 여행사에서 따라온 인솔자가 나보다 더 어리버리하다.
이곳에서 남은시간을 거의 다 헤매게 되었다.
국내선으로 갈아타야하는곳을 그곳 공항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사람마다 달랐다고 하는데....
휴...말이안되고...
이렇게 해서 공항밖은 못나고 갇힌 보안검색안에서 담은 아타튀르코공항모습이다.
여행내내 아타튀르크에대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공항이름도 아타튀르크
터키 공화국의 아버지 (터키에서 보물찾기, 2007, 아이세움)아타튀르크 국제공항(터키어: Atatürk Havalimanı, IATA: IST, ICAO: LTBA)은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공항이다. 시내는 약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공항의 명칭은 터키 설립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가리기 위해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두산백과)
이 공항은 터키 항공의 허브 공항이다. 유럽 개발은행이 투자한 공항 확정으로 진행되었다.
성장률은 90%가 이하되었으나, 비행기 운항 편수로 최대 공항으로 삼았다. 터미널 각각 터미널A와 터미널B의 승객터미널 1, 화물터미널 C로 이루어져 있다. 2001년 현대화되고 효율적인 시설을 갖춘 국제터미널의 개통으로 1970년대 설계된 국내터미널의 혼잡성을 다소 완화할 수 있게 되었다.
(두산백과)
정식명칭은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이다. 동쪽으로 이란·아르메니아·조지아(그루지야), 남쪽으로 이라크·시리아, 북서쪽으로 불가리아·그리스와 국경을 접하고, 북쪽으로 흑해, 남쪽으로 지중해, 서쪽으로 에게해(海)·마르마라해에 면한다.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 전부와 보스포루스 해협·다르다넬스 해협·마르마라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의 발칸 반도, 동(東)트라키아 지방에 걸쳐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적 위치로 인해 역사적으로 동방과 서방의 문화를 연결하는 교차로 역할을 해왔다. 이런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역사적인 부침이 심했다.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왕조의 후계를 잇는 국가로 18세기에 오스만 왕국이 쇠퇴하여 다른 나라에 분리 점령되거나 통치, 관할되었고 20세기 들어 터키공화국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에게해에서 그리스와 해역·상공·영토에 관련된 분쟁을 벌이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터키인이지만 1984년부터는 터키 동쪽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族)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터키 정부를 상대로 유혈투쟁을 벌여왔고 최근에도 그들의 독립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행정구역은 81개주(il)로 되어 있다.
(두산백과)
우리나라와는 형제의 나라
우랄알타이어족으로 과거 고구려와 돌궐(터키의 한자식옛표기 이름)간에 이루어졌던 옛 외교의 이루어진
산물이리고 한다.
여행내내 그네들은 우리한국사람들을 무척좋아했다.
만나는데 마다 사진같이 찍자하고..
어린 중고생들도 수학여행왔다가 여행지에서 만나면 말을걸고...
한두마디씩은 한국어 구사가 능숙했다.
6.25때도 유엔군으로서 5,400명의 군인을 첫 파견이후 계속되는 지원을 해주었다고 했다.
이스탄불에서 밖에도 못나고 이즈미로향해 오니 밤10시가 넘었다.
저녁은 비행기에서 주는 샌드위치로 대부분 해결했지만..
난 늦은 저녁시간이라 생략하고...
호텔에 도착하니 너무 늦은밤...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 온다.
일어나 주변산책을 해볼사이도 없이 일정이 빡빡하다.
그래서 이런여행에 호감이 안가는데 여러일정상 더 심한듯 느껴졌다.
이즈미르
이즈미르(터키어: İzmir)는 터키의 3대 도시이며, 이스탄불 다음으로 큰 항구이다. 역사적으로는 스미르나라고 불렸다. 이즈미르는 에게 해의 이즈미르 만에 위치하며 이즈미르 주의 주도이다.
제1의 수출무역항으로 활기를 띠고 있으며, 도시에는 2개의 철도역이 있으며 북쪽과 남동쪽으로부터의 철도종점이 되고 있다. 이스탄불과는 국내항공이 통하고 있으며 아테네로 연장 서비스도 하고 있다
이스탄불의 남서쪽 336km, 에게해(海)에 면한 터키 제3의 대도시로 예전에는 스미르나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이며 BC 627년 리디아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BC 3세기에 재건되어 로마시대까지 번영하였다.
