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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의 악함을 드러내신 예수님(15-20)
악한 자는 간계로 행하나 주님의 사람은 참되고 진실해야 합니다. 말과 행동에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대로 하나님만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간교한 계략에 넘어가지 않으실 것입니다.
15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15-20)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려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논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은 세금이라는 질문으로 예수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확신과 계획 가운데 예수를 급습했습니다.
적대자들은 로마의 가이샤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세금은 17:24-27의 성전 세금이 아니라 로마에 바치는 세금입니다. 가이샤는 율리우스 가이샤가 사용한 로마 황제의 칭호입니다. 이 칭호는 특정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로마 황제를 가리킵니다. 예수 당시의 황제는 티베리우스였습니다(주후 14-37년 재위). 이들은 이방 정부와 통치자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에 합한 것인지 묻습니다.
왜 세금으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세금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로마의 법질서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적대자들은 성전 정화 사건과 결부시켜서 예수님을 선동자로 로마 당국에 고발할 수 있습니다. 세금 징수에 동조하면 로마의 통치에 반감을 가진 백성은 예수를 지지하던 데서 등을 돌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백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예수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사람들의 악함을 간파하십니다(참조. 9:4; 12:34; 16:1; 22:18). 마치 사탄이 시험한 것과 같이(4:1-11) 이들은 예수님을 제거할 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험하는 이들을 위선자들로 부르십니다. 마태복음에서 중요한 개념인 위선은 불일치나 모순을 뜻합니다. 이들은 세금 관련 질문을 함정에 빠뜨릴 올가미로 사용하면서도 예수님을 선생으로 부르면서 배우는 척 묻기에, 이들의 언행은 마음의 숨은 의도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세금으로 내는 주화를 보여달라고 하자 한 데나리온을 가져왔습니다. 로마의 데나리온(라틴어로 denarius)은 신약에서 가장 자주 사용된 주화입니다(마태복음 18:28, 20:2이하; 22:19; 마가복음 6:37; 12:15; 14:5; 누가복음 7:41; 10:35; 20:24; 요한복음 6:7, 12:5; 요한계시록 6:6). 세금으로 내는 데나리온은 당시의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의 형상과 그에 관한 글이 새겨진 주화를 말합니다. 제국은 황제의 형상(얼굴과 글귀가 새겨진 주화를 황제 숭배를 장려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의 유대 통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나리온으로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일신 사상을 가진 유대인들은 황제를 하나님의 아들과 대제사장로 묘사하는 주화를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 왕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을 소지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한다고 여겼습니다. 신으로 표현된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것은 두 번째 계명에 어긋나며(출애굽기 20:4), 하나님 외에 하나님의 아들 또는 신으로 불리는 황제를 지칭하는 것은 첫 번째 계명에 어긋나는(출 20:3) 우상숭배였습니다.
이처럼 민감한 상황을 알았던 로마 당국은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금화나 은화는 타국에서 주조해서 팔레스타인에서 인두세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외의 상업 활동이나 일반 생활에서는 황제의 형상이 없는 동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화를 가져오라고 하시자, 바리새인들은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데나리온을 가져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주화를 소지하고 있었던 장면은 역설적입니다. 백성은 바리새인들이 로마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주화를 사용하지도 소지하지도 않는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해 주화를 달라고 하십니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21-22)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모든 이 세상의 호라동 중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나는 것이 없기에, 우리는 삶의 각 영역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전인적인 신앙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십니다.
21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21-22)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화에 새겨진 형상과 글귀가 누구를 가리 키는지 질문하십니다(21). 이 주화에는 당시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의 형상과 그에 대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주화의 한 쪽 면에는 면류관을 쓴 황제 티베리우스의 형상과 함께 둘레에 TI CAERAR DİVI AVG F AVGVSTVS(티베리우스키 카이사로 존엄자, 신적 존엄자의 아들)라는 글귀가 새겨졌고, 반대쪽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 새겨졌습니다. 여인은 평화(PAX)의 현현을 상징적으로 새겨졌습니다. 황제의 아내인 ‘리비아’로 추정됩니다. 여인의 모습과 함께 PONTIF MAXIM(‘최고의 사제’ 또는 ‘최고의 대제사장’)이 새겨져 있었다. 티베리우스는 주후 15년 3월 10일에 대제사장이 됐습니다.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리킬 때나(고린도전서 11:7; 고린도후서 4:4; 골로새서 1:15; 3:10) 우상숭배와 관련된 사물이나 사람을 나타낼 때(로마서 1:23; 요한계시록 13:14-15) 사용됩니다. 본문에서 형상은 주화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상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가이사의 것들’이라고 말한다. 주화의 주인은 황제이므로, 이 주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이 황제에게 속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왕이라고 외치던 자들에게 ‘가이사의 것’이라고 말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이사의 것들’이나 ‘하나님의 것들’에서 ‘∽ 것들’은 수식하는 명사에게서 받은 혜택이나 관심을 뜻합니다. 가이사의 것들과 하나님의 것들은 수혜를 입은 자들이 응답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21절의 ‘카이(Kai)’는 단순한 두 내용을 연결해주는 ‘그리고’의 의미 그 이상이며, 본문의 강조점을 고려할 때 역접 접속사 ‘그러나’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합니다(시편 24:1; 이사야 41 :2). 사람뿐만 아니라 제국이나 식민지 모두 하나님께 속합니다. 로마의 황제는 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충성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황제 역시 하나님께 속한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관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을 황제의 권위로 제자들에게 요구한다면 그들은 가이사에게 돌아갈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면, 즉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돈을 카이사르에게 세금으로 내는 것이 옳다면, 더 확실한 사실은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충성해야 하는 유일한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하늘나라의 백성은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면서도 하나님을 유일하게 섬길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6:24). 국가에 대한 충성을 명목으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소홀히 여기는 일은 하늘나라 백성이 지지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국가에 무조건적으로 충성을 맹세하면서 국가의 정책과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 역시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백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거나 우매화할 때, 하나님의 백성은 단호히 그 길이 옳지 않음을 파악해야 합니다.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교훈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돌려지지 않는 권력과 영광은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권력에 아부하고 교회의 구성원들이 권력과 부를 추구할 때 세상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동등하게 보기보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더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황제에게는 그가 만든 동전을 돌려주면 되지만, 하나님께는 인격과 생명 전체를 드려야 합니다. 세금을 바쳐야 할 것으로 알면서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주저한다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섬김과 사랑을 받으실 분이라고 고백하며 헌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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