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길지만.
내년이면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지 10년이다. 이제 10년이니 학생인권의 문제에 대해 한 회기를 넘어서는 변곡점이 도래할 듯, 아니 도래해야만 하지 않겠나?
길지만 직접 인용한 이유는 권리자-침해자 모델에서 공동협력자 모델로, 인권침해 통제 모델에서 인권활동 지원 모델로, 인권 선언 모델에서 인권 제도 모델로 넘어가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에 매우 공감하기 때문이다.
길다면, 초록만 보시길 권한다.
<초록>
"인권이라는 것은 법조문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지켜야 할 규칙의 묶음이 아니며, 오늘날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적어놓은 규정은 세계의 법문 곳곳에서 찾아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권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실현이며, 자신과 타인을 향한 존중과 성찰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조례에 몇몇 권리를 나열하고 그것이 제정되면 자연스레 권리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학생인권에 관해 기존의 제정된 조례의 법리적 검토를 통해 문제점 지적 및 향후 조례를 제정하려는 지방자치단체에 방향성에 대해 몇 가지 정책적 제언을 하였다.
첫째, 교육현장의 모든 구성원과 관계인들이 실천적으로 노력할 수 있도록 권리자-침해자 모델이 아니라 공동협력자 모델(학생, 교원, 학부모, 교육행정기관, 지역사회 등)을 기본 관 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하였다.
둘째, 인권을 일상화하고 인권 침해의 순간보다 그렇지 않은 순간을 더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조례가 통제보다는 제도적인 지원을 통해 인권을 조성하고 형성하는 역 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책무가 학생, 교원, 교육행정, 지역사 회, 학부모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1) 권리자-침해자 모델에서 공동 협력자 모델로
학생인권조례는 궁극적으로 타인의 인격과 인권을 존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현장의 의식과 문화를 개선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지향하는 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가 정착된 교육현장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는 학생, 교원, 경영자/설립자 등 교육현장의 구성원과 학부모, 교육청,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인 모두의 문제이다. 특히 일차적으로는 교육현장 구성원 사이에서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가 형성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제2장에서 언급했듯이 학생인권은 통상적으로는 학생이 가지는 인권을 의미하겠지만, 이러한 학생인권조례의 방향성을 고려한다면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를 형성하는 것과 밀접히 관련된 모든 인권문제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인권을 바라보는 관점도 교육현장 내에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사람과 침해당하는 학생이라는 전제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경험적으로 고찰하면,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서 학생은 미성숙한 존재로 간주되어 성숙한 존재가 가지는 인격적으로 대우받을 권리를 제한받아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육현장에 존재했던 그런 인식과 관점을 어떻게 민주시민사회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개선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은 인권을 침해받고 다른 교육현장의 구성원은 인권을 침해한다는 전제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공권력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교육현장의 구성원의 의식을 교정하겠다는 함의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함의가 있는 학생인권조례라면 그 자체 인권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를 진정으로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는 진정으로 그 의미를 납득하고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켜야 비로소 형성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고려하여야 할 관점은 교육현장의 구성원을 권리자와 침해자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이 협력하여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를 형성할 주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아가 학부모, 교육청, 지역사회도 마찬가지고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를 교육현장에 형성할 주체로 관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현재 제정하려는 인권조례가 학생인권조례라는 명칭을 가질지라도 그 함의는 학생인권을 넘어선 교육현장 전체의 인권문화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본 연구에서는 교육현장의 모든 구성원과 관계인들이 실천적으로 노력할 수 있도록 권리자-침해자 모델이 아니라 공동협력자 모델(학생, 교원, 학부모, 교육행정기관, 지역사회 등)을 기본 관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2) 인권침해 통제 모델에서 인권활동 지원 모델
학생인권조례에 있어 학생인권을 선언한 후 그 학생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학생인권에 대한 침해가 있을 경우 그 침해자를 공권력으로 제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는 법률 보다 하위의 법령이기 때문에 공권력 제어의 방식으로 형벌을 사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 개개의 경우에만 이를 통제하는 방식은 대증요법은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인권개선을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인권은 일상의 규범이기 때문에,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 순간보다 그렇지 않은 순간에 어떻게 준비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인권을 이유로 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권은 억압이 아니라 자유이며 해방이라는 것과 모순될 수 있다. 따라서 인권을 일상화하고 인권 침해의 순간보다 그렇지 않은 순간을 더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조례가 통제보다는 제도적인 지원을 통해 인권을 조성하고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령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에는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것도 있지만, 예산과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제도적인 틀을 형성하는 것도 있다. 인권에 있어서 특히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 ‘금지’ 이외에 인권문화가 조성되도록 제도적으로 ‘지원’의 틀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특히 교육행정기관이나 지역사회가 해야 할 책무의 변경이 필요하다. 즉,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이를 통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를 넘어 광범위한 인권문화를 학교 내에 조성하기 위해, 인권교육지원, 인권컨설팅지원 등의 인적 지원과 인권활동을 위한 물적-경제적 지원 등이 교육청과 지자체에 의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조례에서 이들 기관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실효성 있는 지원을 위해 외부 인권전문가 및 교육전문가와의 연계 및 자체지원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3) 인권 선언 모델에서 인권 제도 모델로
학생인권조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는 학생인권의 핵심 내용을 선언하는 이른바 ‘권리장전’ 부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권리장전’은 제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국제법상의 인권이나 우리 헌법상의 기본법 및 이에 근거한 교육기본법 등 법률에서 인정하고 있는 원리들을 구체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부분은 적다. 오히려 이런 원리들은 아무리 구체화하더라도 추상적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실질적으로 학생인권을 통해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를 조성하려면 그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학생인권조례나 제정 작업 중에 있는 학생인권조례안 등은 제도적인 부분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한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법령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지역의 예산과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인권지원 모델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해서도, 지원을 위한 예산과 인력의 지원, 그리고 제도의 마련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에서 그와 관련된 조항을 두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인권 친화적 교육문화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책무가 학생, 교원, 교육행정, 지역사회, 학부모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인권책무성의 선언과 실현) 그럼으로써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관용과 공존을 실천할 수 있는 학생상은 인권과 별도의 책무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인권으로부터 유래된 그리고 인권문화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할 수 있다."
이봉림.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법적 고찰(2017)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