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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戊子) 1888년 1월 구조라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4편 ⑬>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는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동시에 작성한 구조라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4편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4편의 문건은 모두 무자년(戊子) 1888년 새해를 맞아 항리(구조라) 주민들의 세금과 역(役)에 관련된 지세포, 옥포, 조라포 수군진의 만호와 거제부 사또에게 동시에 같은 사유로 올린 청원서다.
한마디로 항리 주민들은 해안 방어(수토)와 왜선(倭船) 접대 등 과도한 군역과 부역 때문에 본업인 고기잡이를 할 시간이 없어 마을 전체가 굶주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조막(造幕, 임시 막사를 짓는 일)이라는 부역까지 추가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예전 규정(완문)대로 ‘조막(造幕)’ 이 한가지 항목만은 면제(탈급)해 달라는 민원을 4곳(거제부사, 지세포 만호, 옥포 만호, 조라포 만호)에다 동시에 올리고 있다.
첫 번째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이 문건은 사도주(使道主, 거제부 고을 사또)에게 각 마을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배 짓는 막사(造幕)의 부역을 면제해 달라고 청원한 「등장(等狀)」이다.
두 번째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진하(鎭下)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이 문건은 항리 주민들이 지세포 관사주(知世官司主, 만호)에게, “이번에 새로이 제기된 군기(무기) 제작을 위한 막사 건립(造幕) 부역은 면제해 달라"는 호소문 「진하항리거민등장(鎭下項里居民等狀)」 즉, 소지(所志, 청원서)다.
세 번째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이 문건은 항리 주민들이 옥포(玉浦) 관사주(官司主, 만호)에게, ”지금도 과도한 부역에 시달리는데 조막(造幕, 임시 막사를 짓는 일)이라는 부역까지 추가되니 이를 면제해달라고 호소하는 청원서다.
네 번째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이 문건은 항리 주민들이 조라포(助羅浦) 관사주(官司主, 만호)에게, 과도한 군역과 부역 때문에 본업인 고기잡이를 할 시간이 없어 마을 전체가 굶주리고 있으니 부당한 잡역(造幕)이나 과도한 노동에서는 제외해 달라고 청원한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이다.
●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이 문건은 조선시대 거제시 일운면 지역(항리, 망치, 양화) 주민들이 사또에게 올린 '소지(所志, 청원서)'다. 과도한 부역에 시달리던 이 지역 주민들이 '배를 만들 때 막사를 짓는 노동(조막)'을 면제해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주요 내용은 “우리는 이미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수색 업무(수토)를 수행하고 있으니, 배 짓는 막사(造幕)까지 지으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니 둘 중 하나만 하게 해달라“ 주장이다. 이 문서는 조선 후기 지방 주민들이 관권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전에 받은 공식 문서(완문)를 근거로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 [제사[題辭] 사또 판결문]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에서 "왜 우리 마을들(항리, 망치, 양화)만 힘들게 막사를 짓는 부역(조막지역)을 독박 써야 합니까?"라고 항의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조사해 보니 다른 마을과 형편이 똑같은데 이 마을만 고생하는 게 맞다. 일단 예전 규정(완문)대로 부역을 면제해 주겠다. 만약 인근의 다른 마을들도 억울하게 독박 쓰는 일이 있다면, 나중에 다시 보고를 받아 실태 조사를 한 뒤 공평하게 시정하겠다"는 공정한 행정 처리를 보여주고 있다.
1)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이 문건은 사도주(使道主, 고을 사또)에게 배 짓는 막사(造幕) 부역을 면제해 달라고 청원한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이다.
