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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에스겔-01 에스겔의 소명(에스겔 1장 1-5절)
성경말씀은 에스겔 1장 1절에서 5절까지 봉독합니다.
[에스겔 1장]
1 제 삼십 년 사 월 오 일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2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오 일이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4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오늘부터 두달 넘게 걸릴지 모르겠는데, 에스겔서를 같이 살펴보면서 이 안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오셔서 평소에 듣지 못하던 그런 설교나 또는 성경책을 소개받는 경우가 많을 텐데, 에스겔서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죠?
제가 볼 때에 에스겔서를 가지고 강해하는 그런 케이스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교회에 어떤 목사님이 에스겔서를 강해설교한다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신학교에서도 에스겔서를 누가 강의하는 그런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거의 신약성경 같으면 요한계시록, 그리고 구약에서는 에스겔서 이런 책이 가장 생소하고 가장 관심 밖에 밀려 나 있는 그런 책이예요.
저는 전에 섬기던 교회 밀양 무안교회에서 에스겔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해한 적이 있었고, 이번이 아마 두 번째가 될 거예요.
에스겔서 그냥 설명하는 정도 이런 것은 성경강좌때에 매번 하니까 근 180번 넘게 190번 했겠죠.
그렇지만 차근차근 한절한절 다 강의하는 것은 사실 두 번째인데, 두 번째가 될런지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어요.
제가 다시 한번 창세기로 돌아와서 에스겔서를 또 강의할 수 있을런지 잘 모르겠는데, 어떻든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에스겔서 같은 것을 다시 설명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우리가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너무 교회가 에스겔서라는 책은 손을 잘 안대니까..
이번에 저도 성실히 에스겔서를 공부하고 정리해서 또 소개하는 것은 간략하게,
괜히 쓸데없이 과잉해석하지 않고..
지금까지 성경 주석학자들이 성경을 과잉해석을 해가지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도 알지 못하게, 이렇게 만드는 실수를 많이 했어요.
거의 읽어나가면서 조금 어렵다든지 애매하다든지 까다로운 단어, 혹은 번역이 잘못된 단어, 주목해야 될 단어 문장 이런 것을 살펴보고,
또 늘 기본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람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는지, 어떠한 심정으로 이런 책이 기록된 것인지..
이런 것을 주안점으로 해서 말씀을 드릴려고 합니다.
성경 책 중에 가벼운 책이 없죠.
다 비중이 있고 또 의미가 있고 그 안에 진리가 있고 하지만, 그 분위기로 볼 때 다루기가 참 어렵기도 하고 그 내용 속에 분위기가 가장 무거운, 부담되는 그런 책이 아마 구약성경 전체에서 에스겔서가 가장 무거운 책이다. 그런 생각이 들고..
신약에서는 물론 요한계시록이 가장 부담되고 비중있는 그런 책입니다.
그리고 이 에스겔서 같은 것을 이런 책을 교회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일반 성도들이 하나님 두려운 줄을 잘 몰라요.
다시 말하면 이 에스겔서 안에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아주 충만해요.
하나님께서 신구약을 통틀어서 에스겔서 안에서 보이는 그런 하나님이 아마 가장 크게 진노하신 그런 모습인데,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들이 대개 외면해버립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신 모습을 보여드려가지고 성도들이 좋아할것 같지 않다 하니까, 늘 좋아할 만한 구절들 복준다 잘된다 이런 얘기만 긍정적인 그런 설교만 계속 해왔다는 거예요.
아시는 대로 우리 교회는 그렇게만 하지 않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말씀하든지, 하나님 진노하신 말씀이든지 빼지 않고 더하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전할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래서 이 내용을 미리 말씀드리면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 밖에 없으니까, 일반 복음주의 복받는 것만 강조하는 분들은 전혀 설교할 일이 없어요.
이책을 가지고는..
그리고 보통 이 에스겔서 안에서 한두 번 한두 군데 본문을 집어서 설교를 하는 분이 있다면, 파숫군의 사명이라 해가지고 혹은 총동원주일이나 전도폭발때에 한번 딱 써먹죠.
