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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홍언충(洪彦忠) 내면의 진실을 찾아 깨달음을 노래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는 거제도 유배객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유배작품 ①「강재래방 화료만서(強哉來訪 話了漫書)」 2수(首), ②「우흥(寓興)」, ③「간운(看雲)」, ④「칠월회일 독유남산(七月晦日 獨遊南山)」, ⑤「병인추 피방장발 기군미형 겸정첨시(丙寅秋 被放將發 寄君美兄 兼呈僉侍)」 2수(首), ⑥「희청(喜晴)」, ⑦「남해 기사제공좌(南海 寄舍弟公佐)」, ⑧「남해우사후 유죽림 서죽엽(南海寓舍後 有竹林 書竹葉)」, ⑨「봉고인즉사(逢故人卽事)」, ⑩「장의동즉사(藏義洞卽事)」, ⑪「증거제유이악(贈巨濟儒李鶚)」 2수(首) 등 총 11편(14首)를 한꺼번에 소개하겠다. 앞서 언급했듯이 홍언충은 갑자사화로 인해 거제도로 유배와서 약 2년간 귀양살이를 했으며 총 60편의 거제유배문학을 남겼던 문인이다. 기타 사항은 앞서 올린 자료를 참고하길 바란다.
○ [홍언충(洪彦忠)의 거제유배 작품의 감성과 성격, 그리고 독창적인 문학적 특징]
첫째① '감옥으로서의 섬'이 주는 폐소감과 울울(鬱鬱)한 자탄이다. 홍언충의 유배 시편 기저에는 가문의 몰락이라는 절박함과 억류된 현실에서 오는 깊은 답답함(폐소감)이 깔려 있다. 그리고 갑자사화로 인해 부친 홍귀달이 처형되고 형제들이 모두 유배되는 참혹한 고초를 겪었기에, 그의 작품에는 스스로를 '수인(囚人, 죄수)'으로 형상화하는 양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외부 세대와의 단절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격렬한 분노나 원망으로 터뜨리기보다는 내면의 쓸쓸함, 울울감, 그리고 세월을 탄식하는 자탄(自嘆)의 정조로 차분하게 침전시켜 표현했다.
둘째② 거제도 유배지가 '문화공간'으로서의 교섭과 위무이다. 거제도라는 고립된 공간을 단순한 유배지가 아닌, 지식인들과의 소통을 통한 문화적 치유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주변에 함께 유배를 온 동료 문인(이행, 이려, 김세필, 이장곤 등)이나 거제도의 현지 지식인(이악 등)과 시를 주고받으며 유배의 괴로움을 달랬다. 이에 따라 제시된 작품들 중 상당수가 동료들과 슬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차운시(次韻詩)와 기증시(寄贈詩) 형태의 관계 지향성을 띠는 것이 큰 특징이다.
셋째③ 성찰을 통한 '순명(順命)'과 진실의 발견이다. 홍언충 시의 가장 돋보이는 문학적 성취는 비극적 현실 앞에서도 절망에 함몰되지 않고 자아를 성찰하며 운명을 받아들이는 정신(순명)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척박한 유배지 환경과 자연(비, 구름, 대나무 숲 등)을 객관적으로 관조하면서, 내면의 고독을 다스리고 다잡는 철학적 사유로 승화시켰다. 결국 그의 시들은 절망적인 고립 속에서도 인간적 중심을 잃지 않고, 내면의 담담한 '진실'을 찾아가는 구도자적인 면모를 단정하고 정제된 시어로 보여준다.
1) 다음 ’尤‘와 ’齊‘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2수(首) 「강재래방 화료만서(強哉來訪 話了漫書)」 즉, ’강재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부질없이 쓰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두 수 다 측기식인 이 한시는 작가가 연산군 시기 갑자사화(1504년)로 인해 거제도에서 혹독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을 찾아와 준 벗(거제 동료 유배객) '강재(強哉)'와 밤새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후 밀려오는 쓸쓸함과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낸 명작이다. 여기서 강재(強哉)는 조선 중기 문신이고 본관은 고성이씨, 자가 강재(强哉)인 이려(李膂, 1484~1512)이다. 1504년 갑자사화로 인해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1506년 거제도로 이배되어, 아우들(이전,이육,이려)과 함께 유폐되었다.
