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창문을 열면 오륙도 골바람이 훅하고 얼굴을 덮친다. 9월이 다 가도록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현상은 지구의 온난화 때문일까. 여름은 길게 가고 가을은 짧게 간다.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히는 한나절, 해운대 아랫동서가 저녁 초대를 한다. 이열치열 하자며 해운대 남원추어탕 집으로 오라고.
이열치열(以熱治熱)보다는 이수치열(以水治熱)이 한더위를 식히는 내 방식이지만 간만에 자매간의 인정도 돋우고 바람도 쏘일 겸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선다. 수년 전 손자 손녀들과 남원으로 알밤 줍기 체험을 갔을 때 맛나게 먹었던 추어탕 생각이 절로 난다. 군침이 돈다. 그때 그 맛일까 기대를 잔뜩 하고 갔는데 바로 그 맛이었다. 남원추어탕은 맛도 맛이지만 걸쭉하고 근기가 있어서 여름 보양식으로는 손색이 없다. 따끈한 국물과 반주 몇 잔에 온몸에서 열기가 솟는다. 오랜만에 해운대 밤바다를 걷기로 한다.
해 떨어진 지가 한참을 지났는데도 폭염에 데워진 아스팔트 바람이 훗훗하다. 그 옛날 삑삑 기적소리 울리며 수많은 이별과 만남을 실어 나르던 동해남부선 철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공 마천루 엘씨티 빌딩 숲 사이로 상현달이 으스름하고 거리에는 피서객들로 북새통이다. 특히 바다가 보이는 길목에서는 피난길처럼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싸움이 심하다. 나도 처질세라 어깨를 쭉 펴고 군중 속으로 파고든다.
대한 팔경의 하나인 해운대, 낭만이 들썩거리는 사랑의 메카에서 젊음을 노래하는 아베크족들의 향연은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톱과 차양막 아래서 사랑을 속삭이는 비키니의 몸 사위는 한편의, 행위예술이다. 로댕의 명품조각 ‘키스’를 연상케 한다. 젊은 청춘이었기에 그들의 사랑놀이가 더욱 싱그럽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덩달아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해변의 열기를 토하는 음악 소리에 맞춰 나도 따라 둠칫둠칫 어깨춤을 추어본다. 오색 분수대에서 화려한 분수 쇼를 보며 흥에 겨워 큰소리를 질러도 본다. 그러나 이내 목청이 가라앉는다. 사방은 온통 젊음의 도가니, 많은 세월을 살아온 희끈희끈한 허탈감에 마음이 주저앉는다.
정열이 넘치는 해운대의 여름밤을 그들과 함께 하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세월이 군중 속의 고독으로 밀려왔다.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닮은꼴이 보이질 않는다. 그들은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눈길을 피한다. 젊음의 놀이터에 훼방꾼이 된 기분이다. 그러나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지난날들이 새록새록 생각나 철썩 파도를 벗 삼아 모래톱을 걷는다. 그 옛날 젊음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남겨진 흔적들이 아득한 추억 속으로 나를 빠져들게 한다. 지나간 일들이 어제 같다. 세월 따라 잊혀진 시간인가 했는데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피서객들의 북새통에 큰딸아이를 잃어버려 정신없이 찾아 헤맸던 기억, 코가 큰 사람들과 C 호텔에서 함께했던 만찬과 축배의 그 날들, 젊은 나이에, 상처를 하고 슬픔에 잠겨있던 선배와 둘이 백사장에 누워 함께 울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사랑이 농익는 파라다이스 호텔 야외카페, 코끝을 스치는 차(茶)향에 발길을 멈춘다. 지난날을 생각하며 차 한 잔의 낭만에 젖고 싶었으나 “그 나이에 무슨 낭만 타령이냐고” 50년 지기 임자가 손사래를 친다. 차 한잔의 추억을 음미하고 싶은 마음을 그리도 몰라주다니, 애당초부터 낭만에 무딘 사람임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밤은, 왠지 야속한 심정이다. 무심한 사람 같으니라고.
해운대의 여름밤은 그렇게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뜻 모르는 음악이 흐르고 사랑의 속삭임이 쉼 없는 파도를 탄다. 정열이 불타는 축제의 광장, 한 세대를 건너와 버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니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나를 반겨주지도 않았고 지나온 세월을 위로 해 주지도 않았다. 파도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건만 이방인 같은 외로움만 가슴 가득히 밀려온다.
검푸른 파도가 철썩이는 늦은 밤, 동백섬 끝자락에 홀로 서 있는 등댓불이 달빛 아래 졸고 있다. 추억마저 가물가물한 망각의 세월이여,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군중 속의 고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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