‘네가 만약에 전달하고 선포 해가지고 그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너는 책임이 없고 그 사람이 책임이 있지만, 네가 만약에 파숫군의 사명을 다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멸망했다 하자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겠다.’ 그런 말씀이 있는데,
그 파숫군의 사명 그런 설교 한번쯤 써먹는 본문이 있고, 그리고 요즈음은 그런 설교 안하는데, 마른뼈 해골들이 일어난다.
그것 써먹고 그 다음에는 은혜의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고 무릎까지 오르고 허리까지 오르고 나중에는 헤엄칠만큼 된다.
그 세가지 써먹으면 다죠.
여러분도 그 외 들어본게 없죠.
모르겠어요. 여러분은 들어봤는지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 세가지예요.
파숫군의 사명 하는 것은 우리도 그대로 생각해볼 문제죠.
그런데 마른 뼈 그것은 우리가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관계있는 것이니까, 우리와는 별로 의미도 없어요.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우리 성도들에게 빗대어서 마른뼈들아 살아나라 하는데, 마른뼈가 아니잖아요. 별로 의미가 없고..
그리고 맨끝에 있는 제단에서 물이 나와서 발목까지 차오르고 무릎까지 오르고 허리까지 오르고 나중에 헤엄치는 데까지..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이루어질 수도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세에 따라서 그 반응에 따른 이루어질 수도 있었던 건데, 그들이 하나님께 바로 응답하지 못해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얘깁니다. 사실은..
그러니까 그것을 설교랍시고 은혜가 그렇게 넘칠거라고 그런 것은 거의 헛소리에 불과해요. 솔직히..
아무도 그런 말 하는 사람 없죠.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 우리 신학계에 설교비평학이 없어요.
대구에 어떤 목사님이 설교 비평을 하는 분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텅빈 설교 꽉찬 설교 해가지고 그래서 한국에 내노라 하는 사람들의 설교를 연구해서 누구의 설교는 요란한데 텅빈설교이고 꽉찬 설교는 누구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한다는데, 모르겠어요.
신학비평도 없고 설교비평이 없으니까 설교를 잘하고 있는지 잘 못하고 있는지 성도들도 분별도 안 되고..
그리고 신학교에서 감독도 안 되고..
하여튼 자칫하게 되면 우리 설교자들이 취향에 자기 취향에 맞는 것만 뽑아다가 거의 제멋대로 설교한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심각한 문제예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렇게 하다가 제 자신이 하는 일에 스스로 확신이 없고 이것은 아닌데..
여러분 제가 목회를 하다가 신학교에서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거든요. 늘 수석 아니면 차석 이렇게 했는데.. 믿거나 말거나..
그렇게 했는데, 그것을 다 버리고 내려놓고 정말 남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성도들이 좋아할지 싫어할지 모르는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아직 아무도 못하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지금도 500여년전에 존칼빈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3장까지 설교한 그것이 책으로 남아 있어요. 칼빈 주석이라고..
그 칼빈 이외에 그 어떤 사람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실히 설교했다 하는 것 제가 못 들어봤어요.
아무리 찾아도 기독교 역사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계시록이라든지 에스겔서라든지 남들이 잘 손대지 않는 책, 사사기라든지 무관심속에 소외된 책 이런 책에 오히려 더 관심이 있어요.
이미 다 아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은 여러분 다르게 알지 않습니다. 저도 똑같이 알고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교회에 전혀 소개되지 않은 책이 있다는 거죠.
그런 책이 요한계시록이고 구약에서는 에스겔 같은 책이예요.
에스겔이 이 책을 기록한 시작 시점과 기록 완성된 것은 찾을 수가 없는데, 대체로 에스겔이 592년 정도, 592년부터 시작해서 570년경까지, 약 22년 정도 사역을 한 것은 성경 본문 안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사로잡힌지 5년 되는 해부터 사로잡힌지 25년 될 때까지 기록들이 나와 있고, 그 뒤에도 일정기간 사역한 것 같으니까, 대체로 20년에서 22년 정도 사역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하면 약 2500년 전에서 거의 2600년 전, 태어나기는 2600년 전에 태어났겠죠.