**「강재래방 화료만서(強哉來訪 話了漫書)」**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羈旅俱懷萬斛愁 나그네 처지에 둘 다 만 섬(萬斛)의 시름을 품었는데
過逢猶喜是吾流 지나다 만나니 그래도 우리 같은 부류(同道)라 기쁘구나.
非詩窮我天窮我 시(詩)가 나를 궁하게 한 게 아니라 하늘이 나를 궁하게 한 것이니
歲晩還能此事不 한 해가 저무는데 도리어 아직 이 일(시 짓기)을 할 수 있는가.
溪鳥聲中思益悽 시냇가 새소리 속에 그리움은 더욱 처량해지고
還家十夢九全迷 집으로 돌아가는 꿈은 열 번 꾸면 아홉 번은 완전히 길을 잃네.
故園正在靑山北 고향 집은 바로 저 푸른 산 북쪽에 있건만
老眼長隨白日西 늙어가는 눈은 마냥 지는 해를 따라 서쪽을 바라보네.
○ 내용인즉, 이 시는 유배지에서 겪는 인간적인 고독과 절망,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운명적 체념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친한 벗과의 만남이라는 일시적인 기쁨도 잠시, 대화가 끝난 후 밀려오는 고독감은 '새소리'라는 청각적 자극을 통해 한층 더 깊어진다. 특히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열 번 꾸면 아홉 번은 길을 잃는다(還家十夢九全迷)"는 구절은 조선시대 유배 문학을 통틀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좌절감을 가장 애절하고도 기발하게 표현한 명구로 꼽힌다. 웅장한 가을이나 혹독한 겨울의 유배지 풍경 속에 갇힌 한 선비의 쓸쓸한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오는 작품이다.
2) 다음 ‘陽’ 운목의 칠언절구 「우흥(寓興)」 ‘문득 흥취가 일어나’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평기식 한시는 치열한 현실 정치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얻은 마음의 평온과 달관의 경지를 담은 작품이다. 굳이 세상을 떠나 숲속에 은거하지 않아도, 내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으면 세상 그 어디든 고요한 낙원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노래했다.
**「우흥(寓興)」** 문득 흥취가 일어나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黃槐白鳥眼中句 노란 괴화 나무와 흰 새는 눈앞에 펼쳐진 시구(詩句)요,
小閣淸風蘋末涼 작은 누각에 불어오는 맑은 바람은 마름 끝을 스쳐 서늘하네.
林下何須求靜適 숲속에 은거해야만 어찌 고요함과 편안함을 찾으랴,
世間元自不奔忙 인간 세상도 원래부터 스스로 바쁘거나 번잡한 것은 아니라네.
[주1] 황괴(黃槐) : 노란 꽃이 피는 괴화나무(회화나무)를 말한다. 예로부터 선비의 기개나 고결함을 상징하는 나무로 자주 등장함.
[주2] 안중구(眼中句) : '눈속의 시구'라는 뜻,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 풍경 그 자체가 한 편의 완벽한 시와 같다는 예술적 표현이다.
[주3] 빈말량(蘋末涼) : 송나라 시인 송옥(宋玉)의 〈풍부(風賦)〉에 나오는 "바람은 마름 꽃 끝에서 일어난다(風起於青蘋之末)"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물가에서 시작된 미풍이 누각까지 불어와 서늘함을 전하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묘사했다.
[주4] 정적(靜適) :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며 유유자적한 상태.
[주5] 원자불분망(元自不奔忙) : '원래부터 스스로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는다'는 뜻, 세상이 우리를 바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집착이 스스로를 번잡하게 만들 뿐이라는 불교적·노장적 깨달음이 담긴 구절이다.
