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21-26 살인하지 말라
예수님은 율법의 정신과 목적을 알지 못한 채, 율법의 조항에만 매여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과 그 율법의 정신과 목적을 교훈하시면서, 그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에서 돌이켜 바른 신앙생활을 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나와 타인이 그리고 세상이 기준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기준임) 오늘 본문은 당시 유대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여섯 번째 계명 즉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바르게 가르쳐 주시는 내용의 말씀이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사람을 꼭 죽여야만 살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믿었기 때문에 자기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일이 없는 의로운 자라고 생각을 하였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는 행동으로 짓는 것도 죄지만, 마음으로 짓는 죄도 죄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으로 짓는 죄를 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죄는 오직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죄라고 생각을 한다. 세상은 그렇다. 마음으로 죄를 지었다고 형벌을 주지는 않는다. 행동으로 지은 죄에 대해서만 형벌을 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다.
요일3:15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라고 말씀하셨다. 죄에 대한 세상의 기준은 넓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너무 좁다.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나는 법 없이 살 사람이다” 말하며 자기 의로움을 말하지만, 마음으로 죄를 한 번도 짓지 않고 살아 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10계명 중 9계명에 보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고 하셨는데 세상을 살아오면서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죄를 생각할 때 의로운 자는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롬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셨다.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음) 그런데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마음으로 지은 죄는 죄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직 행동으로 지은 죄만이 죄라고 생각을 하고 자신들을 의롭게 생각을 하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가식을 책망하신 것이었다.
마23:25-28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말씀하셨다.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 함) 본문 21절을 보면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하셨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배웠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씀해 주셨다. 여기 "옛 사람"은 성경을 기록한 모세나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유전을 전해준 사람들을 가리킨다. '유전'이란 "구두로 전달을 받은..." 이런 뜻이다. ‘유전’이란 유대인들이 조상들로부터 입으로 전달을 받은 것이다.말하자면 ‘유전’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라’ 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하나님의 뜻을 가감하여 훼손하였다. (주의 말씀이 사람이 만든 신앙적 전통)
‘고르반’이 그렇다. 5계명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명하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부모를 공경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들을 ‘고르반’이라는 유전을 만들어 하나님께 드린 것이 되었다면 부모에게 안 드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나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이었다. (부담이 되니까 부담을 줄여 볼라고... - 거룩한 부담감이 있어야 함 -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려면, 거룩한 부담감이 있음 - 둘 다 꼭 해야 함) 막7:7-13에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율법을 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신 예수님이 ’살인하지 말라‘ 는 계명의 참뜻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 이 말씀은 단순히 행위를 떠나 마음의 문제까지 입술의 문제 가리키는 것이다.
2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죽여야 만이 살인죄가 아니라 마음으로 입술로 사람을 미워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죽이는 것도 살인죄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이웃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라가, 미련한 놈)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라가’는 ‘텅 비었다, 무가치하다, 우둔하다, 어리석다, 멍청하다,’ 의미로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욕)인데 이렇게 인격을 무시하는 말도 살인죄에 해당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미련한 놈’은 ‘모레’ 라는 말인데 ‘어리석은 놈’ 이라는 의미로 라가와 거의 같은 모욕적인 말이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정말 죽게 될 것이다. 잠18:21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말씀하신 것이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게도 함)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은 미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로마인들을 미워했고 사마리아 사람들 즉 이방인들을 멸시했다.
또 그들은 세리와 창기들을 미워했다. 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미워했다. 그래서 마음으로, 입술로 그들을 정죄하고, 멸시하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고, 절망하였으며, 죽을 지경이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이렇게 매일의 삶 속에서 살인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의로운 척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을 가증하게 보셨다. 그들의 잘못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아니 죽었는데,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의로운 척하는 모습을 책망하시면서 먼저 죽어가는 자들에게 가서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은 후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가르치셨다. (사람을 살리고 와서 예배를 드려야 예배가 열납이 됨) 23-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신 것이다. 이웃에게 마음으로, 입술로, 지은 살인죄를 회개하고, 형제와 화목을 회복한 후에 (관계 회복이 먼저...) 하나님 앞에 와서 예물을 드려야 그 예물과 예배를 받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나를 점검해 보자)
만약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주의 말씀을 무시하면 안 됨 - 노가 아닌 예스로 반응해야 함 ) 25-26절에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 화목은 서로 사랑할 때, 맺어지는 사랑의 열매인 것이다. 오늘 주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혹시 나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처럼 그렇게 내가 정해 놓은 신앙적 전통에 매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절망으로 몰아가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면서 그동안 잘못한 나의 신앙생활을 회개하고, 다시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반응하여 이웃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