여러분 말이 2600년이지 100년도 까마득한데, 1000년도 먼데, 2000년 하고도 600년 전의 사람의 이야기예요.
그 때 벌써 에스겔의 하나님의 말씀을 이 정도로 알아듣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건데,
여러분 이러한 사실들을 세상이 알면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혀야 되는데, 전혀 세상이 안 뒤집혀요.
왜 그러냐? 교회도 모르는 얘기를 목회자도 모르는 얘기를 일반 사람들이 알 수가 없죠.
2600년 전에 하나님의 음성이 에스겔을 통해서 이렇게까지 울려퍼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전혀 교회도 모르고 있고 온 세상에 그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다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저는 진짜 시골에서 자라서 또 아주 작은 교회에서 목사님도 아니고 정상신학을 다 한 분도 아니고 성서신학원 우리 지금 마산에 문창교회에서 하고 있죠. 성서신학원..
노회에서 경영하는 성서신학원 그런 학교에서 2년간 공부하는 분 밑에서 신앙생활 했어요.
지금은 물론 그분도 목사님이 되셨는데, 그분에게 성경을 처음에 맛을 봤죠.
조금 맛을 보는 식으로 해가지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 공부하는 중에 신학교 교수들이 하도 엉뚱한 소리 헛된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서 나중에 가니까 공부가 재미가 없어요. 사실..
학교 다닐 때 소원이 빨리 졸업장이나 빨리 달라. 졸업장 받아서 나가서 목사도 시험 쳐야 목사되니까 목사고시해서 목사가 되는데, 내가 내 스스로 읽고 싶은 것 읽고 찾고 싶은 것 찾아서 기독교가 말하는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독자적으로 안 빼고 제대로 정리하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거의 공부를 따로 안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태까지 교회에서 듣던 것 다른 교회에서 듣던것과 상당히 다른 얘기를 많이 듣게 될 거예요.
딴 교회에서 못 들은 얘기가 더 많을 것이고, 다른 교회와는 조금 다른 것도 있을 거예요.
여러분 맹목적으로 분별없이 저를 따라 올 것이 아니라 충분히 냉철하게..
여기 제가 볼 때 다 분별할 수 있는 분들이니까..
제가 볼 때 우리 한국교회에 안타까운 것은 목회자가 끌거나 부흥강사가 끌거나 이단 사이비가 끌거나 맹목적으로 따라간다는 거야. 분별없이..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거기 따라가..
아무 내용도 없는데, 몇천명 몇만명이 모여서 세월 보내고 있는 교회가 있다는 거예요.
안타깝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성실히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그리고 아주 책임감 있게 응답하는 그런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예요.
저는 제가 진리를 말하거든 그 진리는 달게 받아들이는게 좋습니다. 그러나 저 노우호라는 사람을 따라서 사람에게 속해가지고 따라가는 것은 잘 하는게 아니예요.
바울이 아볼로에게 게바에게 바울에게 하는 것을 듣고 너희가 아직도 사람에게 속한 자로다. 육신에 속해가지고 젖이 덜 떨어졌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적어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 정도로 설교를 해드리고 또 성경강좌때 줄거리를 탁 잡아주면 이제는 스스로 다 하나님 말씀을 정리해서 교회가 있든지 목회자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교회가 있으나 목회자 없으면 누구든지 설교할 수 있어야 되고, 교회가 없으면 누구든지 교회를 세울 수 있을 정도, 그 정도로 자라야 돼요.
여태까지 우리 한국교회는 거의 평생에 젖을 먹이면서 어린 아이 취급해요.
목회자들의 마인드가 기본 정신이 전부 양으로만, 그 안에 다 커서 얼마든지 장성해서 지도자가 될 만한 그런 인물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설정을 하나의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하나님이 목자라는 우리가 양이다. 이렇게 할 때에 그 때 그 양은 목사도 포함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목자일 때 우리는 양이다 그러면 되는데, 목사는 목자고 너희는 양이다 이래버리면 곤란해요.