○ 내용인즉, 이 시는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뇌우를 읊거나, 유배지의 고통 속에서 눈물 흘리던 이전의 시들과 비교했을 때 한층 더 높은 정신적 초월과 내면의 평화를 보여준다. 먼저 [1~2구]에선, 풍경이 시가 되는 물아일체다. 작가는 작은 누각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노란 꽃을 피운 회화나무와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흰 새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완벽한 한 폭의 그림이자 시다. 여기에 물가에서 부는 서늘한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시각과 촉각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작가는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어 [3~4구]에선, 장소의 한계를 넘어선 달관의 경지다. 앞서 아름다운 자연을 음미하던 작가는 시의 후반부에서 깊은 철학적 성찰을 이끌어낸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정적)를 얻으려면 세속을 떠나 깊은 산속이나 숲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는 "어찌 꼭 그래야만 하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은 본래 고요하지도, 바쁘지도 않은 중립적인 공간이다. 세상을 바쁘고 어지럽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내 마음의 집착과 명예욕'이다. 따라서 내 마음속 번뇌를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소란스러운 저잣거리나 유배지 한가운데에 있더라도 그곳이 바로 고요한 낙원이 될 수 있다는 혜안을 제시했다. 결국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세상 원망을 멈추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마침내 절대적인 내면의 자유를 찾아낸 선비의 격조 높은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3) 다음 ‘庚’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간운(看雲)」 ‘구름을 바라보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측기식 한시는 장마가 그친 뒤 하늘에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세상사 미련을 버리고 자유로운 자연의 삶을 동경하는 작가의 마음이 맑고 명쾌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간운(看雲)」**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暑退涼生積雨晴 무더위 물러가고 서늘함이 감도는데 길던 장마 마저 개고
一軒欹枕看雲輕 집 한 구석에서 베개에 기대어 가볍게 떠가는 구름을 바라본다.
東西倏忽元無繫 동으로 서로 순식간에 흘러가며 원래 얽매인 곳이 없으니
惹起江湖萬里情 강호(자연)를 향한 나의 만 리 정취를 자아내네.
○ 내용인즉, 먼저 답답한 현실에서의 해방감을 드러냈다. 이 시는 그 기나긴 고통속의 비가 마침내 개고 난 후의 상쾌함과 해방감을 담고 있다.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함이 찾아옴과 '장마가 갬은 작가의 마음에 찾아온 평온함을 시각적·촉각적으로 전달한다. 이어 구름(雲)을 보며 무심(無心)과 자유를 갈망한다. 작가가 베개에 기대어 멍하니 바라보는 구름은 '원무계(元無繫)', 즉 그 어디에도 얽매이거나 집착하는 곳이 없는 존재다. 사화(士禍)라는 가혹한 정치적 그물망에 걸려 고초를 겪었던 작가에게, 동쪽과 서쪽을 자유롭게 오가는 구름은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절대적인 자유의 상징이다. 마지막으로 강호만리정(江湖萬里情)은 은거의 지향이다. 구름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작가의 마음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강호의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세상의 부귀공명과 번잡한 정쟁에서 벗어나 자연(강호)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은일(隱逸)의 사상이 이 마지막 구절에 집약되어 있다. 비가 쏟아지는 절망적인 순간에서 출발하여 벗을 기다리는 간절함을 지나, 마침내 갠 하늘의 구름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 한 선비의 정신적 여정이 잘 드러나는 명시다.
4) 다음 ‘庚’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칠월회일 독유남산(七月晦日 獨遊南山)」 ‘7월 그믐날, 홀로 남산에 노닐다(다시 앞의 운을 쓰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 적힌 ‘부용전운(復用前韻)’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평기식 한시는 바로 직전에 감상하신 「간운(看雲)」의 시 운(晴, 輕, 情)을 그대로 다시 가져와 지은 작품이다. 장마가 개인 뒤 홀로 산에 올라 탁 트인 경치를 바라보며, 쇠약해진 육체 속에서도 다시금 소년처럼 살아나는 유람의 흥취와 정신적 해방감을 노래하고 있다.
**「칠월회일 독유남산(七月晦日 獨遊南山)」** 다시 앞의 운을 쓰다(復用前韻)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憑危踏險爲新晴 새로 날이 개었기에 위태롭고 험한 곳을 밟고 오르는데
隨意東西步履輕 마음 내키는 대로 동쪽으로 서쪽으로 발걸음도 가볍구나.
咫尺曾爲萬里遠 지척의 가까운 거리도 전에는 만 리처럼 멀게만 느껴졌는데
衰遲還復少年情 늘어지고 쇠약했던 몸에 도리어 소년시절의 흥취가 다시 살아나네.