”다음 내용을 삼가 소지(所志, 청원서)로 올립니다. 저희(矣徒等)가 겪는 치우치고 고통스러운 형편은 다 들어 말할 수 없습니다. 대개 가장 큰 폐단(巨弊)은 다름이 아니라, 통제영(統營)의 여덟 척 전선과 본부(거제현)의 전선, 그리고 훈련도감(訓局)의 배를 율포(栗浦)와 본리(本里) 경계에서 새로 건조할 때 막사를 짓는 일(造幕) 등입니다. 이 일은 망치(望峙)와 양화(楊花) 두 마을과 저희 세 마을이 힘을 합쳐 막사를 지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극히 원통하고 가슴 아픈 일은, 저희가 지세포·옥포·조라포 등 세 수군진(鎭)의 수토(搜討, 바다를 수색하고 토벌함) 업무를 맡아 풍우를 가리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며 수행하는 사이, 매번 죽을 고비에 처하는 고통스러운 형편을 어디에 호소하겠습니까. 이런 사유로 전임 사또(舊官使道)께 청원하여 '막사를 짓는 한 가지 항목은 면제(頉給)해 주겠다'는 뜻으로 완문(完文, 공식 확인서)을 받아 굳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망치와 양화 두 마을 주민들이 막사 짓는 일에 대해 다시 소송을 제기한 후, 저희 세 마을에도 예전처럼 다시 거행하라는 분부가 내려졌습니다. 이에 받아두었던 완문을 관청에 바치며, 세 진(鎭)의 업무와 관련된 청원서를 첨부하여 일제히 소리 높여 호소합니다. 부디 너그러이 살펴주신 후, 저희가 3곳의 수군진(水軍鎭)의 수토 업무를 윤번으로 수행하고 있으니, 막사 짓는 일 한 가지는 영구히 면제해 주십시오. 이 두 가지 업무(수토와 조막) 중 한 곳에만 처분을 내리시어 원통함을 면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관청의) 명령이 내려져 시행되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또(수령)께서 처분해 주십시오.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右謹陳所志矣段, 矣徒等偏苦之狀, 盡不擧論是白在果, 大槩巨弊者非他統營門八戰船, 及本府戰船, 與訓局船, 栗浦境ㆍ本里境 處, 新造時設幕等節,望峙楊花兩洞及矣徒三洞, 合力造幕是在如中, 至寃極痛事段,知玉助三鎭搜討, 及不計風雨冒死擧行之間, 每當死境如許, 苦狀何處伸訴, 此由呈于舊官使道主前, 造幕一款, 頉給之意, 成完文堅置矣, 千萬意外望峙楊花兩洞居民, 造幕事呈訴後, 三洞依前擧行之意, 分付是白遺, 成給完文納上是乎等以,三鎭所呈所志貼連, 齊聲仰訴爲白去乎, 萬加 參商敎是後,知玉助三鎭搜討倫回是白去乃, 造幕一款永爲頉下是白去乃, 兩端中指一處分, 俾免寃枉事, 行下爲白只爲, 行下向敎是事. 使道主 處分 戊子正月日]
○ 제사[題辭] 사또 판결 내용
”왜변(倭邊)의 사정은 일반적인 어촌과 여기 3마을(三洞)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유독 이 마을만 (관아의) 몰아치기식 조사를 당하는 고통을 겪는 것은, 아마도 '조막(造幕, 막사 건립)'의 부역을 면해보고자 함일 것이니 어찌 보면 괴이할 것도 없다. 우선 이전에 올린 완문(完文, 공식 확인서)에 따라 부역을 면제(頉給)해 주도록 하라. 저쪽 두 마을 역시 독단적으로 짊어지는 부역이 있는 지에 대해서 다시 호소하는 것을 보아, 마땅히 실상을 조사하여 바로잡도록(釐正) 할 것이다.“
[倭邊情與凡於使役三洞別無異同, 而該洞之獨被搜討之苦, 則欲免 造幕之役, 容或無怪, 姑依前呈完文頉給是矣, 彼兩洞亦有獨被之役, 則第觀更訴, 當査實厘正向事. 二十三日 行使〔押〕]
[주1] 조막(造幕) : 전선을 건조하거나 수리할 때 기술자와 인부들이 머물 임시 막사를 짓는 노동이다. 당시 백성들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주2] 수토(搜討) : 섬이나 해안가를 순찰하며 왜구를 감시하거나 표류민을 수색하는 해상 임무다. 최전방 거제 지역 주민들에게 부과된 위험한 국방 의무였다.
[주3] 완문(完文) : 관청에서 특정 권리를 인정하거나 부역을 면제해 줄 때 발급해 주는공식 증명서. 오늘날의 '행정 확인서'와 같다.
[주4] 삼진(三鎭) : 본문에 언급된 지세포, 옥포, 조라포를 의미하며 당시 여기 세 마을과 가까운 거제의 주요 해군 기지였다.
[주5] 사역(使役)삼동(三洞) 별무이동(別無異同) : "부역을 지는 세 마을의 형편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뜻. 즉, 행정적으로 세 마을이 똑같이 나누어 맡아야 할 일이라는 의미.
[주6] 탈급(頉給) : 사유를 인정하여 의무를 면제해주거나 삭감해 주는 행정 처분
[주7] 이정(釐正) : 어지러운 제도를 바로잡거나 공정하게 고치는 것을 뜻함.