그런 생각이 고정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양이기 때문에 절대로 누구를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사실은 그렇지 않고 여호와가 우리 목자죠.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목회자가 좀 맡아서 하니까 목자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가르친다고 할 때는 여러분 똑 같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똑같은 사람이지 제가 특별한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일부러 제가 태어난 근본부터 제가 자라온 배경까지 공부도 지지리도 하기 싫어서 퇴학을 했다가 중단했다가 그런 내 약점을 왜 노출하느냐?
자기 브랜드 가치를 높일려면 그렇게 하면 안 돼죠.
그게 아니고 여러분과 제가 똑 같거나 여러분이 저보다 더 나을 수 있어요.
저는 공부도 캐캐묵은 옛날식 공부를 한거예요.
저는 집합을 잘 몰라요.
우리 할 때는 집합이라는 수학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이 집합이 엎어졌다가 자빠졌다가 어렵더라고. 보니까..
무슨 합집합에다가 교집합에다가 나중에 배우니까 어려운 거예요.
여러분이 훨씬 더 수준높은 공부를 한 거야.
얼마든지 잘 배워서 제가 하는 일을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 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예수님도 그렇게 하는데, 예수님도..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여러분도 할 수 있고, 저보다 더 위대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목사님은 목자고 우리는 양이다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저는 우리 교회 성도는 다 목사가 되기를 바래요.
다는 좀 어렵겠죠.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할 수 있어요.
엘리야 보세요. 엘리야가 자기 제자 엘리사가 ‘선생님의 영감의 갑절을 원합니다.’ 하니까 어려운 것을 구하기는 한다마는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거죠.
그 뒤에 보면 이루어졌어요.
엘리야보다는 엘리사가 훨씬 더 위대한 일 더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저 자신의 경험인데, 자기를 너무 자학하거나 아니면 자기를 너무 자격지심 속에 위축되거나 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한 30년 사역하다가 보니까 ‘내가 쓸데 없이 남을 의식하고 겁을 냈구나’ 이제와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도시에 가 보니까 굉장한 교회도 아무것도 아니야. 가서 보니까..
최근에 알았다는 거죠.
나는 시골에서 내가 컸고 하도 내가 박사 학위도 없고 하니까 나는 그저 시골에 조그마한 동네에서 왔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죠.
얼마든지 온 세계를 다니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건데, 겁이 나가지고 부산도 못가보고 마산도 기적으로 온 거예요.
은퇴할려다가 다시 와가지고.. 겨우 해서 지리산에서 밀양까지 가서..
나중에 서울에도 가보고 미국에도 가보니까 인간 위에 인간도 없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인간을 사람을 너무 쳐다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을 무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을 너무 신격화 해도 안 되고, 사람을 너무 멸시해도 안 돼요.
저도 사실은 멸시를 많이 당했죠.
여러분 시골에서 교인 200명도 안 되는 목사라고 하면, 도시 큰 교회 몇천명 몇만명 끌어모은 그런 큰 교회 목사들은 200명도 안 되는 마산에 무슨 개척교회 목사는 사람 취급도 안 합니다. 인사도 안 해요. 멸시합니다. 솔직히..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지나치게 신격화할 필요도 없고 사람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똑 같아요.
다 죄인이고 혹시 어떤 은혜와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보면 나중에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성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나에게라고 그런 말을 쓰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너무 처음부터 겸손이 아니고 그냥 자격지심이라든지 이런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거의 자폐증 가까울 정도로 그렇게 위축되어 가지고 그렇게 일을 못하고 있었어요.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보니까 그렇지 않은 거야. 별로..
썩 잘난것도 없지만 썩 못난 것도 없는 거야.
다 비슷비슷한 건데 괜히 사람에게 주눅들어가지고..
여기 에스겔 같은 분은 포로되어 간 사람이예요. 포로..
바벨론 포로인데, 2차 포로때에 포로 되었습니다.
2차 포로는 BC597년에 2차 포로가 있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남쪽 유다의 마지막 왕 바로 직전왕이 여호야긴 왕이고, 마지막왕이 시드기야 왕이고, 마지막 앞에 왕이 여호야긴 이라는 왕인데, 여호야긴은 여호야김 왕의 아들입니다.
