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생활사 독후감-정수빈.hwp
조선시대 생활사 독후감 과제
역사학과 20121237 정수빈
역사의 뒷이야기, 여성들을 통해 본 조선
-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를 읽고-
목차
서론-저자와 목차소개
본론
이숙희(李淑禧)
이사주당(李師朱堂)
이사주당(李師朱堂)
결론
서론-저자와 목차소개
'조선시대 여성들의 안과 밖, 그 천의 개성을 읽는다.' 저자 정해은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을 역사의 눈으로 바라보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일하고 있다.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아 1990년부터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사연구실에서 활동하면서 조선시대 여성의 삶과 사유방식을 다양한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의 다른 저서들도 조선시대 여성에 관한 저서가 대부분으로 『우리 여성의 역사』(공저, 1999), 『혼인과 연애의 풍속도』(공저, 2005), 『전통 시대 법과 여성』(공편, 2005) 등이 있다. 저자는 『우리 여성의 역사』를 집필하며 토론을 하다가 한 선배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건이 2011년 너머북스를 통해 출판된『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를 집필하게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당시 저자의 선배는 견우와 직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고 한다. 바로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가 고대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적이었다. 견우와 직녀는 밭을 갈고 베를 짜는 생업을 게을리 하다가 벌을 받는데 이것이 고대 사회에서 남성의 역할과 여성의 역할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남성이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것을 중시했다면 여성의 경우 길쌈이 중요한 덕목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 정해은은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넘어선 새로운 해석과 시각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료 뒤에 가려져 있는 시대 상황의 중요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사료에서 말하지 않는 여성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저자는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를 쓰게 되었다.
책의 목차는 이러하다.
목차
머리말 여성 인물을 통해 만나는 조선 사회
1부 논란의 중심에 선 여성들
왜 어우동만 사형을 당했을까?
‘9년 동안 이혼 소송에 시달린 여성, 신태영
2부 여성으로 산다는 것
남편과 일상을 공유하다, 송덕봉
남편의 첩 때문에 속을 끓이다, 신천 강씨
공부가 즐거운 소녀, 이숙희
‘자내’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쓰다, 원이 엄마
한글로 쓴 일기를 남기다, 남평 조씨
3부 학문하는 여성 계보
허난설헌과 남편 김성립을 위한 변론
삶이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김호연재
사회적 유전자를 남기다, 임윤지당
배 안의 열 달 기름이 10년 가르침보다 낫다, 이사주당
부인 가운데 어찌 인재 없으리오, 이빙허각
남편 대신 글을 짓다, 강정일당
4부 왕실 여성 다시 읽기
『내훈』에 담긴 야망, 소혜왕후
여종에서 후궁이 된 여성, 장녹수
그대가 왕이 된 것은 나의 공이다! 문정왕후
왕위를 넘본 여성으로 낙인찍히다, 소현세자빈 강씨
부마는 재혼할 수 없다, 숙정공주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말하겠는가? 혜경궁 홍씨
5부 역사와 기억의 싸움
야사에서 기억하는 여성, 황진이
역사의 진실 그리고 덧붙여진 이야기, 논개
대한민국에서 잊힌 인물, 계월향
기녀의 절개를 다시 생각하다, 매창
기생첩의 자결을 기리는 사회, 한계
6부 전쟁에 직면한 여성의 선택
행주대첩에 참여한 여성들
병자호란기 강화도 최초 순절 여성, 공주 이씨
목차에서 볼 수 있듯 책은 조선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인물별로 정리했다. 책에 등장한 모든 여성의 일화를 이야기 할 수 없기에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인물들을 간추려 요약하려 한다.
