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힌들 어떠랴 / 김상영
나무 심기 팀이 후포항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보름 남짓 산을 오르내리며 수고한 이들에게 책임자가 한턱내는 나들이였다. 하늘로 날아오르듯 귀한 봄 돈을 적잖이 벌어 놓은 데다 대게와 회가 공짜라서 더욱더 별미였다.
바야흐로 춘삼월 호시절이라 기분도 풍선처럼 부풀어 소맥 몇 잔씩을 주거니 받거니 마셨다. 그야말로 해방된 민족이라, 버스 속은 열 서넛 아낙네 호들갑으로 웃음꽃이 만발했다. 오가는 말들이 꼬리를 물어 남정네 두엇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나는 알딸딸한 술기운에 젖어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산과 들판을 멍하니 보고 앉았다.
상주 영덕 고속도로를 반쯤이나 지나왔을까, 버스 앞쪽이 웅성거렸다. 한 아주머니가 속이 더부룩하다며 진땀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이들은 멀쩡한데 아주머니만 증상이 있고 보면 십중팔구 체한 듯했다. 화장발로 애써 감춘 촌부村婦의 일그러진 모습에 들떴던 분위기가 답답해졌다. 응급으로 손을 따보자는 이가 있었으나 바늘이 없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나를 불렀다.
“어이 김상영.”
아내가 우스개 삼아 바깥양반 함자銜字를 함부로 부르는 것이었다. 한번 밟아주란 뜻인지라 실실 웃으며 “상여이 와 부르노.”했더니 박장대소가 터졌다. 유머와는 거리가 먼 난데 웃어주다니, 남자가 아쉬운 모양이었다. 이왕에 박수까지 받았으니 감초가 되자 싶어 기사님에게 차 좀 세우시라 일렀다.
“아지매, 말로 할 때 내리소.”
괴로워 축축한 아주머니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내 말과 행동이 당돌하게 비쳤을까, 딴엔 웃자고 던진 조큰데 뜨악한 표정이시니 난감했다. 말굽자석을 거꾸로 대듯 밀어내는 것이었다. 하기야 나무를 심을 때도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마냥 우울한 기색이셨다. 이리 외곬이니 쉽게 체하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머쓱해진 나는 아주머니 증상을 호전 시켜 어색한 상황을 반전시켜야 했다.
아스팔트 도로변 공터에 이르자 엎드려 뻗히시라 했다. 체면은 뒷전인 듯 넙죽 엎드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속이 치받는 형국이었다. 고개를 들어 턱을 지면에 밀착시키고, 팔은 차려 자세를 지탱토록 했다. 아내가 얼른 손수건을 턱밑에 받쳐드렸다. 어느새 아낙네들이 빙 둘러서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구경거리가 된 아주머니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딱했다. 얼른 아주머니 두툼한 등에 오른발을 가로로 올리며 주문했다.
“아지매, 힘 빼소.”
시험 삼아 가볍게 몇 번 밟자니 점차 누그러지는 느낌이 왔다. 순간 내 몸무게를 실어 묵직하게 올라서며 밟았다.
“우두둑.”
등뼈가 바르게 정렬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경직된 근육이 풀어지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러면 그렇지, 오지게 체했구나 싶었다. 아주머니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속이 확 풀린 것이리라. 박수가 터지고, 버스는 노래방을 향하여 경쾌하게 달렸다.
밟는 비법은 안사돈에게서 체득했다. 나를 당신 친구들에게 인사시키는 술자리가 있었다. 흡사 새신랑 소개하듯 분위기가 방방 뜨자 술이 과했고 체기가 겹쳐 속에서 전쟁이 났다. 여인네들은 청일점 남의 사돈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아주 재밌어했다. 안사돈은 그런 내 모습이 처음이라 당황할 법도 하건만 대범하셨다. 친구들을 점잖게 타이르셨는데, 내가 다 미안할 정도였다. 주위를 물리고 난 후 식탁을 한쪽으로 몰치고 나를 엎드리게 했다. 힘 빼시고 ‘우두둑’에 이르기까지 진행되는 품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내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양껏 밟히고 나자 어찌나 속 시원하던지. 그날 나는 안사돈의 넓적 발과 내리누르던 무게로 기사회생했다.
어릴 적 옆 마을 달밝골에 체증을 잘 다스리는 할머니가 사셨다. 엄마 손에 이끌려 사립문을 들어서면 싫은 내색 없이 반겨주시던 분이었다. 나를 바르게 앉히고 등뼈를 하나하나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보며 아픈가를 하문하셨다. 아이고 거기요, 하면 옳다구나 싶은 듯 그 부위를 집요하게 주무르기 시작하셨다. 원을 그리듯 돌리다가 두드리기도 하며 얼얼할 정도가 되면 당신이 연신 “꺼르륵.”거리며 트림을 유도하셨다. 그런 다음 팔을 잡고 툭툭 때리듯 주물러 피를 훑어 내리고, 엄지손가락 손톱 위 부위를 바늘로 톡 따시는 거였다. 되게 체할수록 선홍색 피가 진홍으로 탁해져 콩알처럼 솟기 마련이었다. 힘들여 주무르시는 할머니나 걱정스레 지켜보는 엄마나 어린 나나 피를 보면 화색이 돌긴 마찬가지였다. 답답했던 방 안 분위기가 헤실헤실 풀릴 즈음이면 내 동창 계집애가 참기름병과 숟가락을 슬쩍 들여놓곤 했다. 그 애가 쌕 웃으며 곁눈질하고 섰으면 고소해야 할 참기름이 도통 무슨 맛인지 몰랐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안사돈에게 밟히기 전까지는 체했다 하면 바늘로 땄다. 독하다 하겠지만, 내 손도 내가 땄다. 아내에게 먼 산보며 찔려봤으나 오히려 긴장돼서 벌벌 떨렸다. 피를 훑어 모은 엄지손가락을 야무지게 쥐면 될 텐데 실로 감니 어쩌니 번잡기도 했다. 체할 때마다 찔린 왼손 엄지 부위가 욕봤다. 살집이 생겨 도톰해서 찌르면 설컹할 정도였으니 짐작할 일이다. 얕게 찌르면 피가 나지 않고, 깊게 찌르자니 따갑고 해서 여러 번 시도하니 곰보가 될밖에.
그러고 보면 밟기가 따기보다 훨씬 낫다. 주무를 수고가 필요 없고 피를 볼 일도 없으며 참기름 축낼 이유도 없다. 혹시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12쌍이 골고루 받치는 뼈가 의외로 강하다. 가지 하나보다 나뭇단을 부러뜨리기 쉽지 않은 이치와 같다. 척추가 탈골되지 않을까 싶은 이도 있을 거다. 허리뼈와는 달리 등뼈는 튼실하여 까딱없다.
돌이켜보면 밟아서 체기를 내린 세월이 오래되었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밟아주며 산다. 밟고 올라서려 안간힘을 쓰는 세상이지만 밟힌들 어떠랴, 복장 편하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