왕이 된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에 바벨론에 잡혀갔는데, 그 여호야긴이 사로잡힐 때 함께 사로잡혀 간 사람이 에스겔이예요.
그 때 아마 에스겔이 포로되어 갈 때 나이가 25살 정도 된것으로 봅니다.
여기 25살 손들어봐요. 25살.. 딱 한 사람.. 그렇게 뒤에 앉아 있으면 어떡해요?
25살 정도 될 때에 바벨론에 포로되어 갔는데, 거참 그렇죠?
25달 되는 나이면 정말 한창 때이고 그럴 때에 그냥 나라가 망해버리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꿈의 나래를 한없이 펼칠 수 있는 나이 아닙니까? 그런 나이에..
그렇게 좋은 나이인데, 나라가 망해버리고 바벨론으로 포로잡혀 갔다..
불행중에 불행이고 비극중에 비극이죠.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시킬 일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25살에 나라가 망해가지고 바벨론에 포로잡혀 가 있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이 있고 시킬 일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여기 에스겔서 어려운 점이 첫마디부터 어렵습니다.
[에스겔 1장]
1 제 삼십 년 사 월 오 일에 내가,
‘내가’는 에스겔이죠.
‘내가’ 라는 말을 쓰는 것은 1인칭 작가시점이죠. 문학적으로 문법이..
1인칭으로 자기를 ‘내가’라고 쓰는데,
자전적 자서전적 자기 경험을 그대로 씁니다.
그런데 이 제 30년이 뭐가 30년이냐? 도대체가..
여호야긴왕으로 해도 30년이 아니고 느부갓네살 왕으로 해도 30년이 아니고 아무 것도 맞는게 없어요.
맞는게 없어서 어떤 분은 하다하다 안 되니까 희년으로부터 희년 지나간지 제 30년 이렇게까지 말을 억지로 해석하는 분이 가끔 있는데,
저는 이것을 그렇게 보지 않고 에스겔 나이가 30살 되던 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전부 다 제멋대로 해석을 하니까 나도 내 멋대로 해석을 권리가 있잖아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남자를 세워서 사명을 지울 때 최소한 30살은 되어야 일을 맡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태어난지 제 30년. 그러니까 서수형으로 기록되어서 30살 되던해에.
..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가,
그발 강이라는 강은 그냥 자연적으로 형성된 자연 하천이 아니고, 인공하천입니다. 인공하천은 우리가 보통 운하라고 하죠.
한반도 대운하. 그런 말이 있는데,
3대 운하가 있어요. 바벨론에.. 3대 운하 중에 하나가 인공으로 파서 만든겁니다. 그발 강은..
..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2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오 일이라
그러면 597년에 포로잡혀 갔으니까 592년이 되겠죠.
5년 그 달 4월 5일이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부시가 조지 부시가 아니고, 에스겔의 아버지가 부시였다고 해요.
4절에,
4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사람의 형상이라 할 때 어떤 것을 사람의 형상이라 하느냐 하면, 일단 머리가 위에 있는 거예요.
머리가 위에 있고 그 밑에 몸뚱아리가 있고 팔이 있고 다리가 밑으로 서서 직립으로 섰다. 이게 사람의 형상입니다. 그냥..
그런 사람의 형상이라.
6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그러니까 날개도 있고 얼굴도 있고 다리가 있는데, 다리가 조금 달라요.
7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같이 빛나며
마광한 구리면 구리빛인데, 광을 냈다는 거죠.
아주 건강한 건장한 그런 사람들의 육체미, 여러분 보통 일부러 구리빛 색을 칠해가지고 기름을 발라서 광이 나죠.
그런 아주 건강한 모습을 가지고,
8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러니까 다 사람의 형상인데 다른게 날개가 있는 거야. 날개..
우리도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죠.
천사보다는 별로 모자람이 없는데, 딱 날개가 없는 거야.
날개만 있으면 참 좋겠는데..
날개 밑에 사람의 손이 있더라는 거죠.
사람의 형상인데 날개가 있다는 거죠.