○ 내용인즉, 먼저 「간운(看雲)」과의 문학적 연결(운자 차용)이다. 이 시는 「간운」과 똑같은 운자인 청(晴), 경(輕), 정(情)을 사용했다. 앞선 시에서 방안에 누워('의침') 창밖으로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강호의 정을 느꼈다면, 이번 시에서는 마침내 방을 박차고 나와 직접 남산의 험한 바위와 산길을 밟으며 자연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적극적인 행위로 발전했다. 둘째 자유로운 발걸음과 심경의 변화를 표현했다. '수의동서(隨意東西)'라는 표현은 「간운」의 구름이 '동서속홀(東西倏忽)'하게 날아가던 모습과 겹쳐진다. 얽매임이 없던 구름처럼, 작가 자신도 이제 아무런 구속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날이 개면서 육체적인 무거움과 정신적인 우울증이 함께 씻겨 내려간 상쾌함이 '발걸음이 가볍다'에 투영되어 있다. 셋째 지척(咫尺)과 만리(萬里)의 역설이다. 제3구의 '咫尺曾爲萬里遠'은 매우 뛰어난 심리 묘사다. 남산은 눈앞에 보이는 지척의 거리였지만, 몸이 병들고 마음이 갇혀 있을 때는 마치 만 리나 떨어진 곳처럼 아득하고 가기 힘든 곳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먹고 날이 개어 산에 오르니, 그 장벽이 순식간에 허물어졌음을 고백한다. 넷째 노경(老境)을 이겨내는 소년의 정취다. 앞선 시들에서 홍언충은 서른 전후의 젊은 나이임에도 모진 사화와 질병을 겪으며 자신을 '하얗게 세어버린 노인'으로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맑게 갠 대자연의 기운을 받아, 쇠잔해 가던 몸에 파릇파릇한 소년 시절의 순수한 열정과 흥취가 다시 솟구쳐 오름을 느끼며 기뻐하고 있다.
이 시는 가혹한 현실 정치에서 상처받은 조선시대 선비가 어떻게 자연 유람(남산 수행)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활력을 되찾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다.
5) 다음 ‘陽’과 ‘寒’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2수(首) 「병인추 피방장발 기군미형 겸정첨시(丙寅秋 被放將發 寄君美兄 兼呈僉侍)」 즉, ‘병인년(1506년) 가을, 유배가 풀려 장차 출발하려 할 때 군미(홍언방) 형에게 부치며, 겸하여 여러 어른과 동료들께 올립니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홍언충이 1506년(중종반정) 가을,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형인 홍군미(洪君美, 홍언방)와 친지·동료들에게 보낸 작품이다. 연산군 말기의 가혹한 폭정과 고단한 거제도 유배 생활을 견뎌내고 마침내 살아남아 고향의 부모님(혹은 조상 묘)을 뵈러 갈 수 있게 된 감격과 안도감, 그리고 오랜 고초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의 복잡한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병인추 피방장발 기군미형 겸정첨시(丙寅秋 被放將發 寄君美兄 兼呈僉侍)」**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제1수] ‘陽’ 운목, 평기식.
三年滄海哭龍荒 삼 년 동안 거친 바다와 거제도 땅에서 눈물 흘리며
吾四人存但未亡 우리 네 사람만이 죽지 않고 오직 살아남았구나.
今日實蒙天借力 오늘날 실로 하늘(조정/중종반정)의 은혜와 도우심을 입어,
家山咫尺奉玄堂 고향 산천이 지척이라 부모님(혹은 사당/조상 묘)을 받들어 뵈러 가네.
[제2수] ‘寒’ 운목, 평기식.
分明日下是長安 해 아래 분명히 여기가 서울(장안)이건만,
羸病無心更據鞍 가난과 병으로 야윈 몸은 다시 말안장에 오를 마음조차 없네.
因怪山鳩多事在 산비둘기는 무슨 일이 그리 많은지 기이하게 생각되어 보니
陰晴強報不能閑 날이 흐린지 갠지를 애써 알리느라 한가할 틈이 없구나.
[주1] 용황(龍荒) : 조정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거칠고 궁벽한 변방(유배지)을 뜻한다. 여기서는 홍언충이 유배 생활을 했던 거제도 바닷가를 가리킨다.
[주2] 오사인존(吾四人存) : 연산군 시절 갑자사화 등으로 수많은 선비가 죽어나갈 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자신과 동료들을 뜻한다.
[주3] 현당(玄堂) : 깊고 어두운 방이라는 뜻, 여기서는 부모님이 계신 안방을 뜻하거나 혹은 가문 세장지(조상의 묘소/사당)를 의미한다.
[주4] 일하(日下)와 장안(長安) : 국왕이 계신 서울(한양)을 비유함. 유배에서 풀려나 마침내 서울 근처나 제도권으로 복귀했음을 알 수 있다.
