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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내 노래에서 느끼지 못하는가? 내가 하나이며 둘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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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ko bilota
Johann Wolfgang von Gothe
Dieses Baum's Blatt, der von Osten
Ist es Ein lebendig Wesen?
Solche frager zu erwiedern |
은행잎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내린
둘로 나뉘어진
이런 의문에 답을 찾다가 |
1815년 9월, 괴테(Goethe)는 그의 연인 마리안네 빌레머(Marianne Willemer)에게 사랑의 징표로 시 한편과 함께 은행잎 하나를 주었다. 그녀는 괴테에게 한 편의 시로 화답했다. 이렇게 괴테와 그녀 사이에 아름다운 시를 주고받는 일이 계속되었다. 후일 괴테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마리안네의 시 세 편을 <서동시집:West- ostlichen Divan>에 실었다.
여기에 그 사랑의 내막을 실어 본다.
1815년 9월 18일, 괴테는 게르버뮐레(Gerbermuller)와 프랑크푸르트(Frankfurt)를 떠나 서둘러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로 갔다. 그곳에서 어떤 동양학자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빌레머의 아내 마리안네를 만났다. 괴테는 마리안네를 쉴로스가르텐(Schlossgarten)의 은행나무로 데려가 은행잎 하나를 보여주었다.
"둘로 갈라진 하나인지, 혹은 하나 안에 결합된 둘인지?"
이별의 날인 9월 26일, 빌레머 부부와 괴테는 하이델베르크 공원을 산책했다. 괴테는 마리안네를 옆에 있는 우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 우물 옆 모래에 나뭇가지로 줄라이카라는 시를 썼고, 그녀와 헤어졌다. 괴테는 그녀를 다시 만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괴테는 다음날, 위의 시를 써서 프랑크푸르트로 보냈다. 수신인은 마리안네였다.
전체 3연이며 각 연이 4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동방에서 전해진 신비한 식물, 은행나무의 비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비밀은 은행나무의 속성과 관련된 것이나, 이것을 시인은 인생과 사랑의 교훈으로 새기고 있다.
쉴로스가르텐에 있는 괴테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겉보기에 잎이 있어 활엽수같지만, 활엽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침엽수도 아니다. 과거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이 희귀한 나무는 암수가 따로 분리되어 있다. 갸름하게 위로 솟은 수컷 나무 주위에 소담하게 퍼진 자태의 암컷 나무가 마주하고 있는데, 수컷 나무의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암컷 나무의 씨방에 수정이 된다.
은행나무는 갈라진 독특한 잎 모양과, 암수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특성 때문에 여성과 남성,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의 변증법적인 상징이 되어 있다.
또한 은행나무는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이 분화되던 고생대 이래로 단 한번도 형질을 바꾸지 않고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이기도 하다. 고식물학자 앨버트 스튜어트 경은 은행나무를 일컬어 끝없이 무한한 과거의 비밀을 간직한 세계의 나무라고 했다.
괴테는 이 은행나무의 특질을 동양과 서양의 만남, 남성과 여성의 사랑으로 치환하여 연인에게 말해주고 있다. '둘로 나뉘어진 한 생명체'라는 말은 괴테와 마리안네가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사이이면서도, 서로가 극진히 연모하는 사이임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가까운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한 몸이 되지 못하는 은행나무처럼, 괴테와 마리안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은 사랑의 행위로 서로 하나가 된다. 하지만 괴테는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는 둘만의 생활이 어쩔 수 없는 고독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괴테와 같이 분리되고 싶어하면서도 둘 안에서 완전한 하나로 이해되기 위해 나누어져 있는 은행잎처럼, 하나이면서 둘,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이 시의 의미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마리안네는 하이델베르크로 와서 괴테를 놀라게 했고, 시 한편을 그에게 전했다. 그를 만나 행복하고 기쁨에 차서 지은 시였다.
줄라이카
이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나에게 전해주는 동풍의 기쁜 소식인가요?
동풍의 시원스런 날갯짓은
내 마음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져 줍니다.
동풍은 먼지와 애무하며 놀다가
먼지를 가벼운 구름으로 날려보내고
즐거운 벌레 떼들을
안전한 포도잎으로 몰고 갑니다.(하략)
그녀는 또한 하이델베르크를 떠나면서 이별의 고통을 담은 노래를 썼다.
줄라이카
아아. 서풍이여, 그대의 젖은 날개가
한없이 부러워요!
이별의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내 소식을
그이에게 전할 수 있으면,
그대의 날갯짓은
내 가슴에 그리움의 파문을 잔잔히 일으키니
꽃도 눈도 숲도 언덕도
그대 숨결에 눈물로 젖어 있네.(하략)
이 두 편의 시는 괴테의 정서를 깊이 흔들었다. 마리안네는 두 개의 감정을 두 개의 편지로 전달하면서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상념을 괴테에게 전했다. 사랑의 고백에 대한 시문학적 유희를 넘어서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의 노래가 이렇게 창작되었다.
