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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8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생명의 회복자
룻4:13~17
<고향이 뭐길래>
내일이 추석입니다. 지금 전국의 도로는 차들로 꽉 차있습니다.
고향으로, 고향으로 향하는 차량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고향으로 갑니까?
고향에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조상님들이 계십니다. 고향은 우리의 뿌리와 같은 곳입니다.
고향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습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있어요!
저는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한 가지 의문 나는 것이 있어요!
사람들이 50년을 살고, 60년을 살고, 70년을 살아왔어요.
그런데, 고향에서 산 기간은 길어야 20년입니다. 대부분 10년 안팎입니다.
나머지 30년, 40년, 고향 떠나 타향에서 살았습니다. 고향에서 산 기간보다 훨씬 더 길어요!
그런데도 고향을 못 잊어요, 그리워합니다. 고향을 찾아갑니다. 왜 그럴까?
이것을 회귀본능이라고 합니다.
회귀본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고기가 있어요! 연어입니다.
연어는 강에서 부화되어 바다까지 나갔다가, 죽을 때가 되면 알에서 깨어난 강으로 되돌아와요!
어떤 어류학자가 연어 알을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 상류에서 부화를 시켰어요! 심술궂지요?
세계에게 제일 큰 폭포 나이아가라 폭포! 그 위에서 연어를 부화시켰어요.
수천, 수만 마리 연어가 알에서 깨어나 강물을 따라 바다까지 나갔어요.
이들이 과연 나이아가라 폭포! 치고 올라올 수 있을까?
산란 시기가 되었어요! 연어들이 나이아가라 폭포 밑에 당도했습니다.
떨어지는 폭포 줄기를 타고 오르기 시작합니다.
힘차게 차오르다가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에 바닥까지 떨어입니다.
어떤 놈은 바위에 머리를 부딪칩니다. 대부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꽤 많은 수가 폭포 위까지 올라왔어요!
그리고 자기가 알에서 깨어난 그곳에 알을 낳고 죽습니다. “고향이 뭐길래?”
한국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이유! ‘부모님과 조상님들이 계신다. 나의 뿌리다!’
어린 시절 유년기의 추억이 있다. 유년기의 추억! 유년기! ‘자아가 형성’되는 기간이에요!
자의식이 싹트고, 처음으로 어떤 장소에 ‘자신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합니다.’
“여기는 내 고향이다!” 고향은 평생 동안 바꿀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고향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고향!” 선물로 주셨어요!
왜 하나님이 고향을 선물로 주셨을까? 그게 뭐라고 선물로 주시는가? 뭐 대단한 거라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귀소본능과 고향!’ 선물로 주신 이유가 있어요!
잘 들으시고 은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오미가 고향을 찾은 이유>
구약 성경 룻기! 사람의 ‘귀소본능과 고향’을 다루고 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가 살았습니다. 이 가정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고향은 이스라엘 나라, 베들레헴입니다.
고향에서 살던 중, 기근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났습니다.
마치 한국 사람들이 서울로, 서울로 떠나는 것과 비슷해요!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요단강 동쪽 모압 땅으로 갔어요. 거기서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떴습니다.
두 아들을 장가보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또 세상을 떠났어요!
남편 죽고, 두 아들 보내고, 나오미와 며느리 둘이 남았습니다.
세 과부가 할 거, 뭐가 있겠어요? 이제 이들은 각자 고향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세 여인이 고향을 찾아가는 모습이 룻기 1장에 나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의 고향은 베들레헴! 두 며느리의 고향은 모압!
뿔뿔이 흩어져야 할 순간입니다. 한 며느리가 먼저 친정 마을 모압으로 떠났습니다.
시어머니는 당연히 이스라엘 베들레헴으로 떠날 차비를 합니다.
그런데, 한 며느리 ‘룻’이 자기 고향으로 안 가고, 시어머니 고향으로 따라가겠다는 거예요!
왜 자기 고향 버리고, 죽은 남편의 고향, 시어머니의 고향으로 가겠다고 합니까?
아까 제가 귀소본능!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말씀드렸어요!
그렇다면 룻이라는 여인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귀소본능!’ 포기하는 거냐?
여기서 우리는 ‘귀소본능!’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고향은 사람들의 유년기,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를 보낸 곳입니다.
자기 주변 환경에 처음으로 의미를 부여했어요!
여기는 우리 동네다! 여기는 학교다! 고향이다! 내가 처음으로 의미를 부여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맨 처음으로 추억을 만들었어요! 뭐든지 ‘맨 처음’ 소중하지요?
‘처음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이것이 귀소본능의 뿌리예요!
이 귀소본능!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있어요!
하나님과 처음 만난 곳, 처음 다녀 본 교회!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그 장소, 그 순간!
“하나님과의 맨 처음 추억!” 너희가 이것을 기억해라!
하나님과의 첫사랑! 기억하고 그곳으로 되돌아가라!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귀소본능!’ 선물로 주신 이유인 줄 믿습니다!
“주님과의 첫 사랑이 있는 그곳, 그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자기 고향 버리고 시어머니를 따라, 시어머니의 고향으로 가겠다는 룻!
룻1:16 “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
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에게 “귀소본능” 하나님이 주신 신앙에 따른 “원초적 본능!”입니다.
신앙의 원초적 본능에 따른, 신앙의 귀소본능!
육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귀소본능! 룻은 그거는 버렸어요!
육적 귀소본능을 버리고, 영적 귀소본능에 따랐어요! 할렐루야!
우리도 늘 육신의 고향, 육적 귀소본능만을 고집할 일이 아닌 줄 믿습니다.
영적인 고향! 영적 귀소본능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고향!