[주5] 리병(羸病) : 유배 생활로 인해 극도로 지치고 야위어 병든 상태를 말함. 홍언충은 유배에서 풀려난 지 불과 2년 뒤인 1508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주6] 산구(山鳩)와 음청(陰晴) : 산비둘기가 울며 날씨(흐림과 갬)를 알리는 자연 현상이다. 정치적 격변(중종반정)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이 바뀌어 바쁘게 돌아가는 세태나, 혹은 자신의 해방을 요란스럽게 반겨주는 듯한 주변 환경을 은유적으로 빗댄 표현.
○ 내용인즉, 이 시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점인 1506년 9월 중종반정 직후의 현장을 담고 있다. 연산군의 폭정 속에서 3년 동안 바다 멀리 유배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떨던 저자는 반정 소식과 함께 극적으로 사면을 받았다. [제1수]에선,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부모님을 뵐 수 있게 해준 하늘의 조화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제2수]에선, 반전된 분위기가 드러난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서울 땅을 밟았으나, 몸은 이미 유배지의 고초로 완전히 망가져 말안장에 앉을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 세상은 반정으로 급박하게 돌아가고(산비둘기가 바쁘게 날씨를 전하듯), 사람들은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분주하지만, 작가는 만신창이가 된 육신 때문에 권력이나 정계 복귀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씁쓸해하는 지친 지식인의 내면을 쓸쓸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연산군에서 중종으로 넘어가는 '중종반정' 직후 유배 선비들의 심경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써 의미가 있다.
6) 다음 ‘庚’ 운목의 칠언율시 「희청(喜晴)」 ‘맑은 날을 기뻐하며’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오랫동안 내리던 장마가 그치고 오랜만에 찾아온 맑은 하늘과 대자연의 생동감 넘치는 변화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명시다.
**「희청(喜晴)」**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經旬苦雨衣生綠 열흘 동안 괴롭게 내린 비에 옷에는 푸른곰팡이 피더니
半日新晴眼潑明 반나절 새로이 맑아지니 눈앞이 활짝 밝아지네.
南嶺雲從北嶺去 남쪽 고개의 구름은 북쪽 고개를 따라 흘러가고
前灘響接後灘驚 앞 여울의 물소리는 뒷 여울로 이어지며 세차게 울리네.
飜飛鵝鸛鳴聲喜 거위와 황새는 날아오르며 기쁜 소리로 울어 대고
落日牛羊遠牧平 저무는 해 속에 소와 양들은 먼 평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네.
坐待扶疏林木影 우거진 숲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기를 앉아서 기다리니
東峯新月半規生 동쪽 봉우리 위로 반달이 새로이 떠오르네.
○내용인즉, 이 시는 '답답함(비)에서 시원함(맑음)으로', '낮의 역동적인 풍경에서 밤의 고요한 정취로' 이어지는 시상의 흐름이 매우 매끄럽고 훌륭하다. 특히 찌푸렸던 날씨가 개면서 느끼는 인간과 동물, 대자연의 공통된 기쁨을 시각(구름, 새, 달)과 청각(물소리, 새소리)의 감각적 대조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연산군 시기의 혼란스러운 정치 현실 속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느꼈을 해방감과 안도감이 날씨라는 매개체를 통해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7) 다음 ’陽‘ 운목의 오언율시 「남해 기사제공좌(南海 寄舍弟公佐)」 ’남해에서 아우 공좌에게 부치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서 공좌(公佐)는 친동생 홍언국(洪彦國)을 말한다. 이 시는 갑자사화(1504년)로 인해 가문이 풍비박산 나고, 자신은 거제도로, 동생인 홍언국(洪彦國, 자 공좌) 역시 다른 곳으로 각각 유배를 가게 된 처절한 상황에서 지어졌다. 거친 남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생사조차 알기 힘든 동생을 그리워하는 형의 가슴 아픈 혈육의 정이 절절하게 표현된 명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506년도 여러 기록에는 홍언승(大曜 洪彦昇), 홍언충(洪彦忠, 直頃), 홍언방(君美, 洪彦邦), 홍언국(洪彦國 公佐) 4형제와 이윤(李胤, 子伯) 이려(李膂, 強哉)의 4형제가 거제도에서 함께 기거(유배)하고 있었다.
