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주요명소
울산, 어떤곳인가
울산광역시(蔚山廣域市)는 경상남도 북동부에 있는 광역 지방자치단체다. 동쪽은 동해를 끼고 멀리 일본열도와 마주하고, 서쪽은 가지산·신불산·재약산 등이 솟은 산악지대를 경계로 경상남도 밀양시, 남쪽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북쪽은 경상북도 경주시와 접하고 있다.
삼한시대엔 굴아벌촌(屈阿火村)으로 불리다가 757년(경덕왕 16) 하곡현(河曲縣)이 되었다. 고려 태조 때 흥려부(興麗府)로 승격되었다가 991년(성종 10) 공화현(恭花縣)으로 바뀐 뒤 1018년(현종 9)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
조선시대 1397년(태조 6) 진(鎭)을 두었다가 1413년(태종 13) 폐지하고 울산군(蔚山郡)으로 고쳤다. 이후 울산은 군사적으로 경상도 동부지방, 즉 경상좌도의 중요한 고장으로 성장했다. 1896년 전국을 조선 8도를 13도로 바꿀 때 경상도를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나누었는데, 이때 울산은 경상남도에 속했다.
1962년 울산군의 울산읍·방어진읍·하상면 등이 울산시가 되었고, 나머지 울산군이 울주군으로 이름을 바꿨다. 1991년 울주군을 다시 울산군으로 바꾸었고, 1995년엔 울산군을 울산시에 포함할 때 다시 울주군으로 되돌렸다. 1997년 광역시로 바뀌면서 경상남도에서 독립했고, 현재 남구·동구·북구·중구의 4개 구와 울주군의 1개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남알프스에서 시작한 태화강이 울산 시내를 지나 동해로 흘러들고, 천성산에서 시작한 회야강은 울산 남부를 적시고 동해로 흘러든다. 태화강과 회야강 하구는 항구가 들어서기 좋고 공업용으로 쓸 수 있는 물도 풍부해 울산이 우리나라 최고의 공업 도시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울산의 기후는 남해안 형에 속한다. 북서부의 산줄기가 겨울에 차가운 북서 계절풍을 막아주고, 동해를 지나는 동한 난류의 영향으로 한겨울에도 다른 고장보다 따뜻하다. 여름은 우기, 겨울은 건기로 나눌 수 있다. 울산의 연평균 강수량은 1,270mm 내외, 연평균 기온은 14℃다.
울산의 면적은 약 1천㎢로 우리나라 7대 도시 중 가장 넓다. 공업도시 울산의 면적이 이렇게 넓은 이유는 1995년에 산지와 논밭이 많은 울주군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현재 울산의 4개 구와 1개 군 중에서 울주군의 면적이 약 755㎢로 가장 넓고, 동해와 붙어 있는 동구는 약 36㎢로 가장 좁다.
원래 울산은 농업과 어업 등에 종사하는 1차산업의 인구가 많았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공업도시로 바뀐 뒤 1차산업 인구는 크게 줄어들었고, 2차와 3차산업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특히 울산은 2차산업 인구가 가장 많고, 3차산업 인구는 다른 대도시에 비해 적은 편이다. 현재 울산의 전체 인구는 약 110만 명이다.
울산의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배추·무·미나리 등이다. 특히 배는 과육이 곱고 달며 물이 많아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수산업은 온산 공업단지의 폐수로 해수가 오염되어 부진하나 강동면에서 나는 자연산 돌미역이 유명하다. 목축업은 언양면·두동면·두서면·상북면·삼남면 등에 낙농단지가 조성되어 한우·젖소·닭·돼지 등의 사육이 활발하며, 특산물로는 언양면의 자수정과 싸리세공품이 유명하다.
1 울산 반구대 암각화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사냥을 안전하게 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그림이다. 바위면엔 고래·호랑이·사슴·멧돼지·곰·거북·물고기·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이 그려져 있다. 이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작품으로 평가되는데, 1965년 사연댐을 만들 때 물속에 잠겨버렸다.
2 울주 천전리 각석
태화강 지류인 내곡천 암벽에 새겨진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은 청동기시대와 신라시대의 유적이다. 위쪽엔 가운데 태양을 상징하는 원을 중심으로 양 옆에 네 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 등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그린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엔 신라 법흥왕 때 이곳을 찾은 왕족의 행차에 대한 기록과 기마 인물상 등이 새겨져 있다. 이 글엔 화랑들의 이름과 당시 벼슬 이름 등이 포함되어 있어 신라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3 울산 암각화전시관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있는 울산 암각화전시관은 국보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각석 등을 홍보하기 위해 2008년 5월 개관한 국내 유일한 암각화 전시관이다. 건물은 지하1층 지상2층 규모로서 반구대암각화의 대표적 문양이자 울산시의 상징인 고래를 형상화했다.