..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여러분 어떤 비행물체가 커브를 한다든지 아니면 돌려가지고 턴을 한다든지 이런게 없고, 그냥 이렇게 생겼는데 네 방향에 네 생물의 얼굴이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고 싶어도 그냥 가는 거야.
가고 싶은 쪽으로 커브가 없고 턴도 없고 그냥 아무 쪽으로나 가요.
그러니까 중력의 장애를 안 받는다는 거죠.
중력의 장애를 받지 않고 가고 싶은 대로 빛처럼 그냥 가는데, 그 속도가 빛처럼 전광석화처럼 갑니다.
지난번에 제가 무안교회 섬길 때 에스겔 강해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그림을 모집을 했어요.
에스겔서에 나오는 이 에스겔서 1장 2장 3장에 나오는 나타났던 이 비행물체, 여기 묘사된 전부 글자로만 묘사된 이것을 집에 가서 그림을 그려왔다 하니까 요절복통하게 그려 왔어요.
이번에도 여러분에게 숙제를 냅니다.
에스겔서 1-3장을 읽어보고 집에가서 그려 보세요.
백지를 놓고 대충 어떤 모습인지.. 최소한도 10번은 읽어봐야 됩니다. 1장부터 3장을 10번은 읽어봐야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텐데,
그래도 그림을 모아놓으면 일치가 안 돼요.
한 사람도 똑같은게 없어. 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그렇다면 에스겔이 글을 잘 못 쓴거야.
글을 잘 쓰면 회화적으로 그림이 나올 정도로 글을 쓰면 잘 쓰는 거야.
그런 면에서 신구약 성경에서 제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모세, 모세는 그 성막을 얼마나 잘 썼는지 그대로 집이 되는 거예요.
누가 해도 비슷한 모습이 나오는 거예요.
그 다음에, 누가.. 누가는 그야말로 얼마나 섬세하게 글을 쓰는지 딱 읽으면 그 모습이 머리에 떠올라서 그릴 수 있게..
이런 것을 글을 쓰되 그림 같이 글을 쓴다 회화적 표현이라고 해요.
최고로 글을 잘 쓰는 거예요.
그래서 에스겔 에언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게 좀 그리기 어렵게 글을 썼다는 것은 그렇죠?
어떻든 꼭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두주간 시간을 드릴테니까 두주간 동안에 최소한 10번 정도로 읽어보시고, 1-3장은 에스겔이 소명받는 장면인데, 다른 예언자들 보다는 소명받는 장면이 특이합니다.
특이하고 좀 신비하고 좀 두렵고 좀 웅장하고..
그런 면이 있어요.
그래서 9절,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이것을 가지고 서양 신학자들이 전부 엉터리 해석을 하는데, 뭐라고 하느냐?
여기 사람의 얼굴은 누가복음이요, 사자의 얼굴은 마태복음이요, 소의 얼굴은 마가복음이요, 독수리의 얼굴은 요한복음이다.
전부 천편일률적으로 다 그렇게 했어요.
전혀 아닙니다.
아무 근거가 없어요. 아무 근거가 없고 에스겔서 10장에 가서 보면 이 생물들 사람얼굴 같고 사자같고 소같고 독수리 같은 이 생물들이 천사, 천사 중에 케루빔인줄 내가 깨달았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
천사예요. 천사..
그것을 복음서라고 하면 엉터리야.
그래서 뭐든지 예수님에다가 빗대어서 억지 해석하는 그런 습관이 있어서 꽤 유명한 주석가들도 이것을 네 생물을 복음서라고 엉터리 해석을 하는 거예요.
천사에 대해서도 우리가 이상한 개념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보통 한국사람은 천사 하면 예쁜 여자, 미스코리아나 미스유니버스 같은 여자같은 줄 알아가지고 여자를 보면 천사 같다고 하죠.
여러분 보세요.
천사 중에 어떤 것은 독수리 같고, 어떤 것은 사자 같고, 어떤 것은 소 같고 그래요.
그 중에 어떤 것은 사람 같고..
그러니까 천사가 잘 생긴게 아니고 사람이 훨씬 더 잘 생겼어요.
다만 날개가 없다 뿐이지..
