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 - 새옹지마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지금 가치로는 최선이다... 하지만 10년 후에는 같은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가치는 세월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상황에 매몰되기 때문에 객관적 판단 자체가 어렵다. 의지조차 환경 안에서의 선택이다.
그랬다. 그녀 혜경궁 홍씨는 10살 나이로 구중궁궐로 들어가 궁궐 여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양반 가문에 왕과 사돈이 되는 인생 역전을 노리는 아버지의 거대한 욕망에 동참하여 10살에 세자빈으로 간택된다. 자신은 없어지고 오로지 홍씨 집안의 끄나풀로 그렇게 국사에 참여하게 된다. 새벽 문안을 위해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는 혹독한 궁중 예법 익히기를 체득하는 날부터 시작된 고행은 그녀의 삶 역시 예측불허의 난관으로 들어서는 서막이다.
가문의 영달을 위해 남편 사도 세자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게 되는 그녀는 사도 세자가 헷갈린 판단을 하고 정신의 고통을 겪는데 일조했던 일등공신이다. 영조의 말을 잘못 전달하기 일쑤이고 정보를 조작하고 뒤주에 갇혀 있는 8일 동안 어떻게 할 방도를 전혀 찾지 않는다. 노론의 음모는 왕과 세자를 양립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매끈하게 진행 시키며 세자 제거 작업 10가지를 세워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게 된다. 아버지 홍봉한은 초고속 승진과 영의정에 노론 영수로 군림하는데 만족하지 않았고 사도세자 역시 장인과 다른 소론의 길로 들어서 결국 대립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목숨을 노리는 사람만 있고 한 곳도 마음을 의지할 수 없었던 사도세자는 사면초가에 몰려 무척이나 무섭고 두려웠을 게다.
우여곡절 끝에 왕에 오른 아들 정조. 마음 고생이 컸으리라는 생각이다. 단호했던 정조는 외가 일족에게 모조리 사약을 먹인다. 비극적 사건의 배후를 낱낱이 파헤치는 일을 감행했던 그는 한번씩 뒷뜰에 나가 통곡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다중 인격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그는 화순 능행에서 눈물로 송충이를 씹으며 절치부심 했다. 소론과 손 잡으며 아버지 죽음의 길을 추적해 갔을 한 사내의 아픔이 어루만져진다. 그러함에도 그는 ‘대왕’이라고 불릴 만큼의 업적을 남긴 자신을 뛰어넘은 사람이다. 존경스럽고 사랑스럽다.
앙심을 품고 정사에 참견하는 할머니 정순왕후의 비유까지를 맞춰야 했던 정조. 정순왕후는 15세에 66세 노인 영조의 비로 간택된 인물이다. 영조 며느리 혜경궁 홍씨보다 10살 아래였고 손자인 정조와 7살 차이였다고 한다. 왕실 최고 어른이 중학생 정도 나이였으니... 왕권이 부실한 상황에서 늘상 신권과 헤게모니를 벌이는 것도 피를 말리는 전쟁이었을 것이다. 조선 왕조 내내 신권이 강했다고 하지 않는가. 정조가 25년 왕 위에 있는 동안 늘상 생명의 위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긴 했을까.
5살 문효세자, 9월 그 생모 의빈 성씨,11월 상계군 이렇게 줄줄이 의문의 죽음이 많은 해도 있었다. 어느 왕인들 외척 세력 등쌀에 편했을까만은 궁궐 내에서도 내시나 궁녀가 스파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나 목숨을 노리는 환상에 빠져 있을 확률도 높다. 실제적으로도 왕의 독살에 대한 의문은 항상 있어 왔다.
정조가 가고 모든 계획은 개인의 욕망이 만들어진 일로 치부하여 취소하고 만다. 정순왕후와 벽파들은 화성 건설을 정조의 개인적인 일로 폄하시켜 모든 지원을 끊어버린다. 세금을 엉뚱한 곳에 쏟아붓어 백성을 고생시킨다는 명분 하에 사도세자 추증은 없는 일이 된다. 정조 개혁의 모든 백지화...
혜경궁 홍씨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편을 가문을 위해 제거하는데 힘을 쏟고 그리하여 아들 정조를 왕에 세우지만 결국 자식을 잃고 홀로 늙어가게 된다. 피맺힌 기억 뿐일 게다. 한가한 가운데 ‘한중록’을 썼던 그녀는 노후에 기대했던 가문에 대한 피를 통하듯 비통한 심정을 다룬 ‘읍혈록’을 쓴다. 결국 가문으로 일어선 자 또다른 가문 세력에 의해 팽 되어지는 인생지사 새옹지마의 고통을 겪는다. 그녀 역시 조선 왕조가 유교적 패러다임 ‘가문 세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몰랐을까. 집안의 권세가 영원하리라는 환상. 권력무상이 일장춘몽이라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을까 싶다.
결국 그녀는 유교사회의 희생양이다. 사도세자를 사이코로 몰아 죽였을 때만 해도 참으로 가문을 위해 잘 했다는 주변의 꿀같은 소리를 들었을 게다. 하지만 그녀는 꼭두각시였다. 사도세자는 그녀를 극진히 사랑했지만 그녀는 궁궐의 헤게모니에 개인 의지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또다시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는 도마 위에 놓인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하는 것조차 환경에 휩쓸린 선택일 수 있다. 온전히 객관적이 되기가 힘들다. 이라크에 대해 점령으로 보는가와 침략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른 관점이 나오듯 문제제기가 달라지면 해결책 역시 다른 답이 나온다. 현재의 판단과 10년 20년 뒤의 판단은 분명 달라질 수 있다. 역사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세월이 거울처럼 비추어 준다. 타임머신 타고 10년이나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다들 다른 길을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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