**「남해 기사제공좌(南海 寄舍弟公佐)」**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生世偶兄弟 이 세상에 태어나 우연히 형제가 되었는데
謫居還一方 귀양살이마저 도리어 각자 다른 곳에서 하는구나.
因緣疑已了 우리 형제의 인연이 이제는 다 끝난 것인가 의심스러운데
聲問忽相望 소식(편지)이 문득 도달하여 서로를 바라보게 하네.
秋冷魚龍伏 가을 바다 차가워지니 물고기와 용들은 숨어 엎드리고
天空島嶼長 하늘은 공허하고 멀리 외로운 섬들만 아스라이 이어져 있네.
何因一帆力 어찌하면 한 조각 돛배의 힘을 빌려서
瞑目墮君傍 눈 딱 감고 그대(동생)가 있는 곁으로 툭 떨어질 수 있을까.
[주1] 상망(相望) : 편지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마치 눈앞에서 마주 보는 듯한 감격을 표현한 것이다.
○ 내용인즉, 홍언충의 가문은 연산군의 폭정에 직언을 하다가 아버지 홍귀달이 유배 중 살해당하고, 홍언충과 그의 동생 홍언국(공좌)을 비롯한 형제들이 모두 유배길에 오르는 참혹한 화를 겪었다. 이 시는 1505년 거친 가을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생사조차 기약하기 어렵던 극한의 상황 속에서 쓰였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중에 들려온 동생의 생존 소식에 울컥하는 마음, 그리고 가로막힌 섬들과 바다를 뛰어넘어 동생에게 달려가고 싶은 형의 절절한 외침이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화려한 수사나 과장 없이, 쓸쓸한 가을 바다의 풍경과 인간 본연의 혈육 정을 투박하고 진정성 있게 연결해 낸 수작이다. 홍언충은 이 가혹한 유배 생활 중에서도 동생뿐만 아니라 유배지 남해의 자연을 노래한 총60편의 유배시를 남겼다.
8) 다음 ’庚‘ 운목의 칠언절구 「남해우사후 유죽림 서죽엽(南海寓舍後 有竹林 書竹葉)」 ’남해 유배지 숙소 뒤에 대나무 숲이 있어 대나무 잎에 쓰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측기식 한시는 가문이 화를 입고 남해 바다로 쫓겨온 가혹한 유배 생활 중에서도, 숙소 뒤편의 대나무 숲을 거닐며 차(茶)를 끓여 마시는 선비의 초연하고 맑은 정신세계를 감각적으로 그려내었다.
**「남해우사후 유죽림 서죽엽(南海寓舍後 有竹林 書竹葉)」** / 홍언충(洪彦忠)
森碧琅玕蔭日淸 빽빽하고 푸른 대나무(琅玕)는 맑은 햇살을 가려주고
岸巾舒嘯獨閑行 두건을 치켜쓰고 길게 휘파람 불며 홀로 한가로이 거니네.
烹煎纔罷吟哦進 찻물 끓이기를 겨우 마치고 나직이 시를 읊조리니
牙頰淸風一味生 어금니와 뺨 사이로 맑은 바람(淸風)의 참맛이 생겨나네.
[주1] 낭간(琅玕) : 푸른 옥(玉). 시에서는 대나무를 아름답게 비유하는 표현
[주2] 안건(岸巾) : 두건을 이마 위로 높이 밀어 올려 이마를 드러내는 것으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탈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뜻한다.
[주3] 서소(舒嘯) :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내듯 길게 소리를 내거나 휘파람 부는 행위.
[주4] 일미(一味) : 그 차 맛 속에 담긴 자연의 참된 진미를 깨달았음을 의미함.
○ 내용인즉, 이 시는 홍언충의 다른 유배 시(「여희강」, 「기사제공좌」)에 나타난 쇠사슬 소리에 놀라거나 혈육을 그리워하는 통한과 비장미와는 대조적으로, 유배 생활의 고통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킨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정치적 탄압으로 몸은 먼 남쪽 변방의 작은 숙소(寓舍)에 갇혀 있지만, 대나무의 곧은 기상과 푸른빛을 닮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대나무 숲의 '푸른빛', 두건을 젖혀 쓴 '소탈함', 차를 끓이는 '소리와 시 읊는 소리',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차의 맛과 청량감'이 시각, 청각, 미각을 통해 입체적으로 어우러진 뛰어난 시이다. 대나무 잎에 시를 썼다는 독특한 제목처럼, 이 시는 자연을 벗 삼아 마음을 달래던 조선 선비들의 다도(茶道) 문화와 풍류를 잘 보여준다.
