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돌아보면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주 3회의 투석치료를 받으면서 길동인과 수필부산문학회에 열심히 참여했고 ‘수필과 비평사’에서 발간한 수필선『쏟아지는 그리움』으로 열 번째 에세이집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의 전당에서 100여 편이 넘는 영화를 보았다. 사람들은 흔히 영화와 재즈를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인문학처럼 영화예술의 역사와 뿌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에 시작한 긴 겨울방학이 끝나는 예가인문학교실은 새해 3월에 제4기 ‘읽고 생각하고 쓰는 삶’을 이어간다. 그밖에도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초딩 친구들과 매월 세 번째 금요일, 즉 삼김(三金)에는 대학 동기들과의 모임이 즐겁다. 그런 일상 속에서 하루 평균 두세 시간의 책읽기와 고전음악 감상, 걷기운동으로 정신과 육체를 지탱한다. 결코 기죽지 않는 나의 삶은 아내와 가족들의 돌봄과 격려가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나는 정유년(丁酉年) 새해면 일흔다섯이 된다.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다. 지금이 백세 시대라지만 나는 늙고 병들어 몸뚱어리는 곳곳에 탈이 나서 종합병원이다. 나는 매사에 무리하지 않고 물 흐르듯 구름 스쳐가듯 가는 세월에 몸을 맡기려고 마음먹고 여유와 관조의 삶을 살아갈려고 애쓴다. 그러나 타고난 유전자의 놀라운 발현, 비판적 시각과 진보적 관점은 결코 편안 하지가 않다. 오늘도 그런 나의 삶은 떠도는 홀씨처럼 창공을 날고 때로는 움츠렸다가 언젠가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니 기회를 엿보며 생명력을 잇는다. 나는 광활한 우주를 떠도는 아주 작은 홀씨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홀씨는 놀라운 창조성과 예술성, 그리고 사회성을 지니고 찬란한 부활의 봄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한 해 동안 영화에 빠져 영화의 진정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 중에는 토마스 소벅과 비비안 C. 소벅이 함께 지은『영화란 무엇인가』와 루이스 자네티가 쓴『영화의 이해』를 텍스트로 삼았다. 영화의 역사, 형식, 기능을 교과서적으로 살펴보고 촬영과 편집의 이론과 실제를 두루 이해했다. 그 결과 영화는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한 웃고 즐기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비추고 시대정신을 성철하는 창작물임을 깨달았다. 나아가서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대중과 호흡한다. 영화는 문화로서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업신여기고 가볍게 보는 경향은 이승만 자유당 시대에 이어 5.16 군사쿠데타 이후 12.12 군사반란과 5. 18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1980년대 제5공화국 때 국민여론을 정권유지에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려는 정략적 음모 때문이 아니었을까?
역사상 이런 현상은 독재정권이 국민의 감시와 비판을 피해보려고 궁리한 정책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포르투갈에서는 경제부흥을 위해 코임브라대학 살라자르 교수를 경제장관으로 기용했으나 권력의 맛을 본 그는 군사쿠데타에 합류한 끝에 총리가 된다. 폴리페서가 맛들인 권력 중독은 이탈리아 무소리니 독재정권을 모방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 이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평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배기 정책’으로 ‘3F정책’을 택한다. 살라자르의 ‘3F정책’의 요체는 축구(Futbal), 종교(Fatima), 파두(Fado)였다. 이를 1980년대 우리나라 군사독재 정부에서 국민의 정치의식과 사회적 이슈는 물론 반정부 움직임을 순치시키는 수단으로 ‘3F정책’을 모방한 스포츠(Sports), 섹스(Sex), 영화(Screen)를 원용한 '3S정책‘으로 프로야구와 축구단을 구성 운영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20세기에 들어 세계 독재자들이 이용한 무기였다.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는 역기능으로 정의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시대정신을 타파하는 매체로 활용하였다. 로버트 워쇼는 ‘영화를 문화의 일부라고 선언’한 것 이에 대한 항변이다. 나는 한술 더 떠서 영화는 의사소통을 통해 우리의 인생과 진실을 비추는 밝은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어린왕자』를 시작으로『맥베스』,『사일런트 하트』,『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마담 보바리』,『그녀에게』,『스윗 프랑세즈』의 개봉에 이어 올 들어는『아버지의 초상』,『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유스』를 시작으로 이달 들어『업 포 러브』,『에곤 쉴레』,『라라랜드』까지 그동안 관람한 영화 전단지를 정리해보니 모두 102편에 달했다. 그 중에는 러닝타임이 40여 분에 불과한 실험영화와 흑백영화로부터 3시간이 넘는 긴 영상이 가슴에 사무치는 감동적인 영화도 있었다.