11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집에 가서 그려 보세요.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위에서부터 내려다 본 그림을 먼저 그려봐.
앞에는 사람 같은데, 날개가 나 있고, 네 방향에서 날개를 펴니까 날개가 서로 옆 날개와 연결되는 거죠.
그 비행물체 한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데,
12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커브가 없어요.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어요.
우리가 보통 전차는 앞으로나 뒤로 가죠.
전차는 앞으로나 뒤로 갈 수 있는데, 옆으로는 못 가잖아.
이것은 옆으로도 마음대로야. 어느 편으로 네 방향으로 다 갈 수 있어요.
13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14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
빠르기가 번개야. 번개..
일반 생물로 봐서는 안 되는 거죠.
일반 물체도 아니죠.
일반 물체나 일반 생물은 다 중력의 장애를 받게 되는데, 전혀 중력의 장애를 안 받으니까 빠르기가 번개같고 방향도 커브도 턴도 없이 그냥 움직이는..
15 내가 그 생물을 본즉 그 생물 곁 땅 위에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그것도 이상해요. 바퀴가 있어요.
바퀴도 있고 네 생물도 있고 가운데에는 신이 있고 그리고 그 빛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경광등처럼 그런 것도 번쩍번쩍 해야 되고..
숙제가 점점 무거워지죠?
네 얼굴 쪽에 바퀴가 있어요.
16 그 바퀴의 형상과 그 구조는 넷이 한결같은데 황옥 같고 그 형상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황옥 담황옥, 옥은 옥인데 황색, 보통 임금님 색깔이죠.
바퀴가 이중 바퀴같이 생겼어요.
점점 어려워지죠?
17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며
계속해서 턴을 하지 않고 커브가 없이 그냥 언제나 직진한다 이런 말이 계속 나옵니다.
18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내가 볼 때 눈이 아니고 어떤 창이 있는것 같아요. 그렇죠?
여러분 비행기 뱅 돌아가면 양쪽으로 창이 내다볼 수 있게 했죠.
그런 눈이 있다는 거야.
19 생물이 행할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하고 생물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도 들려서
20 어디든지 신이 가려 하면 생물도 신의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생물에 하나님이 그 바퀴 가운데 네 바퀴중에 한 가운데 있는 거예요.
제가 짐작해보니까 하나님 외에 아무도 그 안에 같이 탄 분이 없어요. 하나님 혼자 탄 거예요.
21 저들이 행하면 이들도 행하고 저들이 그치면 이들도 그치고 저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22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그러니까 두껑이 이렇게 궁창 형상이 있는데, 그 색깔이 아주 푸른색이라든지 그런 색이 있겠죠.
수정같으니까 크리스탈, 맑은 유리 같은 그런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23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은 두 날개로 몸을 가리웠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리웠으며
24 생물들이 행할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은즉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서면 날개가 밑으로 삭 쳐지고, 갈 때는 날개가 펴지고..
25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27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단쇠는 벌겋게 달아오른 불덩어리 같은 쇠예요.
..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28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그러니까 무지개 같은 어떤 그런 색깔도 있고,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뚜껑이 있는 것 같이 보이죠.
그리고 어떤 물체가 빙둘러서 창이 있는 것 같고, 그 밑으로 네 방향으로 네 생물이 있고 날개가 서로 연해지고 그 밑에는 바퀴가 있는 거예요.
바퀴뿐 아니라 땅에 내릴 때는 송아지 발바닥 같은 다리가 포다리처럼, 포를 보면 포다리가 있죠.
땅에 고정하는 것.. 그런 것 상상해가면서 그려보세요.
조금만 더 보겠습니다. 2장입니다.
[에스겔 2장]
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인자야 이렇게 했는데, 히브리어는 벤 아담입니다. 벤이란 말은 아들이란 말이고 아담은 사람이죠.
사람의 아들아..
2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패역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속을 썩이고 하는 놈들인데, 그런 사람중에 내가 너를 보낸다.
..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
4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얼굴도 뻔뻔하고 마음도 강퍅하다는 거죠.
강퍅하다는 것은 강박관념이 꽉 차서 아무 다른 사람은 말을 안 듣는 그런 상태를 말해요.