그 고향 찾아 나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오미의 귀소본능>
시어머니 나오미의 귀향길은 룻과는 조금 다릅니다.
육적 귀소본능, 영적 귀소본능이 일치하는 경우가 있어요!
나오미의 고향 베들레헴! 육적 고향이면서 또한 영적 고향입니다.
이것이 신앙 2세대, 3세대들의 축복입니다.
1세대 신앙인, 자기 세대에 주님 영접한 사람들은 육적 고향과 영적 고향이 다릅니다.
그런데, 그 후로 2세들은 육적 고향, 영적 고향이 같아집니다. 이것이 대단한 축복이지요!
나오미가 남편을 잃었습니다. 두 아들도 잃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찾아 나선 길! 육적 귀소본능이면서 영적 귀소본능이에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나오미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그 뜻입니다.
나오미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하나님의 섭리로 담담하게 수용했어요!
두 며느리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 권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율법을 떠올립니다.
이스라엘 율법은 아들 없이 남편이 죽으면, 계대제를 통하여 아들을 낳게 해 주어라!
그런데, 나오미가 볼 때 도저히 자신이 없어요!
두 며느리에게 아들을 낳게 해 줄 능력이 자기에게는 없어요! 그래서 ‘친정으로 돌아가라!’
나오미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도, 고향 사람들이 “네가 나오미가 아니냐?” 했습니다!
이때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마세요!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자신을 한 번도 부인하지 않았어요!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룻1:21)
나오미는 뼛속까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불행이 닥쳤다고 해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법, 생명의 법, 성령의 법에 따라 살아갑니다.
며느리가 처음 보리밭에 나가서 이삭을 주워왔어요! 그때도 보리 밭 주인을 축복합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이 주워왔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2:19)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2:20)
복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화복 관장하신다!
환란 중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하나님 품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힘들수록 말씀에 의지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벳을 품에 안은 나오미>
세월이 흘렀습니다. 며느리 룻! 보아스의 아내로 짝을 지어 주었어요.
하나님은 ‘보아스와 룻!’에게 아들을 허락하셨어요! 그러면 이 아들, 누구의 아들이 됩니까?
이스라엘 율법, 기업 무를 자, 여기에 계대제라는 법에 따르면, 이 아들은 나오미의 아들입니다.
(17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
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우리 식으로 따지면, 손자입니다. 더 엄밀히 따지면 손자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법, 이스라엘 율법은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세상의 법과는 다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으로 삽시다!”
<설교 제목, 생명의 회복자>
엊그제 인터넷에서 봤어요!
탈렌트 박원숙씨 이야기가 나왔어요!
박원숙이라는 한 여배우, 어찌보면, 나오미 만큼이나 기구한 인생을 사는 거 같아요!
결혼한 아들이 손녀딸 하나 낳고, 교통사고로 숨졌어요! 10년 전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재혼 했어요! 손녀딸을 데리고 재혼했기 때문에, 연락이 끊겼답니다.
재혼한 며느리에게 누가 될까봐 연락을 못하고 산대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십시오! 전혀 딴 판입니다.
며느리 룻이 낳은 아기! 나오미 품에 안겼어요. 동네 여인들이 와서 축복해 줍니다.
품에 안긴 아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해 주기를 기도합니다!”(14절)
그리고 15절에서 뭐라고 축복합니까?
(15절)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동네 여인들이 와서 하는 말입니다. 이 말 중에 “이 아기는 너의 생명의 회복자다!”
베들레헴이라는 마을, 여인들의 축복이 참 대단합니다. 그렇지요?
나오미의 품에 안긴 아들을 보고, “이 아기는 너의 생명의 회복자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에요!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 잃고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회복자’ 좋게 받아들이면, 큰 위로가 되지만, 자칫 상처가 덫날 수도 있어요!
나오미의 고통, 나오미의 고난! 누가 알겠습니까? 아무도 이해 못합니다.
그런데, 베들레헴 마을 여인들이 감히 이렇게 말했어요! “생명의 회복자다!”
어찌 이렇게 말 할 수 있을까? ~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회복자! 그렇지요, 하나님은 생명의 회복자예요!
왜 하나님이 생명의 회복자입니까? ~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주이십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당연히 생명을 회복시키는 ‘생명의 회복자’인 줄 믿습니다!
생명의 회복자이신 하나님이 나오미에게, 이 아기를 ‘생명의 회복자’로 보내셨어요! 할렐루야!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합니다.
그래서 욥은 그렇게 고백했어요!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로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 계산으로 하면 안 맞아요,
남편, 아들 둘, 거두어갔어요. 그런데 며느리 룻을 통해서 아들 하나 받았어요!
인간적 계산은, 셋 잃고, 겨우 하나! “이것이 어떻게 생명의 회복이냐?” 아니다! 할 겁니다.
그러나 나오미!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입니다.
마을 여인들이 “이는 생명의 회복자로다!” 그랬을 때 어떻게 했어요? “아멘!” 했어요!
(16절)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아멘! 하고 기쁜 마음으로 오벳의 양육자가 됩니다.
요즘 나이든 할머니들, “손자 손녀 키워주세요!” 기겁을 하고 달아납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즐거움으로, 오벳의 양육자가 되었어요!
이것이 나오미의 신앙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회복자이십니다!
상처의 회복자! 아픔의 회복자! 슬픔과 고통의 회복자! 그리고 생명의 회복자!
회복자이신 하나님! 생명의 회복자이신 하나님!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합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생명의 회복!
하나님은 하시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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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가 '생명의 회복자'라는 제목의 설교를 할 수 있다니, 그저 주님의 은총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