●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진하(鎭下)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이 문건은 항리 주민들이 지세포 관사주(知世官司主, 만호)에게 올린 「진하항리거민등장(鎭下項里居民等狀)」 즉, 소지(所志, 청원서)다. 주요 내용은 "우리 마을은 이미 해안 방어와 왜선(倭船) 접대 등 과도한 고역을 치르고 있으니, 이번에 새로 제기된 군기(무기) 제작을 위한 막사 건립(造幕) 부역은 면제해 달라"는 호소문이다. 이 사료는 조선 후기 지방 군현과 수군진 주변 마을 주민들이 짊어졌던 과도한 군역과 접대비 부담, 그리고 표류 왜선의 경비 부담 등의 고충을 통해, 항리 마을에만 부과된 과도한 역과 세금의 형평성을 제기한다. 이에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민원 과정을 잘 보여주는 자료다.
2)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진하(鎭下)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다음의 일로 삼가 소지(所志, 청원서)를 올립니다. 저희 마을(洞里)은 바다 끝 구석에 위치해 있으며, 부(府)와 진(鎭)의 경계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 치우치게 고통스러운 형편은 다 들어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른 마을과 달리 유독 큰 폐단(고충)이 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왜선(倭船)이 율포(栗浦) 경계와 본 마을 경계에 표류해 오면, 본 진(鎭)에서 수호하는 일이나 대동미 급료 및 학관(學官)이 사정을 물을 때 음식을 대접하는 예가 있습니다. 또한 백성들을 거느리고 호송하는 일을 전적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우 중요한 수토(搜討, 수색 및 토벌)하는 곳으로서 내도(內島)와 외도(外島)가 본 마을 경계 내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지세포, 옥포, 조라의 세 진(三鎭)에서 돌아가며 달마다 세 차례 순라하는 배의 격군(格軍, 사공)들을 대접하고 기다리는 폐단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다른 마을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본 마을만의 고질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망치(望峙)와 양화(楊花) 두 마을을 논하자면, 이곳은 송하(松下, 소나무산 아래 산촌)에 속하여 이러한 한 가지의 폐단(고충)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본부(本府)에서 관장하는 전술 병기(戰器)를 새로 만들 때, 막사를 짓는(造幕), 한 항목을 저 두 마을과 똑같이 우리 마을에도 노동력 동원 역(役)을 부과하는 것은 참으로 원통한 일입니다.
감히 이와 같이 단체로 호소(齊訴)하오니, 살펴 헤아려 주신 뒤에 이토록 독하게 겪고 있는 폐단의 형편을 논리적으로 따져보아, '각종 막사를 짓는 한 가지 항목'에 대해서는 면제(頉給)해 주겠다는 뜻으로 문서를 작성해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관청의) 명령이 내려져 시행되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세포 관사주(知世官司主, 지세포 수군진의 만호)께서 처분해 주십시오.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右謹陳所志事段, 矣徒等洞里簿在海隅, 而亦係於府鎭之兩界, 其所偏苦之狀盡不擧論是白在果, 他洞之外, 大槩巨弊者非他, 倭船之漂到栗浦境與本里境, 則自本鎭守護等節及大同給料與 學官問情時自有供饋之例, 而領民護送之事, 全然堪當是白乎旀, 莫重搜討處是在, 內島外島在於本里境,知玉助三鎭輪廻月三巡邏船格等待, 與其間貽弊在所不已是白乎則, 此等之苦瘼, 與他各洞自別而不悛之例也, 然以望峙楊花兩里論之, 乃是松下之屬, 無此一技之弊是在如中, 本府所關戰器新造時造幕一款段, 與彼兩里一體仰役實是冤枉乙仍于, 敢此齊訴爲白去乎, 參商敎是後, 如此獨弊之狀論理, 而各樣造幕一款頉給之意移文成送之地, 行下爲只爲, 知世官司主 處分, 戊子正月日]
○ 제음[題音] 지세만호(知世萬戶) 판결 내용.
이 제음(題音)은 지세포 만호(萬戶)가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을 항리 주민에게 받은 후, 다시 거제도호부 사또에게 이 청원을 재송부한 것이다. 군사적 방어라는 명목 아래 자행되는 무리한 행정과 그로 인해 도탄에 빠진 항리 마을 주민들의 고충을 거제부 최고 결정권자에게 보고하여 해결해 달라는 호소문이다.