중세 비잔틴·십자군·아랍·투르크 간에 쟁탈이 거듭되었으나 그리스 문화의 한 중심으로 그리스상인에 의하여 무역이 성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이 지방에 침입한 그리스군(軍)에 의해서 파괴되고 그리스령이 되었으나 1923년 터키에게 반환되었다
. 주변일대에 곡물·목화·올리브·야채·잎담배·과실과, 견직·양탄자를 생산하는 배후지(背後地)를 끼고 있는데다가 비누·면직물·염색공업이 활발하여 상공업 중심지이다.
또한, 제1의 수출무역항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도시에는 2개의 철도역이 있으며 북쪽과 남동쪽으로부터의 철도종점이 되고 있다.
이스탄불과는 국내항공이 통하고 있으며 아테네로 연장 서비스도 하고 있다.
고대의 아고라에서 대리석의 열주(列柱), 포세이돈과 데메테르의 상(像) 등이 발굴되었고, 파구스의 언덕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무장(武將)이 축조한 성새가 있다.
국립도서관·에게대학 등이 있고, 호메로스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두산백과)
늦은저녁에 도착하여 이른새벽에 움직이는 빡빡한 일정이 다소 맘에 안들어도 어쩔수 없는일...
드뎌 셀축으로 이동하여 엣 고대도시 에페수스로 온다.
에페수스입구 매표소앞
문명이 고이 잠들어 있는도시
4세기 초 크리스트교도들의 중심지로 숨쉬던 땅, 에게해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대도시 에페소스의 자취를 따라가 보지만 시간등 여러가지로 역부족이다.
세계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신전의 터전과 함께 장대한 유적의 흔적으로 과거의 영화가 숨쉬듯 반짝이는 곳이다.
성경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땅, 에페소스 터키의 수많은 유적지중 크리스트교의 유적지로손꼽히는곳,
난 여행돌아와서 요즘 간간히 종교와 관계없이 성경을 읽고 있다.
장대하고 화려한 에페수스 유적 에페소스 유적의 거리를 걷는 것은 마치 로마시대 세월 비껴간 어느 모퉁이에 와있는 느낌이고 역사속에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유적의 입구는 남쪽 북쪽 두 군데이나 주로 남쪽 출입구로 들어와 완만한 언덕을 내려가며 둘러보고, 북쪽 출입구로 나간다. 피온의 언덕이라 불리는 높이 150m 정도의 암석터에는 비잔틴 시대와 헬레니즘 시대의 성벽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에페소스 유적의 석재들은 후기 시대의 건축물들을 짓는데 유용되어 현재는 부서져 남겨진 조각들만 유적으로 쓸쓸히 흩어져 있다.
이곳 에페수스는 BC 7세기경, 에페소스는 최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BC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쇠퇴하여 페르시아 전쟁으로 해방된 뒤에는 그 영화가 쇠락하기 시작했다.
헬레니즘시대에 이르러 경이롭게 부흥하기 시작했다. B.C 4세기에 이르러서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대 건축이 완성되었으나 그리스도교 시대가 되자 그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신성한 거리로 알려진 샛길을 따라가면 아스클레피온(병원)이 나온다.
다시 사람들은 의사들을 의술의 신 아스클레파우스와 그의 딸이자 건강의 여신인 히게이야의 사도로
여겼다.
아스클레아우스의 상징은 뱀이었다.(약국에는 수많은 뱀의 상징이 새겨져 있기도 함)
이는 허물을 벗고 새로이 태어나는 뱀의 능력때문이었다고한다.
여신 테티스와 메두사의 부조가 새겨진 하드리아누스 신전 등 로마시대 유적은 찬란한 인류의 유산을 온몸으로 접하게 한다.
그시대의 화장실
그시대의 목욕탕건물의잔재(바리우스목욕탕)
도시로 통하는 모든 정문부근에 목욕탕들이 있다 고된 여행길에 몸에 묻었을지 모르는 더러운 병균을 씻어
내는 것이 고대의 관습이었기 때문일지 모든다.
