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청소기로
보는 발전의 길
2020.4.4.
쏴,
지난
6년간
잘 작동하던 청소기가 두세 달 전부터 호스의 본체
연결부에서 바람이 새기 시작했다.
환한
곳에서 살펴보니 전깃줄을 감싸며 유연성 있게 만들어진
호스 곳곳이 낡아 찢어져 구멍이 생겼다.
박싱데이에
$100에
산 청소기는 단종되어 호스 하나만 $400
가까운
터무니 없는 값에 파니 부품 구매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새제품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몇 군데 매장에
들러 살펴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었다.
소음이
심하거나 전기 코드가 짧아 청소 반경이 작거나 아니면
흡입 브러시가 못마땅했다.
그나마
꽤 괜찮다고 판단해 독일 M사
제품을 사 와서 박스를 뜯고 조립해 보니 실망스러웠다.
코드
길이도 짧고,
브러시는
어찌나 투박한지 가구 밑 청소도 곤란하고 바닥 청소를
하기에도 부담스러웠다.
가구
밑이나 좁은 구석도 빠짐없이 청소해야 마음이 편한
나로서는 로봇 청소기나 무선 청소기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임시로
덕트 테이프를 사서 기존 청소기의 호스에 붙여 터진
구멍들을 막아 한 달을 더 썼다.
그러다가
새로운 청소기를 사 왔다.
새
청소기는 작업 반경이 넓고,
지난
30년간
써 본 청소기 중 가장 조용해 모터 소리는 별로 나지
않고 바닥에서 나는 흡입음이 주로 들렸다.
흡입력이
엄청나 최고 흡입 모드로 청소하면 마룻바닥에서도
브러시가 잘 밀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먼지
주머니와 먼지 필터를 교환해야 하는 것은 알면서도
대안이 없어 골랐지만,
M사
제품답게 브러시가 문제였다.
마룻바닥에서도
잘 움직이지 않지만,
깔개
위에서는 아예 운동을 시켰다.
할
수 없이 대체 가능한 브러시를 주문해 쓰니 한결 나았다.
먼저
쓰던 청소기의 폭넓고 얇을 뿐 아니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브러시와 호스 손잡이에 달린 조작이 편한 조절기,
그리고
비워 계속 쓰는 먼지 통과 세척 가능한 필터,
새
청소기의 저소음 모터,
긴
코드,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쉽게 움직이는 바퀴와 호스와 본체
연결.
이들
장점만을 합쳐서 청소기를 만든다면 얼마나 좋은 제품이
될까!
이런
제품의 출현을 막는 것은 바로 우리의 제도이다.
발명
특허로도 모자라 디자인특허까지 내세우면서 새롭거나
좋은 아이디어의 활용을 막는 제도:
같은
제조 공정의 사용을 막고,
성분이나
포장을 조금만 바꿔도 계속 갱신되는 특허에,
끝없이
연장되는 지식재산권 보호 기간 등.
마치
후발 주자,
개도국의
진입과 발전을 막으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산업혁명의
주역이라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개발은 개인의
창의력을 조장하고 이를 독점적으로 보장해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의 제도 덕분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지적 재산권의 보호도 이런
맥락에서 법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인류 발전을 위한 최선의 길인가?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워드프로세서는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워드,
스프레드시트
등 몇 가지 업무 기능만 제공하면서도 매년 사야 하는
회사의 제품이 아니다.
오픈
소스로 만들어져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만을
10여
년 넘게 사용하고 있다.
주로
OpenOffice와
LibreOffice,
그리고
가끔 호환성이 문제가 있을 때는 Crome
Docs나
WPS
Office를
쓴다.
단지
무료일 뿐 아니라 데이터베이스,
pdf 생성
등 어떤 면에서는 시장 우위를 차지한 제품보다 나은
점도 있다.
그런데도
오피스 소프트웨어 시장이 특정 회사 제품으로 주도되는
것은 애초에 시장 독점을 허용한 제도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더 빠르고 좋은 제품의 출현을 막는 장벽을 만들어
준 셈이다.
인류의
지적 발전이 급격히 이뤄진 계기가 몇 차례 있었다.
첫째는
언어의 발달이었다.
집단
내 타인과 의사를 쉽게 소통하고 협력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문자의 발명으로 인해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같은 시대에 살지 않아도 지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책 등을 싸게 인쇄할 수 있게
됨으로써 지식이 성직자 등 소수 특권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광범위하게 퍼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컴퓨터나 휴대폰 등 접속 기기만 있으면
세상의 지식이 손안에 펼쳐지게 되었다.
이렇듯이
지식과 아이디어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발전시킬수록
지식과 지혜가 최대한으로 활용되고 빨리 발전하게
된다.
소수의
지식 독점과 지혜보다 다수의 교육과 지혜를 모은 것이
현대 사회의 급속한 발전의 초석이 된 것이다.
Richard Stallman은
“프로그램 사용자들의 사용 방법이나 사용량을 제약해
돈을 뺏는 것은 그 프로그램으로부터 인류가 끌어낼
수 있는 부를 제한하기 때문에 파괴적이라며 빌 게이츠의
프로그램 유료화와 독점에 반대했다 ” 1).
그
덕분에 Open
Source, Linux, FireFox 등의
개발로 이어지고 위키피디아 등이
시작될 수 있었다.
업무
효율을 현저히 높이는 무료 오피스 소프트웨어도,
책장을
장식하던 고가의 종이 백과사전을 밀어내고 백과사전의
대명사가 된 위키피디아도 바로 이런 분들 덕분에
무수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증기 기관은 제임스 와트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니라 토머스 뉴커먼이 만든 것을 개량한
것이다.
지식이나
기술 발전에 기여한 이에게 합당한 대우나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특허나 지식재산권으로 우리 선조를 포함한 인류 모두의
지혜를 최대한 활용할 기회를 막아서는 안 된다.
더는
청자 제작의 비밀을 혼자만 알다 없어지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대단하게
여기는 개인의 성취는 결국 인류가 이제까지 쌓아 올린
거대한 탑 위에 한 알의 모래알을 더 얻는 일인지도
모른다.
또한,
“위키피디아
편집자 71%가
대가 없이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63%가
정보는 무료여야 한다고 믿는다”.
2)
우리는
우리의 믿음만큼 이익만을 찾아 움직이는 경제적 동물이
아니다.
국경의
의미가 줄어들고 무수한 전 세계적 문제에 직면한 지금
인류 공동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최대한
우리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길을 찾아야 할
때다.
1),
2) <<Postcapitalism:
A
Guide to Our Future>>, Mason,
Pa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