”왜구의 정황을 살피고 수호하는 일에 대해 말씀드리면, 비록 세 곳의 마을(洞)이 힘을 합치고는 있으나 혹여 '근묵자흑'이 될까 두렵습니다. 세 진(鎭)에서 수토(수색과 토벌)하는 일은 매일 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내도 외도 두 섬이 그 항리(項里)에 속해 있어 한탄스럽게도 15일 동안이나 배의 격군(사공과 노꾼)들이 밤낮으로 대기하느라 그 고통과 폐단(苦弊)이 매우 심각합니다. 진(鎭)에서는 알고 있는 사실이나 본부(本府, 관청)에서는 아직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망치(望峙)와 양화(楊花)는 똑같이 소나무 아래 사는 백성들이라 폐단을 나누기에 고충이 크지 않는 처지이나, 유독 항리(項里)만은 상황이 더욱 심하고 어렵습니다. 이상의 사유를 직접 뵙고 말씀드리고자 하며, 다시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1888년 1월13일 지세포 만호(도장)
[倭邊情守護段, 雖三洞合力, 然近墨者黑而已, 三鎭搜討段, 每日爲之, 而內外兩島屬其項里, 則以一歎論之十五日, 船格晝宵等待極爲苦弊, 鎭只所知以本府姑未洞燭是矣, 望峙與楊花一般松下之民, 分弊論之, 則項里獨只有別耳, 右由面稟爲計, 更待處分事. 十三日 知世萬戶〔押〕]
[주1] 율포(栗浦), 지세포(知世浦), 옥포(玉浦), 조라포(助羅浦) : 거제도에 있던 조선 수군의 주요 수군진영(해군기지)이다.
[주2] 내도, 외도 : 거제시 일운면에 위치한 섬들로, 왜구(예구), 와현, 항리(구조라), 망치, 양화 앞바다에 위치하고 있다.
[주3] 수토(搜討) :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기 위하여 조사(調査)하거나 엿봄. 여기서는 일본과 마주보고 있는 최전방 지역인 내도와 외도의 정기적인 수색 및 토벌
[주4] 왜선 접대 : 일본 배가 표류해 오면 관리들의 수사 과정에서 드는 비용과 식사 대접을 지정 마을에서 전부 부담했음.
[주5] 삼진 순라군 접대 : 지세포·옥포·조라진에서 정기적으로 나오는 순찰선 인원들을 먹이고 뒷바라지하는 부담이 컸다.
[주6] 송하(松下) : 소나무산 아래 산촌 마을. 소나무 보호 구역 관리 구역. 군사적 잡역이 면제.
[주7] 근묵자흑(近墨者黑) :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나쁜 버릇에 물들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이 문건은 항리 주민들이 옥포(玉浦) 관사주(官司主, 만호)에게 올린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이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관아에 올린 '소지(所志)', 즉 민원 신청서(청원서)로, 주로 거제도 항리마을의 주민들이 과도한 부역(노동력 징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지역은 대마도와 마주하는 최전방인 이곳엔 일본 배들이 자주 출몰하거나 표류해 오던 길목이라, 지세포, 옥포, 조라포 수군진이 모여있는 곳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미 왜선 감시, 관리들의 수로 왕래를 위한 배 대기(선격과 부역) 등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막(造幕, 임시 막사를 짓는 일)'이라는 추가 부역까지 겹치자 이를 면제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 어민들이 수시로 관가에 불려가 배를 젓고 보초를 서느라 정작 고기잡이 철을 놓치는 비극적인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3)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다음의 일로 삼가 소지(所志, 청원서)를 올립니다. 저희 마을(본동)은 지리적으로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고을과 진(鎭)에 바쳐야 하는 요역(부역)을 유독 심하고 고통스럽게 짊어지고 있습니다. 왜선(일본 배)들이 아침저녁으로 항상 표류해 오기 때문에, 이를 끌어당기고 수호하는 방책에 힘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통영(통제영) 문소에 소속되어 수토(수색 및 소탕)를 담당하는 업무와 관련해서는, 지세포(知世浦), 옥포(玉浦), 조라포(助羅浦)의 세 진이 번갈아 가며 매일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이른바 내도와 외도가 수로로 떨어져 있어 관리들이 자주 왕래하는데, 그때마다 배와 사공(船格)을 때 없이 대기시켜야 합니다. 이 때문에 어민들이 고기 잡을 때를 놓치게 되니 이 또한 큰 폐단입니다. 