괴테가 1819년 보낸 편지
그 즈음에 괴테는 푸르크스탈(Joseph von Hammer-Purgstall)이 번역한 <모하메드 쉠쉐드-딘 하피스의 시집:Der Diwan von Mohammed Schmsed-din Hafis>(1812-1813)를 입수했다. 14세기경 이란의 시인 하피즈의 시집에 나타난 동방의 신비스러운 자연과 건강한 관능의 희열이 괴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괴테는 이에 동양과 서양의 사고와 정서를 합일한 또 다른 시집을 구상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과 마리안네와의 사랑의 시를 담았다. 괴테와 마리안네는 하템(Hatem)과 줄라이카(Suleika)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시의 주인공이 되었다.
괴테는 이 시집의 창작과정을 의식적으로, 유희를 즐기듯이, 비밀에 묻어두었다. 그 역시 처음에는 이 시문학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지 알지 못했다. 그의 모든 생각과 감정의 중심이 그렇게 그를 나아가게 했고, 그의 귀여운 여인이자 뮤즈, 공동저작자인 마리안네 빌레머 또한 알 수 없는 그러했다. <서동시집>은 1819년에 출판되었다. 멘델스존, 슈베르트, 그리고 슈만이 이 시에 곡을 붙였다.
마리안네는 괴테와 계속 편지를 교환했다. 그러나 만남은 한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 괴테는 65세가 되었고, 마리안네 역시 초로(初老)의 여인으로 변모하였다. 1824년 8월 25일, 그녀는 게르버뮐레에서 '당신의 생일파티에 부쳐'라는 편지를 괴테에게 보냈다.
"마인(Main)강은 암청색입니다. 구름은 녹색에 가깝고, 산은 보랏빛입니다. 그 당시와 그렇게 똑같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에 잠겨 의미를 해석하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한 사람이 빠져 있군요. (중략) 나를 사랑으로 기억해주세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동봉한 시가 증명해 줄 거예요."
(전략)
먼 동방에서 건너와
'西東 정원'에 뿌리내린.
나에게 비밀스런 의미를 주고,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저기 저 나뭇잎.
(중략)
나를 에워싸고 있는 너희 보이지 않는 울타리여
신비롭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마법의 원 안에
즐거이 가라앉아라, 감각과 생각이여,
여기서 나는 행복했고, 사랑했고, 사랑받았노라.
두 사람의 만남은 이제 영혼과 정신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인생의 행복이 노년의 그림자와 함께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음도 알고 있었다. 함께 할 수 없었기에 사라져 버린 지난 날들에 대한 회한, 그리고 그 사랑의 애틋함이 두 사람의 기억과 여러 편의 시에 남았다.
스타틀러(Hubert Sattler) 작, <하이델베르크 성> 괴테와 마리안네가 이 곳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후일 괴테 연구가 보이트(Ernst Voight)는 이 마리안네의 사랑의 시를 가리켜 독일 여성이 창작한 가장 아름다운 시문학이라고 극찬하였다.
괴테는 1832년 2월 29일, 그동안 마리안네에게서 받은 시와 1년 전에 쓴 시를 소포로 마리안네에게 보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쓴 시의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나의 사랑의 눈앞으로
이 편지를 썼던 손에게로
언젠가 뜨겁게 갈망하며
보냈고 받았던
편지가 솟아난 가슴으로
이 편지들을 보내야만 하오.
항상 깊은 애정이 담겨 있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증거여.
괴테가 세상을 떠난 후 한참이 지난 1860년 늦가을, 일흔 여섯 살의 마리안네는 게하이델베르크를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괴테가 자신의 이름을 썼던 쉴로스가르텐의 우물가에 섰다. 그리고 괴테가 지팡이로 모래에 시 한편을 적어 준 기억을 떠올렸다. 그 옆에 은행나무가 있었다. 괴테가 은행잎을 따서 주던 그 나무였다.
마리안네는 문학가 헤르만 그림(Hermann Grimm)에게 <서동시집>의 비밀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간의 사연과 기록물을 그에게 전했다. 그리고 괴테와 자신이 그 시집에 남긴 그 비밀들을 세상에 공개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림은 마리안네의 사후 10년 뒤, 괴테의 사후 32년이 되는 해, 그리고 서동시집이 출판된 지 50년이 되는 1869년에야 비로소 연구서 <괴테와 줄라이카>를 집필했다.
남녀가 여러 차례에 걸쳐 화답시를 교환하는 경우는 문학과 예술의 역사에서 가끔 찾아볼 수 있다. 단테(Dante)와 베아트리체(Beatrice), 슈만(Schumann)과 클라라(Clara)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영도와 유치환의 화답 편지가 있다. 정운(丁芸) 이영도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문학가 청마(靑馬) 유치환을 연모해 평생 홀로 살면서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고 받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으나 그 연정은 순수했고 간곡한 마음은 시간과 세태를 뛰어 넘었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이영도의 시 <탑>)
그러다가 유치환은 부산으로 전근갔고, 얼마 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영도는 그를 마음에 묻고 여생을 살다가 1976년 그의 곁으로 갔다. 후인들은 유치환의 유품에 들어 있던 수많은 연서들 중 200통을 추려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출판했다.
괴테와 마리안네, 이영도와 유치환은 세상의 통념을 뛰어넘는, 순수하고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 사랑의 대가는 컸다. 세인들의 질책과 험담을 마음으로 삭이며 그들은 어렵고 힘들게 수십 년 간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하고 헤어졌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 연애의 사연들은 영롱한 문학으로 탄생되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세상의 그 어떤 사랑보다 더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