목욕탕은 하맘과 마찬과지로 지인들과 어울려 함께 때도 벗겨내고 마사지도 받는 사교의 장이기도 했다.
목욕을 마치고 다시 원기를 찾았다면 이제 위쪽광장 이라고 불리는 큰광장에 자리하고 있던 도시의 정치
중심지로 들어갈 차례다.
(여행책자 론니프래닛참조)
드디어 장대한 에페스 유적의 하이라이트 켈수스 도서관에 당도한다.
2세기 중반 아시아 주 총독이던 켈수스를 기념하여 지어진 화려한 석주 건물로 코린트식 열주를 가진 화려한 정문 석주가 강한 인상을 풍긴다. 정면 4개의 입구 앞에는 예지, 덕성, 사려, 학술의 상징을 나타내는 여성의 동상들이 자리하고 있어 도서관의 웅장함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도서관 입구 계단에는 여행자들이 휴식을 취하며 에페소스 유적의 신비에 휩싸인 듯 자리를 뜨지 못한다.
이사진은 이지역이 매춘지역자리로서 성인이 되면 들어갈수 있게 만들어진 성인발사이즈라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시간이 된다면 객석에 앉아 묻혀 버린 고대 세계의 항만을 바라본다고 하는데..
시간에 쫓긴다.
2000년전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의 영화를 회상하며 인간과 문명, 역사와 종교 그리고 인류가 피고
지고...
흥하고 망하고... 그 도도한 흐름을 이곳 에페소스 옛 고대도시에 와서 느껴본다.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을 나서면 마지막 회랑으로 이어지며 아고라가 펼쳐진다.
돌길이 아닌 흙 길을 밟으며 지나간 고대 문명을 추억한다.
그리고 마지막 야외극장을 오른다.
중간에 소극장도 보였고..
문명의 쇠락과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2세기 피온의 언덕에 올라선다. 파나 유르산 언덕에 지어진
야외극장은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원형극장의 규모로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고양이가 곳곳에 너무 많았다.
난 엄청 싫어하는데.ㅋ
에페소스를 빠른걸음으로 보고 나와 주변 상가들의 모습
아시아 대륙내 로마의 중심지..
에세수스는 터키땅에 건설되었던 로마도시의 전형적인 예이다.
이곳에 볼수 있는 포장도로 체육관,하수시설, 모자이크 벽화. 극장등은 로마디자인과 건축의
결정판이라고한다.
교역도시로 번영했던 에페수스에는 훌륭한 건축물아 아주 많았다.
웅장한 기둥을 자랑하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사회의 경이로운 건축물중 하나였다.
하지만 후일 비잔틴 대주교의 명령으로 파괴도어 버렸다.
로마시대에 으뜸가는 규모를 자랑했던 대극장은 로마인들이 극정설계와 음향공학에 정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라한다.
인근의 켈수스 도서관은 신기하게도 실제크기보다 더 크게 보이더록 지었다 한다.(여행책자 론리프래닛참조)
터키의고대도시 에페수소는 그 화려했던 역사만큼이나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러나 이번여행은 시간에 쫓기다보니 왔소갔소 흟고만 지나가게된다.
옛 도로를 따라 늘어선 유적들...
눈에 담으며 카메라에 담으며 귀에 꽂은 이어폰의 안내가이드소리가 낭낭하지만..
한꺼번에 기억하고 소화하기가 힘들다.
1만년에 걸쳐 20여개의 문명이 탄생한 화려한 역사의 현장...
아직도 그 영광의 과거를 간직한채 그 위엄을 자랑한다.
어느안내문에는 로마보다 더 로마답다고 한다.
그리스보다 더 그리스다운 곳으로 고대 경기장과 대리석 도로
짧은 시간이라도 장대한 유적의 흔적으로 과거의 영화가 생생하게 반짝이는 도시..
또한 장대하고 화려한 터키 에페수소의 유적을 바라보며...
잠시 내가 그곳에 있었던 것 만으로도 자연의 신비와 찬란한 그때의 문화에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굴러 다니는돌도 유적이고..
문화의교차점, 다양성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곳형제의 나라 터키...
비록 짧은일정에 바쁜기도 했지만..
소지하고 있는 여행안내책자 론니프래닛책자와 여행사진을 보면서
다시 여행하듯....지금도 난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