9) 다음 ‘魚’ 운목의 칠언절구 「봉고인즉사(逢故人卽事)」 즉, ‘옛 친구를 만나 즉흥적으로 읊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평기식 한시는 척박한 방랑 생활 속에서 뜻밖에 만난 옛 친구에 대한 반가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 한잔 제대로 대접할 수 없는 빈궁한 처지의 서글픔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한 명시다. 슬픈 현실 속에서도 친구를 만나 손뼉 치며 웃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다.
**「봉고인즉사(逢故人卽事)」**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江山風雨數椽廬 강산에 비바람 치는데 두어 서까래 작은 오두막,
萬里飄飄未定居 만리를 나그네로 떠돌며 아직 살 곳을 정하지 못했네.
邂逅故人拚一笑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 손뼉 치며 한바탕 웃어보지만
尊空無婦更謀諸 술잔은 비어 있고 아내마저 없으니, 이를 어찌 다시 마련할거나.
10) 다음 ‘麻’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장의동즉사(藏義洞卽事)」 ‘장의동(현재 서울 종로구 신영동·세검정 일대)에서 눈앞의 풍경과 심회를 읊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측기식 한시는 지난날 조정에서 겪은 번잡한 정치 생활을 뒤로하고, 깊고 고요한 자연 속으로 들어오며 느끼는 부끄러움과 해방감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명작이다.
**「장의동즉사(藏義洞卽事)」**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出郭山行細路斜 성곽을 나와 산길을 가니 좁은 길이 비스듬히 이어지는데
忽驚流水洞門呀 문득 흐르는 물소리에 놀라 보니 골짜기 입구가 입을 벌린 듯(활짝) 열려 있네.
羞將十載紅塵脚 십 년 동안 붉은 먼지(세속) 묻혀온 이 발을 이끌고
重着芒鞋踏古槎 다시 짚신 바꾸어 신고 이 오래된 나무다리를 밟으려니 부끄러워지네.
[주1] 장의동(藏義洞) : 조선시대 한양 성곽 밖 북한산 자락(현재의 서울 종로구 세검정 사천 계곡 일대)에 있던 유명한 명승지였다. 고려 시대 창건된 '장의사(藏義寺)'라는 절이 있어 장의동이라 불렸으며, 당대의 수많은 문인들이 정쟁에 지칠 때 찾아와 시를 짓고 마음을 달래던 대표적인 휴식처였다.
[주2] 홍진(붉은 먼지) : 사대부 문학에서 벼슬길, 즉 세속의 명예와 부귀공명,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추악한 정쟁을 상징한다.
○ 내용인즉, 먼저 공간의 대비를 통한 심리 묘사를 했다. 이 시는 공간의 이동에 따라 작가의 심리가 드라마틱하게 변화한다. [1구]의 '출곽(出郭)'은 번잡한 권력과 정쟁이 가득한 '한양 성안'을 벗어남을 뜻한다. [2구]의 '동문하(洞門呀)'는 깊은 산골짜기(장의동) 입구가 마치 작가를 환영하듯 입을 활짝 열고 마주하는 극적인 순간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성 밖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청량한 물소리와 웅장한 자연의 문은 작가에게 큰 해방감과 경외감을 준다. 둘째 홍진(紅塵)과 망혜(芒鞋)는 상징성을 대표하는 시어다. 홍언충은 연산군 대에 대과에 급제한 후 사화의 풍파를 겪기까지 약 10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이를 '십재홍진(十載紅塵)'으로 요약했다. 또 ‘망혜(짚신)’는 벼슬아치들이 신는 가죽신이나 관화와 대비되는 전원생활, 즉 강호에 은거하는 처사(處士)의 삶을 상징한다. 셋째 자연 앞에서의 부끄러움(羞)을 드러냈다. 작가는 숭고하고 때 묻지 않은 대자연(장의동)을 마주하는 순간, 세속의 때가 잔뜩 묻은 자신의 발을 돌아보며 문득 '부끄러움(羞)'을 느낀다. 이는 자연을 닮지 못하고 명리를 쫓아 부침했던 과거에 대한 깊은 자기반성이자, 이제는 온전히 은거하며 지조를 지키겠다는 내면의 다짐이기도 하다.