1층의 전시공간, 어린이 공간, 2층의 체험공간으로 크게 구분된다. 전시공간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재현 모형과 함께 실시간 중계영상, 고래·새·호랑이·사냥도구 등 각종문양에 대한 입체적 영상해설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어린이 공간엔 암각화 친구들, 선사마을생활, 선사미술실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재미난 전시 공간이다. 2층의 체험공간은 반구대 암각화 속 사냥체험, 천전리 각석 속 농경체험, 선사인과의 만남 등 첨단 정보영상을 이용한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주차료와 입장료 없음. 관람시간 09:30~17:30 전화 052-276-4293
4 박제상 유적지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에 있는 박제상 유적(울산기념물 제1호)은 신라의 충신 박제상과 관련된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박제상은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눌지왕이 즉위하자 고구려에 잡혀 있던 왕자 복호를 먼저 구해낸 후 일본으로 가 왕자 미사흔을 구출하고 자신은 심한 고문 끝에 불에 타 숨졌다. 두동면 만화리 동쪽 치술령엔 박제상의 부인이 두 딸과 함께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 망부석이 되었고,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가 숨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망부석과 은을암이 남아 있다. 눌지왕은 박제상의 딸을 둘째 며느리로 삼고 박제상에게는 대아찬을 추증하고, 그 부인은 국대부인에 추봉하였다. 박제상 부부의 위패를 모시고 충절을 기려 배향한 곳이 치산서원이다.
5 석남사 부도
울주군 가지산에 있는 석남사(石南寺)는 824년 도의 국사가 왜적으로부터 신라의 안전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허물어지다가 6·25전쟁 때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1959년 복원되어 울산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절엔 석남사 부도(보물 제369호)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이 석남사 부도는 신라 시대에 중국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도의 국사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넓이에 비하여 높이가 높은 부재로 구성되어 길쭉해 보이며, 바닥돌의 폭이 좁아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받침돌의 구름무늬나 탑신의 신장상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고, 특히 가운데받침돌의 안상 조각에서 시대가 내려옴을 볼 수 있으나 각 부분이 완전히 보존된 아름다운 작품이다.
6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울주군 상북면에 있는 간월사지는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이 창건한 간월사(澗月寺)가 있던 자리다. 조선 말기에 폐허가 된 뒤 방치되어 있던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70호)을 신도들이 암자를 지어 모시고 있다. 이 불상은 대좌 일부와 광배가 없어졌으나 신체는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풍만하고 둥근 얼굴에 작고 단정한 입, 긴 눈, 짧은 귀 등이 부드러운 부처님 표정을 나타내고 있다. 손은 왼손을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을 내리어 땅을 가리키고 있는 항마촉지인이다.
망해사지 석조부도
울주군 청량면 율리의 망해사지 석조부도(보물 제173호)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2기의 부도가 망해사의 법당 북쪽에 동·서로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조각수법이 다소 빈약하지만 우아함과 단아함을 잃지 않은 통일신라 하대(下代)의 훌륭한 작품에 속한다. 망해사(望海寺)는 헌강왕(재위 875-886) 때 동해 용왕을 위해 세운 절이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부도들도 그때 세워졌다고 전해져 온다.
7 청송사지 삼층석탑
울주군 청량면 율리 남암산 청송사(靑松寺) 절터에 있는 청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382호)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이 탑은 기단의 짜임새가 정연하지 못하고, 1층 몸돌이 지나치게 큰 반면 지붕돌이 작아서 좋은 비례로 보기 어려우나, 지방에 분포된 신라 석탑의 한 예로 주목할 만하다. 기단 일부가 파손된 채 묻혀있던 것을 1962년에 해체·복원하였는데, 당시 상층 기단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여래입상 1구를 비롯하여 유리·구슬·수정·옥 등 30여 점이 들어 있는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8 태화사지 12지상부도
중구 학성공원에 있는 태화사지 12지상부도(보물 제441호)는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종 모양의 부도 중에 가장 오래된 유물일 뿐만 아니라 표면에 12지상(十二支像)을 조각한 것으로도 유일한 사리탑이다. 전체 높이는 110cm이다. 태화사(太和寺)는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고려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시기에 없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아있는 유물로는 이 부도가 유일하다. 태화사 절터에 묻혀 있던 것을 1962년에 발굴하여 학성공원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9 울산 동헌 및 내아
조선시대 지금의 중구 성남동·옥교동·북정동·교동에 울산읍성이 있었다. 성벽 길이는 1.7㎞ 정도였는데,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이 이 성의 돌을 가져다가 울산왜성을 쌓는 바람에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현재 이곳엔 울산동헌과 내아(시유형문화재 제1호)가 남아있다. 울산동헌은 옛 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서 울산도호부 수령이 일을 하던 곳이고, 내아는 수령이 살던 살림집이다. 예전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고, 지금 있는 건물은 1681년(숙종 7)에 다시 지은 뒤 여러 번 고쳐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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