..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그러니까 지금 이러한 에스겔을 보내는 하나님의 심정이 편치 않죠?
패역한 족속이야. 전혀 말을 안 들을 사람인데, 듣든지 안 듣든지..
내가 이들을 멸망시킬 때 그냥 말도 없이 멸망시키지 않고 내가 그래도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은 하고 멸망시킨다.
그런 뜻이니까 분위기가 그렇게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8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9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거기 동그라미 하세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
그러니까 에스겔이 전해야 될 말씀은 복된 소식이 아니죠?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예요.
그러니까 그 패역한 족속들에게 보내는 말씀이니까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들 뿐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감정과 예언자의 심정과 그 시대 사람들의 어떤 영적인 상태와 이런 것을 함께 분별해가지고 시야를 상당히 넓혀서 읽어야지, 어디 뭐 잘 된다, 복 준다 그런 말 없는가 해가지고 요절 없는가..
그런 달콤한 구절 없는가..
이런 식으로 읽으면 백년하청입니다. 절대 공부가 안 돼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예언자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예언자는 또 어떤 감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는지 그 당시 민족들은 어떤 영적인 상태에 있었는지..
그런 것을 정확하게 읽어서 차근 차근 읽어가면 어렵지 않게 보시게 될 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실은 3장까지 해야 소명받는 장면이 다 되는데, 시간이 되어서 여기에서 마치는데 꼭 농담이 아니고 집에 가서 에스겔이 어떤 모습을 봤는지 크게 윤곽을 그려가지고 세밀하게 옆에서 본 그림도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 본 평면도도 그려보고, 그렇게 그려보면 하나님이 지구에 다가오셨을 때 에스겔이 그렇게 그런 이상한 물체를 타고 나타난 하나님을 여러 번 만났거든요.
10장까지 그 얘기가 나오는데, 10장에도 보시고, 1-3장을 잘 보시고 스케치를 해 보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 다음부터 공부할 것은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만 보면 되는데, 어떤 데에는 하나님께서 너가 다가갈 때 상대방이 아주 악하고 그럴 때에는 네 입을 닫아가지고 벙어리 되게 해서 말 못하게 할거야.
말할 수 있을 때는 마음대로 말해.
말 해서는 안 될 사람들 앞에서는 말 못하게 벙어리가 되게 할테니까, 그렇게 해서 그 패역한 족속들 앞에서는 벙어리가 되게 해서 말을 못하게 했다는 거야.
저도 어떤 딴 교회에 가면 집회를 편안하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 칭찬하러 온게 아니고 축복하러 온 것이 아니고, 오늘 교회가 잘못되어 가기 때문에 내가 쓴 소리 할려고 왔다. 기분 나쁘면 그만 두라고..
다음 주간에 다시 안 부르면 안 오겠다고..
그렇게 제가 얘기 하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바른 말 해야죠.
교회가 지금 잘못되어 가고 있으면 잘못되어 간다고 말을 해야 되거든요.
계속해서 우리 스스로 속이면 안 되고 정직하게, 에스겔이 바로 그렇게 사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일평생에 그렇게 박수 받으면서 사역한게 아닙니다.
에스겔도 그렇고 예레미야도 그렇고 어렵게 어렵게 사역했는데, 그런 장면들을 쭉 보시면, 오늘도 우리가 이 시대가 인류역사의 종국사적 종말에 다가가는데, 교회가 점점 잘못된대로 가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가 에스겔로부터 듣는 책망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어떤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야 됩니다.
3장은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사로잡힌 자 중에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두령들이 패역하고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얼굴이 뻔뻔하고, 진리에 대해서 감각도 없으면서 하나님을 훼방하고 원망하고 못 믿어하고 그런 시대에 부름받은 에스겔 선지자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에스겔서 안에서 들려주시는 주의 음성을 잘 들어 분별하게 하시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심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지혜로운 백성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먼저 하나님 말씀을 받아 먹고, 사람들에게 가서 전할 때에 듣든지 아니 듣든지 여호와의 말씀을 정직히 바르게 증거하는 신실한 증인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