슬프게도 이 쇠락한 마을이 어느 겨를에 쉴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민정을 살펴주셔서, 본부(거제부 관청)에서 담당하는 '조막(막사를 짓는 일)' 한 가지 항목만은 면제(탈급)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이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여 시행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옥포 관사주(만호)의 처분을 바랍니다.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右謹陳所志事段, 矣徒等本洞辟在要衝, 邑鎭徭役獨被偏苦者, 倭船漂泊恒在朝夕, 領曳之節守護之方, 靡不用極是乎旀, 加以統營門所關搜討次知, 則知玉助三鎭輪廻日日巡邏, 所謂內島外島隔在水路官人往來也, 船格無時等待, 則魚民失時亦係此弊, 哀此殘洞, 何以暇休乎, 由此民情本府所關造幕一款頉給之意, 成移文行下爲只爲, 行下向敎是事. 玉浦官司主 處分, 戊子正月 日]
○ 제음[題音] 판결 내용
이 판결문(題音)은 옥포 만호가 위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을 접수 받은 후, 다시 거제부사(사또)에게 재송부한다는 판결 내용이다. 이 문서에서 항리 주민들이 겪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 표류 왜선 관리와 비용, 세 수군진의 해상에 수토(수색·토벌)하는 일 등의 부역에 동원되고 있어 생업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니 임시 막사를 짓는 또 다른 요역에는 행정적인 배려를 해서 면제해 달라는 내용이다.
”왜선(倭船)을 지키고 끌어다 대는 수고가 이미 다른 마을과는 다를 뿐만 아니라, 땅(지리적 위치)이 세 진(鎭)을 수토(수색·토벌)하는 길에 있어 건너다니는 행인조차 거의 쉴 틈이 없습니다. 막사를 지어 폐단을 제거하는 한 가지 항목은 구휼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러한 뜻을 본부(거제부 관청)에 가서 보고하여 시행하십시오.“ 13일 옥포 만호(직인)
[倭船守護領曳之勞, 旣已與他洞有異不喩, 地在三鎭搜討之要路, 渡涉行人殆無虛時, 造幕除弊一款不可不恤, 此意往呈于 本府向事. 十三日 行使〔押〕]
[주1] 소지(所志) : 예전에, 청원(請願)이 있을 때에 관아(官衙)에 내던 서면 청원서
[주2] 요역(徭役) : 나라에서 백성(百姓)에게 구실 대신으로 시키던 노동
[주3] 삼진수토(三鎭搜討) : 3곳의 군사 진영에서 순찰하거나 수색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함.
[주4] 조막제폐(造幕除弊) : 막사(임시 건물)를 지어 통행인들의 쉼터나 업무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민가에 폐를 끼치는 폐단을 없애는 것을 뜻함.
[주5] 불가불휼(不可不恤) : (백성의 사정을) 살펴서 도와주지(체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강한 강조의 표현.
●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이 문건은 항리 주민들이 조라포(助羅浦) 관사주(官司主, 만호)에게 민원을 올린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이다. 즉, 조선시대 거제도 항리민들이 관청에 올린 '소지(所志)', 즉 민원 제기용 진정서다. 내용인즉, 특히 거제도 지역의 주민들이 과도한 군역과 부역의 고통을 호소하며 대책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덧붙여 항리 마을은 대마도와 가까워 항상 왜구의 침입을 경계해야 하는 긴장 속에 살고 있으며, 통제영의 명령에 따라 끊임없이 순찰(수토)에 동원된다. 또한 배를 만들거나 관청 건물을 짓는 부역에도 동원된다. 각종 군사 업무에 너무 많이 동원되다 보니 본업인 고기잡이를 할 시간이 없어 마을 전체가 굶주리게 된다. 결국 생존권 마저 위협이 되어버린 지역민들의 처절한 삶을 잘 보여준다. 그런고로 ”이미 최전방 수호라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니, 다른 부당한 잡역이나 과도한 노동에서는 제외해 달라“는 간절한 청원을 담았다.
4)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
“다음의 일로 삼가 소지(所志, 청원서)를 올립니다. 저희들이 사는 지역은 지극히 변방의 한 모퉁이에 처해 있어, 고을과 진(鎭)의 요역(나라에서 시키는 노동)이 다른 곳보다 유독 치우치게 고통스럽습니다. 대마도를 마주 보고 있어 왜선이 표류해 와 머무는 일이 아침저녁으로 항상 일어나니, 쇠잔해가는 민력(民力)으로 표류 왜선의 수호와 접대 등 응당 해야 할 책임을 감당해 내지 못할 형편입니다.