11) 다음 ‘灰’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2수(首) 「증거제유이악(贈巨濟儒李鶚)」 ‘거제 선비 이악에게 주다’는 조선전기 문신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우암고(寓菴稿)』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1, 2, 4구(句)의 압운자가 ‘才’, ‘開’, ‘催’ 자를 똑같이 사용해 2수(首)를 이루었고 압운법(작법)은 두 수 다 측기식이다. 이 시는 저자가 거제의 선비 이악(李鶚)에게 지어 준 한시다. 거제도라는 변방에서 온 뛰어난 선비 이악을 서울(한양)의 번잡한 거리에서 만나 기쁨을 나누고, 다시 짧은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거제선비 이악(李鶚)은 1506년 홍언방, 이행, 김세필, 홍언승, 홍언방 등 거제도 유배자들과 함께 시문을 주고받고 술을 마시면서 함께 거제도 비경을 즐겼던 인물로 당시 거제도 최고의 선비(유생)로 칭송받는 인물이었다. 자(字)는 사립(斯立)이고 거제현의 선비다(縣士 字斯立). 홍언충과 이행 그리고 김세필의 문집에서 그의 기록이 전한다.
**「증거제유이악(贈巨濟儒李鶚)」**/ 홍언충(洪彦忠 1473~1508)
[제1수(首)]
海外無雙李秀才 바다 밖(거제도)에서 당할 자 없는 뛰어난 선비 이악이여,
聞名不見已眉開 이름만 듣고 만나지 못했을 때도 이미 내 미소가 지어졌다네.
相逢京洛塵埃底 이제 번잡한 서울 거리 한복판에서 서로 만나니
一笑寒梅雪裏催 한 번의 웃음에 눈 속의 차가운 매화가 피어나는 듯하구나.
[제2수(首)]
窮病何須更說才 곤궁하고 병든 처지에 어찌 다시 재주를 말하겠냐마는,
天涯聊喜笑談開 하늘 끝 변방에서 온 그대와 애오라지 즐겁게 담소를 나누네.
還嫌杯酒悤悤散 도리어 아쉬운 건 술 한 잔 나누고 바쁘게 헤어지는 것은
不爲天邊暮雨催 하늘가에 저무는 저 비 때문만은 아니라네.
[주1] 수재(秀才) : 재주가 뛰어난 선비를 높여 부르는 말, 여기서는 '이악'.
주2] 경락(京洛) : 중국의 도읍인 낙양(洛陽)에서 유래한 말, 조선시대 한양.
[주3] 진애(塵埃) : '먼지와 티끌'이라는 뜻, 속세의 번잡함이나 세속의 고단한 삶.
[주4] 한매설리최(寒梅雪裏催) : 두 사람이 만나 활짝 웃는 모습이 마치 '눈 속에서 추위를 뚫고 매화가 봉오리를 터뜨리는 것 같다'는 아름다운 비유다. 팍팍한 서울의 삶(진애) 속에서 만난 이악의 존재가 매화처럼 반갑고 고결하다는 뜻이다.
[주5] 궁병(窮病) : 가난하고 병듦. 홍언충 본인의 처지나 당대 선비들의 고달픈 현실을 대변한다.
[주6] 총총(悤悤) : 바쁘고 총망한 모양. 바삐 떠날 때 '총총히 떠나다’
○ 내용인즉, 이 시는 먼 곳에서 온 귀한 인연과의 짧은 만남과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먼저 [1수]에선, 만남의 기쁨을 노래했다. 작가는 소문으로만 듣던 거제의 수재 이악을 서울의 먼지 풀풀 날리는 번잡한 거리(경락진애)에서 마주했다. 그 반가움이 얼마나 컸던지, 눈 속에 매화가 피어나는 듯 감격스럽다고 표현했다. 이어 [2수]에선, 이별의 아쉬움을 기술했다. 하지만 기쁜 만남 뒤에는 늘 아쉬운 이별이 따른다. 서로 처지가 곤궁하고 갈 길이 바빠 술 한 잔을 나누자마자 금방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작가는 날이 저물어 비가 내리는 자연 현상 핑계를 대보지만, 진짜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비가 아니라 '그대와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라고 고백하며 시를 끝맺었다. 젊은 나이(36세)에 요절한 천재 문인 홍언충의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인간미와 선비들 간의 깊은 교우 관계를 잘 보여주는 서정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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