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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총림 범어사 방장 지유스님 |
회광반조(回光返照). 빛을 돌이켜 비춘다는 뜻이다. 즉 자기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제가 “여러 부처님이시여”라고 말하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생각은 똑같지 않을 것이다. “저 스님이 왜 우리를 부처님이라 하는고” “우리가 언젠가는 부처님이 된다는 뜻인가” 여러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이 아니다. 지금도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중생(衆生)과 불(佛)이 같다고 했다. 똑같은 속에 다른 점이 있다. 깨달은 사람도 (귀에 대고) 종을 치면 고막이 울려 좋지 않다. 이 모습을 보고 우리하고 똑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옛날에는 선지식이 찬바람이 불어도 춥지 않고, 한여름에도 더위를 타지 않는 것으로 알았다. 모든 것을 초월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선지식도 감기에 걸릴 수 있고, 기침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점은 분명히 있다. 우리가 찾는 진리와 도, 즉 깨달음은 도대체 무엇인가? 차가우면 차갑고, 뜨거우면 뜨겁고, 바로 그것을 안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화두(話頭)는 참으로 묘한 자리라고 했다. 교리나 문자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공안(公案)은 사리나 생각을 따져 아는 자리가 아니다. 생각으로 알 수 있다면 세속의 머리 좋은 이들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생각 보따리를 짊어지고 들어갈 수 있고, 말이란 보따리를 짊어지고 들어갈 수 있지만, 그것을 버려야 아는 끊어진 자리이다. 알고 싶은데 알 수는 없고, 포기하자니 마음이 놓이지 않고, 그렇게 고심 고심하다 진실한 마음을 내는 이가 깨닫는다. 모르거나 알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의심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인가 전심전력(全心全力)으로 내가 갈 길이, 살 길이 이것 밖에 없다고 절실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시계 바늘 소리가 한밤중에는 조용하게 잘 들린다. 낮이나 밤이나 똑같은 소리를 내지만, 낮에는 잘 들리지 않고 밤에만 잘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소리이지만 낮에는 소음 때문에 듣지 못한 것이고, 밤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이 차분해지면 호흡을 느끼듯, 자기 모습을 알게 된다. 도를 찾고 있는 자기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집중해서 앞뒤가 끊어지는 전후제단(前後際斷)으로 오로지 자기 현실에 몰두할 때 가능하다. (물론)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지금까지 있었다.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움직이고 있는 이놈이 도대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