또한 통제영의 관문(공문)에 따라 수토(搜討, 수색 및 순찰)를 차례로 돌아가며 하는데, 지세포·옥포·조라의 세 진(三鎭)이 차례대로 순찰하는 일이 날마다 없는 날이 없습니다. 관할하는 여러 섬을 드나들 때 만약 배(般隻)와 사격(沙格, 사공과 격군)이 없다면 그 폐단이 어떻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어민들이 고기 잡는 시기를 놓치는 것(失稔) 또한 이 폐단에 매여 있으니 통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쇠잔한 마을에 휴식할 겨를이 없으니, 이로 말미암은 민심의 형편은 더욱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본부(거제부)와 관계된 각 진영의 배를 만들거나 막사를 짓는 부역에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은 고질적인 폐단일 뿐만이 아닙니다. 이에 절박한 사정을 가지고 감히 이처럼 일제히 소리 높여 호소하오니, 저희 마을이 이미 변방의 수토(순찰)를 담당하는 곳인 바, 이토록 편중되고 고통스러운 사유를 본부에 문서를 보내(文移) 처리해주시고, 명령(行下)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조라포 관사주(만호)의 처분을 바랍니다. 무자년(戊子) 1888년 1월”
[右謹陳所志事段, 矣徒所居之地處在極邊一隅, 邑鎭徭役比他獨被偏苦者, 相望馬島, 漂倭來泊恒在朝夕, 彫殘民力頭民之節守護責應當使不勝勘擧是乎旀, 且以統營門所關搜討輪回, 則知玉助三鎮從第次巡邏無日無之是乎則, 所掌諸島出入之時, 若無般隻沙格, 其弊何如哉, 如斯之故漁民失稔亦係此弊, 痛乎, 残里休息無暇, 由此民情尤爲罔措不喻, 本府所關營各船造幕, 赴役勸民不啻頑弊是乎等以, 首迫情由敢此齊聲仰訴爲去乎, 矣徒本里既屬邊情搜討處, 則以此偏苦之由文移 本付事爲只爲, 行下向敎是事. 助羅官司主 處分 戊子正月日]
○ 제사[題辭] 판결문
이 제사(題辭)는 고통받는 마을 주민들에게 받은 「항리거민(項里居民) 등장(等狀)」을 다시 거제도호부 사또에게 재송부하는 문건이다. 항리 마을의 고충을 본 거제 고을에 다시 민원을 넣어 처리를 권유하는 글이다.
"비단 민사 소송뿐만 아니라, 항리 마을이 수색과 독촉(수토)으로 인해 겪고 있는 고통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이 일은 본부(거제부 관청)에 보고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1888년 1월14일 관(官, 만호) 직인(押)
[非徒民訴, 本里之搜討受苦已爲知矣, 這間事情往呈本府向事. 十四日 官〔押〕]
[주1] 삼진(三鎭) : 거제도의 지세포(知世浦), 옥포(玉浦), 조라(助羅) 수군진을 말함.
[주2] 수토(搜討) :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기 위하여 조사(調査)하거나 엿봄. 섬 지역이나 해안가를 정기적으로 순찰하며 외부 침입자를 수색하는 군사 활동.
[주3] 사격(沙格) : 배를 젓는 사공(沙工)과 격군(格軍)을 통칭하는 말로, 당시 백성들에게 가장 고된 부역 중 하나다.
[주4] 실념(失稔) : 본래 농사를 망친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어민들이 부역에 동원되느라 고기잡이 철을 놓쳐 생계가 막막해진 상황을 비유함.
[주5] 문이(文移) or 행하(行下) : 관청 간에 공문을 보내는 것과 상급 기관에서 하급 기관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을 의미함.
[주6] 비도민소(非徒民訴) : 비단(단순히) 민사 소송뿐만이 아니다. '비도(非徒)'는 '~뿐만이 아니다'라는 뜻.
[주7] 이위지의(已爲知矣) : '이미 알고 있다'는 뜻으로, 상급자나 지역 유지가 백성들의 사정을 살피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8] 차간(這間) : '이', '이러한'이라는 뜻의 지시어.
[주9] 향사(向事) : 일을 처리하다, 혹은 그 일을 향해 나아가라는 의미로 공문서에서 흔히 쓰이는 결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