이숙희(李淑禧)
첫 번째 인물은 2부의 이숙희(李淑禧)이다. 이숙희의 할아버지는 조선 개국공신의 한 사람인 이직(李稷)의 5대손으로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경상도 성주로 유배를 간 상황이었다. 숙희의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고 공부를 하지 않아 할아버지가 일찍이 숙희를 더 예뻐했다고 한다. 글공부에 재능을 보인 숙희에게 『삼강행실도』를 가르치는 등 숙희의 교육에 힘썼다. 숙희는 글 읽기에 뛰어난 모습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마음씨까지 착했다고 한다. 특히 숙희가 어려서부터 따르던 할머니가 앓아눕자 할머니의 병세를 진단하기 위해 매일 할머니의 대변을 맛보았으며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어 약을 달여 할머니께 드리기도 했다. 숙희의 이러한 모습은 할아버지의 일기인 『묵재일기』에 등장한다. 할아버지는 일기에서 숙희의 이러한 행동들을 '행실이 곧고 굳세다'며 칭찬한다. 하지만 현대의 시각에서 이를 바라보면 너무나도 비이성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저자 정해은은 이러한 숙희의 행동에서 열녀의 길로 가도록 권유하는 조선 사회를 끄집어냈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며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아들이 골칫덩어리가 되자 이숙희의 할아버지는 숙희에게 기대를 건다. 이 때문에 당시 보통의 여자아이들과 달리 교육에 힘썼는데 이는 단지 집안에 다른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지 할아버지가 여성의 교육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숙희가 위험한 행동으로 할머니의 병간호를 했을 때 그것을 걱정하거나 꾸짖기는커녕 대단히 본받아야 할 행동으로 추켜세운 것이다. 숙희의 행동이 열성적인 효를 실천한 행동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열녀 키우기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밖에서 일을 하는 남성들과 달리 집에 있는 여성은 어른들과 남편을 모시는 일에 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의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한 여성의 행동을 통해 열녀에 대한 당시 사회의 인식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사주당(李師朱堂)
조선시대에 임신에 관한 관심은 대부분 태아의 성별로 집중되었다. 아들을 낳아 가문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태아의 성별대신 태아의 인성 교육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 있다. 바로 이사주당(李師朱堂)이다. 이사주당은 1800년에『태교신기』라는 한문으로 쓴 태교 지침서를 내놓았다. 당시 조선의 태교는 주로 여성에게 집중되어있었다. 어머니의 행실이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잡된 것을 보지 말고 잡된 것을 듣지 말고 잡 음식을 먹지 말고 몸을 단정히 해야'했다. 하지만『태교신기』에서 이사주당은 여성의 행실뿐만 아니라 남편의 행실도 강조한다. 태교가 여성의 일이라는 편견을 깬 것이다. '아비 하루 낳는 것이 어미 열 달 기름보다 중하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태교에 주변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기를 권유했다. 임산부의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위해 가족들이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교에 관한 책임을 여성이 아닌 남성도 함께 부담한다는 것이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사주당은 이를 무릅쓰고 공동체가 함께 태교와 임산부의 안정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적용될 수 있는 주장으로 이사주당은 이 글을 쓰기 위해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소혜왕후(昭惠王后)
4부에 들어있는 소혜왕후(昭惠王后)의 이야기도 특히 기억에 남았다. 소혜왕후는 세조의 며느리이자, 의경세자의 아내, 성종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시어머니, 연산군의 할머니였다. 인수대비로 잘 알려져 있는 소혜왕후는 혼인한 지 2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입지가 약해져 궁궐을 나와 고향으로 돌아갔다. 예종 사후 소혜왕후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이 성종으로 즉위하자 12년 만에 국왕의 어머니로 다시 궁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남편이었던 의경세자의 죽음으로 냉혹한 정치판을 맛본 소혜왕후는 스스로를 매우 엄하고 혹독하게 단련시켰다. 그녀는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도 냉철한 모습을 보여 '부인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내훈』을 집필했다. 조선 최초로 여성이 여성의 교육을 위해 지은 책이었다. 『내훈』은 사실상 며느리들을 위해 지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7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언행, 효친, 혼례, 부부, 모의(母儀), 돈목(敦睦), 염검(廉檢)이 그것들이다. 소혜왕후는 좋은 아내란 남편보다는 시부모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부부가 해로하는 첫 번째 조건도 부부사이의 애정이 아니라 시부모에 대한 순종이었다. 이처럼『내훈』은 여성의 교육을 위해 특별히 지어졌다는 점에서는 당시에 매우 진보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반대이다. 여성들의 학문적 교육이 아닌 행실적 교육에 대해서만 쓰였으며 특히 며느리들의 희생과 순종을 강요한다. 소혜왕후는 궁궐로 돌아온 이후 정치적 권력에 있어서 어느 정도 힘을 행사했으며 아들의 정책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이를 봤을 때, 보수적이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소혜왕후도 결코 닫힌 생각을 가진 여자가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여성의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글을 썼다는 것은 조선시대의 사회가 여성들의 자유와 권리에 굉장히 억압적이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이숙희의 효행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강요에서 나왔다고 연결 지을 수 있다.
결론
책에 등장한 25인의 여성 중 두 명만을 언급했지만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의 특별한 삶을 살아갔던 여성들이었다. 대중에게 흔하게 알려진 황진이, 논개, 허난설헌과 같은 인물들 말고도 역사의 조명을 받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이 존재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억압 속에서 통제된 삶을 살았지만 이를 피해 어우동(於宇同)처럼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거나 한글편지로 외부와 소통한 신천 강씨(信川康氏)와 같이 몰래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비록 무명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들이 남긴 저서나 행적은 현재의 우리에게 교훈과 정보를 준다. 저자는 작은 사람을 기억하는 역사를 키우고 싶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이 역사로 바뀌는 힘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작은 사람은 여성이었고 그들의 생활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역사의 또 다른 단면을 볼 수 있는 만큼 이들의 이야기는 소중한 것이다.
첫댓글 같은 여성으로서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여성들을 억압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했을까요? 고려시대때 문제가 되었던것은 불교의 타락인데, 여성억압을 통해 조선이 얻을수있던것이 과연 있었을지 의문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