그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영화의 전당에서 마련한 러시아의 거장『타르코프스키와 소쿠로프』특별전,『스웨덴, 프랑스, 브라질, 인도, 일본영화제』를 비롯한『21세기 젊은 거장 4인전』등 잇단 기획영화제의 덕분이었다. 영화의 도시, 부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누리는 혜택이었다. 젊은 날은 마감시간이 쫓기는 방송기자생활에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없었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이고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을 팽개쳐두고 밤늦도록 술 마시고 돌아다닌 나의 지난날에 대한 보속의 길이다. 영화제가 있을 때는 아내가 준비한 간식과 커피를 마시며 넓은 로비에 앉아 입장을 기다린다. 여유롭게 영화잡지도 읽고 수영강 하구를 건너다보며 멈춘듯 흐르는 갈물에 비친 정취에 취한다. 어느새 영화의 전당 매표원들과 눈인사를 나눌 만큼 낯이 익었다.
나는 이 겨울에 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주석 달린『월든』과 노르웨이 소설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로의 대하소설『나의 투쟁』, 그리고 에드워드W. 사이드의『문화와 제국주의』, 박홍규의『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앙드레 고르의『에콜로지카』를 부지런히 읽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갑고 고마운 일은 보고 싶은 손녀, 리아가 새해 첫날 아침에 귀국하는 것이다. 나는 리아의 고사리소을 데울 포켓용 핫팩을 준비했다. 리아는 그동안 우리의 유아원 수준인 킨디(Kindergarten)를 마치고 새해에는 유치원 과정인 프리프라이머리(Pre Primary) 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새해에는 만 여섯 살이 된 리아에게 오스카 와일드의『행복한 왕자』를 이야기 해주고 찰스 디킨스의『크리스마스 선물』을 함께 읽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일은 새해 들어 네 믿음의 길잡이 요셉 신부님이 떠나게 되어 그 간단명료하면서도 우렁차고 감동적인 한 편의 동화 같은 강론을 들을 수 없다는 현실이 슬프다. 한해가 저무는 세밑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는 서양속담을 떠올린다. 그렇게 또 한 해가 멀어져 간다. 리아야, 자유가 물결치는 대양으로 떠나자. 희망의 항구, 기적의 땅을 향해 돛을 드높이 올리자.
첫댓글 국장님 신부님은 떠나셔도 올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도 주님의 사랑과 평화 안에서 건강하십시오.
마음의 영성 카페에 자주 방문하시길 청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몬 형제님, Happy New Year!!
정말 대단한 정열이십니다...저도 내년에는 영화감상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영화의 전당을 활용하시시오.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으로 한 해를 보내신 선생님, 새해에도 건강하신 모습으로 이 카페에서라도 뵐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할께요. 무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늘 높은 관심으로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 손녀딸과 즐겁게 시작하심 기쁘시겠어요.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렇게 말입니다.
바람은 언제나 자매님의 등 뒤에서 불고 따사로운 햇살은 항상 얼굴을 비추는 새해 되십시오.^^*
리아와 좋은 시간 보내며 즐거워 하실것 같습니다.
올 한해에도 건강 잘 지키시고, 행복한 시간 함께 하기를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